뒤집히는 證言(증언)
嚴相益 연재소설 ‘환상(幻想)살인’<1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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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으로 나온 황정식이 어설픈 거짓말을 하다가 재판장의 지적을 받고 움찔했다. 그는 조서가 공개되지 않을 거라는 검사실 누군가의 말을 믿은 것 같았다. 그러다 판사가 조서를 제시하자 당황하고 있었다. 갑자기 머릿속 프로그램이 뒤엉켜 혼란이 온 것이다.

“검찰청에 간 사실도 없고 서명을 하지도 않았다면 거기 있는 서명은 누가 한 걸까요?”
재판장이 그를 내려다보며 꼬집었다.
“아니 서명은 제 거가 맞는 거 같은데요.”
그가 마지못해 더듬거리면서 인정했다. 이때 공판검사가 발끈 하면서 소리쳤다.
“이봐요, 증인! 검찰청에 와서 얘기한 게 아니라는 겁니까? 기억이 안 난다는 겁니까?”
검사의 공격에 황정식이 노골적으로 겁을 먹은 표정이었다.
“아니… 조서의 내용은 다 맞을 겁니다. 제가 지금 검찰청에 간 것만 기억이 안 나서요.”
그가 비굴한 표정으로 황당한 대답을 했다. 

“몸은 가지 않고 입만 갔다 이 말씀이죠?”
재판장이 비웃는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황정식을 만났을 때 본 그의 교활성을 써 낸 내용이 어느 정도 판사들의 속으로 스며들어간 것 같았다.
“변호인 신문하세요.”
재판장이 말했다. 다음은 내가 사기꾼 황정식을 법정에서 두들겨 팰 순서였다. 
“증인! 얼마 전 부평역 앞 로뎀나무 커피숍에서 저를 만난 기억이 나시죠?”

내가 구체적으로 장소까지 밝히면서 둘이 만났던 사실을 공개했다. 그가 얼른 내 눈치를 보면서 ‘그 사실을 이 자리에서 까발려도 되겠수?’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변호사인 내가 몰래 부탁을 하기 위해 자기를 만난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서 뽑아낼 말은 딱 한 마디였다. 살인사건 당시 강철윤의 머리는 뱀 껍질 같은 비듬이 보이는 빡빡머리라는 사실 하나다. 목격자가 본 범인은 머리가 자란 스포츠 머리였기 때문이다. 내가 입을 열었다.

“증인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지만 기억이 났다 안 났다 하시니 할 수 없이 하나하나 기억이 나게 해드리죠. 먼저 검찰청에 가서 서명한 건 기억이 안 나고 내용은 다 맞다 이 말입니까?”
“그것도 다 기억이 나는 건 아닙니다.”
그의 터무니없는 대답이었다. 뻔뻔스런 저질 사기꾼이 틀림없었다. 동정할 여지가 없었다. 나는 조서의 내용을 보여주면서 물었다.
“여기 보면 증인은 강철윤을 정신이상자라고 말한 게 나와 있는데 진짜 그렇게 모략을 한 적이 있나요? 아니면 검사의 조작입니까?”
순간 그가 검사의 눈치를 보았다. 검사가 눈을 부라렸다.
 
“그… 그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당황한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순간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강철윤의 눈에서 파란 불꽃이 튀었다. 그를 봐줄 필요가 없었다. 나는 조서의 또 다른 부분을 제시했다.
“여기 보면 강철윤이 태백산으로 도망하려고 했다고 검사에게 진술했는데 정말 저 강철윤씨가 그랬습니까?”
“……”
그가 어물거렸다.
“말씀해 보시죠.”
내가 다그쳤다. 그를 바라보는 강철윤의 눈에 한이 맺혀 있었다.

“사실은 그 전부터 제가 강철윤 선배에게 태백산에 가서 쉬고 오라고 권유했었습니다. 제가 그 말을 먼저 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피할 수 없자 마지못해 일부를 긍정했다. 큰 성과였다.
“증인은 사건발생 전날 밤 강철윤을 만났죠?”
“만났는지 안 만났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그가 또 미꾸라지같이 빠져나가려고 했다.
“검찰조서에 그렇게 쓰여 있는데요? 저기 검사님 얼굴 한번 또 쳐다보세요.”
“그러면 맞을 겁니다.”
그가 억지로 대답했다.

“그날 강철윤의 머리상태가 어땠어요?”
“글쎄요…”
그가 또 우물거렸다.
“빡빡머리에 뱀 껍질 같은 비듬이 있는데도 털지도 않고 있더라고 변호사인 나한테 부평역 앞 다방에서 말했어요, 안 했어요? 난 분명히 기억하는데.”
“맞아요. 그런 것 같습니다.”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내가 사전에 들어서 확인해 두지 않았으면 절대 긍정할 인간이 아니었다. 또 그 질문의 핵심을 알았어도 대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겠습니다.”
결정적인 사항을 검찰 측 증인에게서 얻어낸 것이다.

이번에는 재판장이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증인! 피고인 앞이라 말하기 곤란하면 피고인을 다른 곳으로 보낼까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가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재판장이 묻기 시작했다.
“조서를 보면 강철윤이 평소 죽은 여자에 대해 많이 얘기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말했어요? 적대적이었어요, 아니면 애정이 깔린 말이었어요? 진심으로 얘기해야 합니다.”
재판장은 그를 달래면서 물었다. 그가 고개를 숙이고 계산하는 눈치였다.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이 코너에 몰린 걸 비로소 알아챈 것 같았다.  

“강철윤은 ‘나는 잘 하려고 했는데’라고 말했어요.”
애정이 깔려있었다는 소리였다. 악의적인 방향이 바뀌었다.
“여자를 해코지하겠다던가, 그런 말은 없었어요?”
“……”
그가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해코지한다는 그런 소리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배석판사가 옆에서 재판장에게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의문이 나는 몇 개의 사항을 질문해 달라는 취지 같았다.

“직접 물어보시죠.”
재판장이 배석판사를 보면서 말했다. 삼십대 말쯤의 총명해 보이는 배석판사였다. 그가 증인인 황정식에게 물었다.
“증인, 사건기록에 나와 있는 계약서를 보시죠.”
판사는 서기에게 기록 속에 있는 서류들을 보여줄 것을 명령했다. 서기가 서류 중 공사약정서를 꺼내 그의 앞에 놓았다. 그 것은 공사비가 100억 원 이상인 큰 공사였다. 강철윤은  거기에 속아 그에게 돈도 꿔주고 활동비도 주고 했었다.
“이 계약서 증인이 서명하고 만든 거죠?”
배석판사가 물었다.

“그런 적 없는데요….”
그는 당황하고 겁먹은 표정이었다. 배석판사는 그의 사기행각을 이 기회에 분명히 법정조서로 확정해 두려는 눈치였다. 그때 강철윤이 화를 내며 소리 질렀다.
“이봐 황정식 네가 만들어 내게 보여준 서류잖아? 그런데 여기서 왜 모른다고 그래.”
“……”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침묵했다. 재판이 끝났다. 잠시 후 법정을 나오는데 황정식이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제가 좀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전형적인 비열한 인간형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서초동의 설렁탕집에서 김 변호사와 만났다. 친구이기도 했다. 그는 1심에서 강철윤의 변호사였다.
“강철윤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이 사건에 대해 중간점검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부장판사로 있으면서 살인사건을 심리할 때하고, 변호사로 재판을 받을 때하고 이렇게 다를 줄 몰랐어. 변호사가 되니까 재판장일 때 안 보이던 다른 게 막 보이는 거야. 피의자는 범행을 안 했으면 끝까지 안 했다고 부인하고 버텨. 그런데 증인이나 참고인들은 태도가 완전히 다른 거지. 경찰관이나 검사의 질문에 적당히 비위를 맞춰 화답한다는 걸 알았어. 검사는 참고인들의 그런 속성을 이용해서 얼마든지 소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지. 내가 재판장을 할 때 그걸 몰랐어. 만약 다시 재판장이 되면 수사기록에 얽매이지 않고 적어도 경찰관이나 검사가 조작을 한 건 간파할 수 있을 거 같아.”

그 역시 황정식 같은 가짜에 대해 분노했다.
“강철윤을 살인범이라고 생각해?”
내가 답답한 마음으로 물었다.
“했다, 안 했다 절대적으로 단정은 하지 못하겠지만 수사과정에서 비약과 논리조작이 심한 건 사실이지.”
그는 불만스런 얼굴로 이렇게 덧붙였다.
“1심 재판장 보고 경찰이 택시에서 내려 강철윤이 2분 만에 비닐하우스로 도착했다고 주장하는 산책로를 직접 같이 한번 걸어보자고 했지. 그랬더니 재판장이 싫다는 거야. 이미 마음속으로 넌 살인범이다 하고 결론을 내 버린 거겠지. 나도 재판장을 해 봤지만 재판장이 안다고 자신하는 건 수사기록을 읽었다는 거지 피고인을 안다거나 실체적 진실을 파악한 게 아니야. 물론 변호사도 자꾸만 피고인 쪽으로 기울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김 변호사가 재판의 본질을 얘기하고 있었다.


(계속)

 


“피의자는 범행을 안 했으면 끝까지 안 했다고 부인하고 버텨.
그런데 증인이나 참고인들은 태도가 완전히 다른 거지.
경찰관이나 검사의 질문에
적당히 비위를 맞춰 화답한다는 걸 알았어.
검사는 참고인들의 그런 속성을 이용해서
얼마든지 소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지.”

[ 2011-12-21, 17:5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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