呑虛 스님의 29년 전 대예언(1)
"일본은 침몰하고 만주는 우리 땅 된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이 한 잔 물이 동해물이 될 것이오 - 김 탄허 스님의 대예언

<1983년 2월호 마당>

허공을 삼킨 쇠붙이 김 탄허(金呑虛)스님. 그는 분명 용광로일 터이다. '우주가 내 뱃속에 있으니 내 아들 아닌 사람이 없다'고 농담하는 사람. 그에 대한 여러 갈래의 평가에도 한 가지 일치하는 점이 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봉의 학승(學僧). 불교뿐 아니라 유고, 도교 등 동양 사상 전반 특히 '화엄경'과 '주역'의 으뜸 권위자. 아울러 예언가. '듣기에 따라서는 예지의 거창함이 지나쳐 허황으로 이어지는 느낌을 뿌리치기 어렵다. 그러나 자연과학의 지식까지 동원하는 그의 예지에는 분명히 설득력이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동아일보' 김 중배 논설위원의 글에서. '탄허 스님 법어집' 발문에서 인용)는 평을 듣기도 하는 김 탄허. 그는 70년 전 전북 김제에서 났다. 아버지는 최 면암 선생의 학문적 전통속에 있었던 김 홍규. 탄허 스님의 속명은 택성.

엄격한 家門의 영향 속에서 스무 살 때까지 집에서 유학을 공부, 그 뒤 3년 동안은 道敎에 심취했다가 스물두 살에 오대산 월정사로 입산, 출가했다. 당시 그는 부인과 아들 하나를 거느린 몸이었다. 월정사의 高僧 방 한암 스님과 동양 사상을 문답하는 편지를 보내고 받기 3년만에 결심한 脫俗(탈속)의 길이었다. 탄허 스님은 10년의 작업으로 '화엄경' 80권과 '論'40권을 한국에선 처음으로 원고지 6만2천5백 장의 분량으로 번역, 출간한 것으로 이름 나 있다.

그는 '화엄경'뿐 아니라 '초발심자 경문''능엄경'등 중요한 佛典은 거의 모두 번역했고 지금은 '莊子'를 번역중이다. '화엄경'은 일본에서도 번역된 바 있으나 '論'은 탄허 스님의 번역 작업이 중국 이외에 나라에선 처음이다. '화엄경' 번역 원고는 탈고 2년 반이 지나도록 후원자가 없어 묵혀 있었던 적도 있다.

강원도 총무원 원장, 오대산 수도원 원장, 동국대학교 禪원장, 화엄학 연구소장, 동국대학교 이사 등의 이력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는 주로 '가르치는' 입장의 승려 생활을 해 왔다. 지금은 월정사 조실로 있는 그를 지난 소한날(1983년 1월6일) 찾아갔을 때 탄허 스님은 특강 법회를 주재하고 있었다. 지난해 11월15일부터 두 달 예정으로 시작된 이 法會는 4년만에 두 번째로 갖는 탄허 스님의 강론회였다. 제자들이 '원고 쓰기 바쁘다'는 스님을 한 달 동안 졸라서 마련한 강론회. 70여명의 승려와 신도들이 뜨끈뜨끈한 큰 온돌방에서 낭랑한 스님의 강론을 듣고 있었다.

예불이 끝난 저녁 6시30분께, 방산굴로 불리는 그의 거처에서 나는 스님과 마주했다. 월정사의 女僧들과 간부 스님들 칠, 팔 명이 그의 양쪽에 배석하고 있었다. 탄허 스님은 가부좌를 틀고 오똑하게 앉아 있었다. 상체가 이등변 삼각형을 이루며 퍽 안정된 느낌을 주었다. 글자 그대로 부도옹(不倒翁)의 인상이었다. 팽팽하게, 통통하게 살이 찐 탄허 스님의 가장 중심적 인상은 그의 머리 相이었다. 대칭형의 타원형인데, 앞, 옆, 뒤에서 보아도 럭비공처럼 거의 같은 모습의 비례감을 주는 그런 머리였다. 그날 그를 처음 본 사람들('마당' 기자와 비디오 촬영기사 팀)은 뒤에 한결같이 스님의 잘 생긴 頭相(두상)을 잊지 않고 거론했다.

- 스님께서는 예언을 자주 하시고 또 그 예언들이 적중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더구나 스님께선 내년이 정말 중요한 해다, 보통 해가 아니라고 최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셨습니다. 그런 전망이 '周易'의 풀이에서 나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좀 쉽게 설명해 주십시오?


'주역'은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보통 사람들은 알아먹지 못해요. 다만 내년 갑자년은 60년마다 돌아오는 그런 갑자년이 아니다, 60년 週期의 첫해라는 그런 의미에서가 아니라 몇 백년만에 처음으로 맞이하는 좋은 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러니 올해 계해년은 이 좋은 갑자년을 맞이하는 인시(寅時)와 같은 해인 것입니다. 옛 聖賢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루의 계책은 인시에 있다, 인시면 새벽 세 시쯤입니다. 일년의 계책은 봄에 있다. 평생의 계책은 부지런함에 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올해는 바로 밝아오는 새벽을 기다리는, 그리고 이제 동 터 오는 세 시대를 기다리는 그런 인시에 처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기분으로 올해를 살아야지요.


- 스님께서는 6.25 사변, 울진 공비 침투, 월남 패망, 그리고 몇 년 전의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까지 예견하셨다는 소문이 퍼져 있고 그래서 이번에 하신 말씀, 내년부터는 國運이 트이기 시작한다는 말씀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대에 부풀어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제가 6.25 전에 한암 스님을 상원사에서 20년 동안 모시고 있었습니다. 6.25 전해, 그러니까 기축년에 이사가자는 운동을 했지요, 한암 선생한테. 그런데 못 가시겠다고 그러신단 말에요. 그래서 이튿날에 가서, 스님 이사 안 가시렵니까, 못 가겠다, 이러신단 말입니다. 스님께서 농담삼아 메라구 하시는가 하니, 야, 옛날 말에도 있지 않나, 일지 일지 글이나 읽지, 이지 이지…, 삼지 삼지 신이나 삼지, 사지 사지 사는 데 사지, 이러신단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떠나겠습니다 했지요. 아이들 여섯 명이 나를 따랐는데 당시 스님의 시자인, 그 지금 주지 하는 사람 보고 스님이 너도 떠나려느냐 했어요.
늙은 스님 홀로 남겨 두고 떠나겠다고 할 수 있나요. 시자가 남겠다고 했더니 스님도 남으셨죠. 그래서 이사 가는 운동은 실패했어. 우리는 통도사로 내려왔는데 6.25 사변이 터진 다음해에 스님을 문병하러 제가 다시 여기로 왔다가 죽을 고생을 했지요. (필자 주 : 한국 근대 불교계의 이름난 고승인 방 한암 스님은 1951년에 가벼운 병을 얻었다. 발병 7일이 되는 아침에 죽 한 그릇과 차 한 잔을 마시고 손가락을 꼽으며 오늘이 음력 2월14일이지 하고 말한 뒤 오전에 가사와 장삼을 찾아서 입고 단정히 앉아서 태연한 자세를 갖추고 죽었다고 전한다. 세 시간 뒤 두 만공 스님의 제자이며 당시 육군 소령이었던 분이 스님의 열반한 시체를 사진으로 찍었다. 그 흑백 사진은 탄허 스님의 방벽에 걸려 있었다. 방한 스님은 비스듬히 앉은뱅이 걸상에서 뒤로 상체를 기댄 채 낮잠 자는 자세로 있고 앞의 책상 위에는 불전이 여러 권 포개어져 있는 사진이다).


- 그때 무슨 예감을 가지셨습니까?


뭐, 내가 알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아침에 일어나면 개미떼가 자기들끼리 싸움질을 해서 수백 마리씩 죽어 있는 것을 보곤 했습니다. 법당에서도 그렇고, 이 중대 뜰에서도 그렇고, 그런 게 보이는 것 아닙니까? 하늘은 하늘의 相을 보이고, 땅은 땅의 相을 보이고, 사람은 사람의 相을 보이고… 꼭 사람의 相만 보는 것이 관상이 아니거든요. 짐승들도 지진을 예지한다는데 하물며 그런 큰 난리의 조짐은 다 보이게 되는 겁니다.


- 지난 '68년에 여기서 원고를 옮기실 때도 개미떼가 죽은 것 같은 그런 조짐을 보셨습니까?


그때 난 말이요. 여기서 화엄경을 번역하고 있었습니다. 울진에서 공비 침투가 있기 한 달 전에 여기 있던 책과 원고를 삼척 영은사로 옮겼습니다. 그러니까 야단법석이 났지요. 그러나, 애비 일은 애비가 해야 되고 자식 일은 자식이 하지 누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짐을 옮기는 거지 몸을 옮기는 건 아니라고 (제자들을) 타일렀습니다. 그때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원고고 뭐고 큰 일이 날 뻔했지요.


- 불에 타버렸을 꺼란 말씀입니까?


그게 아니고 월정사 일대로 잔류 공비들이 도망쳐 와서 그들을 토벌하느라 이 근방은 쑥대밭이 되었지요. 강릉에서 한 달 있다가 소탕 작전이 끝난 여기로 되돌아왔는데 내가 기거하던 이 별당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더군요. 그래 이곳 유지들은 내가 이사를 간다고 법석을 떨더니 또 난리가 났다고 그럽디다만, 내가 뭐 알아서 그런 게 아니고 우연히 들어맞은 거지요. 미국이 월남에 참전했을 때도 나는, 지금은 미국에 가 있는 행원 스님한테 미국이 실패하고 말 걸 하고 이야기했지요.


- 그런 말씀하실 때면 1965년쯤이 되겠는데 미군이 유리할 때 아닙니까?


말도 못하죠. 시작할 때야 미국이 하루 아침에 쓸어버릴 것 같았는데… 행원 스님은 親美하는 분인데 펄펄 뛰면서 그까짓 것이 뭐냐고, 원자탄 반 방이면 다 없앤다고 그러더만. 그래서, 나 세력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 아니여, 어디까지나 추리인데 누가 맞는지 두고 보자고 했지요. 그러다가 10년쯤 뒤에 일본에 가서 행원 스님을 만났는데, 그 때는 월남 정부군이 후퇴한다고 야단할 땐데, 그 스님이 날 보고 아, 스님은 그때 미국이 저렇게 될 줄 어떻게 아셨습니까, 한 번 더 말씀해 달라고 하더군요. 나는 웃으면서 야당 있는 데선 말 안해, 여당이 있어야 말하지 했습니다만.
나는 세력으로 이야기 한 게 아니고 역학 원리에 달아 보았는데 월남은 이방(이方), 곧 남쪽인데 이는 불(火)로 풉니다. 미국은 태방(兌方)인데 금(金)이지요. 금이 불 속에 들어갔으니 녹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역학 원리에 화극금(火克金)이란 말이 있지요. 물곤 금덩어리가 워낙 크니까 다 녹는 건 아니지만 손해는 손해지요.

<필자 주 : 탄허 스님은 이밖에도 역학의 원리에 따라 지난 '75년에 한반도 주변 정세를 이렇게 푼 적이 있었다. 한국은 간방(艮方)이며 사람에 비유하면 소남(小男)이다. 미국은 소녀(小女)인데 소남과 소녀가 사이가 좋은 건 당연하다. 중국은 진방(震方)인데 장남으로 비유되며 소련은 감방(坎方)이고 중남(中男)이다. 월남은 중녀(中女)다. 중국과 미국은 장남과 소녀 사이로 음양 원리에 따라 얼마 동안 그 관계가 지속될 것이나 오래 유지하지는 못한다. 장남과 중남, 즉 중공과 소련은 같은 양(陽)이기 때문에 조화될 수 없고 대립하기 마련이다. 반면 중남과 중녀 사이인 소련과 월남은 음양이 조화되어 친숙하기 마련이다.>


- 스님께서는 곧 다가올, 내년 갑자년으로부터 시작되는 좋은 시대에서는 종교, 특히 불교가 한국 사회의 중심이며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고 나아가서 한국이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신 적이 여러 번 있었지요?


그건 나 개인의 생각이 아니고…이태조가 국사로 모신 사람이 무학대사였습니다. 이 분이 태조를 위하여 도읍 터도 잡아 주고 했는데 종묘의 문에다가 메라고 썼느냐 하면 창엽문(蒼葉門)이라, 푸른 잎이란 뜻인데 기실은 무학대사가 여기 비결(秘訣)을 붙인 거지요. 푸른 창(蒼)은 이십팔 군(君)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초두 밑에 이십팔 군, 이파리 엽(葉)자는 이십팔 세(世)입니다. 이십팔 代, 이십팔 君王. 당신, 李太祖가 아무리 애를 쓰더라도 이십팔 代 이십팔 군왕밖에는 더 못해 먹는다, 이런 뜻이지요. 이런 비결을 붙인 양반이 다른 것도 안 맞을 리가 없지 않아요. 그이가 메라고 말했느냐 하면 王씨는 나를 종 대접하고, 鄭씨는 나를 애비 대접할 것이다. 나란 여기서 불교를 말하는 건데 한양이 끝나고 정씨 도읍 터에서는 불교가 고려 때보다도 훨씬 대접을 받게 된다, 그렇지 않어요? 애비가 스승보다도 훨씬 가까우니까. 그렇습니다. 지리적으로 봐도 한양에는 불암이 동대문 바깥 삼십 리로 쫓겨 나갔습니다. 부처 바우가. 그렇지 않습니까? 불암리, 불암산, 불암사… 그렇다면 '정 감록'과 같은 얘기가 되는데요…


- 그게 누가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허허. 수천 년, 수만 년 전부터, 이 땅이 생길 때부터죠. 그와는 반대로 계룡산에선 부처 바우, 불암리가 토곡안에 있습니다. 본시 이름은 불암리인데 부남리, 부남리라고 합니다만. 또 유성이 삼십 리 바깥으로 쫓겨 나왔잖아요. 유교의 성(儒城)이… 또 공암(孔岩), 공자 바우도 삼십 리 바깥으로 쫓겨나 있거든요, 핫핫하…. 그러니 누가 그렇게 만들었겠어요. 자연의 원리지요. 그리고 학술적으로도 말이지요.
근래에, 일백 년 이래에 가장 뛰어난 이인(異人)이라면 김 일부 선생과 강 증산 선생 두 분을 꼽고 싶은데 김 일부 선생이 '정역'(正易)에서 메라고 썼는고 하니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는 儒佛仙이 하나로 통합된다고 했어요. 그 뒤에 증산 선생은 그가 저술한 經에서 '천지의 허무한 기운을 받아서 선도로 포태하고, 천지의 적멸한 기운을 받아서 불도로 양생하고, 천지의 이적 기운을 받아서 유교로 목욕하고 띠를 두르고 산다'고 하였습니다. 이것도 유불선이 한 덩어리가 된다는 말입니다. 세계적인 운명의 변화가 오는 것도 김 일부의 '정역'을 통하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게 되어 있는 겁니다. 물론 그 책의 역학 원리는 복희·문왕·주공·공자 네 성인이 부연한 열네 권의 책에서 흘러 나왔지만 '정역'은 우리나라 사람이 저술한 거지요.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정역'을 부정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예수는 마지막에 인류를 불로써 심판하리라 했습니다. 그 심판의 날짜는 예수도 모르고 천사도 모르고 다만 주님만 아시느니라, 그렇게 됐습니다. 그 때는 아이 밴 자가 위험하다. 왜? 놀라서 낙태하니까, 아이 가진 자가 위험하다, 왜? 아이들 내붙이다가 대가리가 깨지니까, 일단 문 밖에 나간 이상에는 옷 가지러 집안으로 들어가지 말아라.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지진으로 집이 흔들리니까, 집이 무너지니까 여자들은 문 밖에 나갔다가 내 유똥 치마, 비로도 치마 하면서 들어가지 말하는 거예요.
심판 시기를 암시하는 거란 말입니다. 또 프랑스의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는 1999년에 지구 멸망이 온다고 말했는데, 십육 년 남았지요. 십육 년 아무것도 아니에요.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가니까요. 이것도 무시할 수 없는 게 그 사람이 말한 것이 구십구 퍼센트는 맞았다, 이겁니다. 그러니 무시할 수 없잖아요?
그러나 성경이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체계적인 것이 없습니다. 어째서 인류가 멸망하느냐, 어떻게 멸망하느냐, 멸망한 뒤에는 어떻게 되느냐 하는 데 대해서 합리적인 설명이 없습니다. 김 일부 선생의 '정역'은 이런 문제를 밝혀 주고 있으며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증거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역학의 원리에서는, 그런데, 멸망이 아니라고 봅니다. 결실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결과로 치는 겁니다. 심판이 아니다, 성숙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결실이나 그 심판의 시기에 현존 인류의 육 할이나 팔 할이 없어진다고 하니까, 그러니까 멸망도 되고 심판이라 볼 수 있지요. 그러나 역학에선 그 뒤에 전개될 세계를 보니까 그렇게 심판이다, 멸망이다 하지 않는 거지요. 지금 지구를 보면 육지는 사분의 일, 물은 사분의 삼이나 됩니다. 그러나 그때, 지금의 변화가 온 뒤에는 물이 사분의 일, 육지가 사분의 삼으로 변합니다. 이렇게 육지가 늘고 인류는 육 할이나 팔 할이 줄어드니까 전쟁이 있겠습니까? 십리를 가도 사람이 하나 살까말까 할 것인데…
역학의 원리로서는 이 때 물이 불 속에서 나오기 때문에 相克할 이치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세상 사람들이 이해를 못할 겁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어째서 그런 변화가 오느냐? '주역'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복희 팔괘는 천도(天道)를 밝힌 것이고 문왕 팔괘는 주로 인도(人道), 즉 우리 사람들이 사는 것을 밝힌 것이고 정역 팔괘는 지도(地道)를 밝힌 거요. 그러면 땅의 변화가 어째서 그렇게 오느냐, 백이십 년 전에 지구의 밑구멍으로 불이 들어갔습니다. 그게 정역 팔괘에 딱 그려져 있는 거여.
여러 사람이 보면 모르지만 역학에 밝은 사람이 보면 다 드러나 있단 말이여. 추호도 속일 수 없는 거지. 그러면 김 일부 선생 자기 생각대로 그렇게 그린 거냐? 그렇다면 그게 가치가 없는 거지. 이 정역 팔괘는 그 양반이 계룡산에서 공부를 하는 데 한 사오 년 동안 그 그림, 정역 팔괘의 그 그림이 공중에서 떠도는 거야. 물론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거지. 김 일부 선생은 그 그림을 그려 놓고 이십 년 동안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주역' 記事에 성현의 말씀이 '신이란 건 만물을 묘하게 해서 말한 것이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김 일부 선생은 이것이 바로 정역 팔괘를 가리킨 것, 곧 그 출처임을 알았습니다. 이 대목의 前 삼단은 복희 팔괘, 前 이단은 문왕 팔괘를 밝힌 것인데 이 대목은 그 박식 군자도 주(註)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앞으로 나타날 정역 팔괘를 가리킨 것인데 주자는 증거가 없어 주를 못 낸 거지요. 여기에 힌트를 얻어 김 일부 선생은 '정역'을 저술하게 되었습니다.
이 '정역'팔괘에 불이 지구의 밑구멍으로 들어갔다는 이치, 이천 칠지(二天·七地)의 이치가 쓰여 있어요. 여기서 이(二)는 음(陰), 칠은 양(陽)을 뜻하는데 즉 陰火(음화)가 북극으로 들어갔다는 거지요. 그렇게 되면 북극 얼음이 녹게 되는 것입니다. 또, 이 지구가 천지 개벽 이래로 이십 삼도 칠 분쯤 기울어져 있는데 이 지구에 변화가 오는 거야. 지구가 똑바로 서. 이 지구가 아직 숫처녀야. 아직 월경이 오지 않은 처녀야. 아까 말한 성숙기란 것이 뭐냐 하면 월경이 온다 이겁니다, 예. 불이 지구 밑구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지구는 여성이니까 바로 사춘기가 온다는 거야. 그러면 여자가 사춘기에 접어들 때 큰 변화가 오는 것 같이 변화가 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낙관적이란 것은 이 변화 속에서 다른 나라들은 물에 잠기고 반쪽이 나고 하지만 우리나라만은 강토가 늘어납니다. 서해가 육지가 되면서 만주가 우리한테 옵니다. 일본은 어떻게 되느냐? 일본은 손방(巽方)인데 손은 '주역'에서 입지(入池)로 풉니다. 북극 얼음물이 녹을 때 잠기고 말 겁니다. 일본에 가서 총독할 준비나 해요.


- 그렇다면 통일이 된다는 말씀입니까?


아, 그러믄요. 통일은 소소한 문제지요. 만주가 우리 땅이 된다니까요.


- 스님께서는 더 나아가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길 나이 육십 세 이하인 사람은 만주가 우리 땅이 되는 걸 보고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지요.


보고도 남지요. 그 불란서 예언가 말에도 세계 심판 날이 십육 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더구나 변화가 온 뒤에는 사람의 수명이 는다는 말입니다. 極寒(극한), 極暑(극서)도 없어지고 사는 것도 좋아집니다.


- 저는 '주역'이나 동양 철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입니다만 스님의 말씀을 듣자하니 '주역'의 원리는 이 우주, 자연과 인간을 같이 보는 것 같군요. 우주, 자연을 지배하는 원리가 인간사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렇게 느꼈습니다만…


'주역'이란 것은 원체 폭이 넓어요. 불교를 내어놓고는 역학이 동양 철학의 근본입니다. 워낙 넓어요. '주역'은 도를 밝힌 겁니다. 도(道)란 무엇이냐, 도란 것은 태극을 뜻하는데 태극은 우주가 생기기 전의 면목을 말합니다. 태극의 원리는 죽은 몸뚱아리가 아니기에 이 우주 萬有를 자아내고 마는 겁니다. 태극은 동정(動·靜)의 원리를 가지고 있으니까 한 번 動하고 靜한 것이 천지가 된 것입니다. 천지는 또 동정의 원리에 따라 사상을 자아낸 것입니다.
사상(四象)은 공간적으로는 동서남북이요, 시간적으로는 춘하추동입니다. 사상은 동정·음양의 원리를 가지고 있으니까 八卦(팔괘)가 되는 것입니다. 팔괘가 다시 팔·팔 육십사, 육십사괘가 된 것입니다. 역학은 뭐냐, 聖人이 가르친 역학은 뭐냐? 그것은 소급시키는 겁니다. 근본 자리고, 우주 만유가 육십사괘에서 일어났다, 육십사괘는 팔괘, 팔괘는 사상, 사상은 음양, 음양은 태극, 태극은 어디에서 일어났는가? 태극은 일어난 데 없어요. 일어난 자리가 없는 그 자리는 천당과 지옥도 없습니다. 그것을 해탈이라 그러는 거여, 그 자리로 소급시키면, 성인은 그 자리에 사는 겁니다. 그것이 역학입니다. 아무쪼록 중생들로 하여금 근본 자리로 소급을 하여 道通하게 하는 것, 그것이 '주역'의 대의입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도통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역'은 성인이 되는 네 길을 밝혔습니다. 말로써 하는 자는 士를 숭상한다. 이건 사회 학문으로 말한다면 문과 계통이지요. 동(動)하는 걸로 쓰는 자는 變을 숭상한다, 이거는 물리에 비유됩니다. 그릇을 만드는 자는 그 相을 숭상한다, 이것은 화학입니다. 卜筮(복서)로써 하는 자는 그 점을 숭상한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말한다면 술수·점성학입니다. 이 四 科에 포괄 안 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네 단과 대학이 종합한 종합대학, 그것이 바로 '주역'의 세계입니다. 이 사회의 학문이 거기에 다 들어 있어요, 메라도. 원칙은 道를 밝히는 것인데 갑자기 그렇게 안 되니까 네 단과 대학으로 분류하여 세계 인류를 가르치자고 한 거지요.
수백 년 앞의 미래를 안다는 것은 점성학의 소속입니다. 점성학이란 것이 내일 모레 비온다, 바람 분다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천문학, 지리학, 의학, 상학, 사주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으로 추리를 하는 거지요. '주역'의 역리는 아는 것이 근본이 아니요. 아는 것이 끊어진 그 자리가 근본이여.
[ 2012-04-19, 16:2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