呑虛(탄허)스님 29년 전 인터뷰(2)/종교와 정치
"이 한 잔 물이 동해물이 될 것이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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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 마당 1983년 2월호)
  
  
   -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국가의 운명과 天體의 움직임을 연관시켰기 때문에 별의 관측을 제도적으로 체계적으로 해왔습니다. 세계적으로도 한국의 천체 관측 기록은 최고 수준이라고 하며 '카시오페아 에이'라는 超新星의 대폭발은 "조선왕조실록"이 세계에서도 유일하게 기록으로 남겨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관측술이 불행하게도 계승되지 못한 것 같은데…
  
  "동양 철학에서 전하는 천문지가 팔십한권이나 됩니다. 서양의 천문학 역사야 짧지 않습니까. 5천 년 전에 그려 놓은 개천도를 보면 지금 서양 것과 똑같습니다. 그들이 배워 간 게 아닐까요? 어떻게 배워갔든지. 주천(周天)이 삼백육십오 도 사분도지 일입니다.
  
   이 주천 도수가. 하늘(天)은 일행 일도, 하루에 일도씩을 갑니다. 그러면 일년이 다 차면 한 바퀴를 도는 겁니다. 해는 하늘을 따라 일행 일도를 가되 '불급천 사분도지 일'이라 하여 사분도지 일(日)을 못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년에 한 번 양력에 윤일을 넣어야 하는 겁니다.
  
   양력은 서양 사람이 만든 게 아니여. 무식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또 달은 하늘을 따라서 하루에 일도씩 가되 '불급천 십삼도 십구분도의 칠'이라, 하늘의 십삼도 십구분도의 칠을 못 간다고 썼어요. 이 십삼도 십구분도의 칠을 삼년 동안 모아 놓으면 윤달이 되는 거예요. 별 숫자도 똑 같습니다.서양 천문학의 단점은 무엇이냐, 기껏 해야 내일 모레 바람 불고 비온다, 나도 아이들한테 한 달 먼저 언제 어느 날에 바람 불고 비온다고 예보를 해요. 동양 천문학은 서양 천문학과는 달리 길게 봐요. 수십 년의 미래를 예측하는 거지요."
  
   - 비단 날씨뿐 아니라 인간사나 나라의 흥망도 말입니까?
  
   "그러믄요. 토정 선생 같은 이는 임진왜란을 이십 년 전에 말했잖아요. 조 중봉 선생 집 잔치에 가서, 현인 군자들이 수십 명 모인 자리에서 혜성이 나타나는 걸 보고서는 이십 년 후에 피가 흘러서 국민들이 다 죽는다고 풀이를 했습니다. 이게 율곡 선생 일지에 있습니다."
  
   - 물증이 있는 셈이군요.
  
   "그렇습니다. 율곡이 거기서 힌트를 얻은 겁니다. 십만 양병설의 힌트를 말입니다. 易學의 원리로 아는 데는 율곡도 토정을 못 당합니다."
  
   - 토정 선생이 썼다는 설도 있는 "정 감록"엔 이런 예언이 있습니다. 삼국이 통합한 지 천여 년 후에 땅이 다시 쪼개어져 발해에서 중국 군대가 일어나 청해에 이르면 임금과 신하가 세 번 천도를 하고 바다에서 세 장수가 일어나고 소백산 밑에서 천성(天星)이 한 바퀴 돌면 도둑을 소탕하지만 세 장수 또한 몸을 보전치 못하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육·이오 사변을 예언한 것이라고 해석하는가 하면 발해에서 일어난 군대를 중공군, 소백산 밑을 돌고 간 천성을 왜관의 대폭격, 세 번 천도를 대전―대구―부산의 정부 이전, 바다에서 일어난 군대를 미군, 몸을 보전치 못한 장수를 맥아더 장군에 비유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정감록"의 예언까지도 믿으십니까?
  
   "정감록"같은 것은 다 믿어선 안됩니다. 맞는 것도 있고 안 맞는 것도 있지요. "정감록"의 필자는 국가나 민족의 앞날을 근심하여 경고하고 예언한 게 아닙니다. 자기 자손들의 보전을 위해서, 亂이 일어나면 이런 저런 데로 피하라, 이런 식이지요. 그렇다고 그 자손들이 그 비결을 이용하지도 못합니다. 지혜 있는 자가 그걸 이용하겠지요. 또 "정감록"에는 더러 허름한 것을 비결이라고 갖다 붙여서 와전된 게 많거든요. 그러니까 액면 그대로 다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 최근 한국에서 급팽창하고 있는 종교 인구에 대해서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웃이나 대중보다는 개인의 복을 구하기 위하여, 아주 이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교회나 사찰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리석은 사람들 이끄는 데는 그런 식으로 이끄는 수도 있을 수 있지요. 갑자기 敎理가 어떻고 진리가 어떻고 해보았자 못 알아먹을 것이니 福을 빌도록 하는, 말하자면 기복신앙으로 그들을 유도해 놓으면 차차 아, 진리가 이런 게 아니구나 하고 깨닫게 되겠지요. 일단 개인 구원의 기복 신앙으로 양적인 팽창을 이룩해 놓고 질적인 승화를 도모하는 것도 한 방편이란 말씀인데 문제는 기복신앙 뒤의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 주느냐가 중요하겠지요?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가 좀 주체성이 없어요. 식민지 통치를 받은 탓이 아닌가 합니다만. 주체성이 없다가 보니 무엇에 휩쓸리기 쉽지요."
  
   - 속된 말로 바람을 타기 쉽다는 말씀입니까?
  
   "그래요. 일본에 가보세요. 동경에 천삼백만 인구가 사는데 기독교 교회를 구경하기란 매우 어렵지요. 그들이 미개해서 그런 겁니까?"
  
   - 스님께선 최근 한 달 동안 미국을 여행하셨는데 무엇을 보셨습니까?
  
   "내가 사, 오년 전에는 동남 아시아를 둘러보았는데 이번에 미국을 보고 그 때보다도 더 많은 것을 배웠어요. 첫째는 미국에는 수십 종의 인종이 있으니 한꺼번에 인류 전체를 본 것이 큰 수확이었어요. 세계 일주 안 해도 다 보았어, 허허. 구경거리로서는 하와이의 진주만을 보고서 가장 놀랐습니다. 그들이 산 교육을 시키더군요.
  
   일본군의 폭격을 받고 침몰한 함정을 해군 묘지로 삼아 보존시키면서 '왜 우리는 이런 패배를 당해야 하는가'를 교육시키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감동했습니다. 그 자리에는 일본 관광객들은 얼씬도 안 하더군요. 또 그들이 질서 속에서 자유를 지켜 나가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신도들 모임에 가 보니 그들이 차를 몰고 오는데 한 차도 크락션을 울리지 않아요. 차들이 이리 엉키고 저리 엉키고 할 줄 알았는데 아주 조용하게 주차하고 출발하고 하는 것을 보고 정연한 질서 속의 자유를 발견하였습니다.
  
   개인주의란 것도 전체 속의 개인주의라고 느꼈습니다. 국민의 위신이나 국가의 위신은 머리를 싸매고 지키려는 자세를 보았던 것입니다. 면세점에서 내가 십이만 원짜리 만년필을 샀는데 이걸 그 자리에서 주지 않고 비행기를 타고 출국하기 직전에 물표와 바꿔 주는 거예요.
  
   비행기를 타고나서도 물건이 오지 않아 상좌를 시켜서 물표를 가지고 바깥으로 나가 보라고 했는데 그 사이 미국인이 물건을 가지고 나에게 왔어요. 나는 물표를 가진 사람이 나가 있다고 했는데 이렇게 하는 사이 비행기 출발이 몇 분 늦어졌어요. 그러니 삼백오십 명이나 되는 승객들의 눈이 살기 등등해지더군요. 그런 걸 보고 그들의 개인주의는 전체 속에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세계 인구의 관상을 다 보았습니다, 하하하"
  
   - 그들의 관상이 어떠했습니까?
  
   "팔십 퍼센트가 공처가들이더군, 하하하. 농담 삼아 들어 두십시오. 상학에서는 봉면·봉구(縫面·縫口)이면 공처가라고 하는데 구레나룻으로 얼굴을 봉한 사람, 수염으로 입을 봉한 사람들이 많더군요. 딸을 시집 보낼 때는 봉면·봉구의 사위를 고르십시오. 눈과 눈썹 사이를 전택궁(田宅宮)이라고 하는데 가정의 운세를 좌우한다 해서 가정궁이라고도 하는데 그들의 전택궁은 희박하단 말입니다.
  
   우리는 눈과 눈썹 사이가 훤칠한데 그들은 딱 달라붙어 있더란 말입니다. 그 이유를 알았는데 그건 核가족 제도 때문이다, 그렇게 결론 내렸습니다. 그 사람들이 주체성은 지독하게 강한 사람들이에요. 콧대가 선 것이 그걸 증명하지요. 눈이 깊은 걸 보면 사고력이 강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여기보다 모두 잘 생긴 것 같은데 여자들은 미인이 적어. 일할도 안돼. 그쪽에서 보는 기준으로는 미인이 있겠지만 동양의 눈으로는 미인이 적어요. 동양에서는 얼굴이 귀족형으로 빠져야 미인이거든. 그들은 보니까 전부 노력형이야. 타고난 미인이 없어. 가지고 놀고 싶은 귀족형이 없더란 말이야. 우리 도착하기 전에 여자들이 데모를 했어. 우리도 남자들처럼 전봇대 위에 올라가서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 그러니 그 여자들은 노력형이지 귀족형이 아녀."
  
   - 스님께서는 대체로 미국의 좋은 점을 많이 보고 오신 것 같군요. 그런 좋은 점의 정신적 기반은 역시 기독교 사상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기독교가 낡았어. 원체 오랫동안 國敎로 숭상하다 보니 그냥 의무적으로 하는 거고 새것을 찾는 정신이 부족해. 뉴욕에 가보니 신학 대학이 네 개나 폐쇄되었어. 목사 되려는 사람이 줄어들어. 동양 사상을 포교하려면 그곳에 가서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지. 그곳에서 강연도 했어요. 강연을 영어로 통역해 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미국인들이 내 강연을 듣고 메라고 하더냐고 물었더니 아주 좋아하더라는 겁니다.
  
   첫째 강단에 올라가서 풍기는 인상이 좋고 둘째 우리가 강연을 하면 매가리없이 하지 않거든, 그냥 장작패는 소리를 치는데 그게 좋다는 거야. 동양 사상의 씨는 그곳에 가서 뿌려야 하겠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 스님께서는 성경 구절 가운데서 예수님께서 하신 산상 수훈 중의 한 구절―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라―을 가장 좋아하신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고 마음을 비우라는 말씀도 여러 번 들려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비어 있다는 것, 이 공(空)에 대해서 좀 말씀을 해주시죠.
  
   "(빈 찻잔을 들어올리며) 빈 병이라고 할 때 병 자체가 없는 건 아닙니다. 병 속에 아무 것도 없다는 거죠. 마음을 비우라는 것은 망상을 없애라는 뜻이죠."
  
   - 스님께서는 내년부터 國運이 트인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런 시기를 맞을 마음의 채비는 어떠해야 됩니까?
  
   "새벽이 밝기 전에 짧은 순간이지만 컴컴해질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각오도 있어야 할 겁니다."
  
   - 고난에 대한 각오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 스님께서 번역하신 "화엄경"에 대해서 좀…
  
   "道敎의 최고봉은 "노장", 유교의 최고봉은 "주역", 불교의 최고봉이 "화엄경"이지요. "화엄경"은 요, 바다라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바다를 안 본 사람에게는 바다라고 해도 몰라요. 그래서 쉽게 설명하기 위해 일렁일렁하는 저 물결이 바다다, 물결을 치게 하는 저 바람이 바다다, 그 위를 저어 가는 것, 그게 바다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이것들은 그러나 바다의 일단만 보여 주는 거지요. 바다에는 바람도 있고 물결도 있고 저어가는 것도 있습니다. 그처럼 우주 만유와 나와 마음과, 이 전체가 총진리화 되어버린 것, 그것이 화엄경의 도리야."
  
   - "노장"은 화엄 사상과 비교한다면 어떨까요?
  
   "진리를 가르치는 면에선 같지만 그것을 체계화한 면에선 "화엄경"에 뒤떨어지지요. 그러나 양쪽에서 가르치는 진리는 같다고 봐요. 도교에서는 최고의 진리를 물아양망(物我兩忘)의 경지라고 합니다. 우주 만물과 나를 함께 잊어버린 상태, 불교에서는 이를 아공 법공(我空 法空)이라 하잖아요? 물아 양망이 된 이 최극치의 경지를 물화(物化)라 그래요. 우주 만물이 화해버렸다는 거예요. 홧지경으로 갔다는 겁니다. 우주 만물이 하나의 진리로 화해버렸다는 뜻이지요.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표현했느냐," 장자"에 망양이 그림자에게 묻는 말입니다. 망양은 그림자 바깥의 희미한 그림자입니다.
  
   "아까는 자네가 다니다가 지금은 그치고 아까는 자네가 앉았다가 지금은 일어나니 왜 지조가 없이 그렇게 방정맞은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자동이 아니고 사람따라 그림자가 움직이니까. 여기에 그림자가 답합니다.
   "내가 기다림이 있어서 그러느냐?"
   분명히 그렇지 않습니까? 그림자가 자동으로 그러는 것 아니란 말입니다.
   "나의 기다릴 바가 또 기다림이 있어서 그러느냐?"
   그림자의 기다릴 바, 즉 몸뚱이도 자동이 아니니까 또 기다리는 것이 있는데 그건 마음입니다.
   "나의 기다리는 것이 뱀 껍질과 같고 매미 날개와 같은 것이냐?"
   뱀 껍질과 매미 날개는 몸뚱이와 꼭 붙어 있지 않습니까.
   "어찌 그런 걸 알고 그렇지 않은 걸 알리요."
   그렇고 그렇지 않은 걸 다 잊었다는 말입니다.
  
   표현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망양은 그림자, 그림자는 몸뚱이, 몸뚱이는 마음을 따라 움직이는데, 그렇고 그렇지 않은 걸 다 잊어버렸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물아 양망의 경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도 미심하니까 장자가 또 부연하기를, '어제 밤에 내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 스스로 뜻이 맞아 그렇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꿈에서는 나비지 장주란 생각은 없더라는 얘기입니다. '꿈에서 깨어보니 나비는 없고 장주만 있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장주 꿈에 나비가 된 것이냐, 나비 꿈에 장주가 된 것이냐, 다 잊어버렸다.' 이게 물화의 경지인데 이런 최극치의 진리를 표현한 데는 儒佛仙이 대동합니다."
  
   - 스님께서는 한국의 장래를 이끌어 나갈 힘이 종교라고 말씀하시며 그런 종교를 우주 종교라고 표현하셨는데 우주 종교란 곧 불교를 말합니까?
  
   "저는 도덕을 실천케 하는 것이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의 이념은 사람들로 하여금 착한 길을 가라고 하는 뜻에서는 대동하지요. 김 일부 선생, 강 증산 선생도 유불선의 통합을 말하면서도 큰집을 불교로 주고 있어요, 내용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래요. 유불선을 한 덩어리로 하여 위정자가 그 장점만 취한다고 하면 훨씬 나아지죠. 세상을 다스리는 데는 유교가 제일이고 치신지학(治身之學)으로는 도교가 제일이며 치심지학(治心之學)으로는 불교가 제일입니다. 이런 장기를 취해서 민중을 다스리면 좋을 겁니다."
  
   - 우리나라 인구 사천만 가운데 천만이나 된다는 기독교의 장기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기독교의 장기는 조직력이죠. 예수는 조직의 왕이지요."
  
   - 목사라든가 타종교 사람들과도 자주 대화를 가지십니까?
  
   "몇 년 전에 "중앙일보" 주최로 열 한 시간 좌담을 한 적이 있지요. 기독교의 윤 성범 씨, 유교의 이 을호씨, 경남 대학 총장 윤 태림 씨가 사회를 보고…"
  
   - 좌담을 한 소감은 어떠했습니까? 할 만한 것입니까?
  
   "아 그런 거야 할 만하지요. 그런데 '스님께서 남의 영역을 너무 침범했습니다'고 하는 얘기도 들었어요. 그 때는 하도 답답하니까 참견을 좀 하긴 했지요. 불교는 이런데 유교는 이럴 겁니다, 아마 기독교도 이럴 겁니다, 그런 식으로. 그건 침범이 아니라 타종교의 영역을 개척해 준거라고 웃었습니다만."
  
   - 스님께서는 현대 한국 불교의 문제점을 어떻게 파악하고 계십니까?
  
   "(찻잔을 들어 보이면서)그것은 이 한 잔 물로 산불을 어떻게 끌 것이냐고 묻는 것과 똑 같습니다. 수극화(水克火), 물이 불을 이기는 건 원리입니다만 그러나 한 잔의 물을 들고 있는 것이 김 탄허의 현재 힘이요. 이런 때에는 거꾸로 火克水가 될 수도 있단 말입니다. 앞으로 잘 되면 이 한 잔의 물이 동해 바다 물같이 될 것입니다. 그 때에는 산불을 어떻게 끄겠느냐고 하면 대답을 하겠는데 지금은 못하겠어."
  
   - 이 한 잔 물을 동해 물같이 만드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때가 와야 합니다. 그러려면 爲政者와 손이 맞아야 합니다."
  
   - 그런 점에선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 원칙과는 상반되는군요.
  
   "분리라니 말이 됩니까? 위정자가 무엇을 가지고 백성을 다스립니까? 이거 보세요. 공자의 말씀인데 '정치로써 인도하고, 형벌로써 가지런히 하면 백성이 (죄를)면하기는 면하지만 양심에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덕으로써 인도하고 예법으로써 가지런히 하면 백성이 부끄러워 할 줄 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데 종교와 분리해서 백성을 어떻게 다스린단 말입니까? 행정부·사법부 입법부로만 백성을 다스릴 수 있어요? 빈 껍데기지. 말도 안되는 소리지."
  
   - 좋은 시기에 좋은 위정자가 나왔을 때…
  
   "(말을 막으며) 그 무슨 소린고. 지금도 좋은 위정자인데 그 말에는 어폐가 있잖어, 핫하하. 내가 말하는 시기는 나라가 통일되는 것을 말해요."
  
   - 제가 올해 서른 아홉인데 저희 세대에 통일이 오겠습니까?
  
   "아이고 그 무슨 말씀. 나, 나이 일흔 하나인데 생전에 통일을 보리라 믿고 있는데, 핫하하. 지금 한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를 보면 통일의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일에는 또한 예외가 있는 법입니다. 이 집을 지은 사람이 누가 불이 나리라고 생각하겠습니까?"
  
   - 스님께서는 저녁 여덟시에 주무시고 새벽 한 시쯤 일어나신다고 들었는데요.
  
   "우주가 잘 때는 사람도 자야 되고 우주가 깰 때에는 인간도 깨어야지요. 저는 깨는 때가 곧 일어나는 때입니다. 늦어도 새벽 세 시엔 일어나죠."
  
   - 건강의 비결은?
  
   "건강이란 건 신경 안 쓰는데 있는 거요. 그래서 멍청이요. 화신 상회가 어디 있는지도 몰라. 아이들이 두루루 차 태워서 갖다 놓으면 어딘지 몰라. 조계사에서 걸어가면 알게 되지만. 딱 신경을 쓰는 데가 있긴 있지…"
  
   - 어제처럼 그 번잡한 서울에 가셨다가 이 호젓한 山寺에 돌아오시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런 건 아무 이상이 없어요. 피로도 하나도 없고."
  
   - 여긴 공기가 다르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런 거 없어. 차 타고 다니느라 재미만 있을 뿐이지. 김 탄허는 자동차 타고 다니는 게 운동하는 거여."
  
   - 스님께서 지금까지 말씀하시는 걸 보면 유교 입장에서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유교쪽 이야기를 더 많이 알아듣지. 불교쪽 이야기는 너무 출세간적이요. 도교 사상은 팔 할이 출세간적이고 이할이 세간적이고 유교는 팔 할이 세간적입니다. 그러니까 조금 알아 듣게 하자면 세간적으로 이야기 해야지."
  
   - 기독교는 어떻습니까?
  
   "유교와 같이 팔 할은 세간적이요."
  
   - 유교는 뚜렷한 內世觀이 없다 해서 종교로 안 보는 사람도 있는데요.
  
   "그것은 기독교의 입장에서 하는 이야기요. 그들은 종교는 신과 인간의 교섭이다 하는데 동양에는 안 맞는 이야기여. 종교라는 것은 끝까지 自覺하는 거여, 스스로 깨닫는 거여. 自覺하면 무엇이 오느냐, 모든 고통이 나가버려. 우주가 생기기 전의 자리, 거기에 앉아 있으니까 우주를 내 마음대로 하는 거여. 이것이 종교의 이념이여. 불교에는 천당, 지옥설, 극락 뭐 이런 게 기독교보다도 백 배나 더 많습니다.
  
   그러나 그건 유치해, 아무 가치도 두지 않는 거여. 어린애들 가르치는 거지. 최고의 이념은 자각, 그래서 자기가 이고 득락(離苦 得樂)하는 거야. 자기만 그러는 게 아니라 중생도 그렇게 만드는 거야. 종교의 종(宗)자는 마루 종자여. 갓은 어디에 씁니까? 아무리 낡아도 꼭대기에 씁니다. 그렇잖아요. 제일 꼭대기 진리를 보인(示) 것이 종교여. 꼭대기 진리가 뭐냐. 우주가 생기기 전의 면목, 즉 태극이요 불교에서 말하면 원상(圓相)이여. 기독교에서 말하면 하나님이고. 우주가 생기기 전의 진면목이 가장 높은 진리 아닙니까? 우주가 거기서 비롯되었으니까. 진리의 원천이지. 그걸로 보여 준 것이 종(宗)자의 뜻이지.
  
   교(敎)는 뭐냐? 선효(先孝) 후문(後文)이라, 효도를 먼저 하고 글은 나중에 하는 거여. 효도 孝 변에 글월 文 했잖어요? 효도는 백행의 근본입니다. 부모에게 효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잘 한다는 건 거짓말이여. 효도를 먼저 하고, 즉 행동을, 실천을 먼저 하고 문학은 뒤에 한다는 겁니다. 즉, 종교란 聖人이 최고의 진리를 중생에게 보여서 효도를 먼저하고 문학을 뒤에 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어. 글자 그대로."
  
   - 아는 것보다 깨달음이 중요하다는 그 말씀입니까?
  
   "그러믄요. 예수님 말씀도, 성경을 뒤집어 놓고 보면 그걸 가리킨 것이데, 기독교 연구하는 이들이 겉핥기로 한단 말이여, 그러니 한심하지. 마태복음에 볼 것 같으면 너희들은 아무쪼록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좁은 문이 뭡니까? 좁은 문이 바로 그 자립니다. 또 제자들 보고 '너희들이 돌이켜서 동자가 되지 않으면 천국에 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동자가 되느냐. 도통 군자 아니면 동자가 못되는 법입니다. 그런데 동자 되는 공부를 안하는 겁니다. 이 친구들이. 믿기만 한다고 천국에 날 수는 없단 말입니다."
  
   - 스님께서는 전에도 동자 이야기를 하시며 어린이는 하루 내내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데 어른은 한 시간만 울어도 쉰다. 그 차이는 아이는 무심(無心)하기 때문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무심이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건 "도덕경"에 있는 이야기인데, 무심이란 단어는 아까 그 빈 병이란 이야기와 같다니까요. 무심의 경지를 타파한 사람은 종일 지껄여도 지껄인 게 없습니다. 종일 생각해도 생각한 게 없고, 그렇게 되는 거요. 성인의 경지는 그렇지요. 그러니 聖人의 俗은 극락이지. 성경의 좁은 문이라는 것도 아무것도 없는 자리를 말하는 겁니다."
  
   - 성경에서는 그것을 고난으로 해석하지 않습니까?
  
   "고난이요? 하하하. 그러니 순전히 겉핥기란 말입니다. 삼위 일체도 참 잘된 말입니다. 聖父·聖子·聖神. 그런데 그것이 예수님 한 분만 삼위 일체가 될 수 있다, 이겁니다. 왜 다른 사람은 삼위 일체가 될 수 없습니까? 누구든지 되어야지. 고 점이 다르단 말입니다. 동양 사상에서는 누구나 삼위 일체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될 수 있다와 예수밖에 누구도 될 수 없다, 이 차이가 큽니다. 그러니까 끝까지 기독교는 의타(依他), 타인에 의지하는 거지. 주체성이 없습니다. 유교에는 의타가 없습니다. 의자(依自)지. 불교에선 의자가 의타를 겸하는데 의타는 애들한테 가르치는 거여."
  
   - 젊은 사람들한테 해주실 말씀을 좀…
  
   "지금까지 한 것 말고 또 무슨 말을 더해. 춤을 추어야지. 세계가 좋게 변화할 것인데. 당신 이 말 듣는 것도 삼대 적선 덕이야."
  
   - 시중에서는 스님께서 십 이륙 사태도 예언했다고 소문이 나 있던데…
  
   "십 이륙이 뭡니까? (옆에서 한 불도가 설명을 해주니) 그런 걸 여기서 어떻게 이야기해요. 그 해 정월인가, 서울 어느 호텔에서 동남아 여행 귀국 기념 강연을 내가 했는데 그 해가 기미년 아닙니까, 그래서 '여러분 기미년이 옵니다, 기미가'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나중에 누가 날 보고 '아, 그 때 스님 말씀하신 기미가 그 김(金)입니까'하고 묻더군, 하하하."
   (이때 회견 모습을 비디오 촬영하고 있던 기사가 고민이 있다면서 말을 꺼냈다. 딸을 얻은 지 두 달이 지났는데도 아직 이름을 못 짓고 있다는 것이었다. 탄허 스님은 기사의 성을 물었다. 구(具)씨라고 답하니 스님은 한 30초쯤 생각하다가 성희(性喜)라고 즉석 작명을 해주었다. '즐거워하는 성품을 갖춘 사람'이란 뜻이겠다. 그 기사는 스님께 넙죽히 큰절을 올렸다).
  
   - 스님 제 관상도 좀 보아주십시오.
  
   "핫하하, 기기화류가 천리마 이름인데 기기화류 보고 쥐 잡으라는 말과 똑 같아. 기기화류는 천리를 달리지만은 쥐 잡는 데는 병든 고양이를 못 당합니다. 그런 쥐는 종로 다리 밑에 있는 사람이 잘 잡지."
  
[ 2012-04-21, 15:2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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