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대상은 北韓이지 日本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韓國과 日本이 전쟁(戰爭)할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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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독도를 武力도발 할 가능성이 국내 主流언론에서 제기되고 있으나, 이는 1946년 이전과 이후의 일본을 동일시하는 잘못된 판단이다. 

左傾化된 국내 언론은 미이라가 된 독재자인 김정일에게는 '국방위원장'이란 칭호를, 그의 아들 김정은에게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란 호칭을 꼬박꼬박 붙여준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友邦국가의 상징인 일본 天皇에 대해서는 늘 日王으로 표기를 격하시켜 쓰고 있다.
  
雪上加霜으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歷史문제가 터지면 평상시에는 理念문제로 대립을 하던 從北-左派단체와 일부 保守단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 몸이 되어 反日시위를 한다. 일본을 사이에 두고 남북한이 소위 民族共助를 하는 것인데 이는 북한이 바라는 바이다. 

1946년 이전의 일본(군국주의)과 1946년 이후의 일본(자유민주주의)은 전혀 다른 국가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에게 패한 이후 연합국 최고사령부(GHQ)의 통치를 받았다.

이 시기 일본은 제국주의 시대의 ‘대일본제국헌법’(명치헌법)을 개정할 것을 GHQ로부터 요구받아 이른바 ‘마츠모토(松本) 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것이 기존의 제국헌법과 내용상의 차이가 없어 GHQ에서 1946년 2월에 이른바 ‘맥아더(Mcarthur)안’을 제시했다. 일본은 이를 기초로 헌법을 다시 작성, 1946년 11월3일에 ‘일본국헌법’(이하 일본헌법)을 공포했다.

일본은 이 헌법을 1947년 5월3일 시행 이후 한 번도 개정한 적이 없다. ‘일본헌법’은 발효 된지 65년이 흘러 舊 헌법(1889~1947년)보다 더 길게 존속해오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반을 둔 헌법을 공유한 기간이 거의 같다). 

‘일본헌법’은 일본이라는 국가의 지도원리와 기본구조 및 국민의 기본권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국가의 기본법이자 최상위법이다. 일본은 非유럽 문명권에서 유일한 선진국이며 법치국가이다. 선진국은 법치국가로서 헌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구체적으로 ‘일본헌법’은 국민주권을 원칙으로 천황, 국회, 내각, 사법, 재정, 지방자치 보장 등 국가 조직과 기본질서를 규정한 前文과 11장 103개조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함께 <전쟁포기, 전력(戰力) 불(不)보유, 교전권 부인>을 제9조에 명시하고 있어 ‘평화헌법’이라고 불린다. ‘일본헌법’의 기본이념에는 <국민주권, 기본적 인권의 존중, 평화주의> 원칙이 있다.

이 가운데 ‘평화주의’는 침략전쟁을 하지 않을 것과 이를 위한 戰力을 갖지 않을 것을 명기하고 있다. 前文에서 《일본국민은 정당하게 선거로 선출된 국회 내의 대표자를 통해 행동하며, 우리들 각자의 자손을 위해 만국의 국민과의 협동 화해와 우리 국토에서 자유가 가져다주는 혜택을 확보하고, 정부의 행위로 인해 다시금 전쟁의 참화가 일어나지 않게끔 할 것을 결의하여, 이제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선언하면서 이 헌법을 확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헌법 제9조 1항에서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초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며, 국권의 발동으로서의 전쟁과 무력(武力)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포기한다》라고 명기하고 있으며, 제9조 2항에서 《전항(前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육군·해군·공군 그 밖의 戰力은 不보유, 국가의 교전권(交戰權)은 불인정한다》라고 적시하고 있다.

일본의 헌법 개정 논의는 1950~60년대 사실상 군대나 다름없는 자위대를 보유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느냐는 위헌 여부 논쟁과 함께 “전쟁이나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는 제9조의 개정문제가 첨예하게 대립해왔다. 특히 중국의 군사력 팽창과 북한의 대량파괴무기(WMD) 개발에 따른 외부 안보위협 증대로 인해 실질적 방위력 증강에 중점을 두면서 헌법 해석을 통한 개헌 문제가 논의되어왔다. 가장 최근(2012년 5월24일)에는 일본 국회가 개헌 필요성을 검토한다는 명분으로 현행 헌법의 내용을 검증한 바 있다. 

당시 제1야당인 자민당은 현행 헌법상 국가와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돼 있는 천황을 ‘국가를 대표하는 원수’라고 명기하자고 주장했는데, 이에 다함께당도 동조했다. 자민당과 다함께당은 국기와 국가에 대해서도 헌법에 규정하자고 주장했다. 개헌에 반대하는 사민당과 공산당은 천황을 국가원수라고 명기하자는 주장에도 반대했다.

특히 공산당의 경우 “현행 헌법은 천황의 이름 아래 (국민을) 침략 전쟁으로 몰아넣었다는 반성을 기초로 한 것”이라며 천황제 폐지를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여당인 민주당은 아예 의견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국내 언론에 보도된 적은 없지만 일본 정부는 내부적으로 서울 올림픽 직후, 한국을 동맹(同盟)으로 상정했던 적이 있다. 아시아에서 일본의 파트너(partner)가 출현(出現)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본격적인 한국의 좌경화(左傾化), 그리고 대륙회귀(大陸回歸)의 과정를 거치면서 일본은 한국에 대한 거리감을 느껴 이에 대한 논의가 사라졌다.
 
일본은 북한에 의한 미얀마 아웅산 테러(1983년), KAL기 폭파사건(1987년), 장거리 대포동 미사일 발사실험(1998년), 일본인 납북자(拉北者) 문제, 북한 핵실험(2006년 10월)후 UN 안보리 대북제재결의(1718호)를 포함, 냉전시대(冷戰時代)부터 지금까지 총 다섯 차례에 걸쳐 대북제재(對北制裁) 조치를 취했다. 이 가운데 아웅산 테러 사건과 KAL기 폭파사건 때는 한국과 일본이 함께 對北制裁 조치를 취했다.
 
반면 한국은 서울 올림픽 이후 제6공화국이 소위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선언)을 시작으로 6·15와 10·4선언이 나오면서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包容政策)을 추진했다. 결국 日本의 右傾化를 촉진한 것은 ‘북한의 군사력 팽창’과 ‘남북한의 민족공조’였다. 이러한 논리는 이번 독도사태에도 그래도 적용되고 있다.

미국은 공산국가인 중국과 북한의 군사력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군사적 대안으로 '韓日군사정보협정' 체결을 막후에서 콘트롤(control)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일본과의 협정 체결 1시간 전에 이를 무산시킨 뒤, 역대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獨島를 방문했다.  
 
개인이건 국가건 간에 스스로를 객관화(客觀化)할 줄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이 우주의 중심인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이는 대표적인 좌경(左傾)민족주의의 폐해(弊害)다. 韓日관계는 대한민국 주도의 한반도(韓半島) 통일(統一)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다.
 
現 분단 상황 타파에 동조해줄 주변 국가를 생각해 보면, 중국 공산당은 우리가 원하는 세력이 아니고, 미국은 한국의 동맹국이지만 통일문제와 관련해서는 물리적(지리적) 거리가 멀다.

결국 한반도 재통일과정에서 주변국들의 협조·저항을 줄이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국가는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일본이다. 그런데 일본 문제만 나오면 한국인들은 덮어놓고 화를 내고 흥분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의 입장을 일본인들에게 잘 설명해야 한다. 일본 헌법이 과거 헌법과 전혀 다르고 일본도 미래(未來)에 대해 고민이 많다는 점을 韓日양국 서로가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먼저 노력하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는 일본은 우리 편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먼저 일본을 敵으로 돌리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2012/8/17일 작성)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관련자료] 日本의 3대 과거사 관련 담화(談話)
무라야마(村山)-고노(河野)-고이즈미(小泉) 담화

  

*무라야마 담화: 1995년 8월15일 戰後 50주년 기념일에 당시 총리였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내각 총리대신이 내각회의의 결정에 근거, 일본이 태평양 전쟁과 전쟁 이전에 행한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하는 뜻을 표명한 담화이다. 現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006년 10월5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무라야마 담화를 “아시아의 나라들에 대해 큰 피해를 주고 상처를 준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면서 “나라로서 표명한 그대로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정부로서든 개인으로서든 계승해 간다고 밝혔다.

*고노 담화: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이 日本軍 위안부에 대한 日本軍과 軍의 강제성을 인정한 담화이다. 당시 고노 관방장관은 “위안소는 당시의 軍 당국 요청에 의해 設營(설영)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위안소의 설치·관리 및 위안부 이송에 관해서는 舊 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했다”면서 “심신에 걸쳐 씻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께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올린다”고 표명했다. 

*고이즈미 담화: 2005년 8월15일 戰後 60주년 기념일에 당시 총리였던 小泉純一郞(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 총리대신이 각료회의 결정을 통해 발표한 담화문으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담화에서 “통절한 반성과 진심으로 사죄하는 마음을 표명함과 동시에 지난 전쟁에 있어서 내외 모든 희생자들에게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한다”면서 “아시아 국가들과의 상호이해와 신뢰에 기초한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구축해 가겠다”고 밝혔다.


[ 2013-08-01, 11:4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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