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南간첩 강종헌과 임동원 前 국정원장의 수상한 관계
임동원은 제9회(2009.6.28) 축전에 참가하여 “조선반도의 平和”라는 제목으로 기념강연을 했다. 강종헌이 통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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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의 주범 康宗憲 자서전 분석(5)

강종헌은 박사학위 취득(2007년3월) 후 강단에 선다. 그는 자신이 겪는 지식노동자로서의 非正規職 교원의 비애를 토로하는데 4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대학 교육의 기반을 담당하면서도 생계조차 어려운 비정규직 교원-강사들의 처우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康씨의 경우엔 앞뒤가 잘 맞지 않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떠오른다.

우선, 그가 박사학위를 따고 비록 비정규직이기는 해도 대학 교원이 되었음에도 생활이 어렵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통일운동’ 외에는 딱히 (넉넉하고 안정적 수입이 있었을 만한) 직업이 없었던 이전에는 어떻게 살아왔던 것일까? 康씨는 대학교원이 되기 전보다 수입이 늘었는가 줄었는가? 그는 국내외 여행(출장?)을 많이 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그간의 생활과 여행과 활동 경비는 어떻게 마련된 것이었을까? 反국가단체인 ‘한통련’이나 ‘범민련’, 혹은 ‘조총련’에서 지원 받은 것이었을까?

그리고 재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모순점이 있다. 康씨는 자신이 공작선을 타고 평양에 가서 공작원 교육을 받았다는 한국 사법 당국의 판단과 판결을 고문에 의한 조작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康씨는 자서전에서는 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박사학위를 가진 저임금의 비정규직 지식노동자(대학강사)의 처우 개선 문제는 4페이지에 걸쳐 호소하면서, 자신에게 씌워졌다는 간첩 혐의는 반박할 필요도 없는 가벼운 문제라는 것인가?

좌우간 康씨는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국제사회와 평화”, “국제 복지론”, “현대의 인권” 등을 강의하고 있다고(자서전 175쪽) 한다. 康씨는 자신의 수업 방식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기술(동 178쪽부터 182쪽)하고 있다. 그는 수업 중에 人種 차별, 일본사회의 민족 차별, 일본군 위안부 제도, 이라크 전쟁 등을 테마로 한 영상 자료를 보이고, 리포트를 내게 하며, 기말 시험 등 성적 평가도 리포트 방식(A-4용지 4-5매)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康씨는 “국제사회와 平和” 과목의 마지막 수업은 일본 헌법 제9조(* 무력 행사와 교전권을 포기, 비무장)를 가르치며, 期末 리포트는 일본 헌법 9조와 관련된 제목을 지정한다고 명기(동 181쪽)하고 있다.
康씨의 수업 방식은 일종의 洗腦 방식으로 보인다. 康씨는 수업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그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강좌의 예로서 자서전에 게재한 시민 강좌의 내용 등으로 미루어 볼 때, 知的으로 아직 미숙한 자들에게 객관적 사실과 지식을 균형 있게 제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수업을 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는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한 강연도 많다. 康씨가 “조선반도와 일본”이라는 주제로 했던 4회 연속 강좌의 경우, 첫 회는 “脫亞入歐와 征韓論”, 2회째는 “大東亞共榮圈과 식민지 지배”, 3회는 “조선반도에서 본 일본의 평화헌법”, 4회째는 “尹東柱(*시인)의 生과 死”로 구성하였다고 한다. 한반도의 근대사에 관해 기초지식이 없는 외국인들에게 자의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주입(세뇌?)하기 좋은 구성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康씨가 스스로 소개한 시민강좌의 대표작이 자서전에 실려있다.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한 동 강연 내용은 조총련이 각종 수단을 총동원하여 행하는 정치선전 사업의 방향 및 논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요컨대 평양의 조선노동당의 對南, 대외전략 수행이란 관점에서 韓, 美, 日을 종횡무진 비판하는 것이다. 康씨가 講壇에 선 이유와 목적을 알 수 있는 강연이 자서전에 수록되어 있다. 2008년5월11일 효고현(兵庫縣) 타까라즈까시(寶塚市)市議會의 ‘위안부’ 의견서 가결 보고회에서 한 기념강연이다. 자서전 188쪽에서 216쪽까지 全文이 실려있다. 제목이 “21세기의 조선반도와 일본- 역사의 ‘사실’에서 ‘진실’로-”라는 이 강연 내용을 음미하면, 康씨와 그의 혁명동지들의 사상과 思考구조를 엿볼 수 있다.

康씨의 강연록을 본 소감은 한마디로 뻔뻔스러운 외골수, 편향성이다. 그는 자신의 투옥 경험은 강조하면서, 그 자신이 조국이라고 부르는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지옥의 人權상황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미국과 일본이 힘의 논리를 추구한다고 비판하면서, 정작 군사력을 권력의 근원으로 삼고 있는 그의 조국 북한과 팽창주의 중국의 행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자유사회에서 과분할 정도로 자유를 향유하고 있는 者가, 마치 일본에서 ‘보도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고 있는 듯이 말하는 광경은,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의 병적인 뻔뻔스러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특히 20세기 전반 태평양전쟁 때의 위안부 문제에는 집착하면서, 현재 진행형인 중국 내에서 인신매매를 당하고 있는 탈북 여성들의 참상은 철저히 외면한다. 康씨의 언행은 從北(대남 공작원) 감별 기준에 완벽하게 일치한다.

지면 관계로 康씨의 강연을 여기서 자세히 소개할 여유도 없지만, 康씨가 직접 거명하여 비난한 일본 인사들은 평양의 노동당 매체들이 중점적으로 비난해온 대상과 내용 면에서 완벽하게 일치한다. 康씨의 강연록은 평양 측이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시키는 강연이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전형이라고 하겠다.

흥미롭게도 자서전의 마지막 부분에는 학자로 변신한 강종헌의 현재의 인맥과 활동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들이 나온다. “三千里鐵道와의 만남(인연)”이라는 대목(동 183쪽- 188쪽)이다. 康씨는 일본 아이찌縣에 있는 “NPO법인 삼천리철도” 이사장 도상태와 함께, 좌익정권에서 통일부장관을 역임한 林東源(국정원장도 역임), 丁世鉉, 李在禎의 초청으로 2009년11월13일부터 2박3일간 경의선 철도 시찰 차 방한(*前 통일부 차관 李鳳朝 씨가 안내)했던 일을 기행문으로 실었다.

‘삼천리철도’는 ‘6.15공동선언’을 기념하기 위해 2000년9월30일 결성한 단체다. 2001년5월24일 일본당국으로부터 특정비영리활동법인 인증을 받았다. 회원은 정회원40명, 찬조회원 27명이라 하며, 이사장은 反국가단체인 한민통에 관계했던 都相太이다. 일본 공안당국 관계자들은 삼천리철도를 조총련과 한통련의 별동대 정도로 본다고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都相太는 ‘문재인 캠프 재외선거본부’라는 정보도 나온다.

강종헌은 박사학위를 마친 후부터 삼천리철도의 행사에 본격 관여한듯하다. 통역, 사회, 강연 등 중요한 행사는 자청해서 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삼천리철도는 남북 철도 연결 지원을 주요사업으로 내세우나, ‘6.15선언’ 실천이 목적이다. 중요 연례 행사는 매년 6월에 개최하는 “6.15공동선언축제”이다. 삼천리철도의 “6.15공동선언축제”에 참석한 국내인의 면면을 보면, 제1회(2001.6.17) 때 김근태, 이재정, 이부영, 박용길, 임종석, 유원호, 진관이 참석. 제2회(2002년6월16일)에 임수경, 이시우(본명 이승구)가 참가(*李時雨는 2011년2월에도 삼천리철도 초청으로 訪日하여 “연평도와 UN군사령부”로 강연). 제4회(2004.6.12)에 이화영(열우당)과 고진화(한나라당)가 참석. 제5회(2005.6.12)에 한상열(목사). 제6회(2006.6)는 일본에서 노무현 정권이 평양 측과 야합하여 추진했던 ‘민단-조총련 연방제사태’ 혼란 속에서, 삼천리철도 관계자들은 ‘6.15민족통일대축전’(6.14-6.17, 광주)에 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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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원은 제9회(2009.6.28) 축전에 참가하여 “조선반도의 平和”라는 제목으로 기념강연을 했다. 강종헌이 통역했다. 상기 삼천리철도 일행의 경의선 시찰 여행은 바로 이 행사 직후이다. 임동원이 이사장인 “한겨레통일文化재단”은 2010년5월26일 도상태에게 제12회 “한겨레통일문화상”을 수여했다. 그리고 그 직후에 개최된 삼천리철도 창립 10주년 토론회(2010.6.27)에는 역시 임동원, 정세현, 이봉조가 참석하고, 강종헌이 사회자였다. 제11회(2011.6.12) 때인 “조선반도에 평화를!! 大토론회”도 강종헌이 종합사회를 보고, 올해 제12회(2012.6.17)축제에는 강종헌이 통진당 비례후보로 나선 경험과 한국정세를 분석하는 강연을 했다. 도상태와 강종헌은 통합진보당과의 관계를 적당히 얼버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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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원은 2009년12월5일 쿄또(京都)에서 개최된 해외코리언심포지엄 대회(재일코리언협의회 주관)에도 초청되어 “한반도의 평화와 해외동포의 역할”이라는 기념강연을 했다. 역시 강종헌이 통역을 하였다. 평양 측이 작성해도 더 이상 잘 작성할 수 없을 정도로 從北的인 林東源의 동 강연 全文은 인터넷에서 볼 수 있다.

‘삼천리철도’가 주관하는 행사는 ‘6.15정신’에 따라 당연히 조총련과 한통련, 그리고 이들과 연계된 일본인들도 참가한다. 2009년12월에 임동원 부부를 초청했던 在日코리언협의회도 조총련 출신과 한통련 등 회색분자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단체다. 도상태는 在日코리언협의회의 부이사장이기도 하다. 임동원, 정세현(원광대 총장), 이봉조는 2011년10월8일 방한했던 도상태, 엄창준(코리아국제학원교장), 강종헌과 식사를 한다. 이 자리에서 정세현은 조총련과 한통련 출신 인사 등이 중심인 “코리아 국제학원”(오사까 소재) 한국후원회장직을 수락했다고 한다. 도상태는 역시 코리아국제학원의 副이사장이기도 하다.

국정원장 시절에 황장엽 씨를 박해하고, 비전향 장기수들을 평양으로 돌려보냈던 임동원은, 對南공작원으로 反국가단체의 핵심적 직책을 수행하는 강종헌이 1989년4월 일본으로 출국한 뒤 다시 한국에 입국했을 때 당연히 그를 체포해야 할 입장이었다. 그러나 김정일 앞에서 아양을 떨던 임동원은 지금 강종헌, 도상태를 비롯, 反국가단체 멤버들과 우애를 과시하고 있다.

강종헌과 가까운 일본인 중에는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장이었던 하사바 키요시(波佐場 淸)와 역시 아사히신문 기자로서 종군위안부 문제를 키워오는 데 역할을 해온 우에무라 타까시(植村 隆)가 특히 눈에 띤다. 하사바 씨는 리쯔메이깡대학(立命館大學) 코리아연구센터 특별연구원이다. 강종헌과 함께 김대중의 회고록을 일본어로 번역했고, 임동원의 ‘피스 메이커’도 일본어로 번역했다. 동 코리아연구센터는 학원침투간첩단사건으로 체포되었던 간첩 徐勝이 센터장이었으며, 리쯔메이깡대학이 2007년10월30일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한 배경에는 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국가정보원장을 역임한 임동원은 평양의 김씨왕조의 대변인과 같은 언행을 거리낌없이 자행하고 있다. 최근 12월 대통령선거와 관련 민주통합당 손학규 캠프에 합류한 것으로 보도되는 임동원과 강종헌의 접점은 언제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12월 대통령선거에서 종북 정권 실현을 위해 준동하고 있는 임동원, 정세현, 이재정 등 從北 들과 한통련, 범민련 등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가? (조갑제닷컴, 계속)
[ 2012-08-20, 10:2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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