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병사에서 강종헌의 밀입북 사실 직접 들었다”
金鉉奬 씨, ‘강종헌 再審’ 3차 공판에서도 증인으로 출석, 강종헌의 正體 폭로

趙成豪(조갑제닷컴)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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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닷컴>에 ‘못 잊을 친구 종헌에게’라는 서한을 공개해 康宗憲(강종헌)의 正體를 폭로했던 金鉉獎(김현장) 씨가 ‘강종헌 再審(재심)’ 3차 공판에서도 검찰 측 증인으로 나섰다.

공판은 8월20일,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최규홍) 주관으로 서울고법 303호 재판정에서 열렸다. 이날 공판의 핵심 쟁점은 ▲康이 수감 중 작사ㆍ작곡해 金에게 보여줬다는 ‘기러기’라는 노래의 존재 여부 ▲康의 밀입북 시점과 캄보디아 시아누크의 訪北 시기가 겹치는지 여부 ▲대전교도소 수감 당시 康으로부터 밀입북 사실을 들었는지 여부 등이었다.

金 씨, 강종헌 자서전에 나온 ‘그날이 오면’ 폭로

검사는 “변호인은 ‘기러기’라는 노래는 강종헌 씨가 작사ㆍ작곡한 것이 아니라 러시아 민요를 번안한 노래라고 주장해 증인의 증언과 배치된다”며 경위를 물었다. 金 씨는 “그 노래를 몰랐는데 康이 종이에다 악보를 가사와 적어줬다. 그래서 그가 지은 노래인 줄 알았다”고 답변했다.

노무현 정권 때 발족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위)’가 2010년 작성한 ‘재일동포 강종헌에 대한 간첩조작 의혹 사건’ 조사보고서(이하 보고서)에는 강종헌과 관련된 판결문 일부가 실려있다.

《판결에 따르면, 강종헌은 김일성을 찬양하는 노래를 작사․작곡하여 김일성 회갑 축하선물로 북한에 전달하였다는 것으로, 법원은 수사기관이나 검찰에서 강종헌이 상기 노래를 작사․작곡하여 북한에 전달하였다는 사실에 대해, 피고인의 법정자백에 근거해 사실로 인정하였다.》

보고서는 <그런데 강종헌은 위원회 조사에서 ‘나는 작사ㆍ작곡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북한에 그런 내용의 노래를 전달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이라고 기록했다. 康이 재판당시 인정했던 사실을 진실위 조사에서는 번복한 것이다.

그러나 康은, 이미 자서전 《사형대로부터 교단으로》에서 자신이 작사ㆍ작곡한 ‘그 날은 온다’라는 노래를 소개한 바 있다. 康은 수감 당시, 옆 방에 있던 朴炯圭 목사(前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에게 이 노래를 가르쳐 줘 朴 목사가 출소하는 편에 자신의 가족들에게 전했다고 자서전에서 밝혔었다(자서전 90, 120페이지 가사 全文 수록). 金 씨도 강종헌이 자서전에서 밝힌 이 노래를 반박자료로 제시했다.

강종헌 측 심재환 변호사(이정희 前 통합진보당 의원 남편)는 康의 작사ㆍ작곡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沈 씨는 “피고인(注: 강종헌)이 작곡하지 않은 노래를, 외우지도 못하는 노래의 악보를 어떻게 적어줬겠는가”라고 반문했다.

康이 밀입북했었다는 시점과 캄보디아 시아누크의 訪北 시기가 겹치는지 여부도 논란이었다. 金 씨는 지난 5월14일 <조갑제닷컴>에 공개한 1차 서신에서 강종헌으로부터, 밀입북 했을 당시 김일성이 베푸는 시아누크 환영 파티에 참석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폭로했었다.


“서부 병사 운동장에서 康의 밀입북 사실 직접 들어”

김현장 씨는 “시아누크 정도가 방북했다면, 우리 신문에도 보도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조갑제닷컴>을 통해 시아누크도 강종헌이 밀입북했다는 그 시기에 방북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검사가 “강종헌 밀입북 기간 중 시아누크 방북했었다는 사실은 사건 공소장이나 판결문에는 전혀 드러나 있지 않은 새로운 사실인 것으로 되어 있는데 알고 있느냐”고 묻자 그는 “모른다”고 답했다.

沈 씨는 이에 대해 “시아누크 관련 공소사실은 강종헌 피고의 공소사실에는 기재돼 있지 않고, 共犯인 서광태 피고의 판결문과 공판조서에는 기재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沈 씨는 갑자기 북한 김일성과 시아누크의 친분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1960년대 후반에 김일성 주석과 처음 만난 이후 서로 친분을 갖고 북한을 300여 차례 방문하고, 김 주석과 60여 차례 만났다. 수시로 만난 것이다. 그 사실에 대해 몰랐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재판장은 沈 씨에게 “이것은 증인의 답변이 필요한 사항이 아니라 직접 확인해야 하는 부분”이라며 정확한 사실 관계 확인을 검찰과 변호인 兩側(양측)에 요구했다.

검찰은 재판부에 金 씨와 康이 함께 수감되었던 대전교도소 중촌동 수감시설의 평면도를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김현장 씨는 “서부 병사(교도소의 여러 수감棟 중의 하나)의 女舍(여사, 여자 수감소) 쪽 제일 끝 방에 강종헌이, 바로 옆 방에 내가 수감돼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강종헌에게 밀입북 사실을 전해들었다는 장소에 대해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검사: 1983년 초 가을 경이라고 했습니까? 그 무렵에 고백을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밀입북과 관련해서요. 맞습니까? 그 말을 들었던 위치가 어딘지 지적할 수 있습니까?
金: 서부 병사 운동장이었습니다.
검사: 서부 병사 운동장의 위치를 말씀해 주시죠.
金: 서부 병사 운동장은 테니스장 두 개 정도라고 생각되는데, 두 개는 안되고요.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다 보니 그렇게 크게 느껴진 것 뿐이지 절대적 넓이가 테니스장 하나 정도돼요.
검사: (평면도를 보여주며) 이 그림으로 봤을 때 우측 상단 모서리, 우측 하단 모서리 이런 식으로 얘기… 아니면 가운데, 시체보관소 옆, 세면장 옆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어떻게 됩니까?
金: 세면장하고 시체보관소 사이에서 우리가 운동을 합니다… 거기서 이뤄진 이야기입니다.
검사: 서부 병사 운동장에서 같이 거닐면서 나왔다는 이야기입니까?
金: 네.

검찰 측은 당시 대전교도소에서 근무했던 교도관을 다음 공판 증인으로 출석시킬 것임을 재판부에 통보했다. 변호인 측도 평소 金 씨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 온 광주지역 모 인사를 증인으로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날 沈 씨는 김현장 씨가 利敵(이적)단체로 판시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등 좌파 운동권 세력을 비판해 온 것을 문제삼기도 했다. 沈 씨는 “이러한 비판이 자의적인 것이었냐. 정부기관이나 공작기관으로부터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전혀 없었냐”고 물었다. 金 씨는 “자의적인 것이었다. 그들과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 2012-08-22, 11:2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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