康宗憲에게 불리한 검찰 측 증인의 증언저지를 기도한 從北세력
강종헌 지원에 나선 徐勝 등 국내외 종북 세력의 司法 방해/강종헌 추적-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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康宗憲에게 불리한 검찰 측 증인의 증언저지(사법방해)를 기도한 종북세력

지난 주(9월19일) 동경의 재일 민단 중앙본부에서 김현장(金鉉奬) 씨 초청 시국강연회가 개최되었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재일동포사회에서도 본국 사정에 대해 관심이 높았던 만큼 김현장 씨의 강연은 참석자들에게 충격과 감명을 주었다.(* 김현장 씨는 나고야(9월20일)와 오사까(9월21일)에서도 강연,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
 
김현장 씨는 강종헌의 재심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게 된 경위와 民統黨의 韓明淑 부부 등 從北 세력의 형성 경위와 정체 등에 대해 자신의 체험을 근거로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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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중인 김현장 씨의 모습


金씨는 자신이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교사범으로 사형을 언도 받은 후 대전교도소와 대구교도소에서 강종헌과 함께 형제처럼 가깝게 지냈던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강종헌이 교도소 내에서 자신에게 털어 놓았던 대남공작원으로 선발된 이후 밀입북 과정까지 등을 공개했다.

김현장씨는 철저한 혁명가인 강종헌이 자신에게 대남공작에 대해 털어 놓은 배경에 대해 나름대로의 분석을 피로했다. 자신이 부산 美문화원 방화 주범으로서 영웅적인 반미 투쟁이 북한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된 때문에 강종헌이 안심했던 것 같았다고 했다. 특히, 김일성이 지금까지 대표적 항일투쟁으로 선전하는 '보천보습격사건'보다 위대한 반미투쟁이라고 추어올린 때문에 강종헌이 자신을 믿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현장 씨는 자신의 反美는 미국의 對한국 외교정책을 고쳐서 종속적인 한미 동맹관계를 수평적 한미관계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 후에 반미가 주체사상과 결합되어 종북으로 변질되었음을 개탄하였다. 김현장 씨는 동경대학에서 3년간 많은 것을 공부했다고 하면서, 국민들이 자유민주체제를 지켜내기 위해 정신무장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金씨는 자신이 복역 중에 교도소에서 수 많은 노동당원(대남공작원들)을 보았지만, 강종헌만큼 정신적으로 무장된 노동당원은 보지 못했다고 하면서, 강종헌을 통일혁명당사건 이래 최고의 거물 공작원으로 본다고 말했다. 康 씨는 나이는 어렸지만 그의 사상적 무장과 혁명가로서의 품성이 교도소 내 모든 좌익수들의 모범이어서, 모든 좌익수들이 康을 어려워했고, 김현장 씨도 자신의 징역살이 선생이 강종헌이었다고 회고하였다.

좌익수들이 어려워한다는 것은 평양의 중앙당이 康을 인정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남한 및 일본 내 종북들이 강종헌에게 깍듯하게 대한다고 康씨의 위상을 설명했다. 특히 康 씨가 지난 몇 년 동안 빈번히 방한한 것은, 그가 現地 入黨을 시킬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지 입당 조치 등 공작지도를 위해 방한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김현장 씨는 강종헌은 평양이 그만두라고 하기 전에는 결코 공작활동을 중지할 수가 없으며, 민노당의 애국가와 國旗 거부도 강종헌과 같은 공작원의 직접 지도에 의한 것이며, 평양이 한국의 정치에 얼마나 깊이 개입하고 있는 가를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장 씨는 재심 법정에서 재회한 강종헌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고 하면서, 金鉉奬을 잘 모른다고 했던 강종헌에 대해 인간적 배신감, 빨갱이들의 비겁성을 느꼈다고 토로하고, 앞으로 종북 박멸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각오라고 다짐했다.

김현장 씨는 강종헌 재심의 검찰 측 증인으로서 최후 진술 시 두 가지를 강조했다고 한다.

첫째,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비겁하게 침묵하고 있지만, 후대에 강종헌의 정체를 고발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역사에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증인으로 나왔다. 둘째,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 내가 옳았는지, 강종헌이 거짓말을 했는지는 어차피 곧 밝혀질 것이다.

김현장 씨의 이번 강연과 취재를 통해, 康宗憲 구하기에 나선 국내외 從北 세력들의 광범한 연계를 알 수 있는 단서가 더 드러났다. 우선, 국내의 종북들은 거의 모두 강종헌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었다. 재심 법정에는 한국 내 골수 종북들이 총동원된 듯이 보였으며, 일본에서도 10여명 이상 강종헌을 응원하기 위해 방한했다고 한다. 강종헌의 역할과 비중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종북 세력들은 법정에서 김현장 씨를 심리적으로 압박한 것은 물론, 金씨가 인간적으로 거절하기 어려운 인사들을 통해서 강종헌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말도록 공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재심 법원의 객관적 사실규명을 방해하는 명백한 사법방해이다.

강종헌을 구하기 위해 사법방해에 나선 이들 종북 세력의 윤곽이 드러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특히, 사법방해 공작에서 주목되는 인물이 드러났다. 1971년 보안사에 간첩혐의로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약 19년간 복역 중 1990년2월28일 가석방되어 일본에 돌아온 서승(徐勝, 리쯔메이깡대학 특임교수)이다. 徐씨는 지난 7월23일 열린 두 번째 재심 때,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H 신부와 K 변호사를 통해 김현장에게 강종헌에 불리한 법정 증언을 말도록 압력을 가했다고 한다.

일본 京都 출신인 徐勝은 동생 서준식과 함께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유학 중 재일동포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보안사에 체포되었다. 재판과정에서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은 모습이 공개되어 고문 논란으로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던 인물이다. 당시, 평양 측과 일본 내 반한 세력 등은 보안사가 徐 씨를 불로 고문했다고 조작, 대대적으로 선전하여 한국 당국을 곤경에 빠뜨렸던 대표적 모략 공작의 주인공이다.

서승은 가석방 후에 자신이 북한 공작선으로 밀입북 했었으며, 얼굴의 화상도 고문이 아니라 自害한 것이라고 말했으나, 국제적으로 실추된 한국의 이미지는 회복될 수 없었고, 한국 당국이 서승을 불로 고문했다고 주장한 수 많은 인사들과 단체들과 언론은 누구도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지 않았고, 자신들을 속인 徐勝이나 평양 측에 항의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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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서승과 서준식 형제도 당시에 이미 좌익수들 사이에선 평양에서 영웅칭호를 받은 것으로 잘 알려졌었다고 한다. 서승은 강종헌과 같은 京都 출신인데, 실은 리쯔메이깡대학 특임교수 서승이 바로 강종헌의 롤모델(role model)이다.

서승도 고교 때부터 좌익사상에 물들었다. 동경교육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할 때 그의 전공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이었다. 徐씨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전공한 것도 한국의 농촌경제, 農奴적 신분이었던 머슴 등을 연구했다고 한다.

서승은 노태우정권 때 한통련 등의 공작으로 김영삼이 막무가내로 석방을 주장하여 가석방되었다. 徐 씨는 귀일 후 가석방 조건 등을 무시하고 곧바로 활동을 재개했다. 앰네스티 등 수 많은 단체의 후원 하에 버클리대학에 객원연구원으로 도미한 徐씨는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 각지를 돌았다. 강종헌이 일본 내에서 범민련 해외본부 공동사무국 차장 등으로 종북 활동을 전개하고 있을 때 서승은 해외에서 친북 활동을 전개한 셈이다.

서승은 1998년 김대중이 대통령에 취임한 한 달 후에 리쯔메이깡(立命館)대학 법대교수가 되었다. 김대중 정권 때인 2000년 뒤늦게 서울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서승은 리쯔메이깡대학에 코리아연구센터를 만들었다. 서승이 만든 이 연구센터는 일본 내에서 친북세력을 확대 재생산하는 가장 중요한 전략 거점의 하나가 되었다. 노무현 정권 때 이 ‘코리아연구센터’는 한국국제교류재단(외통부 산하)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서승의 활약으로 2007년에 리쯔메이깡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 5월 서승(리쯔메이깡대학 코리아연구센터)이 주도한 “남북화해와 협력 10년”아라는 국제심포지엄에는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문정인 연세대학교수 등이 참석했는데,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약 7,000만원(500만엥), 삼성이 약 1,400만원(100만엥)을 지원했다고 한다. ‘코리아연구센터’와 좌익정권의 관계에 대해서는 월간조선 2009년 12월호에 보도된 바 있다.

서승의 부탁을 받고 김현장 씨에게 강종헌 재심법정에 검찰 측 증인으로 증언하지 말도록 요청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H 신부는 국보법 폐지부터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까지 대한민국의 안보를 허무는 운동에는 늘 앞장서는 단골이며, 소위 '희망2013 승리 2012 원탁회의' 멤버이기도 하다. 물론 강종헌 자신도 이전부터 천주교 신부들을 의식적으로 집중적으로 접촉해왔었다고 한다. 때마침 강종헌의 변호인 심재환(전 민노당 대표 이정희의 남편) 변호사가 음주운전으로 적발(9월25일) 된 사실이 보도되었는데, 이 H 신부도 예전에 뺑소니사건(사망)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국이 H 신부를 사법처리 하지 않았던 배경이 무엇이었는지 의문이다.

아무튼, 서승과 서준식은 좌익정권 하에서도 저들의 국가보안법 위반 범죄가 조작된 것이라고 뒤집을 수 없었다. 강종헌 재심 재판이 재일 국가보안법 위반 전과자들에게 지대한 관심사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강종헌이 재심에서 무죄가 되면, 서승 등 비슷한 처지의 밀입국 공작원들에게도 희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동경에서는 徐씨 형제를 명예회복 시키기 위해 한통련계가 결집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강종헌 재심을 계기로 전국의 종북 들이 강종헌 재심법정에 나타나 기세를 올리고 있는데, 정작 법치의 근간이 되는 공안당국은 겁을 먹은 것처럼 위축되어 있는 모양이다. 상식적으로 강종헌은 재심의 대상이 아니라, 체포, 조사해야 할 대상이다.

왜냐하면 강종헌의 재심법정에도 나타났다는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으로서 국가보안법으로 두 번 체포되었던 유죄가 확정되었던 민경우 때문이다.

閔庚宇는 범민련 해외본부 공동사무국(일본 동경 소재)과의 관계, 특히, 조총련 간첩 朴勇으로부터 자금을 받은 것이 유죄 판단의 결정적 사유의 하나로 알려지는데, 당시 박용과 함께 공동사무국 차장이었던 자가 강종헌이다. 즉, 민경우가 체포되었으면 당연히 박용과 강종헌도 체포, 조사를 받아야 하는 대상인 것이다. 그러한 강종헌이 제 발로 한국을 수시로 입출국 했는데 어째서 조사, 체포하지 못하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재외교포에겐 치외법권이라도 있는가? 결국 수사 미흡이었던 것이 아닌가?

강종헌은 6.15공동선언 12주년 기념 강연회(6월17일, 나고야)에서 재심공판을 앞두고 김현장이 거짓말쟁이라고 태연히 거짓말을 했다. 민경우와 관련된 사건의 경우 공범들의 시효가 완성된 것인가? 공안당국은 앞으로 국외에 도주(거주) 중인 자들의 시효를 어떻게 할 것인가? (2012.09.26) <계속>

[ 2012-09-27, 12:0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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