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를 죽이려다가 北을 죽게 만든 김일성
1.21 청와대 기습 사건 45주년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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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월21일은 김일성이 보낸 124군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기습한 사건의 45주년이 되는 날이다.
  
  1968년 1월21일 밤,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 사건은 1950년 6월25일의 남침에 이은 김일성의 결정적 敗着이었다. 6.25 남침이 없었더라면 韓美동맹도, 박정희 대통령의 등장도 없었을 것이고, 1960년대엔 월남식으로 공산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1.21 사건은 경제개발에 집중하던 박정희 대통령을 자극, 전면적인 대응책을 불렀다. 자주국방력 건설, 중화학 공업 건설, 예비군 창설, 새마을 운동이 북한 위협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추진된 정책이고 모두 대성공하였다. 국산무기를 만들기 위하여선 중화학 공업이라는 기반이 있어야 하고, 농민들 사이로 공산주의가 침투하지 못하게 하려면 새마을 운동으로 소득을 높여야 하며, 공비들의 후방 침투는 향토예비군으로 막는다는 전략을 밀고 나간 것이다.
  
   朴 대통령은 "한 손에 망치 들고 다른 손에 총 들고,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운다"는 구호 아래 경제개발 우선 정책으로 소홀히 하였던 군사력 건설에도 매진함으로써 1970년대 중반에 가면 남한의 군사력 지출이 북한을 능가하고, 중동건설 시장 붐을 타고 1인당 국민소득도 북한을 추월한다. 김일성의 모험주의가 잠자던 사자를 깨운 셈이다.
  
   북한은 1960년대에 군사력 건설 제1주의를 밀고 나아간 끝에 경제가 망가졌고, 남한은 1960년대에 키운 경제력을 바탕으로 70년대에 자주국방력 건설에 나섬으로써 北을 압도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무기를 만들기 위하여 시작한 중화학공업이 커져 오늘날 한국인들이 먹고 사는 기반이 되었다. 김일성의 惡行이 결과적으론 善行이 되었다. 이게 역사의 오묘한 섭리이리라.
  
   1980년대에 들어가면 재래식 군사력에서 밀리기 시작한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이게 결국 아들뿐 아니라 손자 정권을 망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역사의 복수는 이런 식으로 이뤄지는 모양이다.
  
   김일성이 박정희를 죽이려 한 청와대 기습 사건은 박정희의 逆轉勝(역전승)으로 끝난 셈이다. 김일성의 파괴적 도발에 박정희는 건설과 생산으로 대응하여 이긴 것이다. 좌익은 늘 자충수로 망한다. 惡은 스스로를 드러낸다.
[ 2013-01-14, 15:5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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