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精髓(정수)를 보여준 뉴욕타임스 심층취재] 그 순간 세월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
세월호의 마지막 순간과 관련된 증언이 승무원과 생존자, 그리고 40여 분 간의 긴급 구난 통신 내용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번역/金泌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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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바다 속에 잠긴 세월호 관련 이미지 가운데 오렌지 색깔의 구명조끼를 몸에 두른 이준석 선장의 모습을 보고 분노하지 않은 한국인들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수백여 명의 승객을 여객선 내부에 두고, 반쯤 가라앉은 배에서 구조 보트에 자신의 몸을 실었다. 

해양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이준석(69세) 선장은 수많은 승객들을 내버려 둔 채 배를 포기한 이유에 대해 여태껏 설명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세월호의 마지막 순간과 관련된 증언이 승무원과 생존자, 그리고 40여 분 간의 긴급 구난 통신 내용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당시 선장과 승무원들은 船內(선내) 방송 시스템 고장 등을 포함한 기계고장, 이에 따른 힘겨운 선택(tough choices), 의문스런 결정(questionable decisions)의 문제에 부딪혀 혼돈(chaos)스런 상황이 급속히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들 요인들(factors)은 여객선 침몰, 그리고 향후 수백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희생자를 낳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다. 당시 교통관제센터는 여객선이 구조요청을 보낸 지 약 30분 만에 “해경 도착 15분 전”이라며 “승객들에게 구명동의를 착용토록 하라”는 내용을 전달했다.

이에 앞서 여객선의 승무원들은 승객들에게 현재 있는 곳에서 움직이지 말고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방송을 했다. 그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교통관제센터는 “방송이 안 되더라도 최대한 나가셔서 승객들에게 구명동의 및 두껍게 옷을 입을 수 있도록 조치 바란다”교 통신했다. 이에 세월호는 “본선이 승객들을 탈출시키면 구조가 바로 되겠느냐”고 물었다. 관제센터는 “라이프링이라도 착용시키고 띄우라. 빨리!”라고 지시했다.

몇 분이 흐른 뒤, 교통관제센터는 “우리(관제센터)는 그쪽 상황을 모른다. 선장이 최종 판단을 하고, 승객을 탈출 시킬지를 빨리 결정하라”고 했다.

선내(船內) 다른 곳에서 근무 중이었던 선원(communication officer)은 艦橋(bridge)로부터 승객들로 하여금 배를 포기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艦橋에 있던 한 선원은 선장이 배를 버리고 대피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 같은 사항을 방송 메시지로 듣지는 못했다고 했다. 생존자들도 선장의 메시지를 듣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세월호는 지난 화요일(15일) 밤 9시 인천에서 출항해 제주도로 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여객선의 항해는 여타 배들과 다를 바 없었다. 세월호는 길이 460피트, 5층 선체(船體) 구조로 264마일의 루트를, 화물을 적재한 채 일주일에 두 번씩 남해안을 운항했다. 침몰 당시 세월호의 승객은 476명으로 최대 승선인원(921명)의 60% 가량을 태우고 있었다.

대부분의 승객은 대학입시를 1년 앞두고 마지막으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고교 2학년 학생들이이었다. 배는 또 124대의 자동차, 56대의 트럭, 105개의 컨테이너 등을 滿載하고 있었다. 

학생 중 일부는 갑판에 모여 밤하늘의 불꽃놀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갑판 아래 머물던 학생들은 배안을 돌아다니거나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비디오 게임 등을 즐기고 있었다.

세월호의 최상층에 위치한 조타실에서는 승무원들이 3교대로 근무 중이었다.

배는 안개로 인해 예정보다 늦은 시각에 출발(4월15일)했다. 조타수 오용석(58) 씨는 두 번째 교대자로 동료의 지시에 따라 키를 잡고 있었다. 오 씨는 사건 발생 후 수 차례에 걸쳐 언론과 인터뷰한 인물로 출항당시 바다가 잠잠하고 조용한 밤이었다고 밝혔다. 선장은 항해 상황 점검을 위해 몇 차례 艦橋을 들르곤 했다 한다.

吳 씨는 세 번째 교대자에게 키를 넘기면서, 함선 내 자동차와 화물이 제대로 결박 됐는지에 대해 재확인(double-check) 할 것을 주지시켜 주었다고 한다. 그는 동료들에게 일부 자동차와 화물의 결박이 느슨해져 자신이 이를 결박했다고 말해주었다. 이 때만 해도 아무 일 없었다. 이후 吳 씨는 자신의 침실로 돌아가 깊은 잠에 빠졌다. 

승무원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박한결(26) 씨의 지휘 하에 아침 7시30분 마지막 교대가 시작됐다. 박 씨는 입사 4개월의 신참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녀의 교대 시간은 항해 중 가장 어려운 구간(註: 맹골수로)을 통과하는 시간과 겹쳤다. 그녀는 유속도 빠르고 예측 불가능한 해류, 그리고 해난 사고가 많이 발생했던 지역을 통과해야 했다.

吳 씨는 “(맹골수로를 통과하다) 강한 조류와 맞닥뜨리면, 배가 전복되기도 한다”며 “이곳에서는 키를 잡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한결 씨는 이처럼 악명 높은 해로(海路)를, 조타수에게 키를 잡게 하고 지시를 내리며 처음 항해한 것이다.

이 때문에 검찰은 그녀가 맹골수로를 통과할 정도로 숙련된 인물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고, 세월호 침몰 사건 발생 후 선장 등 관련자 3명, 그리고 기관사를 구속했다.

전문가들은 사건 발생 당시 세월호가 선체(船體)의 급격한 회전을 시도했는지의 여부, 그리고 화물의 결박이 풀렸는지의 여부를 조사했으며, 이것이 사고의 원인이 됐는지를 조사했다고 밝혔다. 사건 발생 당시 조타기를 직접 돌렸던 조준기 씨는 “내 자신도 실수를 했지만 배가 너무 많이 기울어 있었다”고 증언했다. 검찰은 전문가들이 박한결 씨와 조준기 씨 사이에 어떤 ‘불일치점’(discrepancies)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吳 씨는 아침 8시48분(4월16일) 배가 심하게 기울어 잠에서 깼다. 배가 침몰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그는 맨발로 복도를 나와 즉시 함교로 향했다. 그가 맨 처음 얼굴을 맞닥뜨린 인물은 이준석 선장이었다.
 
이준석 선장은 당시 함내 숙소에 있었다. 그는 배가 한쪽으로 서서히 기울자 가까스로 자신의 숙소를 빠져나온 뒤, 艦橋의 출입구 손잡이를 잡았다. 李 선장은 艦橋로 들어가 세월호를 정상화 시키려 했다.

李 선장이 艦橋로 들어간 후 오 씨도 그를 따라 艦橋로 진입했다. 곧이어 세월호의 모든 항해사와 조타수가 함교로 모였다. 이준석 선장은 함교 중앙의 지도 테이블 옆의 기둥을 잡고서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吳 씨는 선장이 “배가 이미 심하게 기울고 있으니, 모두 잡을 수 있는 것을 잡고 버티라”고 말했다며 “당시 상황은 정말 심각한 게 분명했다”고 회상했다.

전문가들은 발생 가능한 여러 사고의 원인으로 승무원의 실수, 예상치 못한 조류, 선박의 평형 유지 실패, 적재 화물의 결박 부실 또는 불안정, 선실 증축에 따른 세월호(선령 20년)의 선박 평형유지 손상 가능성, 안전 수칙 태만 등에 무게를 두고 사건을 재구성하고 있다.

16일 오전 8시55분, 세월호는 선체가 기울어지고 운항불능 상태가 됐다. 여객선 침몰 직전 세월호와 해상교통관제센터의 교신 내용에 따르면 당시 함교에 있던 승무원(原文은 someone)은 해상교통관제센터에 “빨리 와 달라‘면서 조난신고를 했다.

李 선장은 선체를 정상화시킬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밸러스트(ballast) 모터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朴 씨가 말했다고 오 씨는 증언했다.

오전 9시5분, 세월호는 해상교통관제센터에 “해경 구조는 어떻게 되느냐?”는 다급한 메시지를 보냈다. 관제센터는 사고 해역 주변의 선박들에 세월호 구조에 나설 것을 요청했다.

船內 3층에 있던 승무원 강해성 씨는 방송실에 있었다.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상황 파악에 나섰다. 배는 30도 가량 기울었고 칼이 선반에서 떨어졌다. 姜 씨는 승객들에게 그대로 있으라, 급하게 움직이지 말라고 방송했다.

그는 “메뉴얼을 볼 시간이 없었지만 승객들을 우선 안심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준석 선장은 긴급 대피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지난 금요일 증언했다. 선장은 승객들이 강한 조류와 추운 바닷물 속에서 위험에 빠질 것을 두려워했다. 吳 씨는 애초 이 선장이 선박의 라이프래프트(구명뗏목)를 띄우려 했다고 증언했다. 승무원도 이를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오전 9시18분, 세월호는 배가 50도 이상 기울고 있다고 보고했다. “탈출이 불가능하다”, 세월호 함교의 누군가(someone)가 무선통신으로 긴급발신을 했다.

姜 씨는 본인의 핸드폰으로 해경에 전화를 건 뒤, 함내 방송을 통해 구조대가 오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십시오”라고 승객들에게 알렸다.

오전 9시23분, 함교는 또 다른 비보를 알렸다: “배가 가라앉기 직전이다”

배는 계속해서 기울어졌고, 내부는 물이 찼다. 강 씨와 그의 동료들은 일부 승객들이 4층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의자 등을 쌓아올렸다.

姜 씨는 “모든 사람들이 살려고 발버둥을 쳐서 아수라장 같았다. 사람들이 자신의 밑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올리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吳 씨는 李 선장이 함교에서 나오면서 탈출 명령을 내리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吳 씨는 이 같은 명령을 방송으로 듣지는 못했다고 했다. 姜 씨도 그런 명령(탈출명령)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사고 당시 탈출명령이 승객들에게 전달됐는지의 여부를 여전히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오전 9시38분, 세월호는 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와 마지막 교신을 통해 배가 60도 기울었다고 통보했다. “좌현 쪽으로 탈출할 사람만 탈출 시도하고 있다”는 내용을 마지막으로 교신이 끊겼다.

이후 세월호 승무원 모두 함교를 탈출하기 시작했다. 항해팀을 포함해 전체 승무원의 3분의 2가 넘는 29명의 승무원들이 생존했다. 그러나 승객은 전체의 3분의1에 해당하는 174명만이 생존했다. 지난 월요일 61명의 사람들이 사망하고 241명이 여전히 실종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吳 씨는 李 선장이 조타실을 나와 밑으로 내려갔고, 선박 좌현의 문(door)과 부딪히는 것을 보았다. 조타수는 선장이 배를 탈출했는지, 아니면 배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쳐 넘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구조 후 TV 이미지를 통해서야 李 선장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선장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졌고,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받고 있었다. 선장은 이외에도 재난상황에서 승객을 버리고 떠나 유기치사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번역/김필재(조갑제닷컴) spooner1@hanmail.net

필자: 최상훈, 커크 셈플(kirk Semple), 이수현 기자
원제: Errors Mounted as Chaos Ruled Capsizing Ferry
출처: 뉴욕타임즈 홈페이지, 2014년 4월20일자 보도

[ 2014-04-24, 19:4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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