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警 항공 구조사 柳規錫 경장, "보이는 사람은 다 살렸다."
“선실이건 복도건 딱 눈빛이 마주치면 그 눈길을 그냥 두고 돌아 나올 수가 없는 겁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구해주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거든요.”

李東昱 조갑제닷컴 편집위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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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공 구조사 柳規錫 경장의 경우
  
  “보이는 대로 전부 건져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렇게 많이 타고 있는 줄…”

  
  
  표류 승객이 안 보였다.
  
  4월16일 오전 9시. 제주지방 해양경찰청 항공대 소속의 7인승 팬더 513호 헬기는 계획대로 불법외국어선 단속 임무를 위해 제주공항에서 이륙해 제주 북방 약 3마일 해상에서 비행 중이었다. 조종사와 부조종사, 정비사와 전탐사(電探士) 그리고 항공 구조사(救助士) 등 5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9시 8분 경. 상황실에서 무선통신으로 배가 좌초 중이라 현장으로 이동하라는 상황실의 지시를 전달받고, 제주해경 소속 513호는 급히 機首를 사고현장으로 돌렸다.
  
  9시 32분경 제주海警 513호는 좌현 약 60도로 기울어진 여객선을 발견하고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미 목포 海警 소속의 팬더 511호가 도착해 船尾에서 바스켓(구조 바구니)으로 승객들을 구조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柳規錫(류규석) 경장(해경 211기·37)이 내려다보니 기울어진 船尾의 난간을 붙잡고 있는 두 명의 승객을 갑판으로 내려온 항공 구조사들이 바스켓에 싣기 위해 애쓰는 장면이 보였다. 柳 경장이 탄 513호 헬기가 세월호 船尾 쪽 해상에 표류중인 사람들을 발견하고 고도를 낮춰 접근했다. 가까이 가 보니 사람이 아니고 각종 부유물들이 떠다니는 중이었다. 이때까지도 제주 海警 513호는 물론 목포 海警조차 세월호의 탑승객에 관한 정확한 정보가 없었다. 511호가 구조를 하는 동안 513호는 세월호 주변을 살피기 위해 선회 수색을 시작했다. 구조사(救助士)인 柳 경장이 육안으로 海面을 샅샅이 살폈다. 그러나 그때까지 바다위로 표류중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머물 곳이 아니었다’
  
  선회수색을 하는 동안 목포 海警(해경) 511호가 연신 승객을 실어 올렸다. 7명 정원을 초과해서 최대한으로 승객을 실은 511호가 뒤로 빠질 준비를 했다. 그 자리를 대신해 513호가 들어갈 계획이었다. 柳規錫 경장은 재빨리 바스켓에 몸을 실었다. 팬더 513호는 조금 전 511호가 머물던 상공으로 진입해 하버링(hovering·공중 정지 제자리 비행)을 하며 柳 경장이 탄 바스켓을 기울어진 세월호 後尾로 내려보냈다. 세월호에서 柳 경장을 맞이한 사람들은 목포 海警 소속의 항공 구조사 박훈식 경위와 김재현 경장이었다. 이들은 승객들을 바스켓에 태워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가 柳規錫 경장과 합류한 것이다. 이때까지 海警소속 구조대원은 이들 세 명이 전부였다.
  
  류규석 경장이 보니 기울어진 船尾의 3층 데크 쪽 20여 m 떨어진 곳에 구명조끼를 입은 몇 명이 웅크리고 있었다. 柳 경장과 金 경장이 그곳으로 이동을 시도했다. 두 대원은 최대한 미끄러지지 않도록 애를 써야 했다. 미끄러졌다가는 30여 m 아래 바다 속으로 처박히게 된다. 그 정도 높이에서 바다 속으로 떨어지면 부상을 당하기 십상이었다. 난간도 없어서 최대한 조심해서 이동했다. 柳規錫 경장은 “그곳은 사람이 머물 곳이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이들이 얼마 뒤 승객들과 조우했을 때 그들은 겁에 질린 채 아무 말도 없었다.
  
  승객들이 모인 곳은 평상시엔 옥외 복도였던 곳이었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아주머니와 노인들이었다. 김재현 경장은 난간 위를 맡고 柳 경장은 난간 뒤편으로 넘어가 헬기로부터 복도까지 바스켓을 내리게 했다. 그 때까지도 사람들이 그렇게 많으리라고 柳 경장은 생각지 않았다. 여섯 명 째를 바스켓으로 올려 보내고 마지막 일곱 번째 사람을 실으려는데 그 승객이 “저 아래 칸에 아주머니와 몇 명 더 있어요.”라고 했다. 이제 바스켓에 승객을 싣는 일은 金 경장에게 맡기고 柳 경장은 아래 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구조에 성공하는 것 같았다
  
  柳 경장은 船尾쪽 난간을 잡고 아래 칸으로 이동했다. 평소 같으면 3층 후미 갑판이었을 텐데 배가 기울어지는 바람에 같은 3층임에도 아래층이 돼 있었다. 그 3층 통로쯤에 중년 여성 한 사람과 남성 두 사람이 앉아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다. 柳 경장은 난간을 붙잡은 채 “나오세요”라고 소리쳤다. 겁을 먹은 세 사람은 柳 경장의 말을 고분고분 따랐다. 柳 경장에게 세 사람이 붙다시피 왔을 때 柳 경장은 갑자기 걱정이 됐다고 한다.
  
  “이 분들을 구하려면 다시 위로 올라가야 했는데, 연세로 보나 그게 쉽지 않겠더라고요.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마침 後尾(후미) 쪽으로 어업 지도선과 다른 어선들이 주위를 선회하다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분들에게 아래로 내려가 배를 타자고 설득하면서 後尾 쪽으로 유도해 갔지요.”
  
  기울어진 배 後尾 쪽으로는 어업 지도선이 쉽게 접안할 수 있었다. 柳 경장은 이들 세 사람을 어업 지도선에 승선시킨 뒤 자신은 다시 세월호 船室로 비틀거리며 걸어 들어갔다. 거기서 柳 경장이 난간을 의지한 채 아래로 더 내려가니 와글거리는 소리, 우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더 다가서자 큰 공간이 나오는데 패닉에 빠진 수십 명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바로 거기서 柳 경장은 목포 海警 항공 구조사인 權在俊 경사와 조우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인사조차 없이 학생들을 구조하기 바빴다. 이들 두 구조사는 학생들을 세월호에 접안한 어선들로 실어 날랐다.
  
  학생들을 거의 다 어선으로 옮겨 태운 柳 경장이 주변을 살피는데 위층 갑판에서 성인 남자 세 명이 헬기를 기다리다 柳 경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밑으로 내려가도 돼요?”라고 소리쳐 물었다. 柳 경장은 “여기 배 있으니 빨리 오세요”라며 재촉했다. 결국 이들은 柳 경장의 지시대로 내려와 배로 구조되었다. 그 때까지 柳 경장과 權 경사는 한 사람도 남김없이 구조했다고 믿었다. 柳 경장은 船首에서 구조작업 중인 123정을 볼 수 있었다. 주변 해역은 어선들과 해경 함정 등이 몰려 있었다. 다들 구조에 성공하는 것 같았다.
  
  柳 경장의 이야기. “선실이건 복도건 딱 눈빛이 마주치면 그 눈길을 그냥 두고 돌아 나올 수가 없는 겁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구해주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거든요.”
  
  한 명도 남김없이 다 건졌다고 자신했는데…
  
  그들은 그렇게 쓰러진 배를 훑어 나갔다. 헬기는 공중에서 하버링을 하며 혹시라도 사람이 있는지 살피고 있었다. 두 사람은 뒤집혀 진 배 위로 올라와 다른 쪽으로 이동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배가 쑥 꺼지면서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더 이상 머물렀다가는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았다. 두 구조대원은 거의 동시에 바다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 배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위한 필사적인 수영을 했다. 50여m를 헤엄쳤을 때 어선이 다가와 柳 경장을 건져 올렸다.
  
  어선의 갑판위에서 기진맥진한 류 경장은 구조에 대한 성취감에 부풀었다. 사람들이 계속 나왔지만 보이는 대로 한 명도 남김없이 다 건졌다고 자신했다. 기울어지던 세월호 위에 내려선 이후 구조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쉰 적이 없었다. 선실 내부도 나름 돌아봤고 거기서 마주친 사람들은 모두 어선으로 옮겨 태웠다. 더 있다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柳 경장은 멍하니 하늘을 보고 누워 텅 빈 배가 가라앉게 될 모양을 상상하며 쉬고 있었다. 그때 라디오 뉴스를 들으며 어선을 몰던 선장이 걸어 나오더니 소식을 전해주었다.
  
  “아직도 저 안에 학생들이 한 300명 가까이 있다는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류 경장은 온 몸이 감전된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많이 탔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갑자기 황당하고 참담한 심정이 됐지요. 눈물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벌떡 일어나 앉아서 거꾸로 처박힌 배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질 질 흘렸습니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가진 구조대원도 심리적 상처를 입는다. 심리적 상처란 쉽게 치유되기 힘든 상처를 의미한다. 분명 柳 경장이나 權 경사는 그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 온 뒤엔 언론이 그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려 댔다. 급기야 대통령도 가세해 海警 해체를 공표했다. 보다 못한 柳 경장의 부인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구조대원도 죽어야 한다는 말인지, 왜 구조대원이 욕을 먹어야 하고, 왜 海警이 해체되어야 하는지,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지 당췌 알 수가 없어요.” 󰁋
[ 2014-05-27, 01:4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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