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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最强의 잠수팀 집결하다
매일 5억 이상을 쓰고, 조명탄만 200억 원어치를 쏜 세월호 潛水수색 현장 ② / 기자는 1979년에 첫 다이빙을 해 본 이후 230회 정도의 잠수 경력, 아마추어 최상급의 다이빙 자격증을 갖고 있었지만 세월호 수중 취재는 첫날부터 거절당했다.

이동욱(조갑제닷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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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潛水(잠수) 취재 거부당하다>

영화 장면들이 때때로 세상에 대한 誤(오) 개념을 대중에게 심어놓곤 하는데, 잠수(다이빙)가 대표적인 예다. 시각 예술인 영화는 눈에 보여야 성립한다. 視界(시야)가 20cm~5m밖에 안 되는 물속 상황을 화면에 담아봐야 재미가 없기 때문에 영화는 이런 상황을 다루지 않는다. 그러니 대중들은 이런 바다환경을 상상하기 어렵고, 분노하는 실종자 가족들은 그런 대중들보다 더할 것이다. 그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물 속의 기억은 영화를 통해서나 시야 좋은 열대 바다의 수중사진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기자도 ‘그 속’을 들어가 보기 전에는 이런 축에 속했다는 것을 털어 놓는다. 하지만 세월호가 가라앉은 맹골수도 끝 병풍도 앞바다의 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기자조차 한동안 誤(오)개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것이 오개념이란 것도 뒤늦게 깨달은 사실이다. 현장에서 온갖 고생을 감수하는 잠수사(다이버)들에게는 참으로 부끄러운 고백을 하는 셈이 되는데, 기자는 1979년에 첫 다이빙을 해 본 이후 얼추 230회 정도의 잠수 경력을 갖고 있다. 현장의 잠수사 대부분은 30대 초·중반이다. 기자보다 한참 어린 그들은 내 경력을 보고 ‘선배님’이라고 깍듯이 대한다. 기자는 아마추어 최상급의 다이빙 자격증을 갖고 있으며 산업잠수사들이 사용하는 후카 장비를 사용해서 수온 4도의 45m 동굴 속을 들어가기도 했고, 필리핀에서는 65m까지 심해 잠수(deep diving)를 세 번이나 해 본 경험이 있으며, 조류에 밀려 2시간 가까이 표류하다 구조된 적도 두 번이나 된다.

군복무 시절 수색대대에서는 전투수영을 위한 수중 시설물을 직접 설치했고, 전투수영 교관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은 전부 맑고 평온한 물 속에서였다는 사실을 기자는 잊고 있었다. 이것이 판단을 그르치게 하고, 직접 ‘그 곳’을 들어가는 잠수사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의문을 갖게 했었다. 어찌 보면 사람의 두뇌란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지난 6월25일을 전후해서 팽목항을 거쳐 바지선 ‘언딘 리베로호’로 찾아갔을 때에도 기자는 자동차 트렁크에 잠수 장비를 싣고 갔었다. 바지선까지 다이빙 백을 들고 올랐지만 잠수는 허락되지 않았다. 기자도 현장을 지휘하는 해경을 압박하지 못했다. 현장의 수색 작업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말에는 그 어떤 반박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유가족 대표단이 늘 감시자로 있다는 사실이 부담이었다. 인터뷰도 금지됐었다.

그리고 8월18일, 이번에는 해경을 설득해 잠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 다시 장비를 챙겨 ‘언딘 리베로’를 대신해 들어선 ‘현대 보령호’에 올랐다. 정확한 수중 상황을 이해 못하는 답답함이 기자의 취재 열정을 만들어 내고는 있었지만 수중 취재는 첫 날부터 거절당하고 있었다. 일단은 포기하기로 했다.


<다이빙 스테이션>

기자가 며칠 동안 상주하다시피 오르내린 ‘보령 현대호’ 바지선 현장에서는 ‘잠수사’라는 말보다 ‘다이버’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최대 150여 명의 다이버들이 상주할 정도로 넓다. 2200톤급 ‘현대 보령호’는 웬만한 조류에도 밀리지 않는 바지선이다. 사고 해역에는 현재 두 대의 바지선이 錨泊(묘박) 중이다. 두 대의 바지선 아래로 세월호가 옆으로 누워 있는 것이다. ‘현대 보령호’가 세월호 중간부터 船首(선수)까지 수색과 인양을 담당한다. ‘88수중’의 바지선(800톤급)은 세월호 船尾(선미) 쪽을 담당하고 주로 선체 절단 등 수중 공사와 수색을 진행한다. 이런 잠수 전용 바지선을 ‘다이빙 스테이션’이라고 부른다. 현장에는 두 곳의 ‘다이빙 스테이션’이 있는 셈이다.

기사본문 이미지

좌측 선박이 현대 보령호이다



‘다이빙 스테이션’에서는 팀별 작업공간이 형성돼 있다. 천막으로 만들어진 이곳을 ‘다이빙 플랫폼’이라고 부른다. ‘현대 보령호’에는 A팀, B팀, C팀, D팀이 작업하는 네 곳의 플랫폼이 있고, ‘88수중’에는 E팀의 플랫폼 하나가 자리한다. 모두 5개 팀이 운용중인 것이다.

모든 다이빙 플랫폼의 바다쪽에는 세월호 선체와 연결된 20mm 굵기의 로프가 한 가닥씩 연결돼 있다. 하잠줄(가이드 라인)이다. 그러니까 현재 세월호와 연결된 하잠줄은 모두 5개의 로프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야기다. 다이버들은 여기서 물로 뛰어들어 하잠줄을 잡고 세월호 선체까지 접근해야만 한다. 다이버가 물로 뛰어드는 장소를 ‘다이빙 스테이지’라고 부른다. 강한 조류에 바지선이 끌리거나 하면 하잠줄이 끊어지므로 잠수 수색의 필수조건은 바지선의 안정된 묘박이다. 이 때문에 다이빙 스테이션用 바지에서는 일반 바지선에서는 다루지 않는 무거운 앵커를 바다에 投錨(투묘)해야 한다.

사고 직후인 4월17일부터 85일간 293구의 시신을 현장의 잠수세력과 협력해 수색, 인양해 오던 ‘(주)언딘’은 4월23일부터 국내 유일의 전문 다이빙 스테이션 ‘언딘 리베로’를 묘박한 채 작업해 왔었다. 일반 바지선이 17톤짜리 윈치 네 대를 쓰는 데 비해 ‘언딘 리베로’는 35톤짜리 두 대와 17.5톤 짜리 네 대를 쌍으로 쓰는 국내 유일의 잠수 전용 다이빙 스테이션이었다. 웬만한 풍랑에도 미끌리지 않고 버틸 수 있고 減壓(감압)챔버(室)와 각종 다이빙 지원체계가 갖추어져 있었다. 4월27일과 5월10일에 불어닥친 풍랑에 다른 바지선과 선박들이 모두 避港(피항)했지만 ‘언딘 리베로호’는 그 자리를 지켜냈었다. 물 속의 세월호와 정확한 묘박을 위해 언딘 바지에는 실시간 위치 모니터링 시스템도 구비해 두었다. DGPS(Dynamic Global Positioning System·동적 위성 위치시스템)을 탑재해 조류나 풍랑으로 바지선의 위치가 변경되더라도 원래 위치로 정확하게 묘박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온갖 악소문에 견디다 못해 지난 7월10일, 철수해 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지금은 다이빙 스테이션 ‘현대 보령호’가 묘박중이다. ‘현대 보령호’ 바지선은 ‘언딘 리베로’ 와 마찬가지로 세월호의 중간부터 선수까지 A, B, C, D 모두 네 곳의 다이빙 플랫폼을 설치, 운영중이다.

현대 보령호에 설치된 플랫폼 4개소 중 2곳은 해군 SSU 대원이, 다른 2곳은 민간 다이버들이 조를 이루어 입수하고 선체 내부 탐색을 주로 한다. 물론 구역을 이렇게 나누었다고 해도 상황에 따라 팀별 수색 영역이 달라지기도 한다. 다이빙 스테이션 ‘88수중바지에는 다이빙 플랫폼 ‘E’가 있다. 여기서 일하는 잠수사들을 ‘E 이라 부른다. 

해경 잠수팀과 중앙119구조단 다이버들은 초기에는 민간다이버들과 합동으로 선내 수색작업을 했지만 최근에는 스쿠버 더블 탱크를 메고 잠수해서 세월호 선체 외부와 주변을 수색하는 역할을 한다. 스쿠버 방식은 기동성이 장점이지만 잠수 시간이 길지 않고 좁은 실내 수색이 어렵다. 이 특징을 살려 해경 잠수팀은 깨진 유리창 같은 선체로 드나들 수 있는 구멍에 유실 방지망을 설치했다. 이곳을 통해 선실내부로부터 흘러나가는 유실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유실방지망의 이상 유무를 매일 확인하면서 선실에서 찾아 낸 시신을 중간에 받아 안고 오르는 일도 한다. 비상시에는 긴급 투입되어 잠수사들을 구해내는 임무도 그래서 해경 잠수팀의 몫이다. 스쿠버로 들어가면 하잠줄은 다른 팀이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한민국 최강의 잠수팀 집결>

해경 경비안전국 이춘재 국장(치안감)과 임근조 과장(총경)이 총괄하는 세월호 잠수 수색 현장의 지휘체계는 다이빙 총감독을 두고 그 아래로 5개 팀을 구성해 두었다. 수색작업이 시작되면 팀별로 부여된 임무를 수행한다. 각 팀은 팀장, 다이버(2명), 텐더(2명), 스텐바이 다이버(1명)의 편제를 유지한다. 동시에 감압 챔버 오퍼레이터와 의료진 등이 선상에서 잠수 수색에 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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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 플랫폼 테이블 全景


각 플랫폼에서 한 번 잠수할 때마다 6명이 팀을 이뤄 작업한다. 먼저 메인 다이버와 함께 짝이 되는 페어 다이버가 입수한다. 메인 다이버는 선체에 맨 먼저 진입해서 작업 구역으로 이동하고 수색을 개시한다. 이때 페어 다이버는 수심 27m 부근의 통로 입구에서 대기하며 호흡줄이 꺾이지 않고 제대로 따라갈 수 있도록 수중에서 메인 다이버의 보조역할을 한다. 메인 다이버가 밀폐된 공간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거나 하면 그를 무사히 탈출시키고, 시신 같은 무거운 물체를 안고 나오면 이를 받아 水上(수상)으로 옮기는 역할도 한다.

이들 두 다이버에게 연결된 호흡줄은 바지선 위에서 잘 잡아 주며 관찰해야 한다. 수중에서 진입 코스가 꺾이거나 길게 연장될 경우에는 신속히 호흡줄을 밀어 넣어 ‘공급’해 주어야 하고 상승할 때는 적절히 감아 올려 ‘철수’시켜 주어야 다이버들이 줄에 휘감기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 역할을 하는 두 명의 보조 요원이 ‘텐더 다이버’로 바지선 위에서 작업한다. 메인 다이버와 연결된 통신선은 다이빙 플랫폼마다 설치된 팀 상황실 테이블 위의 모니터와 스피커로 이어져 있다. 현재 세월호 좌현 벽면이 바닥에 닿아 있고 수면과는 수직거리가 47m 정도 된다. 이론상으로 호흡줄은 약 2배인 100m면 충분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강한 조류로 호스가 수중에서 길게 휘어져버려 현재 호흡줄과 통신선 등 길이는 150m짜리를 사용중이다.

후카 방식이나 커비 모건 헬멧 방식을 사용하는 선체 내부 수색조(메인 다이버)의 마스크에는 마이크와 스피커가 연결돼 있어 수상의 모니터 요원인 팀장과 통신을 주고받는다. 또한 메인 다이버의 몸에는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를 부착해 두어 다이빙 플랫폼에서는 실시간으로 모니터를 통한 수중 상황을 체크할 수 있다. 플랫폼에서는 팀장이 상황판단을 하고 다이버에게 각종 지시를 내린다. 그래봐야 시계가 제한되어 현장의 다이버보다 못한 화면을 볼 뿐이지만.

여기에 각 팀당 한 명의 ‘스탠바이 다이버’가 스쿠버 장비를 착용한 채 대기한다. 이른바 ‘대기 잠수사’. 그는 수중에서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긴급 입수해 다이버의 생명을 구해내는 역할을 한다. 수중에서 비상사태란 秒(초) 단위로 결판난다. 이 때문에 ‘스탠바이 다이버’는 수색조가 다이빙 스테이지를 떠나 입수하는 순간부터 출수해 안전하게 선상에 도착할 때까지 완전무장한 채로 긴장 속에 대기한다. 이 역할은 안전을 담당하는 해경의 몫이다. 잠수복을 입으면 물 속에 들어가서야 편안해진다. 대신, 물 밖에서 가만 앉아있으면 호흡이 어렵고 통풍이 되지 않아 힘들다. 자주 하면 피부에 발진이 나고 열도 오르며 혈압상승이 된다. 거의 고문과 비슷한 고통을 느끼지만 긴급 구조 임무이기 때문에 다른 선택이 없는 셈이다.

다이빙 스테이션에 모여든 잠수사들은 소속이 제각각이다. 해경 잠수대원 36명, 해군 SSU 대원 44명, 소방 잠수대원 4명 그리고 88수중 소속의 민간 잠수대원 24명 등 총 108명이 작업에 참가 중이다. 연령대는 해경과 해군, 그리고 119 다이버들은 30대 초반이 주류를 이루며 민간 다이버들은 이들보다 한참 나이가 많다.

이들의 경력도 다양하다. 민간 다이버들은 거의가 SSU, UDT 출신이고 가끔 특전사 출신도 있다. 해경 다이버들 역시 경력이 떨어지지 않는다. 거의가 해군 SSU나 UDT 출신이며 특전사나 산업잠수기사가 해경으로 투신한 경우도 있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 최강의 잠수팀들이 다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계속>

[ 2014-09-13, 09:3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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