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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海警(해경) A팀 소속 잠수사가 되다!
매일 5억 이상을 쓰고, 조명탄만 200억 원어치를 쏜 세월호 潛水수색 현장을 가다⑤ / 세 시간 설득 끝에 水中수색을 승낙받았지만 入水를 앞둔 건강 검진에서 혈압 160-100으로 불합격 판정을 받고 말았다

이동욱(조갑제닷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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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구의 행방과 화물칸 수색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는 10구의 행방에 대해 회의 참석자들의 의견은 거의 일치하고 있었다. 두 가지 가능성을 들었다. 그 중 한 가지는, 사고 당시 유실되었을 가능성이다. 처음에는 유실되는 시신을 대비하는 조치가 취해지기 전이었으므로 이때 조류를 타고 먼 바다로 흘러갔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입증하느냐는 것이다. 두 번째 가능성은 선체내부의 확률적으로 드문 어느 틈 속에 끼어 있을 가능성이다. 지금까지 잠수 수색을 해 오면서 이 두 번째 가능성을 추적해 왔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러면서 모두가 두려워하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모두가 거론하기 싫어하고 기피하고 싶어 하는 상상. 기자가 그런 낌새를 알아차린 것도 이들과 한 배를 타고 며칠을 생활하면서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화물칸 수색’이었다.

수심 40m 안팎에서 가라앉은 세월호의 화물칸은 지하층(E데크)부터 1층(D데크), 2층(C데크), 2.5층(트윈 데크)까지 모두 4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출항하던 4월15일, 세월호의 바닥이라 할 수 있는 E데크 지하층 화물칸에는 컨테이너 53동과 일반화물이 실렸고 1층 D데크 화물칸엔 승용차 24대, 화물차 29대, 중장비 3대, 컨테이너 7동 및 일반화물이 적재됐다. 2층 C데크에는 승용차 70대, 화물차 28대, 중장비 1대가, C데크와 같은 높이로 외부로 연장된 선수 갑판엔 컨테이너 45동과 일반화물이 실렸으며 선미 화물칸인 트윈 데크(2.5층)에도 승용차 30대가 선적됐다. 차량만 185대가 실렸다. 이들이 내 뿜는 기름이 현재는 화물칸을 가득 채우고 있을 것이다.

화물칸 공간 대부분이 무게가 상당한 중량물들로 채워진데다 불안정한 상태로 뒤엉켜 있는 곳이다. 기름 탱크 속으로 잠수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데 거기다가 중량물에 깔릴 위험이 상당한 이곳을 수색해 달라는 요구가 나오면 과연 해경이 이를 거부할 수 있을까. 시름이 깊어가는 중이다.


不信

실종자 가족 설명회는 다음날 오후에 팽목항에 마련된 수십여 동의 컨테이너 건물 중 <가족 브리핑실>에서 열렸다. 屍身(시신)을 인양하기 시작하던 처음에는 유가족들이 500여 명이 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야외에 천막을 쳐 놓고 진행하던 설명회가 이제는 점차 줄어들어 스무 평 남짓한 회의실 안에서 열리게 됐다. 벽면엔 아직 찾지 못한 열 명의 얼굴 사진들이 노란 현수막에 인쇄돼 걸려 있었다. 학생 5명, 교사 2명, 그리고 어린아이 하나와 일반승객 2명의 얼굴 사진들이었다. 화이트 보드엔 세월호 수색계획도가 확대되어 붙어 있고, 이젤 같은 스탠드 위에 세월호 사진이 걸려 있었다. 또다른 화이트 보드에는 전날 각 팀별 수색 작업 현황이 상세하게 쓰여 있는데 잠수사 이름과 入水(입수)시간, 出水(출수)시간까지 다 적혀 있었다. 이 장면을 보노라면 실종자 가족과 해경 사이에 ‘신뢰’라는 영역은 거의 없는 듯했다.

두 집단 사이의 불신이 자리한 데에는 신문과 방송 등 외부의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겠지만 내부적으로는 수색작업의 난해함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수색 결과 표를 보면 부양 시신들의 숫자와 날짜가 등장한다. 처음 6일간은 침몰한 세월호 주변에서 떠오른 시신 40구가 인양됐고 5월14일에는 수중에서 안고 오르다 놓쳐 인근 어선이 인양한 시신을 부양시신으로 구분해 둔 것이다. 그런데 4월30일과 6월5일 시신은 달랐다.

4월30일에 사고 해역으로부터 약 5km 떨어진 동거차도 앞 바다의 오일 펜스에 유실된 시신이 걸렸던 것. 특히 이 시신은 구명복을 입은 채 조명탄 낙하산줄에 엉켜 오일 펜스에서 머물다 발견됐다. 이로써 실종자 가족들은 해경의 잠수 수색의 허점을 발견하고 유실된 시신이 없도록 요구하게 된다. 불신도 커져갔다. 선체 내부의 시신도 재차 수색을 했다는 곳에서 발견됨에 따라 불신이 더해졌다. 예컨대 부력으로 천정에 붙어버린 메트리스가 시간이 감에 따라 물을 머금고 가라앉게 되자 그 사이에 끼어있던 시신이 발견된 사례 등이 그것이다.

잠수사들 입장에서는 팔에 찬 다이빙 컴퓨터조차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손으로 더듬어 수색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태도이지만 유가족 입장에서는 ‘그럴 수는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유가족들에게는 안 그래도 ‘구조에 실패한 해경으로 인해 아이들이 저렇게 됐는데’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평생 바다에서 살았어도 바다 속은 모릅니다”

이런 와중에 두 달이 다 돼 가던 지난 6월5일, 사고 해역으로부터 약 70km 떨어진 흑산도 해역에서 구명조끼도 걸치지 않은 시신 한 구가 어선에 의해 인양됐다. 시신은 심하게 부패하지 않았고 얼굴도 윤곽 정도는 알아 볼 수 있을 정도의 성인 남성이었다. 이 소식이 팽목항의 유가족들에게 전해지자 해경과 실무진들은 ‘우리 시신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일반적으로 바다에서의 익사체는 한 달 이상 지나면 외형은 매우 심각한 손상을 입기 때문이다. 머리카락도 거의 없어진다. 이런 통계로 보면 그 먼 거리에서 발견된 시신은 세월호와 무관한 시신으로 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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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에 의해 인양되는 시신들 (모자이크 처리)


지푸라기라고 잡고 싶은 유가족들은 바다를 안다는 사람들의 통계적 설득이 들리지 않았다. 어차피 DNA를 채취해서 신원조회가 들어가겠지만 유가족들은 기대를 버리지 않고 기다렸다. 며칠 뒤 그 시신은 세월호에 승선했던 조리실 직원으로 밝혀졌다. 해경으로서는 난감했을 것이고 유가족들은 다시 한 번 자신들의 태도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평생을 바다에서 보냈다는 한 간부는 그 시신과 관련해서 기자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추정이긴 한데, 그 시신은 사고 첫날 바다에 빠져 下降(하강)조류에 밀리면서 바닥으로 쓸렸을 겁니다. 그러다 어디 수심 깊은 바위틈에 끼어 있었을 거예요. 수온이 낮고 물살이 빠르니까 웬만한 바다생물이 붙질 못해서 부패가 덜 진행됐을 것이고요. 몇 번 풍랑이 거센 적이 있는데 그때 빠져나와서 물살을 타고 먼 바다로 이동한 것 같아요. 물론 추정이지요. 나같이 평생 바다에서 살았어도 사실 바다 속은 모르는 겁니다.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너무 많거든요.”


실종자 가족 설명회

설명회가 시작되기 5분 전쯤 사람들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실종자 가족대표들이 앞의 두 줄에 앉았고 그 들을 에워싸듯 기타 관계자들이 들어와 약 30여명으로 회의실이 가득 찼다. 불신이 자리한 공간의 분위기는 4개월째 지속되지만 겨울 시냇가처럼 꽁꽁 얼어 있었다. 해경 관계자가 몇 번이나 기자 티를 내면 절대 안 된다고 언질을 주었기에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했다. 녹음이나 기록 혹은 사진 촬영을 하다가는 해경 전체가 ‘몰래 기자를 잠입시켰다’는 누명을 쓰게 될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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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설명회가 열리는 <가족 브리핑실> 내부. 컨테이너 2동을 연결해 만든 건물이다.

그런데 참석자들 사이로 삼각대를 세워두고 동영상을 버젓이 찍는 사람이 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유가족측 사람으로 모든 참석자들을 감시하듯 촬영 중이라고 했다. 기자도 그의 카메라가 계속 주시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잘못하다가는 기관원으로 오인받겠다 싶어 등골이 오싹했다. 팽목항부터 바지선까지 늘 감시받는다는 느낌을 가진 것은 비단 기자뿐이 아니었다. 모든 잠수사들과 제복을 입은 모든 사람들이 여기서는 감시받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모두 말이 없었다. 인터뷰는 언감생심. 누가 쉽게 털어놓을까 싶었다.

설명회가 시작됐다. 개략적인 상황보고를 유가족과 낯이 익은 한 공무원이 설명하고 구체적인 작업 경과는 해경의 이춘재 경비안전국장이 직접 유가족들에게 보고 형식의 설명으로 진행해 갔다. 그는 유가족 설명회에 해경측 대변인겸 잠수수색 지휘관으로 1인 2역을 하는 셈이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海難(해난) 사고뿐 아니라 잠수 救難(구난)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유가족들에게 수중작업 현장은 물론이고 해상 상황 전반을 제대로 설명해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李 국장의 수색 작업 경과보고는 전날 회의석상에서 거론된 내용을 토씨 하나 빼지 않고 그대로 전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묘한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10명의 실종자 가족들 간에도 갈등이 있는 것이다.

층별 수색 상황을 설명하는 동안 어떤 유가족은 수색 방법에 불만을 표시했는데 다른 유가족들은 전혀 동의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 흔한 맞장구도 치지 않았다. 서로 자신들이 원하는 구역의 수색을 바라는 것이다. 수색 인력은 한정돼 있다. 반면 요구 지역은 다양하다. 이로 인해 예전에는 실종자 가족 간의 다툼도 종종 벌어졌다고 한다.

이날은 마지막 시신이 인양된 지 한 달이 된 시점이었다. 성한 사람도 만나기를 기다리며 한 달을 보냈다면 지칠 법할 것이다. 그런데 이승에 없을 사람의 육신이나마 찾아보려 기다리는 실종자 가족들의 심정은 매일 매일이 고문이리라. 작업경과 보고는 오늘도 여전히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로 끝나고 있으니 화를 내는 가족도 있었다.

한 실종자 가족이 질문을 했다. 그녀는 수색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더 심도 깊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게다가 4층 화장실 수색을 요구했다. 李 국장은 “그 비좁은 화장실을 우리가 두 번이나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없었잖습니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화장실 수색의 요구를 거두지 않았다. 게다가 로비 한 편의 자판기와 각종 가구들을 선체 밖으로 이동시키자는 요구도 했다.

李 국장은 물 속에서 그런 작업을 한다는 것이 至難(지난)한 일임을 설명했고, 그녀는 그래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맞섰다. 거추장스러운 커튼 같은 것들은 끌어다가 자판기를 덮어 씌워버리면 수색에 더 용이하지 않느냐고 했다. 李 국장이 다른 방안을 제시하면서 잠수사들이 좀더 수월한 쪽으로 수색방법을 설명해 가자 유가족인 그녀는 “그렇게 하면 발견할 수 있냐고요?”라고 반문했다. 그걸 누가 장담할 수 있으랴. 이 대목에서 李 국장은 말문이 막혔다.

두 사람 간에 언성이 높아져 갔지만 다른 유가족들은 먼 산 보듯 했다. 양측간의 논쟁을 객관적으로 들어보면 유가족들의 입장도 논리정연했고 설득력도 있었다. 그들의 주장에 반박할 만한 대목도 더러 나오는데 해경의 李 국장은 날선 반박을 피했다. 정작 힘들어 보이는 쪽은 해경의 李 국장이지 싶었다.

회의는 약 30여분 만에 끝났다. 기자는 다시 P정을 타고 임시 숙소가 마련된 해경 3009함으로 돌아가야 한다. 李 국장도 상황실이 그곳에 있으므로 같이 가기로 했다. 시동을 건 P정 앞에서 李 국장을 기다렸다. 무려 1시간 40분 동안. 李 국장은 실종자 가족 일부가 면담 요청을 하는 바람에 이들과 대화를 나누느라 늦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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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의 종합 상황실이 있는 목포 해경의 기함 3009함. 약 3,000 톤급인 이 배에서 기자도 며칠을 머물다 다른 배로 옮겨타곤 했었다. 



설득

해경 3009함(함장 이재두 경정)으로 돌아오는 길에 李 국장에게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한 것이냐고 물었더니 회의시간에 했던 말의 연장이라고 했다. 게다가 다른 가족이 합세해 서로 다른 요구를 하는 바람에 그 두 사람을 설득하느라 늦었다고 했다. 기자가 “유가족이면서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자, 李 국장은 이런 얘기를 해 주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그럴 만한 개인적인 사정이 있습디다. 아까 그 여성분은 실종자의 어머니가 아니고 이모 되는 분인데, 실종자 어머니가 지금 현재 암 수술을 받아야 한답니다. 그런데 자기 아이 시신이 나오지 않으면 본인도 수술을 안 받겠다며 버틴다는 겁니다. 그러니 속이 타겠지요.”

저마다 사연이 있고 사정이 있으나 수중 수색 대원들에게도 수압과 조류와 풍랑 같은 사정이 있다. 이럴 때 어느 쪽이 우선이어야 하는가라는 문제인 듯하다. 公私(공사) 구분이 체질에 배 있다면 공공질서가 우선이니 개인의 요구는 거두어지게 된다. 허나 이번 세월호 사건에서만은 이 관계가 뒤집어져 설득이 어려운 듯했다. 장시간 수색으로 인해 수중 수색도 어지간하면 할 수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들을 하는 것 같았다. 기자 역시 그 편에 속했다.

저녁 8시가 넘어서야 3009함으로 돌아온 기자는 상황실로 올라가 이춘재 국장과 마주 앉았다. 그리고 수중 수색에 참가시켜 달라는 요구를 했다. 기자의 잠수 취재 요구는 이런 논리였다.

“언론은 公的(공적)으로 사건 보도의 책임이 있는데, 현재 수중 상황을 제대로 취재해서 보도한 언론은 없었다. 들어갔다 온 잠수사들의 증언만이 전부다. 그런데 그들의 몇 마디 안되는 이야기만으로는 수중 환경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겠다. 솔직히 기자인 나도 하면 되는데 왜 어렵다고 미루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작업에 방해되지 않도록 수색 임무를 갖고 들어가 해경의 수색임무를 완수하면서 체험해 보겠다. 단 한 컷이라도 좋으니 세월호 선체의 실제 사진을 찍고도 싶다.”

그날 밤, 세 시간에 걸쳐 해경 경비안전국장과 그 참모진들을 설득했다. 기자의 잠수 능력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자격증을 보였고, 해경도 기자가 개인 장비를 갖고 왔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게다가 단순한 호기심으로 잠수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수색작업에 참가하겠다고 했다. 산업 잠수사들이 사용하는 장비의 경험이 있음도 설명했다. 최고 수심 65m의 경험도 이야기했다.

기자의 위험한 취재를 가로막는 해경의 마지막 방어선은 “만약 조갑제닷컴의 이동욱 기자가 잠수 취재한 것을 다른 언론들이 알게 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자기네들도 집어넣어 달라고 할 건데, 우리로서는 그걸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승락

원론적으로, 잠수 자격과 개인 장비가 있고 능력이 있는 언론인은 들어가서 취재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 기자의 반론이었다. 무조건 막는다는 것도 공공기관의 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했다. 더구나 수심 깊은 곳의 침몰선 수색작업이라면 취재 가능한 언론은 오히려 해경이 불러들여야 한다고 정면으로 설득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드디어 수중 수색에 참가해도 좋다는 허락을 얻었다. 조건은 취재 후 당분간은 보도를 연기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로써 잠수 취재를 할 수 있게 됐다. 현장의 잠수 책임자인 해경 잠수 A팀 박광호 경감이 가장 심한 難色(난색)을 표명했다. 특공대장인 그는 윗선에서 허락이 떨어지자 어쩔 수 없다는 듯 기자의 잠수 장비를 점검하자고 했다.

8월19일. 기자의 잠수가 승락된 날, ‘물때’는 조금을 하루 지나고 있었다. 조류가 약한 때였다. 지난 6월에 와서 본 바닷물보다 훨씬 맑아져 있었다. 年中(연중) 가장 물이 맑을 때라고 하지 않았던가. 수중 취재의 최적기였던 셈이다. 점심을 3009함 식당에서 해결한 뒤 장비를 챙긴 기자는 해경 단정을 타고 다이빙 스테이션 ‘현대 보령호’로 넘어갔다. 기자는 해경 A팀 소속 잠수사가 됐다. 해양연구소로부터 들어온 이날 停潮(정조) 시간은 오후 8시. 그러나 현장의 정조시간은 항상 한 시간 가량 어긋난다는 것이다. 해양연구소의 조류측정 지점이 현장과 離隔(이격)된 때문일 것이다.

오후 6시부터 다이빙 스테이션의 의료진이 자리하는 텐트에서 오늘 입수할 잠수사들의 혈압 체크가 있었다. 한계선은 수축기 140에 이완기 100. 여기에 기자는 자신이 없었다. 아침에 잰다면 가능할 혈압인데 하루 종일 땡볕 아래 이것저것 물어보러 배 위를 오갔으니 혈압은 틀림없이 높아져 있을 것이다. 더구나 숙소를 이 배에서 저 배로 옮겨 다니느라 혈압약을 며칠째 먹지 못하고 있었다. 첫 시험에서 기자는 160~100으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기자처럼 불합격 판정을 받은 민간 잠수사는 의료진에게 합격시켜 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신체검사는 엄격했다. 갑자기 해경들이 기자에게 안됐다는 눈빛을 보냈다. 현장에서 가장 책임이 큰 박광호 경감만 즐거워했다. 이럴 때는 그늘막으로 들어가 안정을 취하며 맥박수를 낮추는 방법뿐이었다. 기자는 이 방법으로 재차 측정에서 140에 100을 간신히 맞출 수 있었다. 이날 기자는 55세 나이로 최고령 다이버가 됐다. 쉬운 취재는 없는 법이다.<계속>

[ 2014-09-17, 08:5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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