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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 船首(선수) 끝단에서 내려다 본 '검은 낭떠러지'
매일 5억 이상을 쓰고, 조명탄만 200억 원어치를 쏜 세월호 潛水수색 현장을 가다 ⑦ / 30대 초반의 젊은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임무를 맡긴 채 누구도 이들의 수고를 고마워할 줄도 모른다. 低(저)체온증과 수압을 견뎌내면서 빛이 없는 통로를 더듬어 가도록 만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몰인정과 냉정함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海警(해경)을 속죄양으로 만들었다.

이동욱(조갑제닷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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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 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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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를 시작하는 이동욱 기자



메인 다이버가 줄을 깔면서 앞으로 이동했다. 비로소 임무가 생각났다. 새로 깔린 줄의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10m 정도 되는 거리에서 두 개의 랜턴 빛이 보였다. 우리 옆의  D팀이 입수해 작업지점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기자는 메인 다이버가 설치한 안내줄을 잡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다이빙 경력이 쌓이면 물 속에서 공기를 아껴 쓰는 방법을 어느 정도 터득한다. 기자도 중상급 수준은 된다. 하지만 평소에 요가를 하며 신체를 적응시킨 다이버에 비하면 기자의 기술은 거의 초급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래도, 남보다 적은 공기를 갖고 수중으로 들어온 이상 최대한 숨을 아껴야 했다. 물 속에서 공기를 아끼는 지름길은 쓸데없는 동작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빨리 움직일수록 공기소모량은 더 많아진다. 천천히, 필요한 동작만을 하면서 호흡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이 방법이 몸에 익혀지면 그대로 우주 遊泳(유영)을 하는 우주인의 동작과 닮아간다. 이런 이유로 우주인들의 훈련장이 다이빙 풀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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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클램프로 유실 방지망을 설치한 곳. 부피 큰 물체가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했다. 기자는 이곳의 C클램프를 다시 조이는 작업을 했다.



하얀 선체 바닥을 짚어가며 천천히 전진하다 보니 갑자기 큰 구멍 같은 곳이 나왔다. 그 속은 그야말로 검은 공간이었다. 그 위를 가로질러 설치된 유실 방지망이 나타났다. 그러니까 이곳이 깨진 유리창이 있던 곳이다. 저 컴컴한 공간 속에 단원고 학생들이 있었을 것이다. 잡념을 멀리한 채 유실 방지망을 고정시키는 네 개의 C 크램프를 찾았다. 창문 모서리마다 하나씩 클램프가 끼워져 있었고 긴 볼트가 돌려져 클램프를 고정시키고 있었다. 나사 홈마다 벌겋게 녹이 슬어가는 중이었다. 유실 방지망은 이 네 개의 클램프를 기둥 삼아 가로 세로로 줄을 쳐둔 것이다. 이 정도면 선체 내부의 시신이 밖으로 빠져 나갈 수는 없었다. 기자가 클램프 볼트를 하나씩 감아 보았다. 희한한 것이 세 번째 클램프의 볼트가 감기고 있었다는 점이다. 느슨해진 볼트가 기자의 작업에 의해 다시금 꽉 조여졌다. 두 번 감기를 했으니 거의 한 바퀴를 감은 셈이었다.

기자의 임무인 유실 방지망 점검은 이렇게 끝이 났다. 물 밖이었다면 어린애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물 속에서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 되고 있었다. 공기탱크와 연결된 게이지를 보니 135mb가 남았다. 아껴야 오래 머물 수 있었다. 임무를 마친 뒤 선체 외벽의 다음 창문으로 전진했다. 그곳엔 이미 노란색 공기호스가 들어가 있었다. D팀이 선체 내부로 들어간 것이다. 기자는 그곳을 살짝 넘어가야 했는데 이때부터 亂調(난조)를 보인다.

부력조끼에 공기를 주입해 두지 않았기에 기자의 몸은 강한 킥킹을 하지 않으면 가라앉는, 부력이 없는 상태였다. 강하게 물을 차고 올라서 깨진 유리창의 출입구 위로 지났어야 했는데 공기를 아낄 요량으로 기어가듯 출입구를 가로질렀다. 그때 안을 들여다보니 시커먼 우물 속에 잠수사가 작업을 위해 들어서 있는 게 보였다. 기포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그 속에서 메인 다이버와 연결된 호스를 꺾이지 않도록 잡고 있었다. 메인 다이버는 그보다 더 안쪽 어느 구석을 더듬어 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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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방지망을 고정시키는 C클램프. 볼트가 벌써 녹이 슬어간다.



기자의 상체가 완전히 공간을 가로질렀을 때 그만 기자의 다리 부분부터 선체 내부로 슬그머니 가라앉고 말았다. 문제는 기자의 두 발에 신겨진 오리발이 이 잠수사의 머리 위로 내려앉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만있다가는 좁은 통로에서 두 다이버가 당황한 채 몸을 격하게 움직이게 되고 그렇게 되면 호흡줄이 꼬이는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이 상황을 피하려면 기자가 숨을 깊이 들이마셔서 허파로 부력을 최대한 확보하고 오리발을 강하게 차면서 올라와야 했는데 그러자면 어쩔 수 없이 잠수사의 머리를 치게 된다. 사고는 나지 않더라도 난데없이 오리발로 머리를 얻어 맞은 다이버는 기분이 참 더러울 것이다. 또 한 번 미안한 일을 저질러야 했다. 킥을 하며 다리를 빼냈을 때 그 출입구에서 다이버가 머리를 밖으로 내밀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는 듯. 나는 그에게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미안하다는 수신호가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검은 낭떠러지 아래의 조타실

이제 다시 선체 위를 기어서 전진했다. 그때서야 비로소 기자의 위치가 4층 우현 선수쪽 유리창의 두 번째 지점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금 선체를 자세히 보았다. 세월호 선체의 외벽은 曲律(곡률)반경이 큰 곡면에 가까웠다. 123정의 구조대원이 기울어지는 세월호의 외부에서는 절대로 오를 수 없는 상태였다. 평평하다 해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기자가 있는 지점으로 항공 구조사가 눈길을 주었을 것인데, 절대로 접근할 수 없는 곳이었다. 수십 m나 되는 외벽이 평면도 아닌 곡면으로 휘어져 있으니 사람이 지나갈 곳이 아닌 것이다.

기자가 두 번째 창문으로 접근하는 중에 페어 다이버와 기자의 왼손목과 연결된 줄이 강하게 당겨졌다. 돌아보니 그와 기자 사이에 위에서 내려온 또 다른 공기호스가 가로지르고 있었다. 기자가 후진을 해서 조심스럽게 공기호스 위로 빠져 나왔다. 페어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게이지를 보니 110mb가 남았다. 머물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기자가 있는 위치에서 조금만 더 가면 세월호 4층의 정면 지점이 될 것이다. 그곳에 가면 조타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조금 움직여 나아가자 선체 한쪽에 가는 철근으로 엮은 난간이 보였다. 승객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난간은 아니었다고 생각될 만큼 철근은 가늘었다. 장식이었다. 그렇다면 이 지점은 4층과 5층 사이의 끝단을 의미한다. 사다리처럼 한 칸씩 잡고 전진하는데 그동안 여러 차례 작업하면서 남겨 둔 굵기와 색상이 서로 다른 안내줄들이 거미줄처럼 남아 있었다. 잘못하면 줄에 엉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어 조심했다. 다이버들을 위협하는 사고 중에는 漁網(어망)에 엉키는 일이 많다. 오죽하면 레저 다이빙에서조차 나이프를 필수 지참물로 설정하고 있을까. 하여간 수중에서 줄이란 줄은 전부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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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우현등. 평소에 녹색불을 켜고 다녔을 것이다. 그 옆으로 철판이 녹슬어 떨어지고 있다.


이곳을 지나면서 보니 선체 한편에 작은 원통 같은 것이 보였다. ‘舷燈(현등)’이었다. 모든 배들은 좌우현에 등을 켜게 돼 있다. 좌현은 적색등이며 우현은 녹색등이다. 기자가 본 현등은 마지막까지 녹색 불빛을 내보냈을 것이다. 기자는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갔다. 그리고 선체는 더 이상 연장되지 않은 채 끝이 나고 있었다. 4층 船首(선수) 끝단에 도착한 것이다.

 여기서 아래로 90도를 꺾어서 내려다보면 조타실이 보일 것이다. 기자는 아직도 상상을 하고 있었다. 희뿌연 창문들을 가지런히 드러낸 채 있을 조타실을. 확인은 해야 했다. 기자는 선체 끝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그 아래로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시커먼 낭떠러지가 펼쳐지고 있었다. 약하지만 아래서 위로 조류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랜턴을 비추니 갑판쪽에 설치된 자이로리피터가 뿌연 뻘을 뒤집어 쓴 채 횡으로 누워 있었다. 분명 자이로리피터가 보이면 우현 갑판이고 그 안쪽이 조타실일 것이다. 자이로리피터는 조타실 외부 갑판 좌우측에 설치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조타실 입구까지 가려면 최소한 수심 5m 이상은 더 내려가야만 했다. 남은 공기로 모험을 하기엔 무리가 따랐다. 그 아래로는 수심 40m가 넘는 곳에 바닥이 있을 것이다.

기자는 4층 船首(선수) 모퉁이를 붙잡은 채 그 아래로 펼쳐진 검은 낭떠러지를 내려다보았다. 호흡기를 물고 고른 숨으로 기포를 내뱉으며 생각해 보았다. 발견되지 않은 나머지 시신 10구를 찾기 위해서 의무감을 가진 해경과 해군 다이버들이 과연 목숨 걸고 저 아래로 계속 다녀와야 하는지에 대해 회의가 들었다. 30대 초반의 젊은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임무를 맡긴 채 누구도 이들의 수고를 고마워할 줄도 모른다. 저체온증과 수압을 견뎌내면서 빛이 없는 통로를 더듬어 가도록 만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몰인정과 냉정함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해경을 속죄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해경이니까 헛된 희생도 당연히 해야 하며, 세금이니까 무한정 써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반문하고 싶었다. 그렇게 주장하는 당신들은 어느 나라의 국민인가라고. 분노가 일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순간이었다. 공기는 상승하기로 약속한 만큼 남았다. 게이지 바늘이 100mb를 지나고 있었다. 페어 이경학 경장에게 엄지를 세웠다. 상승하자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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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 작업 중인 이동욱 기자(左)와 페어 다이버



21분간 잠수

페어 다이버는 메인 다이버에게 신호를 보냈다. 메인 다이버 양재석 경장이 하잠줄을 찾아 끌고 왔다. 그리고 그가 맨 위에, 기자가 두 번째로, 페어 다이버가 기자 아래로 선 채 서서히 상승을 시작했다. 부력이 없던 관계로 기자는 계속 오리발을 차며 하잠줄을 당겨 상승해야 했다. 수면 도착 시간은 10시47분. 21분간 잠수한 것이다. 

다이빙을 많이 해보면 입수할 때보다 출수할 때가 더 힘들다는 걸 안다. 태어날 때보다 이승을 하직할 때가 더 고통스러운 것일까? 기자가 수면에 도착했을 때 파도가 제법 일었다. 철제 사다리가 3m 높이의 바지선 위까지 45도 각도로 붙어 있었다. 저기를 장비를 멘 채 自力으로 올라야 한다. 40kg가 넘는 장비가 물 속에서는 무게를 느끼지 못하지만 막상 수면으로 나오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잠수를 하고 나면 수압에 의해 근육이 이완되는 편이다. 거기에 중량이 더해지면 진짜 무거움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이 상태로 사다리를 올라야 한다니….

일단 오리발을 벗어 위로 전해야 했다. 텐더들이 사다리 끝까지 내려와 오리발을 회수했다. 왼발을 벗어 전달했다. 이번엔 오른발을 벗었는데 파도가 쓸어버려 텐더와의 거리가 더 멀어졌다. 숨이 가빴다. 한 손으로는 줄을 잡고 있어야 휩쓸리지 않는다. 다른 한 손으로 오리발을 벗는 것도 숨을 차게 만드는데 파도 때문에 한 모금 물을 먹어야만 했다. 엄청나게 짜다는 느낌이 휙 지나갔다. 더 중요한 일이 물맛을 무시하게 만들었다. 다시 오리발 전달을 시도했다. 출렁거리는 물결이 텐더의 손과 오리발을 확 떼어 버렸다. 두 번째 실패. 겨우 세 번째야 오리발을 전해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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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에 도착한 직후 이동욱 기자. 가슴이 터질 듯 힘들었다.



이번에는 계단을 올라야 했다. 암벽 등반을 해온 기자가 40kg이 넘는 장비를 짊어지고 사다리를 오르는 일이 그렇게 힘들 줄 몰랐다. 한 칸 한 칸 발을 옮길 때마다 숨이 턱 턱 막혀 왔다. 갑판까지 대략 5m의 거리가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갑판에 오르자 비로소 수많은 얼굴들이 걱정을 하다 무사히 돌아온 기자를 보고 달려들었다. 그들은 기자를 벤치에 앉히고 장비를 탈착시켰다. 다시 한 번 미안했다. 만약, 종군 기자였다면 기자의 취재를 위해 현역군인들이 얼마나 희생하는 것일지 궁금해졌다. 좋은 취재가 기자를 영웅으로 만들지는 몰라도 그 기자의 취재를 도와준 현장의 군인과 경찰의 노고는 제대로 알려진 바 없었다. 이런 배경을 짐작하고 나니 기자가 큰 민폐를 끼친 것은 아닌지 회의감이 들었다.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은 정직한 기사를 쓰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진짜 英雄들

그 무거운 더블 탱크를 벗고 나니 갑자기 뒷골이 아파왔다. 참기 어려워 얼굴을 찡그리면서 나도 모르게 뒷목을 주물렀다. 잠수 후 어떤 이상이 생길까 싶어 노심초사한 표정으로 기자를 보던 이춘재 경비국장, 임근조 상황실장 그리고 박광호 팀장이 연신 괜찮은지를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잠수사가 “저체온으로 인한 두통입니다. 한두 시간쯤 지나면 사라져요”라고 설명해 주었다. 진짜 그의 말대로 이 두통은 두 시간 동안 내 뒷목에 머물다 사라졌다.
 
바지선에 도착해 장비를 다 벗고 나서 드는 감정은, 불철주야로 이곳에서 잠수 수색을 해 가는 모든 잠수사들을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너무나 고맙고 너무나 대견스러웠다. 그들은 누구를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마음도 별로 없었다. 해경을 해체해도 그저 순순히 받아들이며 속으로만 눈물을 삼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저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가라 하면 들어가고, 시신을 찾아오라 하면 시신을 안고 올라오는 黙言(묵언)의 수행자 같았다. 이들의 넓은 마음이 존경스러웠다. 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영웅들이었다. 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이 키운 충무공의 후예들이었다. 기자인 내가 이들과 함께 잠수 수색을 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잠수복을 입은 채  해경 지휘부가 있는 천막으로 자리를 이동하는 데 누군가가 뒤에서 “진짜 기자들 직업 정신 하나는 알아줄 만하다”고 했다.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 말 자체가 미안함을 느끼게 했다. 기자가 부끄러운 시대인 모양이다. ●(끝)

 

[ 2014-09-19, 11:2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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