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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벌겋게 충혈되는’ 글을 만나기까지
'海警의 ‘亂中日記(난중일기)’-"우리 人的(인적)사항이 다 나가는 거 아닙니까?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지?”

이동욱(조갑제닷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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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의 일기,메모를 구합니다!

기자가 潛水(잠수)를 한 다음날인 8월20일 오전. 풍랑 때문에 바지선에서의 잠수 작업이 없었다. 3012함 식당에서 海警(해경) 잠수대원들과 식사를 하며 어제 내가 잠수했던 바다 속을 이야기했다. 이미 나의 잠수 수색 참가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던 대원들이 다시 한 번 감탄사를 내뱉었다. 비로소 이들이 나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러분들의 일기와 메모를 구합니다”고 말했다. 수저질을 멈추고 모두가 내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나는 즉흥 연설을 했다.

“목숨 걸고 잠수 수색을 하는 여러분들이 제일 존경하는 인물은 누굽니까? 李舜臣(이순신) 장군이지요? 만약, 그 분이 일기를 쓰지 않고, 元均(원균)과 宣祖(선조)가 일기를 썼더라면, 그래서 원균의 亂中日記(난중일기)가 남았더라면 여러분들은 과연 이순신 장군이 위대한 인물이었는지 알 수 있었을까요?

이순신은 위대한 인물이 아니라 의금부에서 문초한 대로, 원균이 모함한 대로 임금의 명령을 거역하고 자만심에 찬 몹쓸 인물로 역사에 남았을 겁니다. 지금 이 시대의 원균은 언론과 방송입니다. 그들이 일기를 써 가는 중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어떤 심정인지 저는 조금 알고 있습니다. 언론과 방송에 대해 몹시 화가 나겠지요. 진실이 전해지지 않으니까요. 여러분이 화만 내면서 이 시간을 보내고 나면 기록에 남는 것은 언론과 방송의 보도 내용뿐입니다. 시간이라는 潮流(조류)에 그런 거짓 기록이 미래로 떠내려가기 전에 진실을 기록해서 후세들에게 남겨줘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아이들이 우리 아빠가 그때 옳은 일을 한 사람이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문제가 안 됩니다. 제가 얼마든지 바른 문장으로 고쳐 드리겠습니다. 사실을 기록한 메모나 일기가 있는 분은 저에게 부탁드립니다. 해경이 겪은 난중일기를 국민에게, 여러분의 아이들에게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글을 못 써도 됩니까?”

언뜻 모두가 공감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공감대가 이내 물거품처럼 꺼져갔다.

“아, 나는 하나도 안 썼는데…”
“대충 쓴 건 있지만 도저히 남한테 보여줄 게 아니라서…”
“나는 원래 글을 못 쓰니 해당 사항 없음입니다.”

부정적인 결론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런데 머리를 짧게 깎은 한 대원이 쭈뼛거리며 한 손을 들었다. 할 말이 있는 것이다.

“글을 못 써도 됩니까?”
“글을 못 쓴다는 걸 창피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정확하게만 기록하면 그게 잘 쓴 글입니다. 문법이나 맞춤법 같은 것은 제가 도와드리면 됩니다.”

이번에는 다른 친구가 손을 들더니 이런 질문을 던졌다.
“우리 人的(인적)사항이 다 나가는 거 아닙니까?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지?”

정답을 말할 자신이 없는 질문이었지만 충분히 안심시켜야 했다.

“여러분의 솔직한 기록을 공개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해경이 침몰중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월호처럼 해경이 해체되어 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겁니다. 침몰중인 해경을 인양하려면 진실의 사슬로 묶어서 국민의 여론으로 당겨내야 합니다.

이런 일을 하다가 재수가 없으면 인사상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저 위에는 손바닥에 손금도 없는 사람들이 제법 많지요? 해경이 이 지경이 돼도 해경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로비를 하고, 청탁을 하고, 자기 윗선에서 잘못된 결정을 해도 눈치나 보며 출세 길만 노리는 자들이 제법 많을 겁니다. 만약 그 사람들이 해경의 진실을 뒤덮는 데 성공한다면 여러분들 중 누군가는 일기를 공개해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저도 그 어떤 손실을 감수해야 할 겁니다.

세월이 흘러서 훗날 여러분의 자식들이 그 일기를 보면 누구를 존경하게 될까요? 여러분의 일기를, 메모를 공개한다는 것은 여러분 자신의 이기심이 아니라 해경을, 대한민국을 위한다는 利他心(이타심)에서 시작하는 행동이란 걸 생각합시다.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면 하지 마시고, 옳은 일이라면, 저에게 연락을 주십시오. 침몰중인 해경을 引揚(인양)하려면 용기라는 연료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잠수 대원들이라 기자의 즉흥연설 중에 썼던 침몰, 인양, 조류 같은 단어에 빠르게 반응했다. 그후 기자는 세 명의 대원과 만날 수 있었다. 그들 각자의 휴식 시간에 따라 3012함 휴게실이나 텅 빈 강의실 같은 곳을 찾아다니며, 때로는 배를 바꿔 3009함에서 그들의 기록문을 훑었다. 읽어 가는 중에 기자의 눈이 벌겋게 충혈되는 내용들이 나오곤 했다.

그들의 삶과 생각, 그들의 마음을 읽으며 우리 사회가 그들을 너무나 무심하게 대해 왔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기자는 세월호 침몰 해역에서 일하는 잠수대원들의 진실을 인양해서 <海警의 난중일기>라는 제목으로 독자 여러분께 전하고자 한다.


[ 2014-09-20, 19:3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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