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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방…주황색 라이프 자켓의 희생자가 다가왔다
산업잠수사 출신 海警 특공대원의 '亂中日記'(上) / 몇 분이 흘렀을까. 갑자기 천정으로 버블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다. 희생자를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버블이 빨리 올라오는 이유는 다이버가 힘을 많이 쓰게 돼 호흡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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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제주지방 해양경찰청 특공대 순경·35세)



2014년 4월16일=13:00경 사고해역에 도착

오늘 하루도 즐거운 마음으로 회사에 출근. TV 방송에서 갑자기 인천에서 출항한 세월호가 진도 부근에서 침몰중이라는 뉴스 속보를 보고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總員(총원) 비상으로 인지하고 있던 중에 지방청에서 비상출동 태세 유지라는 말과 함께 버스에 장비를 탑재하고 대기중. 명령이 떨어져 오전 09:30경에 전용부두에서 P정을 이용. 제주해경 특공대, 제주구조대, 서귀포 구조대가 사고해역으로 이동. 13:00경 사고해역에 도착해 보니 세월호의 90%가 침몰된 상황이며 먼저 온 전국 구조대 및 특공대, 민간 자율어선 등 현장에서 고군분투중이며 한 명이라도 더 찾으려고 노력중. 그러나 潮流(조류)가 매우 강해 제대로 진입을 시도하지 못하는 상황임.

3009함으로 집결. 전국 각 특공대원 구조대원 등 약 120명 집결해 회의를 거쳐 향후 수색 방향에 대해 토의. 잠수 인원이 너무 많아 휴식 공간이 부족. 각 함정별로 편승 후 교대로 해상수색에 임하기로 함.

장비는 많지만 이럴 때는 ‘후카’라는 표면공급식 잠수장비를 큰 바지선에 탑재해 현장에 오면 넓은 공간이 있으므로 작업이 진행될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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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9함 全景



4월17일=강한 유속으로 잠수수색을 못해

함정별 분산 배치 및 해상수색. 진도 현장의 기상은 수색하기 좋은 조건이지만 조석표에 의하면 大潮期(대조기)이기 때문에 바닷물의 강한 유속으로 인해 잠수수색을 하지 못하는 실정임. 停潮(정조) 타임을 이용해 수색에 임하지만 시간이 짧은 관계로 수색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함. 그래도 대원들은 세월호 선체에 하잠줄을 연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

 

4월18일=“제발 먼저 나서지 말고 뒤에서만 지켜보거라”

오전. 전국에 산재한 해경구조대 및 해경 특공대가 3009함에 집결 후 간부회의를 거쳐 잠수요원을 선발함. 나도 사회에 있을 때 산업잠수 현장 경험을 살려서 지원했고 선발됨. 나를 포함해 선발된 70여명의 잠수대원들은 3011함에 편승되어 수색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주었음.

전국에서 선발된 잠수요원들이 3011함 회의실에 집결해 먼저 세월호 수색방향에 관한 브리핑을 듣고 세월호 도면을 보면서 1차적으로 해야 할 임무를 부여받았음. 많이 설레기도 하고 혼자만의 생각으로 내가 작업을 진행하면 현장에서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을 머리 속으로 그리면서 옛날 작업현장을 생각해본다.

2008년 9월 가을쯤 知人(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부산 태종대 부근에서 예인선이 항해 중 암초와 충돌, 좌초. 인명사고 없음. 수심 35m. 시야는 수중에서 50cm 정도. 인양을 해야 되는 상황.

그날 바로 개인장비를 지참해서 현장 출발. 늦은 오후쯤 부산 태종대 현장 도착. 먼저 예인선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 후카 장비를 이용. 수중에서 수색줄로 탐색. 예인선 위치를 파악해 부이 연결줄을 설치했음. 그리고 인양을 위해 먼저 船首(선수)부근에 체인을 연결할 위치 파악.

그런데 예인선 선수 부근이 침몰하면서 진흙에 박혀있는 상황이며 그래서 에어 리프팅을 이용해서 선수 부근을 노출시켜야 되는 상황으로 판단됨. 에어 리프팅은 공기를 이용해 물과 진흙을 빨아 당기는 방식. 이 작업만 해도 며칠 정도 소요될 예정. 수심이 35m. 그런데 수심 30m에서도 작업을 많이 하다 보면 질소마취가 올 수 있다. 질소마취란 내 몸이 술에 취한 느낌이며 사고력과 판단력이 흐려지는 현상으로 보면 된다. 잘못하면 인명사고 및 대형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조심해야 된다.

고생해서 작업한 결과 船首(선수) 부근 체인 들어갈 공간 확보. 그리고 해상크레인을 이용, 예인선 앞뒤 부근 체인을 이용해 예인선을 浮上(부상)시킴. 그리고 배수작업 및 선체 바닥 부근 파공난 부분을 파악해 더 이상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조치함. 또 다른 예인선을 이용해 침몰한 예인선을 부산 연안부두로 예인함. 작업한 다이버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이틀 밤낮 없이 작업한 결과 사고 없이 좋은 결과를 이루었다.

대한민국에서 0.0001%밖에 되지 않는 산업 다이버들. 남들은 우리를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자부심 하나로 일을 해왔다. 세월호 사건만 보더라도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를 알기에 가족들과 知人(지인)들로부터 연락을 많이 받았다. 모두 다 이렇게 말했다. “제발 먼저 나서지 말고 뒤에서만 지켜보거라”하시며 신신당부하셨다.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그들의 걱정과 달리 앞장서고 있었다. 그러면서 긴장도 되었다.

거제 삼성 및 대우 해상크레인이 도착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크레인이다. 사고해역에 배치가 되었다. 정말 크기는 크다.


4월19일=쉴 공간의 부족

진도 현장해역 주위는 전국에서 모여든 民·官·軍 잠수세력들이 수색을 벌이는 중이고 희망의 실마리를 놓지 않고 선체 내에 에어포켓이 있다고 가정하에 집중수색을 벌이고 있었다. 4월이지만 수온은 차가웠다. 11도 정도라고 한다.

현장에 민간 다이버 및 금호수중 바지선과 장비들이 하나씩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급하게 구하다 보니 금호수중의 작은 바지선이었다. 공간이 부족했다. 다이버들이 작업을 하고 올라와도 쉴 공간이 없었다. 각자 조금이라도 앉을 공간이 있으면 크레인이나 바지선 하우스 마린 뒤쪽 공간에 쪼그려 앉아 쉬었다. 날씨도 춥고 배가 고프면 컵라면에 위안을 삼았다. 서해청에 소속된 내 동기는 “그래도 이렇게라도 쉴 공간이 조금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얘기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위안이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의지하면서 밤을 지새웠다.

금호수중 바지 관계자가 “조금만 있으면 더 큰 바지선이 온다. 거기서는 먹고 자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조금만 참으라”고 했다. 작은 것에 위안을 삼으며 정말 열악한 상황에서도 대원들은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4월22일=불 끄고 술래잡기 하듯

나의 첫 다이빙이다. 내 앞 조가 작업을 통해 몇 개의 유리창을 제거해 놓았다. 작업하기 전 감독관으로부터 해야 할 임무를 부여 받고 장비를 점검했다. 먼저 드라이 슈트를 입고 후카 장비점검 후 몸에 착용. 마지막으로 보조탱크 착용. 혹시나 물 속에서 사고가 발생시 나의 생명을 책임질 수 있는 장비이므로 한 번 더 확인. 이제 물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만 남았다.

메인 다이버와 마지막으로 사인을 주고받고 入水(입수). 하잠줄을 잡고 서서히 내려갔다. 내려갈수록 몸 속으로 춥고 서늘한 반응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조류가 강하고 시야는 어두운 방에서 불 끄고 술래잡기하는 것처럼 깜깜했다. 선체 바닥 수심은 25m. 메인 다이버를 따라 4층으로 가이드 라인을 잡고 접근해 갔다. 창문을 지나는 동안 창문 안쪽을 보니 컴컴하고 무언가 고요한 정적을 느낄 정도로 조용했다. 창문 4개 정도를 지나는데 순간 내 앞의 메인 다이버가 멈추었다. 그리고 창문으로 들어가자는 수신호를 보내왔다. 내가 오케이 사인을 보내면서 그가 먼저 들어가고 내가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視野(시야)는 보이지 않지만 라이트를 비추니 온갖 부유물들이 떠 있었다. 메트리스, 담요, 컵라면, 슬리퍼, 비닐봉지 등등이 천장을 향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이 어딘가에 희생자들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앞장서 들어간 메인 다이버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몇 분이 흘렀을까. 갑자기 천정으로 버블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다. 희생자를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버블이 빨리 올라오는 이유는 다이버가 힘을 많이 쓰게 돼 호흡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경험이 제법 있는 나로서는 이런 걸 빨리 알아 볼 수 있었다.

잠시 후 주황색 라이프 자켓이 보이기 시작하고 희생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사망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얼굴은 창백해 보였다. 인계받는 순간, 사람이 아니라 마네킹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내 가족을 수습하는 마음가짐으로 희생자를 꼭 껴안고 하잠줄이 있는 곳으로 가니 스쿠버 다이버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희생자를 인계했다. 상승 후 바지에서 동료들로부터 고생하고 수고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기분도 좋았고. 오늘 하루도 뜻 깊은 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011함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이는 “아빠 빨리 보고 싶다. 언제 와”라고 하고 집사람은 “당신이 잘못될까봐 걱정 돼 잠을 못 자고 뜬 눈으로 밤을 샌다”고 했다. 마음이 짠했다.

나로서는 가족이 우선이지만 한편으로는 국가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앞에 있는 현실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뿐이고 희생자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빨리 찾아야겠다는 마음뿐이다.

해군, 민간 다이버, 해경들이 각자 맡은 구역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니 희생자 수습도 탄력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작업 중에 특수구조단 직원이 시야가 좋지 않은 작업조건 속에서 이마가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큰 상처가 아니라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4월23일=의사 선생님의 사명감 

이번에 큰 바지선과 구조장비 게다가 챔버까지 탑재한 ‘언딘 바지선 리베로’가 현장에 들어오고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바지선의 크기는 웅장했다. 현장에서 교대해 보니 바지선 크기와 실내외가 청결하고 좋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먼저 다이버들이 먹고 자고 쉴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고 챔버를 운영하고 있으며 운영자도 강원도 폴리텍 대학 챔버 운영을 담당하는 교수가 직접 현장에 투입되어 다이버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계셔서 다이버들도 안심하고 작업을 계속 진행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 이처럼 다이버들만을 위한 전용 바지가 있는지 몰랐다.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지선이 크다 보니 컨테이너 박스를 이용해 쉴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만들어 두었다. 이제 작업을 하고 올라와도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다이버들의 건강을 책임질 수 있는 의사선생님은 땅에서만 진료하다가 바다 한 가운데 사고해역에서 다이버들을 진료하니 남다르다고 했다. 팽목항에서 배를 타고 오는 동안 멀미가 너무나 심해 진료도 보기 전에 힘들어 하는 의사선생님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자기 생업까지 뿌리치고 봉사하러 와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괜찮으세요”라고 말을 건네니 웃으면 “괜찮아요”라고 한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몸은 안 좋아 보였다. 그래도 웃으면서 “환자를 진료할 때는 멀미도 안 해요”라고 하니 직업정신은 어쩔 수 없나보다 생각했다.

 

4월24일=열리지 않는 門

小潮期(소조기)에 접어들면서 작업 속도는 더욱 빨랐다. 야간에는 조명탄이 계속해서 불빛을 비추어 주고 파도는 잔잔해서 더욱 긴장감이 높았다. 거의 폭풍 전야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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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작업을 위해 조명탄을 쏘아 올리다.


다이버들이 후카라는 장비를 많이 착용해 보지 않아서 내가 하나하나씩 가르쳐 주며 작업을 진행해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물 속에서 라이트가 꺼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어떻게 할지 몰라 메인 다이버는 페어(짝)를 놓치는 상황에 이르렀다. 메인 다이버는 페어를 찾으려고 계속 헤매고 페어인 보조 다이버는 겁이 나서 먼저 올라와 버렸다. 다행히 아무 일이 없었다.

이번에는 내가 새벽조에 편승되어 현장에 투입되었다. 이슬비가 계속 내렸다. 작업현장에서는 왠지 모르게 어수선한 기운이 감돌았다. 민간 다이버들은 반복 잠수로 인한 피로 누적 때문에 새벽에는 작업을 진행하지 않았다. 그래서 해경 단독으로 다이빙을 진행했다. 먼저 도면을 확인하고 임무를 배정받았다. 3층 올라오는 입구 문을 개방하는 것. 이곳은 사람들이 밖에서 계단으로 올라와 배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이 문은 전원 승선 후 유압을 이용해서 문을 열고 닫게 돼 있다. 그래서 어지간해서는 열리지 않는 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해서 장비를 착용하고 해치 문으로 내려가 정밀 수색을 했다.

막상 들어가 보니 문은 그 어떤 장비를 이용해도 열어지지 않는 문이었다. 정말로 답답한 노릇이었다. 기분도 어수선할 때는 작업을 진행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싶다. 잘못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계속)

 

<정리=이동욱 기자>
 

[ 2014-09-21, 21:1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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