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屍身(시신) 모습…꼭 기억해 달라는 소리 없는 외침 같아
해경 崔鎬植 경위의 亂中(난중)일기(2)어떤 희생자는 자기의 신분을 죽어서라도 찾아달라는 뜻인지 끝까지 가방을 꼭 쥐고 있었다. 또 남녀가 서로 의지한 채 구명조끼 끈으로 묶은 채 발견된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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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鎬植(최호식·포항청 122구조대 2팀장·42세)



4월21일=언론사들도 海警(해경)을 못 죽여 안달

다이빙벨을 주장하는 이종인 알파잠수 기술공사와 그걸 반대하는 황대식 해양구조협회 본부장간의 대립이 육지에서 계속됐다. 그런 와중에 바다에 떠 있는 우리는 주어진 작업을 계속해 갔다. 나는 대원 2명과 함께 船首(선수) 진입로의 안내줄 설치를 위해 다이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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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를 앞둔 해경 요원들


 

停潮(정조)타임이라 조류가 없는 시각이었다. 위에서 육안으로 봤을 땐 흐름이 없더니 보트로 옮겨 타니까 금방 1.2노트 정도로 느껴졌다. 20m 정도 되는 안내줄을 자루에 담아 메고 수중으로 잠수했다. 그런데 내 어깨에 걸린 자루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지더니 20m 줄이 20kg의 무게로 변한 듯했다. 빠른 유속으로 하잠줄이 떨리고 있었다. 내 짝 두 명과 나를 연결한 줄도 조류에 저항하면서 팽팽하게 떨리고 있었다. 게다가 내 어깨에 걸친 안내줄 자루는 강풍에 우산 날리듯 이리저리 흔들렸다. 이런 저항으로 1m 진행하는 데 5분이나 걸린 듯했다.

세월호 선체에 도착했을 땐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가 됐다. 아직 작업을 시작도 안 했는데…거기서 다시 1m를 진행하려 해도 좀처럼 나아가질 않는다. 꼭 고무줄을 거꾸로 잡아당기는 것 같다. 거기서 작업을 시작했는데 어떻게 끝냈는지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기억이 안 난다. 하여간 안내줄을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거의 천신만고 끝에 겨우 해낸 것 같다.

상승을 해야 했다. 대원들간 신호를 주고받으며 수상으로 올라가는데 조류가 이번에는 반대로 흐른다. 하강조류가 덮친 것이다. 몸을 빙글빙글 감듯이 돌면서 상승해야 했다. 그러자니 금새 빈혈 환자처럼 어지럽다. 게다가 과호흡을 이미 시작한지라 호흡을 아무리 크게 해도 공기를 마시는 것 같지가 않다. 마치 이물질이 호흡기를 막아놓은 듯해서 패닉상태가 올 지경이었다. 수중에선 잠깐이 영원한 잠이 될 수 있다. 그 순간은 모든 동작을 멈추고 생각을 집중해야 한다. 나는 동작을 멈췄다. 본능적으로 하잠줄을 두 다리로 감고 있었다. 정신을 가다듬었다. 두 다리로 하잠줄을 감은 채 심호흡을 크게 천천히 하면서 서서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내 모습을 본다면 마치 동남아 원시 부족들이 야자수 나무 타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 날 저녁엔 ‘뉴스타파’라는 방송에서 사고 당일 해경과 해군이 투입한 인원은 16명에 불과하다고 떠들고 있었다. 수많은 언론사들도 해경을 못 죽여 안달하는 중이었다. 현장에선 최악의 작업 환경에서 싸우고 있는 줄도 모른 채로…


4월22일=사람은 어려움에 닥쳤을 때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세월호는 수심 27m~46m 사이에 가라앉아 있지만 해경 대원들과 민간잠수사, 해군들이 각각 가이드 라인인 하잠줄 5개를 간신히 설치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언론들은 해경이 지금까지 사망자만 수습했다고 떠들고 있다. 기도 안 찬다. 도대체 우리 해경 대변인은 뭐하는지 모르겠다.

여러 회의를 거듭한 결과 세월호 침몰해역의 잠수작업에는 스쿠버 잠수 방식이 한계가 있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水中 체류시간이 상대적으로 시간이 짦지만 수중에서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는 스쿠버 방식으로는 그만큼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대원들이 차칫 조그만 실수로, 이를테면 유속으로 수경이 벗겨진다든지, 안내줄을 놓친다던지, 칠흑같은 암흑 속에 상승위치를 찾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부족한 공기 때문에, 수색작업이 소극적으로 변하고 자칫 사망으로 갈 수 있는 의견도 팽배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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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오늘 회의 결과, 앞으로 세월호 내부 수색은 머구리 방식인 표면공급식 잠수방식으로 바뀐다. 잠수시간이 한결 길어져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긴 하지만 공기 공급 호스인 생명선이 꼬이거나 절단될 위험이 있어 우리 중에는 누구도 선뜻 나서려 하지 않는다. 수중 체류시간이 길수록 잠수병에 걸릴 위험도 늘어난다. 머구리 방식은 장시간의 심해작업을 위해 고안된 것이라 救助(구조)가 아닌 救難(구난)작업 전문가들이 쓰는 방식이다. 우리 같은 구조대원들은 심해작업을 하지 않는다. 수면에 떠 있는 사람이나 얕은 물 속의 사람을 구하는 구조 작업에는 스쿠버가 제격이다. 머구리 방식의 생존자 구조율은 매우 희박하고 선체인양 등 산업잠수에 유용해서 지금은 우리 해경에도 교육 프로그램이 全無(전무)한 상태였다.

무엇보다 이런 구난 작업에 경험 있는 해경 대원은 입사 전 산업잠수를 해 온 몇몇 뿐이어서 수많은 잠수인력이 있지만 전원 투입이 어렵다. 게다가 강제로 지시할 일도 아니어서 자진 지원을 받게 됐다. 이 때문에 대원들 간에 갈등이 생겨났다.

사람은 어려운 시기를 닥쳤을 때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우리 직장인 해경이 어려움에 빠진 이 시기에 가족들 때문에 몸을 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려움 때문에 선뜻 손들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누가 대신 지원해서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가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겉으론 큰소리치지만 속으론 어떤 변명을 대며 임무를 팽개치는 사람 등등…검증되지 않은 장비와 원리원칙을 지키려는 사람들로 인해 한때 대원들 간에 갈등과 충돌이 심각했다. 심지어 선·후배도 없을 정도로…


4월23일=머구리 방식에 두려움 느껴

머구리 방식(표면공급식:일명 후카)이 스쿠바 방식보단 현 수중환경엔 적합하지만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나로선 조금은 두려웠다. 한편으로 보면 충분한 공기 공급으로 마음이 놓였지만 다른 한편으론 장비에 대한 신뢰가 가지 않으니 내 몸을 농약호스로 만든 저 낡은 장비에 의존해야 하는 사실이 두려웠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울고 있을 희생자 가족과 차디찬 바다 속에 시신으로 남아있을 학생들의 처절함에 안타까웠고 한시가 급했다. 국가의 의무를 다해야 할 우리로서는 희생보다 더한 무언가가 필요한 시기였다. 우리는 위험한 영웅이 되어야만 한다.


4월24일=희생자 3구 수습

머구리 방식을 한 번도 착용해보지 않았기에 민간잠수사의 조언에 따라 꼭 정글의 원시부족처럼 장비를 두르고 웨이트 몇 개로 중성부력을 맞춘다. 언젠가 극한직업에 북한 공작원 출신으로 귀순한 사람이 속초에서 이 장비로 문어 등 해산물을 채취하는 걸 봤다. 수중건설 작업에 투입되는 장면도 보았다. 이렇게 내가 착용하고 보니 생소함으로 인해 새로운 직업을 가진 것 같고 여기서 뭐하는 건가 하는 혼란이 온다. 이 모든 혼란은 내 상상력의 문제다. 어두운 상념을 접고 나의 임무를 완수하는데 전념하자고 마음을 가다듬고 흙탕물 위로 몸을 던진다.

민간잠수사와 페어가 돼 하잠줄을 잡고 내려갔다. 통로 부근에서 안내줄을 잡고 통로 속으로 들어간 민간 다이버가 한참 뒤 나를 잡더니 무언가를 나에게 밀착시킨다. 순간 서늘했다. 암흑 속인 눈앞에 흑백이 아닌 선홍색 무늬가 보였기 때문이다. 살아있나 의구심이 들 정도로 선명하다. 체크남방에 요사이 유행하는 형광신발이다. 물 속에선 되도록 屍身(시신) 상태를 안 보려 해도 이런 건 또 왜 이렇게 잘 보이는지…꼭 기억해 달라는 소리 없는 외침 같다.

이날 희생자 3具(구)를 수습했는데 죽음을 준비한 자는 눈을 감는다고 한다. 모두 눈을 감은 듯했다. 침몰 당시 객실로 서서히 물이 차올랐을까 혼자 상상해본다. 울화가 치밀지만 좋은 곳으로 데려갈 모양으로 허리를 부둥켜 안고 위쪽에서 내려오는 스쿠버 다이버에게 인계한다. 부디 따뜻한 곳으로 가시길…


4월26일=원초적인 작업이 최선

美해군 구조함이 도착하고 그 전에 다관절 크랩스터와 美 해군의 탐색장비 ROV를 투입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린 기대 반 의심 반으로 선진국 수색작업에 기대를 건다. 하지만 ROV를 보고 대원들은 목욕탕에서 노는 아기들 장난감 같다는 둥 믿지 못할 말투다. 그런데 정말 며칠 후에 아무런 성과도 없이 철수해 버렸다. 주위에선 이런 수중 환경에선 원초적인 작업이 최선이라고들 한다. 직접 위험을 무릅쓰고 몸으로 들어가는 식이 최고란 얘기다. 때로는 무식한 한국 사람이 적격인 모양이다. 우리는 지금 세계 기록을 세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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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水하는 잠수 요원의 모습



4월30일=여학생 희생자의 팔

사리 기간이지만 짧은 정조타임에 다시 수중작업을 실시한다. 깨진 세월호 창문에 걸터앉는 순간 수많은 학생들이 창문을 때렸을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그러면서 학생들의 마지막 순간들이 오버랩된다. 나의 시야가 遠近(원근)을 왔다갔다 했다. 눈앞에 작은 멸치떼가 내 얼굴을 때리고 지나가는 동안 수많은 상념들이 교차해 갔다. 잠깐이지만 잡념들이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나 스스로 희생자의 영혼을 달래는 기도를 하면서 감정을 전환시킨 뒤 수색 작업을 계속했다.

먼저 통로로 들어간 민간 다이버가 나의 손을 잡고 어딘가를 잡으라고 밀어준다. 처음엔 조류와 부유물 때문에 느끼지 못하다 재차 내 손을 흔들며 다시 밀어 주길래 잡아보니 물컹거렸다. 가까이 보니 희생자의 팔이었다. 검은 머리칼이 눈앞에서 커튼처럼 움직이는 걸 보니 여학생 같았다. 호흡이 가빠졌다. 긴장감이 극도로 치솟았다. 정신을 차린 뒤 조류 속에 시신을 놓치지 않도록 뒤에서 복부를 안고 移送(이송)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잡념이 스친다. 나도 딸이 있어 더욱 가슴이 무거워진다. 얼마 전만 해도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것이고 예쁜 옷과 경치를 보며 즐거웠을 것이며 부모와 잘 다녀올 거라고 인사를 하고 특별하지도 않은데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했을 아이였을 것이다. 아기일 땐 부모에게 한없이 행복을 준 아이일 거란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점차 어디서 꼭 만난 사람처럼 친근감이 느껴졌다. 그런 마음이 들면서부터 팔이 축 늘어져 흔들리는 시신을 안고 수면 위로 오르는 일이 더욱 힘들다. 천신만고 끝에 수면 가까이 도착해서야 시신을 스쿠버 다이버에게 전달해 주기를 반복한다.


4월27일=자신을 바꿔야 모든 것이 새롭더라

지난 21일 박근혜 대통령이 선장 이준석 선장과 일부 승무원의 행동을 살인과 같은 형태라고 말한 것에 대해 영국의 언론과 윌 스트리스트 저널 등 외신에서는 ‘살인은 아니다, 그것이 옳았나?’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우리 정치권에서는 ‘정부가 어린양을 죽였다’, ‘아니다’면서 서로 책임 轉嫁(전가)에 바쁘다. 그 싸움통에 애꿎은 우리 해경이 죽어간다. 어떤 사람이 말하던 게 기억난다. 20대엔 나라를 바꾸려고 칼을 들었고, 30대엔 마누라를 바꾸려고 입씨름을 하고, 40대엔 자식을 바꾸려고 매를 들었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50이 되어서야 깨달은 것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자신을 바꿔야 모든 것이 새롭더라는 것이다.


4월28일=내가 123艇(정) 요원이었다면?

해경의 침몰 당시 영상과 세월호에서 마지막 나왔다는 카카오톡이 공개되었다. 눈앞에서 절규가 들리고 정말 믿기지 못할 일이다. 해경 123艇(정)은 거대한 산 같은 배가 기울어지고 높은 기울기와 물이 이양되는 소리 등으로 두렵고 빨려 들어갈까 염려돼 진입시도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화면으로만 보면 전복 속도가 늦은 것처럼 보여서 대원들 가운데는 ‘왜, 왜’ 하며 한숨 쉬는 경우가 제법 있는 것 같다. 그들 사이에 앉아 과연 나와 우리 대원들이 그 123정 요원들이었다면 우리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가 왜 탈출하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위기의식을 못 느끼고 배 안에 많은 학생들이 남았다는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채 자기 목숨 챙기기에 바빴을까 궁금했다. 이것이 대한민국 국민성인가? 진정 비인간적인 주입식 교육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됐다. 이기심을 강화시키는 교육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콩 심은 데 콩 난다고 했는데 우리가 심은 것이 무엇인지 세월호가 말해주는 것 같다.


4월30일=다이빙 벨

작업 바지선에 와보니 아침부터 이종인 대표의 다이빙벨 설치 작업을 위해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다이빙 벨을 연결한 버팀줄이 파도로 인해 유동이 좀 심하다. 겉에서 보는 이도 위태롭게 느껴지는데 과연 물속에서는 안전할 수 있을까? 혹시 끊어져 옆에서 하던 다른 작업에 지장을 주고 수색작업이 지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다가 결국 공기 주입 호스가 운용와이어에 눌려 터져서 물에 투입된 지 28분 만에 건져졌다. 내일 다시 진행하기로 했다 한다. 주위에선 본질을 흐리고 솔직하지 못하다고 李 대표를 비난하고, 개중에는 홍보효과는 충분했다는 식으로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5월2일=이미지 트레이닝

4층 船首(선수) 중앙 좌측 5번방을 수색하였다. 들어갈 때마다 사전에 이미지 트레이닝을 강조하고 긴급상황 발생시 취해야 할 수칙을 머리와 몸짓으로 반복 강조하며 입수한다. 수중환경이 급변하거나 장비에 이상이 생기면 어떻게 움직일 거라고 하지만 과연 몇 번밖에 착용해 보지 않은 후카 장비와 몇 분의 여유를 둔 예비탱크만 믿고 비상 상황발생시 순조롭게 대처할 수 있을까?


5월4일=남녀가 끈으로 묶은 채 발견되기도

어떤 희생자는 자기의 신분을 죽어서라도 찾아달라는 뜻인지 끝까지 가방을 꼭 쥐고 있었다. 또 남녀가 서로 의지한 채 구명조끼 끈으로 묶은 채 발견된 경우도 있었다. 신발이 없는 혹은 한쪽 신발만 신은 시신, 청바지 뒷주머니에 볼록 보이는 지갑이나 핸드폰, 트레이닝 복장, 자다 나온 듯한 런닝 차림, 몸빼 입은 아주머니 시신, 승무원인 듯 남방에 넥타이 차림의 시신 등등 다양한 모습의 시신들이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채 인양됐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 이승의 사람이 아닌 자를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아니 멸망 같은 이 비극을 부정하고 싶다는 생각이 뇌리를 가득 채운다. 무척 힘들다. 몸도 힘들지만 정신이 더 무거워진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는지. 소리 없이 다가오는 악마의 짓 같다. 인간본성의 내부에서 꿈틀대는 금전지향적, 권위지향적, 혈연지향적인 형체 없는 욕망과 파괴본능, 그런 폭력이 도사리는 이 사회가 진정 현실인가?(계속)

<정리=이동욱 기자>


[ 2014-09-26, 09:0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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