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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것을 잊은 30일…대한민국도 나도 표류中
해경 崔鎬植 경위의 亂中(난중)일기(3)비통함에 너무나 오래 머물러 얼굴이 굳어 있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바지에서 작업하는 동안 어느 누구도 웃을 수 없었다. 농담도 못하는 분위기 속에서 연일 屍身(시신)인양만 해댔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崔鎬植(포항청 122구조대)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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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5일=트라우마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가족들이 더욱 보고 싶다. 그런데 어제 시신 한 구가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끝까지 가방을 놓지 않고 수면 위까지 올라온 시신을 어떤 대원은 그 물건 주인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트라우마 증세가 염려된다.


5월6일=한 민간 잠수사의 影幀(영정)사진

민간 잠수사 한 명이 사망했다. 난 위에서 다이빙 보조를 보고 있는데 주위에서 웅성거린다. 처음 입수전부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었다. 그걸 감추려는 듯 애써 사진도 찍고 했었다. 나는 속으로 ‘여기서 무슨 사진을 찍나. 놀러온 것도 아니고’ 하면서 투덜댔다. 그런데 그것이 그 사람의 마지막 影幀(영정)사진이 돼 버렸다. 황당하고 미안하다. 수중에서 마스크를 왜 벗었는지 아직도 이해하기 어렵다.

듣기로는 같은 시간대에 다른 지점인 A구역(세월호 선수쪽)으로 잠수한 우리 대원이 민간잠수사 1명과 수색중이었다. 사망한 민간 잠수사는 세월호 중앙인 B 구역으로 잠수해서 안내줄을 설치하는 임무를 받았다. 서로 구역이 틀리다. A구역에서 작업중인 우리 대원이 객실 창문에서 페어(짝)인 민간 잠수사의 후카 라인을 잡으며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뭔가가 허리를 치더란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사망한 B구역 민간 잠수사였다고 한다. 그 깜깜한 곳에서 겨우 수중랜턴으로 앞만 보이는 곳이다. 사방은 온통 암흑이고 아무도 없어야 할 곳인데 뒤에서 살아있는 생명체가 툭툭 건드렸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잠시 적막이 흐른 뒤 우리 대원이 여긴 이상이 없다고 수신호를 보낸 다음에 당신이 맡은 구역으로 돌아가라고 손짓을 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 잠수사가 길을 헤맨 듯하다.

기사본문 이미지
최호석 팀장


잠시 후 그 잠수사가 자신의 길을 찾아 돌아가는 듯했다. 뿌연 암흑 속으로 모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다시 우리 대원이 페어와 작업을 하던 중에 갑자기 위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우리 대원은 B구역에서 창문이나 입구를 개방중일 거라고 생각하고 20여분 동안 작업을 마친 뒤 올라왔다. 그리고 비로소 그 잠수사가 사망한 걸 알았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쿵’ 하는 소리는 수중 상층부 몇 m 지점에서 그 다이버가 허리에 차고 있던 웨이트(납) 벨트가 떨어지면서 선박 위에 부딪혀 난 소리였다. 의식을 잃은 그를 스탠바이 다이버가 안고 인양하면서 보니 허리에 벨트가 없었고 마스크가 벗겨진 걸 보고 우리는 그렇게 짐작할 뿐이다.

어쨌거나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물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짐작만 할 뿐이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5월7일=점차 작업에 익숙해져

3층 船首(선수) 우현 다인실을 수색했다. 점차 깊은 어둠 속에서도 작업에 익숙해진 듯하다. 소조기에 접어들어 그런지 물이 맑다. 물 맑은 동해에서도 수색작업은 난항을 겪을 때가 많다. 일반적으로 해양 사고는 높은 파도에 풍속 10노트 이상일 때, 한 마디로 기상이 안 좋을 때 많이 발생한다. 그래도 간혹 투명한 물을 보면 평온한 마음이 들어 작업진행이 수월하고 다른 세상에 온 듯 새롭다. 잔잔한 수중의 자연 속에서는 모든 것이 질서 정연하다.


5월8일=세상이 개판

언론에서 골든타임을 애기한 후 온갖 생활에 툭하면 골든타임이더니 이번엔 보험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희생자 가족들 또 울화통 터지겠군, 생명의 가치를 금전으로 치부하다니…SNS에서는 여러 가지 침몰원인설이 나오는 가운데 북한의 소행으로 덮어씌운다든지 잠수함 공격설까지도 나온다. 참 다양하다. 별별 假說(가설)이 다 나오는 중이다. 조금 있으면 외계인도 나올 상황이다. 뭘 믿어야 할지 뭘 봐야 할지 이 한반도 땅만 봐도 골치가 아프다. 자식들에게 과연 올바른 교육을 시킬 수나 있을지…세상이 개판이다.


5월11일=바지船 위의 휴식

빠른 유속과 높은 파도로 수색작업이 취소되고 바지 전체가 꼭 폭풍을 만난 것 같다. 한동안 밤낮없이 혹사한 몸뚱아리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치유하며 이대로 며칠만 갔으면 좋겠다는 비겁한 마음이 든다. 바지 위의 휴식은 정말 표류된 구명환 같다. 우리가 표류중인 듯하다. 머리가 어지럽고 온갖 기름 냄새가 오늘따라 유난히 와 닿는다. 어두운 파도가 심각하게 바지 위를 덮친다. 어디선가 ‘쿵’, ‘철썩’ 하는 신경 거슬리는 소리가 들린다. 바지선이 쉴 새 없이 삐걱대며 흔들린다. 마치 세월호에 남은 유령들이 바지선을 잡고 뒤흔드는 듯하다. 물속의 세월호를 떠올려 보니 세월호 내부가 어떤 상태로 변형되거나 붕괴되지는 않을까?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훼손부위가 커져가는 것은 아닐까 걱정된다. 우리가 수색하러 들어갔다가 무너지기라도 하면 영락없는 사고로 이어진다. 더구나 海霧(해무)가 끼어 수상의 가시거리는 10m 정도이다. 정말 극장에서 공포영화를 보는 것 같다. 공기도 음산하고…비상대기 근무를 서고 있는 몇몇 대원들이 순찰을 돌다가 멍하니 바다만 보던지 아니면 애써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듯 핸드폰만 만지작대곤 한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5월11일=눈물을 훔치던 아저씨

오늘 바지에서 텐더(보조)를 보던 중 언딘 바지 한 구석에서 어떤 아저씨를 발견했다.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다 앉았다 하더니 한순간 주저앉아 핸드폰에 몰두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보는 듯했다. 희생자인 학생의 아버지인 듯하다. 힐끗힐끗 보니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한때 단란한 가정에서 즐거웠던 영상과 사진을 보며 회상하는 듯하다. 순간 내 가슴이 메어왔다. 남의 일 같지 않고 누구나 생길 수 있지만 그 사실을 종종 잊은 채 우리는 생활해 나간다. 우리는 그런 삶의 바다를 매일 항해하는 것이다.


5월12일=동네 구멍가게 아저씨 같던 국무총리님

오늘 국무총리님이 오셨다. 나는 정 총리님과 악수를 하며 수습작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한다. 가까이서 보긴 처음이다. 머리도 희끗하고 고난을 말하듯 주름진 얼굴과 라이프 자켓 차림에 누추한 장소라서 그런지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 같다. 한 사람씩 악수를 하는 모습을 보니 눈빛에 서러움이 어려 있다. 나와 악수를 나눈 후에 뒷모습을 보니 돌아가신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생각난다. 국민한테 온통 욕을 먹고 물세례까지 받았다는 생각에 측은함이 드는 건 왜일까? 순간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가식인지 모르지만 진심이 담긴 눈빛은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았다. 


5월16일=웃는 것을 잊은 30일

현장 작업이 바뀌어 내일이면 원적지로 복귀한다. 정확히 30일하고 하루 만이다 그런데 이틀 비번을 제외한 4일을 근무서고 다시 진도로 내려와야 한다. 그래도 못 가는 대원들도 있으니 스스로 위안하고 잠을 청한다. 아이들이 보고 싶다. 그런데 내가 정말 웃을 수 있을까? 웃는 것을 잊었다 비통함에 너무나 오래  머물러 얼굴이 굳어 있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바지에서 작업하는 동안 어느 누구도 웃을 수 없었다. 농담도 못하는 분위기 속에서 연일 시신인양만 해댔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그런데 웃음은 잊혀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 나도 궁금해진다. 웃은 지 너무나 오래 된 듯하다.


5월17일=예전과 다름없는 삶

드디어 원적지로 가는 날. 진도 서망항에 발을 내딛는 순간 꼭 해군생활 때 첫 상륙하던 느낌이다. 모든 게 새롭다. 항상 느끼는 공기의 중요성을 잊고 살았듯 주위의 작은 것 하나하나 관심과 눈빛이 간다. 휴게소에서 식사를 할 때도 주위 사람들의 대화를 유심히 들어본다. 세월호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하는지.

그런데 tv방송과 언론들을 빼면 모든 게 예전과 다름없는 것 같다. 모두가 바쁘게 일하고, 휴일은 가족과 어떻게 보낼 것인지 구상하면서 마치 서로 아무 일 없는 듯…딴 세상 같았다. 자기 생활에 그림자를 만들고 싶지 않은 듯 현실에 만족하려는 것이 좀 이기적이지만 현명할지도 모를 일이다 
 

5월19일=날벼락…대통령은 정말 ‘고심’한 것일까

아침부터 대통령 對(대)국민 담화문 발표에 이목을 기울이고 있다. 처음부터 해경 잘못을 거론하더니 느낌이 심상찮다고 느낄 때 대통령은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기로 결정했습니다”라고 한다. 모든 직원들이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런 날벼락이 없다. 웃음밖에 안 나온다 눈물 섞인 웃음이다. 이 정도일 줄이야. 해수부 등 모든 조직에 ‘관피아’가 있는데 원인 제공자를 두고 어민의 안전과 불법 중국어선 척결에 목숨 걸고 최선을 다한 우리를 改編(개편)도 아닌 해체란다. 바다 수호를 위해 돌아가신 선배님의 동상이 움직일 노릇이다.

수험생, 임용을 앞둔 후보생, 전국 1만여 대원과 그 가족들 모두가 청천벽력 같은 말에 절망했을 것이다. 인간으로 치면 팔 부러졌다고 斷頭(단두)로 목을 치는 격이다, 그동안 함정을 타며 몇 십 년 근무하며 자식들 성장과정이나 모든 경조사를 오직 국가업무를 이유로 바다 한가운데서 보낸 선배님들의 상심이 클 것이다. 어떤 대원은 아빠처럼 멋진 해경이 되겠다는 자식의 꿈을 무참히 짓밟았다며 통곡해 한다. 대통령은 정말 ‘고심’한 것일까? 궁금하다.


5월24일=다시 현장으로

다시 진도 세월호 현장으로 출동이다. 꼭 가석방이 끝나고 복귀하는 느낌이다. 정말 잠깐 동안 언덕 위의 나무그늘에서 낮잠을 자고 전쟁터로 향하는 듯하다. 다행이 이젠 교대 주기가 있으니 기다림이 있다.


5월25일=첫날부터 풍랑주의보

복귀 첫날부터 풍랑주의보로 함정에서 대기하고 있다. 바지 위엔 너울성 파도가 모든 걸 삼킬 듯하다. 바로 밑에는 한때 바다 위를 떠다니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던 세월호가 차디찬 해저의 조류와 흙탕물에 휩싸인 채 돌아누워 있다. 격실마다 소용돌이가 일고 있을 거란 생각에 벌써부터 몸과 마음이 무거워진다.


5월30일=아이고 삭신이야…

잠수를 18년 이상 해왔지만 이렇게 어깨가 쑤신 적은 없었다. 그래서 수색작업 후 혹시나 잠수병인가 싶어 챔버로 자진해서 들어가 치료가 아닌 減壓(감압)을 했다. 잠수수칙을 어긴 적이 없고, 잠수 시간도 감독관님 등이 챙겨주니 이론상은 걱정이 없지만 계속되는 작업과 피로가 누적된 탓일 거라 치부하고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훗날 어깨 MRI나 관절경 수술을 받아봐야 할 듯하다. 아이고 삭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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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작업 중인 최호석 팀장(上)



5월31일=暗鬱(암울)

새벽에 바지현장으로 수색작업을 나가니 민간 다이버가 술에 취한 채 나한테 하소연 아닌 원망을 했다. 어제 선체 절단을 하다 사망한 민간다이버를 욕하고 있었다. 그가 자기 친구라면서 “어제 통화할 때 그렇게 조심하라고 했는데 이게 뭐냐고” 하면서 눈물을 글썽인다. 왜 죽냐고, 이제 세월호 원흉이 도와주려는 산사람마저 데려간다고 하면서…해경은 해체 선고를 받고, 바지에선 사람이 죽어 나가고…암울하다.


6월1일=우리라도 중심을 잡아야

어젠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세월호 참사‘ 관련 방송이 제작본부장 지시로 승인한 지 하루 만에 진행 중단되는 사례가 발생했다고 한다. 유족들이 kbs와 청와대에 항의하고 kbs 내부에선 ’해경비판 삼가라’고 했다고 한다.

4월 당시 실내체육관에서의 가짜 실종자대표 등 모든 게 6·4 지방선거와 7·30 보궐선거에 초점을 맞춰 진행된 일은 아닌가? 표심을 얻기 위한 총대 메기라는 말이 오가고 모든 게 정치공작, 관심끌기식 같다. 또한 참사 초기 장관 의전, 대통령에게 악을 쓰며 대들고, 국무총리에게 물세례, 일베저장소에선 피해자 가족을 유족충이라 하고, 방송은 구조된 학생과 인터뷰하면서 학우들이 사망한 것을 아느냐는 등 반인륜적인 표현이 차고 넘친다.

조금이라도 남을 배려하는 생각은 없는 것이다. 국민정서가 누구 말대로 굉장히 미개한 나라로 비친다. 우리 선조는 全세계적으로 유례없는 500년 이상 가는 왕조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하고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효도라는 말을 쓰고 있다고 하는데 현대에 와서 이처럼 지극히 비도덕적으로 변모한 데에는 그 이유가 있을 거다…이 국가 전체 곳곳에 선동꾼, 좌파들이 득실거릴 때일수록 우리라도 중심을 잡아야 한다.

수많은 사람이 가족과 영원한 이별을 하고 미안한 마음에 자살을 하였다. 뭐든지 섣불리 정의하지 말자. 시공간을 넘어서 수평선을 바라본다. 일출, 일몰은 한 곳에서 진행된다. 모든 것을 우주의 순리로 미화하면서 이 비극과 혼란을 뿌리치고 싶다.   


6월7일=대한민국도 표류중이고 나도 표류중

진상규명과 촛불집회를 하며 ‘박근혜 퇴진’, ‘우리는 가만있지 않겠다‘는 구호를 외치며 가두행진을 한다. 대한민국도 표류중이고 나도 표류중이다. 오늘 나의 모임에 선배와 말다툼을 했다. 내가 “촛불집회 한답시고 청와대 쳐들어가는 저런 개 종북같은…”이라고 했더니 그게 다툼으로 번졌다. 더 이상 그 선배와 대면하고 싶지 않아 모임에서 탈퇴했다.

툭하면 관피아, 해피아, 철피아, 법피아 등 피아 전성시대다. 가치관 교육이 강조될 때이지만 그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정말 법을 지키면 손해인 나라, 법 위에 있는 사람만 편안하고 현명한 나라, 힘이 없으면 가중처벌 받는 나라, 돈과 권력 있는 자는 처벌받지 않는 나라, 재벌가, 정치가들만 행복할 수 있는 대한민국인가? 6·25의 호국영령과 전우를 무시하고 같은 민족이 분열된 국가에서 또 갈라지고 싶은가? 극소수의 눈에 보이는 좀비들만 보고 편견된 생각으로 전체를 매도 말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될 줄 아는 것, 내 안을 들여다보고 마음으로 고찰하자.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지 주위에 과연 도움의 손길을 얼마나 줬는지…어느 한 부분은 사회의 몫이고, 가장 귀중한 부분은 내 자신의 몫이다.      


6월19일=해경이라는 직업에 회의가 들 때

해경해체를 앞둔 지금 170개국이 참가한 IMO 「바다의 義人賞(의인상)」에 특수구조단 2명과 내가 몸담고 있는 122구조대가 선정됐다. 그것도 과거 받은 서한보다 한 단계 위인 증서(CERTIFICATE)이다. 모두 7명이다. 정말 기쁘지 않을 수 없다. 감회가 새롭고 그때를 생각해보면 가슴이 벅차다.

그러니까 지난 10월15일, 파나마 국적 청루 15호(8400톤)가 강풍에 밀려 투묘 중 앵커가 꼬이고 터져 방파제와 충돌하여 침몰 직전이라고 출동지시가 떨어졌다. 이미 어두워진 상태로 현장에 도착해보니 항내에는 파도가 5m 이상이고 港外(항외)는 7m나 되는 집채만한 파도가 방파제를 덮치고 있었다. 보트를 방파제에 붙이려니 배가 뒤집힐 정도여서 회항하고 중형함에서 수습하는 도중에 날이 밝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자켓을 입은 屍身(시신)이 파도에 묻혔다 뜨곤 했다. 함정에서 대원들이 하네스와 안전끈을 허리에 묶은 뒤 수영으로 시신 6구를 수습했다. 방파제에 올라보니 선박은 두 동강난 채로 침몰한 상태였지만 휘어진 마스트 꼭대기에는 7명이 서로 부둥켜안고 살아 있었다.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서로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저 파도와 물보라에 밤새 버티고 있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체온증이 염려가 되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평소 훈련을 해온 터라 일사불란하게 등·하선을 연결한 뒤 구조해 냈다. 구하고 보니 그들은 중국인 선원들이었다. 육상으로 그들을 인도하자 땅에 입을 맞추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며 중얼거린다. 아직도 그 장면이 선명하다. 정말 하늘이 도왔다고 했을 거다.

그 후 중국정부에서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는 서신을 받았다고 신문에 실렸었다. 그리고 부산 남외항에서 特救團(특구단) 소속 대원 2명도 유류 폭발의 위험을 무릅쓰고 3160kl가 적재된 선박을 7m 수면 위에서 봉쇄작업을 무사히 마친 성과다. 만약 그 당시 대원 한 명이라도 불의의 사고를 당했더라면 이 감격을 느끼지 못했으리라.

더구나 나 개인적으로는 어머니가 암 선고를 받은 터라 다음날 수술이 잡힌 상태였는데 이 사건으로 나는 휴가를 취소하고 출동해야 했었다. 그 무렵 나로서는 너무 힘들어 퇴직하고 싶다고 장인어른과 통화를 한 적도 있었다. 집안의 대소사를 뒤로 한 채 공무원의 도리를 먼저 다한다는 것에 회의가 남았었다. 그 이전, 목포 해경서에 근무할 때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이 나에겐 큰 상처로 남았었는데 어머니에 대한 불효가 다시금 직장에 대한 회의감에 빠지게 했다. 그러다가 출동했고 사람을 구했는데 償(상)을 받게 되니 만감이 교차했다.

부하 대원들에게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종종 해경이라는 직업에 회의가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쩌랴. 때가 되면 나가더라도 가정엔 부모와 자식의 도리가 있고,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직분이며, 해경은 바다의 안전을 책임지며 구조에 전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해경 해체를 선언해 버린 정부가 이 사실을 알지는 모르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과 방송이 아직도 해경과 해경의 VTS만 두들겨 패는 중이다. 비록 우리에게 질책당할 잘못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많은 해경 대원들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게 임하면서 묵묵히 거친 바다를 수호하고 있다. 그런 직장 동료들에게 우리가 받은 상이 보람과 격려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웃기는 것이, 해경의 훌륭함을 외국에서는 알아주고 상도 주는 마당에 국내에서는 해체를 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6월25일=지그재그로 이어진 긁힘 자국

세월호 내부엔 지금까지 수백 회의 수색작업으로 거미줄처럼 굵고, 가는 줄이 온 사방에 쳐져 있다. 더듬어가면서 수색을 해야 하니 안내줄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렇게 해서 남겨진 줄에 내 몸의 어느 한 곳이라도 걸리면 위험천만이다. 어두운 물속에서 작업하는 우리가 거미줄에 걸려 버둥대는 벌레의 운명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안내줄을 칠 땐 그 전의 줄은 끊어내지만 다음 작업을 위해 남겨두기도 하고 수중환경에 따라 작업을 하다보면 제거를 해야 하지만 일일이 제거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3층 船首(선수) 좌현 객실 B1의 장애물 제거 중이었다. 두께 2cm 정도 되는 창틀 밑에 끼인 장애물을 빼는 순간 나의 눈을 놀라게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손톱자국으로 선명한 3개 또는 4개씩 지그재그로 이어진 긁힘 자국이었다. 또 다른 아우슈비츠였다. SNS에 떠돌기만 하던 얘기로 치부하던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수중임에도 내 마음 속으로부터 침울, 암울, 공포, 답답함, 분노, 역겨움 등 온갖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살갗에 소름이 돋고 나도 모르게 호흡이 가빠진다. 인간이 지닌 가장 아름다운 미덕은 남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이라고 하지만 이걸 본 나로서는 나 자신이 끔찍하고 가해자가 된 느낌이었다. 그 순간에 내 머리 속에서는 사고 당시의 상황들이 그려지는 듯했다. 털끝이 서고 등은 서늘해지며 복도인 세월호의 통로가 뫼비우스 띠처럼 끝없이 이어진 미로 같았다.


7월2일=일방적인 언어폭력

피곤한 몸이지만 TV를 시청했다. 해경 국정조사가 있는 날이다. 분명 좋은 말은 안 나오겠지만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그런데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넘어가면서 도저히 보지도 듣지도 못할 정도가 됐다. 저건 조사가 아니고 청문회도 아닌 신문이고, 고문이었다. 저런 일방적인 언어폭력이 없다.

피고인도 변호할 권리가 있고 묵비권도 있는데 하물며 어떤 대응으로 이 같은 결과가 나왔는지 확인하고 재차 발생치 않도록 재고하려 조사를 하는 거 아닌가? 질문하고 답변할 기회도 주지 않는, 조롱하듯 말하는 너의 혓바닥은 살아 움직이는 메두사 뱀 같다. 쳐다보기도 싫은 당신의 이중성에 찬사를 보내주마. 그 앞에 불려 나와 죄인이 된 우리 직원들은 순진하다. 수백 번 엎어버리고 싶었을 거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그냥 굳어져 버리는 모습이 안타깝다. 이순신 장군이 義禁府(의금부)로 불려들어가 고문을 당할 때도 비슷했을까?


(정리: 이동욱 기자)

[ 2014-09-27, 21:1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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