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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迷路(미로)…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나
해경 崔鎬植 경위의 亂中(난중)일기(4)/7월18일 희생자 한 具(구)가 근 한 달 만에 올라온 뒤로 아무리 반복 재수색을 해봐도 진척이 없다. 유가족들은 우리가 “수색을 성실히 하지 않고 시간 때우기 식으로 시늉만 한다”면서 온갖 욕설을 퍼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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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鎬植(최호식·포항청 122구조대 2팀장·4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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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식 경위


7월4일=‘내 슬픔을 함께 지고 가는 사람’

다시 포항으로 복귀하는 날이 왔다. 팽목항이 5월30일부터 일반인에게 개방되고 희생자 가족분들도 많이 떠난지라 이번엔 팽목항에서 대원들과 교대할 예정이다. 몇 번 진도의 서망항만 보았지 바로 옆의 팽목항은 처음이다. 온갖 자원봉사단체와 의료지원센터가 들어차 있고 곳곳에 극락왕생을 비는 스님과 모든 종교의 부스들이 설치돼 있다. 그리고 염원을 담은 수많은 노란리본, 주인을 기다리는 옷가지, 신발과 그 위에 쓴 글귀들…‘사랑하는 내 아들. 널 기다리는 것은 물론이니 따뜻한 곳으로 돌아오렴. 사랑한다’…또 가슴이 뭉클하다.

인디언은 친구를 소개할 때 ‘내 슬픔을 함께 지고 가는 사람‘이라고 한다. 자본과 권력의 추함을 선하게 만들고자 천막미사에서 들리는 신부님 강론이 들린다.


7월15일=대원들의 열의에 감동

내가 잠수임무를 하다가 안전감독으로 지명됐다. 대원들을 바라보니 걱정이 먼저 앞선다. 차라리 내 몸과 짝만 관리하면 되는 잠수작업보다 불편하고 힘들다. 대원들은 저마다 잠수 경험과 능력이 다르다. 게다가 수중환경은 수시로 변한다. 내가 감독해야 할 대원 가운데는 나이 많은 형이나 선배가 있다.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지시를 내려야 할지 난감해질 때가 많다. 안전교육시 무엇보다 최선은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본인이 먼저 챙겨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하지만 그렇게 큰소리치는 내 자신이 부끄럽다.

세월호 부근의 조류는 수시로 변하고 물 위에서 불 때와 판이하게 다르다. 어떤 대원이 들어갔을 때는 조류가 약해지지만 다른 대원이 들어갔을 땐 조류가 강해지기도 한다. 게다가 이런 수색경험이 全無(전무)한 대원들도 있다. 노파심에 열외를 시키고 싶은데 그럴수록 그런 대원들은 자진해서 이런 경험을 해보고 싶다며, 꼭 수중수색업무에 동참해보고 싶다고 조른다. 대원들의 열의에 감동하는 순간이 바지선에서의 유일한 즐거움이 됐다. 오늘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보내는 하루가 어느덧 저문다.


7월16일=친구와의 대화

오늘 친구와 대화중 그 친구가 자기 처남과 싸웠다고 한다. 술자리에서 처남이 촛불집회를 두고 인간미 없게 말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는 “지랄들 한다. 적당히 좀 하고 그 정도 슬퍼해줬음 됐지, 친부모도 떠나면 마음에 묻어두고 현실을 생각한다. 당장 산 사람이 중요하지 그까짓 게 뭐 중요하냐”고 해서 싸움이 벌어졌다고 한다. 친구는 기가 차다면서 주둥이를 찢고 싶었다고 한다. 본인은 세월호 사건 이후 가슴이 먹먹하고 울컥 눈물이 날 때가 많고 두통이 생겨 타이레놀을 계속 먹고 지낸다고 한다.

세월호 사고로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과 정치, 경제, 교육 등 모두가 패닉상태다. 사회혼란이 왔고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어린 생명의 손실과 충격이 무엇보다 크다.

21세기의 첨단장비로도 거센 물살인 자연 앞에선 무용지물이었고 어른들의 교육수준은 초등학생보다 못한 상태라는 것이 여실히 들어났다. 이것은 어느 정치인 한 사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며 언론과 각 개인 모두가 개선할 몫이라는 생각이지만, 이 끝없는 수색을 조속히 마무리하고 사회 안전대책을 세우고 허탈감에 빠진 차후 세대들과 가족에게 우리의 건강한 미래를 건설할 기둥을 빨리 세울 때라고 생각된다. 생각은 그렇게 정리되지만 당장 내 앞에 펼쳐진 수색 임무를 보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다.


7월17일=끊이지 않는 사고 소식

강원소속 소방헬기가 세월호 실종자 수색지원 후 복귀하다 추락, 5명 전원 사망했다. 너무나 안타깝고 헬기를 타고 구조하는 우리도 남의 얘기 같지가 않다. SNS는 이 사태를 두고 ‘민간 잠수부 사망시 세월호 유가족들. 누가 영결식에 참석한 사람 있느냐, 그만 해라. 얼마나 더 죽어야 하나. 무모한 희생이다‘ 등 비난성 글이 쇄도하고 세월호 수습 중 늘어나는 사고로 대원들은 집단 트라우마 증세가 심각하다.

어떤 대원은 뉴스를 안 봐야지 하면서 계속 보게 되고, 보면 해체 직전인 해경 조직을 안전처, 안전부, 해수부 산하로 넣니 마니 하는 등 걷잡을 수 없는 말이 나와 화가 난다고 한다. 또 다른 어떤 대원은 가끔씩 침몰하는 배 안에서 고통 속에 죽어가는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고 한다. 물이 가득 찬 격실의 위, 아래로 떠있는 시체들. 혹은 급히 빠져나오려 하다 문에 옷이나 몸이 걸려 발버둥치는 모습과 희생자 이름들이 자꾸 떠오르게 되고 이 때문에 점점 무기력과 의욕상실로 빠져든다고 하소연이다.

끊이지 않는 사고 소식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감정移入(이입)이 강하다고 생각된다. 지나치게 몰입하지 말고 밝은 것을 접하는 식의 치료가 필요할 듯하다.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고, 타락하고 소름끼치는 곳에 참됨을 요구하는 우리의 입술이 있고, 우리의 입술은 희망을 부른다고 했는데…


7월22일=“빨리! 응급구조사!”

민간 잠수부와 우리 대원이 합동 수색작업을 하고 해군이 또 다른 구역에서 수색하는 동안 우리는 단독으로 희생자 유실방지 작업을 위해 안전망을 치기로 했다. 후카 설치장소가 부족한 탓에 스쿠버 방식인 더블공기탱크로 작업하기로 했다.

초기에 시신 유실 가능성이 대두될 때, 그러니까 재차 수색을 마친 곳의 깨진 유리창을 무엇으로 시신 유실을 막을까 회의를 했었다. 그때 내린 결론은 초강력 자석으로 수평 또는 수직으로 붙인 후 로프로 라인을 치는 방식이었다. 나는 초강력 자석이라고 해도 의심스러웠지만 테스트해 본 결과 50kg은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자력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수동으로 자력 조절이 가능해서 다이버가 수중작업을 할 때 아무 곳에나 붙어버리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다. 단점은 자석에 외부의 힘이 수직이 아닌 측면으로 가해질 경우 쉽게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수중에서 측면으로 가해질 힘의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해서 우리는 자석을 이용한 유실 방지망 설치 작업을 시행했었다.

길이만 140m가 넘는 긴 선체의 외벽 유리창 깨진 곳들을 찾아 차근차근 안전망 설치를 완료할 때쯤 태풍이 몇 번 한반도를 강타했다. 그때마다 바지선도 避港(피항)을 반복했다. 태풍이 다 지나가고 세월호 위쪽에 바지선을 복귀시킨 후 우리는 진행중인 안전망 작업을 위해 다시 수중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수십 일에 걸쳐 작업했던 유실 방지망과 자석들이 온 데 간 데 없었고 간혹 몇 개의 자석만 바둑돌마냥 철판 위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게 아닌가. 우린 허탈했다.

‘이런 젠장. 업체에서 수중실험을 해봤다고 장담했지만 태풍 부는 바다 밑에서 실험은 안 해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실 방지 작업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 다음의 방안으로 강구한 것이 ‘C 클램프’라는 크기 30cm 정도의 쇠뭉치였다. 프레스처럼 나사식으로 조이게 되어 있는 이 장비는 무게와 크기도 상당해 다이버가 입수 전에 미리 하잠줄에 이 장비를 묶은 뒤 수중으로 낙하시키고 그 다음에 다이버가 들어가서 작업을 시작하는 방식이었다.

상당한 무게 때문에 하잠줄 끝에서 안내줄을 잡고 바닥으로 내려진 클램프를 끌고 가는데 마치 쌀자루를 끄는 듯하다. 수중 다이빙 한계수심과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아 다이버 한 명당 한두 개를 처리할 정도로 작업 진행이 느렸다. 창문 모서리 네 군데를 일일이 다 조이고 나면 손아귀와 팔뚝의 근육이 뭉쳤다. 거기다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작업하다 보면 남아있는 유실 방지망의 줄과 이미 설치된 안내줄이 제멋대로 잠수장비를 휘돌며 감겨온다. 이건 무슨 문어 채집하는 사람이 문어다리에 온 몸이 휘감긴 듯하다. 주위는 빛이 없는 어둠이라 두 명의 다이버가 서로 랜턴을 비춰가며 자기 몸과 짝 다이버의 몸에 감긴 로프를 하나 둘씩 풀어주면서 작업을 했다.

내 작업을 마치고 바지에서 다른 대원들의 잠수 상황을 지켜보던 중에 갑자기 한 팀이 수면으로 부상하면서 “빨리! 응급구조사!”라고 외쳤다. 보니 페어가 의식을 잃은 듯했다. 수면에서 인공호흡을 시키는 중이었다. 졸지에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의식을 잃은 대원은 다행히도 기침을 하면서 호흡과 의식이 돌아왔었다. 그는 곧장 치료 챔버가 있는 큰 배로 이송됐다. 함께 다이빙한 대원은 거의 맨붕 상태였다. 나중에 치료받고 돌아온 대원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클램프를 한 사람이 조이고 있을 때 또 한 사람은 옆에서 다른 클램프를 두고 설치 장소를 찾던 중이었다고 한다. 그때 갑자기 드라이 슈트에 연결한 IN밸브(부력조절을 위해 잠수복으로 공기를 주입하는 밸브)로 급속도로 공기가 들어갔단다. 반복적인 잠수와 흙탕물 속에서 작업하다 보니 이물질이 밸브에 끼이면서 자동차단 기능이 고장난 것이었다. 순식간에 다리 쪽으로 공기가 차면서 자동펌프로 주입하는 풍선처럼 잠수복 바지 부분이 부풀어 올랐다고 한다.

부력이 갑자기 커지면 상승하게 되고 그 속도가 빨라져 매우 위험해진다. 그는 바닥에 연결된 하잠줄을 거꾸로 잡아당기며 몸이 떠오르지 않도록 버텼다. 만약 그 줄을 놓치면 다이버는 빠르게 솟아오르는 로켓처럼 수면으로 상승하게 된다. 그때는 폐 속의 공기 부피가 2~3배 정도로 커지면서 폐가 팽창하여 터지는 栓塞症(전색증)에 빠진다. 말이 전색증이지 걸리면 대부분이 몇 분 못가 사망한다. 전색증에 걸린 채 물 밖으로 나온 다이버는 피를 토하고 그 자리에서 사망하는 것이다. 수많은 잠수병 중 가장 위험한 병이기도 하다.

그가 그런 일을 당해서 줄을 당기며 거꾸로 물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을 때 바로 옆에서 작업하던 다른 대원이 뜨고 있던 대원의 팔을 잡아 당겼다. 장비불량으로 위기에 처한 대원의 모습은 꼭 공중에서 급추락하는 비행기처럼 머리가 땅에 다리는 하늘로 향하고 있었다고 한다.

비상수단은 슈트로 계속 공기가 주입되는 IN밸브를 뽑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뽑으려 해도 뽑히지가 않더란다. 또다른 수단으로는 슈트의 목 부분을 잡아당겨 잠수복 안의 공기를 빼는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공기는 다리쪽으로 가득 차 거꾸로 서 있는 자세에서 목 부분을 아무리 개방해도 공기는 다리쪽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마지막 수단은 다이빙 나이프로 잠수복을 찢는 방법이었다. 문제는 갑작스럽게 몸이 뜨기 시작한 다이버가 급상승을 막기 위해 하잠줄을 붙잡고 있어서 칼을 쓰기 위해 줄을 놓을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옆에 있던 짝 다이버도 조류에 밀리면서 부력으로 올라가려는 짝의 팔을 붙잡아 당기느라 칼을 뽑을 수가 없었다. 두 다이버가 서로 팔과 하잠줄을 잡은 채 서서히 상승하고 있었다. 겉으로 이 장면을 본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는 다르다. 상승할수록 수압이 낮아지면서 부력은 증가한다. 잠수복 바지에 차 있는 공기의 부피가 커지면서 상승속도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이 힘과의 싸움에서 패배하면 전색증으로 이승을 떠나야 한다. 필사적으로 하잠줄을 잡아 상승속도를 줄여야만 하는 것이다.

두 다이버가 죽을 힘을 다해 하잠줄을 잡고 있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 마음을 이해했었다. 몸이 거꾸로 뒤집힌 대원은 그 상태로 10m 이상 질질 끌려 올라가듯 했다고 한다. 하잠줄을 잡은 손은 마찰로 인해 피부가 다 벗겨지고 있었다. 게다가 수압을 받으면서 거꾸로 있게 되어 혈압이 머리로 쏠려 의식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빨리 올려버리려는 자연의 힘과 싸우며 절체절명의 순간들을 보낸 뒤 안전속도 하에서 수면에 도달했을 때 그 대원은 이미 정신을 잃고 얼굴을 물속에 처박고 있었던 것이다. 연이어 상승한 짝 다이버가 인공호흡을 시키면서 “빨리! 응급구조사!”라고 소리쳤던 것이고.

다행히 그는 호흡이 돌아왔고 의식도 돌아왔지만 감압치료는 필수였다. 그 대원은 치료챔버가 있는 해군함정으로 이동해서 3시간 이상을 치료받고 정신감정도 받았다고 한다. 그 친구는 그런 경험은 처음이라며 선·후배님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럽다며 애써 눈물을 참았다.

물론 개인 장비의 최종점검을 소홀히 한 부분은 본인의 책임이지만 옆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가슴이 많이 아팠다. 무려 넉 달째 잠수작업을 계속 하느라 몸도 정신도 피곤에 녹아나는 중이다. 이런 상태에서 장비의 완벽한 정비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계속되는 작업과 공용장비를 인계·인수하면서 세심한 관리를 할 수 없는 여건 등을 감안하면 언제 어디서 또 무슨 사고가 터질지 우리는 한 치 앞을 모르는 상황과 마주하고 있다.


7월24일=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나

세월호 참사 100일째다. 서울 세종로에서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면서 특별법 제정촉구를 위한 촛불집회와 단식농성이 계속되고 있다. 진상조사에 1년이 넘게 걸리던 미국 9·11사건과 극명한 대비가 된다. 우리는 왜 미국 시민들처럼 하지 못할까. 우리는 왜 미국 시민보다 더 잘하지 못할까. 세계화 시대라서 이 모든 우리의 초라한 모습이 全세계인들에게 알려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렇게 알려진 인상은 우리 자식들에게까지 대대로 물려지게 될 텐데…안타깝다.

외부 소식을 들으면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그러다가 현장 바지 위에서 수색작업을 위해 물때를 기다리는 대원들을 보면 서울 세종로와 이곳은 정말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대원들이 처음에는 의욕이 가득했는데 이제는 하나 둘씩 지쳐간다. 이 지긋지긋한 현장 바지일을 언제쯤 떠날 것인지 교대날짜만 손꼽는다. 왜냐면 7월18일 희생자 한 具(구)가 근 한 달 만에 올라온 뒤로 아무리 반복 재수색을 해봐도 진척이 없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은 우리가 “수색을 성실히 하지 않고 시간 때우기 식으로 시늉만 한다”면서 온갖 욕설을 퍼붓는다.

그런 욕을 먹어도 지금 머무는 바지선의 시설은 초기에 비하면 천국이나 다름없다. 처음 수십 명의 다이버들이 바지선에서 대기할 때는 앉아 쉴 곳도 없었다. 12시간 이상을 노숙자나 다름없는 몰골로 맨 바닥에 주저앉곤 했었다. 비가 오면 천막이 부족해 크레인 밑으로 들어가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피우면서 우리의 아픈 심정을 달랬다. 한여름인 요즘도 밤이면 추워서 작은 전기난로에 溫氣(온기)를 느낀다. 잠수 대원들이야 숙소인 선박으로 돌아가서 잠을 자고 나오지만 바지 위에서 상주하는 해경 대원들은 바다 안개와 땀에 젖어 언제나 물에 젖은 몰골이다. 그들이 기거하는 컨테이너에는 습기제거를 위해 항상 켜 둔 전기난로와 곰팡이 냄새에 찝찔하다. 항상 흔들리며 삐걱대고 쿵쿵거리는 바지 위에서의 생활, 부족한 운동시간과 수면시간에 그들의 스트레스는 점차 쌓여 간다. 건강도 치명적으로 나빠져 갈 것이다. 대체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8월15일=모두가 한 편의 소설?

오늘은 내 생일이면서 아버지 제삿날이다. 그래서 나의 생일은 음력으로 치르기로 했지만 아버지 제삿날은 바꿀 수가 없다. 혼령에게 음식 하나 못 차려 주고 진도 현장에 와있다. 어쩔 수 없어 서울 사는 동생한테 떠맡기니 그 아이가 책임지고 준비하기로 해 다행이다.

그런데 세월호 항해부터 유병언 사망까지 모두가 한 편의 소설 같다. 102년 전 타이타닉 침몰과 세월호 침몰날짜도 하루밖에 차이가 나질 않아 이 또한 아이러니한 게 꼭 무슨 연결고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모든 게 정상이 아닌 듯하다.

문득 한 희생자 어머니가 바다를 향해 외치던 말이 생각난다. 그녀는 “행복은 이걸로 끝이다, 이놈아!” 라며 절규했었다. 그 생각을 하면 또다시 가슴이 미어진다. 한동안 공허해지고 우울증이 올 것 같다. 트라우마 증세인가? 억지로 북받치는 가슴을 이성으로 밀어내고 기쁜 첫사랑의 기억을 되살려 우울한 생각들을 산골 물소리처럼 떠나보내고 내가 처해있는 현실을 들여다본다. 그래야 살 수 있다고. 나는 행복을 꿈꿀 수 있다고. 이기적인 생각을 한다.● (끝)

(정리: 이동욱 기자)

[ 2014-09-29, 08:0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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