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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改變造(개변조) 선박의 운항허가 취득 과정
제1부 세월호와 兪炳彦(3)/海水部 항만청은 공식 문서 대신 계약서로 통과, 船級(선급)은 컨테이너 개당 단위무게를 5.56톤에서 3톤이라고 낮춰서 통과. 海警(해경)은 접대받고(?) 통과.

이동욱(조갑제닷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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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장에 등장하는 세월호 增改築(증개축) 관련 내용

청해진 해운은 2012년 10월, 이 배를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면서 그 즉시 운항노선에 투입하지 않았다. 대신 전남 영암군의 ㈜CC조선에서 이듬해 2월까지 선박의 구조를 개조하고 변경하는 작업을 했다. 검찰 공소장에 등장하는 세월호 增改築(증개축) 관련 내용을 발췌해 본다.

<(중략) 세월호 B데크의 선미 부분을 철거하고, A데크의 선미 2.8미터, 갑판 5.6미터, 천정 1.6미터를 연장하여 생긴 공간을 2개 층으로 만들어 하층은 여객실로, 상층은 전시실 등으로 개조하고, 선수 우현의 카램프 40톤 상당을 철거하는 등의 수리 및 증축 공사를 하였다.(중략) 특히 카램프 철거시 선수 우현에 30톤 상당의 중량을 추가하거나 좌현에 30톤 상당의 중량을 감축하지 않아서 좌우 불균형이 심화됨으로써 복원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광주지방법원 2014고합 180-검찰 공소장 중에서)>

세월호는 이처럼 3, 4, 5층의 객실을 증설해 기존의 정원 740명보다 181명을 더 태울 공간을 마련했지만 선박 도면엔 이런 사실을 제대로 반영시키지 않아 침몰 후 잠수 수색과정에서 海警은 애를 먹게 된다. 5층 객실에는 社主(사주)인 유병언씨를 위해 무거운 대리석판을 바닥재로 장식한 전시실도 설치됐다. 이 작업으로 선박의 무게도 239t이나 증가하게 됐다(이 부분만으로도 세월호 불법 증개축에 유병언의 책임은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를 죽기 전에 체포하지 못한 검찰로 인해 더이상 실익 없는 입증이 된 셈이지만…).

동시에 船首(선수) 우현에 설치되었던 40t 상당의 카램프(차량 통로 및 유압설비)를 철거했다. 거대한 유압장치를 철거하면 배 전체의 무게가 가벼워져 그만큼 객실 증축에 유리하고 화물도 더 실을 수 있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그러나 선수 우측에만 있던 카램프를 철거함으로써 배는 좌우의 균형을 잃은 절름발이 상태가 됐다. 안전 위주가 아닌 수송 위주의 改·變造(개·변조)가 진행됐기 때문이었다.

이 부분도 실상 세월호 침몰 원인과 관련된 중요한 단서가 된다. 침몰 전의 세월호를 타 본 사람들의 증언 중에는 세월호가 왼쪽으로 자주 기운다는 주장이 많다. 선박의 경험이 많은 한 시민은 “배가 좌우로 흔들리면 안전하다는 증거다. 균형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월호를 타 보니 이 배는 왼쪽으로 기울었다가 중간에서 딱 멈춘다. 하도 그래서 술잔을 들고 마셨다.”고 증언하고 있다. 세월호가 왼쪽으로 더 무거운 상태였다는 이야기다. 어느 블로거는 1년 전에 제주항에 입항하던 세월호가 왼쪽으로 기울어진 채 들어왔다가 화물을 모두 하역한 뒤에야 바로 선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두기도 했었다. 왼쪽으로 절름거리는 배였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선박의 개조와 변조를 마친 세월호가 어떻게 운항허가를 취득하게 됐을까. 中古(중고) 선박이 수리를 거쳐 정상적인 운항을 하기 위해서는 여객선 안전관리 차원에서 세 가지 영역의 검사 및 점검을 받아야 한다. 관련 규정들은 수십 년간 해양 사고를 통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름 進化(진화)한 제도로서, 이론상으로는 그럴 듯하게 마련돼 있다. 즉, ① <해양수산부>의 ‘增船(증선) 인가’, ② <한국 선급>의 ‘복원성 등 선박 검사’, ③ <해양경찰청>의 ‘운항관리규정 승인’ 등 세 단계의 ‘인가’, ‘검사’, ‘승인’을 거치고 매 출항 때마다 <해운조합>의 ‘출항前 안전점검’을 받아야만 운항을 할 수 있게 돼 있다.

결국 변칙적인 선박의 개·변조를 한 청해진 해운이 이 배를 운항하기 위해서는 ①해수부, ②한국 선급, ③해양경찰청 등 해양 권력기관과 非영리 기업의 ‘검증의 벽’을 넘어야 했다. 이런 시스템은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선박 관련 부처들이 모두 개입함으로써 각 단계별 교차검증을 통해 선박 운항의 안전을 확보자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海運社 입장에서는 로비를 하려면 적어도 ‘관료(해수부)’, ‘기업(한국선급)’, ‘사법경찰(海警)’ 등 세 곳 전부를 구워삶지 않고는 편법 통과가 이론상으로는 불가능하게 돼 있는 것이다.

그러나 2014년 7월8일字 감사원의 <세월호 침몰사고 대응실태> 중간발표 자료에 따르면 관료들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해양 권력기관과 비영리 기업의 장벽들을 청해진 해운사는 보기 좋게 뚫었다. 더구나 선박의 도입 단계부터 청해진 해운측은 관료가 구축해 놓은 장애물들을 지능적인 방식으로 무력화시킨 것이 밝혀졌다. 그도 그럴 것이 유병언은 1986년 이후 연안여객 운송업을 해 왔다. 유병언이 무려 25년 이상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데 반해, 임기가 짧은 관련부처 공무원들은 이미 유병언과 청해진의 敵手(적수)가 되지 못한 것이다. 그 수법을 한 번 들여다보자.


제 1단계 - 海水部, 港灣廳은 공식 문서 대신 계약서로 통과

청해진이 돌파해야 할 제1관문은 해양수산부이다. 해양수산부는 1948년 7월, 교통부 해운국과 상공부 수산부를 母胎로 한다. 교통부 해운국은 1976년 건설부 항만시설국과 통합하여 항만청이 된 뒤 이듬해에 ‘해운항만청’으로 개편됐다. 농림부 수산국은 1966년 농림부에서 독립해 ‘수산청’이 됐다. ‘해운항만청’과 ‘수산청’은 金泳三 정부 시절인 1996년 8월, 통합하면서 오늘의 ‘해양수산부’가 탄생했다. 그러나 2008년, 李明博 정부가 국토해양부를 신설하면서 폐지됐다가 2013년 3월, 朴槿惠 정부의 정부조직개편에 의해 다시 살아났다.

해양수산부의 주요 업무는 해양자원 개발 및 해양과학기술진흥, 해운업 육성 및 항만 건설과 운영, 해양환경 보전 및 연안 관리, 수산 자원 관리와 수산업 진흥 및 어촌 개발, 선박 및 선원 관리와 해양안전심판 등이다. 조직은 장관과 차관 밑에 3실(기획조정실·해양정책실·수산정책실) 3국(해운물류국·해사안전국·항만국) 7관 38과(관 포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속기관으로는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국립해양조사원·어업관리단·국립해사고등학교·해양수산인재개발원·지방해양항만청(11개소)·해양안전심판원·국립수산과학원 등이 있다.

해양수산부가 관할하는 ‘해운법 시행령(제8조)’에 따르면 청해진 해운이 增船(증선)을 하려면 <인천-제주 항로의 ‘평균운송수입률’이 25% 이상(연 평균)>을 유지해야만 증선 허가가 나오게 규정돼 있다. 수입률이 보장되지 않는 적자 노선에 증선 허가를 내줄 경우 船社(선사)들의 불법, 탈법적인 운영이 불가피한 점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세월호가 한국으로 팔리기 전 일본의 선박검사기관에서 발급한 공인 자료에 따르면 이 배는 804명의 여객정원에 재화중량톤수(載貨重量-화물적재톤수)가 3981톤이었다. 청해진 해운이 이대로 해양수산부 산하기관인 인천지방 해양항만청(인천 항만청)에 서류를 제출할 경우 평균운송수입률 기준인 25%를 밑돌아서 해수부 항만청은 증선 허가를 내줄 수 없었다. 청해진 해운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청해진 해운은 담당 관청인 인천지방 해양항만청(인천 항만청)에 일본의 ‘선박검사 공식문서’ 대신 ‘선박도입 계약서’를 제출하는 편법을 썼다. 그리고 그 계약서에 축소 조작된 여객정원(750명)과 재화중량톤수(3000톤)를 기입해 둠으로써 기준에 부합하는 평균운송수입률을 산출하도록 했다. 해수부 산하 인천 항만청은 이 계약서를 근거로 평균운송수입률을 계산한 결과 26.9%가 되어 선박 도입을 허가해 준 것이다. 이런 사실은 침몰사건 후 감사원의 조사과정에서 드러났고, 해수부 4급 관료 한 명이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현재 감사원은 검찰에 해수부 관계자들을 정식 수사토록 요청해 둔 상태다.

해수부 항만청으로부터 중고 선박의 도입 허가를 받는데 성공한 청해진 해운은 앞서 언급한 대로 선박의 개·변조를 통한 증축을 시도했다. 그 결과 여객정원은 921명으로, 재화중량톤수는 3794톤으로 늘어났다. 이렇게 되면 다시 평균 운송수입률은 24.2%로 감소된다. 하지만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은 이런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2013년 3월부로 최종 인가를 내 준다.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이 과정에서도 로비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제 2단계 - 船級은 컨테이너 단위무게를 낮춰서 통과

이렇게 첫 번째 관문인 해양수산부의 인가를 받아낸 청해진 해운은 두 번째 관문인 ‘한국선급’으로부터 ‘복원성 등 선박 검사’를 통과해야 했다. 한국선급(韓國船級·Korea Register of Shipping)은 비영리 민간 기업으로 국내 유일의 선급단체이다. KR로 불리는 한국선급은 해양에서의 인명과 재산의 안전을 도모하고 造船·海運 및 海洋에 관한 기술진흥을 목적으로 1960년 6월(민법제32조)에 창립됐다. 국내 15개 지부, 해외 26개 지역에 사무소를 두고 440여 명의 직원 규모를 자랑하는 중견기업이다.

‘船級(선급)’이란 글자 그대로 ‘선박의 등급’이다. 자동차의 경우 정부로부터 허가받은 1급 자동차 정비공장이 차량점검 업무를 대행하고 검사필증을 교부하는데 선박도 이러한 검사필증을 득해야만 운항할 수 있다. 선급이 처음에는 보험사와 선주 사이의 증명서 발급기관으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선박의 최초 설계부터 관여해 건조 후 선체 구조 설비에 관한 도면 승인, 세월호와 같은 중고 선박의 개조나 변조로 인한 선박의 안정성 여부 등도 검사한다. 일본으로부터 중고선을 도입해 중개축한 세월호는 당연히 한국선급으로부터 선박 안전을 보장하는 복원성 등을 검사받아야만 했던 것이다.

2013년 1월, 세월호의 선박검사를 수행한 한국선급은 선박 자체 무게인 輕荷重量(경하중량) 및 무게중심을 산출하는 과정에서 세월호 선미의 吃水(흘수) 계산을 잘못(?)함으로써 선박 중량을 63톤이나 적게 산정했고(객실 증축은 모두 선미에서 이루어졌다), 5층 선실을 전시실로 바꾸면서 대리석 등을 깔아 237톤이나 무게가 증가한 사실도 잡아내지 못했다(검찰 공소장). 게다가 선박의 ‘잠긴 깊이’와 ‘중량물에 따른 선박의 기울기’를 실험하는 傾斜試驗(경사시험)에서도 청해진 해운측은 지능적인 방법을 썼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세월호의 복원성이 불량하게 측정되자 설계업체는 컨테이너의 단위무게인 대당 5.65톤을 3톤으로 변조해서 서류를 제출했다.

세월호의 컨테이너 적재 대수는 54대다. 정상적이라면 5.56톤의 컨테이너 54대를 실을 경우 이들 무게만 305톤의 중량이 나가게 되어 복원력이 약해진 세월호 전체의 화물무게를 초과하게 된다. 당연히 선급에서는 승인해 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를 정상적으로 처리하려면 컨테이너 적재 대수를 절반 이하로 줄여야 했다. 그러나 청해진 해운은 컨테이너 대수를 줄이는 대신 컨테이너 단위무게를 서류상으로 5.56톤을 3톤이라고 줄여버렸다. 이로써 3톤×54대 = 162(톤·대)란 계산이 성립된다. 서류상으로는 162톤이므로 54대의 컨테이너가 고스란히 실리게 되었던 것이다. 과연 한국선급의 담당자가 서류를 잘못 판독해서 통과한 것일까?

한국선급은 선박에 실리는 화물의 고박(固縛·lashing) 기준도 검토하고 승인하는 권한도 갖고 있다. 한국선급이 보유한 고박 기준에 따르면 승용차의 경우 차량 바퀴 4개를 각각 고정하게 돼 있다. 그러나 청해진 선사가 제출한 고박 배치도는 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촘촘하게 적재한 차량의 고박 배치도를 제출했다. 예를 들어 1층 선창(船倉)인 D데크의 경우, 배치도에는 승용차 66대가 빽빽할 정도로 그려져 있었다. 규정대로 한다면 D데크에는 승용차가 8대만 실려야 정상적인 고박이 가능하다. 8대만 실어야 할 곳을 66대나 싣겠다고 제출한 도면을 보고도 한국선급은 문제 삼지 않은 채 승인을 해 준 것이다.


제 3단계 - 海警은 접대로 통과?

청해진 해운이 두 번째 관문인 한국선급의 검사기준을 속여 넘기는데 성공하자 이번에는 해양경찰청이란 관문이 나타났다. 사실상 마지막 관문이었다. 청해진 해운이 사법경찰권을 가진 해경을 가장 두려워했을까? 실제는 정반대였다.

청해진 해운이 해양경찰청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이유는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을 승인하는 권한을 海警이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말 해경에게 그런 권한이 있는 것일까? 海警이 ‘운항관리규정’을 승인하기 위해서는 해양경찰관이 세월호에 탑승한 채 해당 항로를 따라 왕복 승선한 후 선박복원성 계산서, 화물적재 중량인 載貨重量(재화중량), 컨테이너 적재 개수, 차량 적재 대수, 고박 승인서 등 해수부와 한국선급이 발급한 자료를 실제와 비교 검토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이 제도는 해양수산부와 한국선급 그리고 해양경찰청과의 권력관계를 잘 보여준다. 海警이 해수부의 외청(外廳)으로 하부조직처럼 취급되고, 海警 근무자가 퇴직 후 한국선급의 산하기관으로 재취업이 가능한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이상 海警은 이들과의 권력관계에서 결코 독립적일 수 없을 것이다. 특히 金大中 정부시절부터 盧武鉉 정부에 이르는 10년 동안 정치권으로부터 온갖 특혜를 받아 온 청해진 해운의 사업확장 계획에 海警이 발목을 잡겠다는 발상 자체가 비현실적인 일이 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 海警은 신분격하의 압력에 시달렸지만 청해진 해운은 1900억 원의 빚을 탕감받고 再起(재기)했다. 청해진 해운의 뒤를 봐주는 권력의 존재를 어린아이라도 읽을 정도였다. 따라서 해수부와 한국선급이 통과시킨 서류를 海警이 뒤집어 버린다는 것은 거의 쿠데타에 준하는 사건이 되는 셈이다. 세월호와 관련해서 당시 해양경찰관들의 공무집행이 어떤 식으로 진행됐는지를 들여다보자.

‘세월호 운항관리규정’ 심사위원회가 열리기 4일 전인 2013년 2월15일은 금요일이었다. 이날 밤, 인천 해양경찰서 해상안전과 이성일 경사, 김재학 경장, 장지명 경정(57세·당시 과장) 등 3명은 청해진 해운 소속의 오하마나호를 타고 3박4일간 제주도 출장을 떠난다. 이들이 제주도에 도착한 토요일 오전부터 월요일 오후까지 출장기간 동안 모든 경비는 청해진 해운에 의해 지출됐다. 일종의 접대로 보인다. 세월호 사고 이후 감사원의 감사 보고서에는 ‘교통편의, 식대, 주류, 관광 등’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감사원은 해경 직원들이 ‘출장’을 빙자한 ‘ 뇌물성 접대’를 받은 것처럼 발표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는 그 액수가 궁금했다.

검찰의 공소장은 감사원의 보고서보다 구체적으로 海警이 향응 받은 내용을 담고 있다. 모종의 경로를 통해 입수해 본 공소장은 그러나 기자를 큰 소리로 웃게 만들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기 3인은 2013년 2.15~19일 기간 동안 인천-제주 출장(갈 때는 오하마나호, 올 때는 세월호 승선). 동 기간 중 여객선 운임 + 제주지역 식사 + 음료수, 맥주 등 + 옥돔 2만 원 상당 선물 등을 모두 합쳐 총 210만 원(3명 모두 합친 금액)의 뇌물 수수 혐의.>

해경 1인당 3박4일 동안 70만 원씩 접대를 받았다는 것이다. 하루 18만 원이 안 된다. 그 속을 들여다보자. 오하마나호의 로열실은 19만 9000원, 세월호는 18만 원이니 여객선 운임은 37만 9000원이다. 심사를 위해 여객선에 승선해야 하는 해경직원들을 무임승선자로 취급한 검찰의 처사는 일단 무시하자. 여기에 기념선물로 한 사람당 2만 원 상당의 옥돔 한 마리를 합치면 39만 9000원이므로 1인당 70만원 중 나머지 31만 1000원이 3박4일간 해경 한 사람당 식사와 음료 및 맥주값이란 얘기다. 총 여덟 번의 식사가 있었을 것이므로 한 사람당 매끼에 3만 9000원이 안 된다. 이것을 뇌물수수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검찰은 이 내용으로 구속영장을 상신했으나 법원은 불구속 기소로 결정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원은 마치 대단한 향응을 받은 것처럼 발표하고 언론은 이를 여과없이 보도하면서 해경과 청해진 해운과의 부패구조가 형성되어 있는 것처럼 보도했던 것이다.


검찰의 海警 수사

세 명의 해양경찰관들이 불구속 기소가 되자 검찰은 지난 5월16일, 위 세 명 중 장지명 경정만을 다시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검찰은 그를 구속시키는 데 성공한다. 역시 공소장을 확인해야 했다. 1957년생인 장지명 경정은 인하대학교 중국어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에 특채(경사)로 해양경찰이 됐다. 중국주재관을 역임했으며 각종 공로상과 국무총리 표창을 받은 바 있었다. 검찰의 공소장의 죄목은 세 가지였는데 뇌물수수,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공전자기록등위조작 및 위작공전자기록 등이다.

이 중 뇌물 수수부분을 보면 이 또한 가관이다. 장지명 경정은 2012년 1월27일부터 2014년 1월21일까지 2년 동안 인천해양경찰서 해상안전과 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이후 그는 동해청 소속 특공대장으로 전근). 검찰은 장지명 경정이 해상안전과 과장으로 재직하던 2년 동안 선사 관계자들로부터 10회에 걸쳐 향응을 받은 혐의를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가. 피고인은 2012. 4. 26. 이경재 등 2명으로부터 인천 중구 신포로 35번길 6에 있는 ‘하나궁’ 유흥주점에서 52만 원 상당의 향응(피고인 취득액 약 17만 원)을 제공받았다.

나. 피고인은 2012. 10. 4. 이경재 등 2명으로부터 인천 중구 개항로 22에 있는 ‘염염집’ 주점에서 8만 5,000 원, 같은 구 신포로 35번길 6에 있는 ‘하나궁’ 유흥주점에서 50만 원 등 합계 58만 5,000원 상당의 향응(피고인 취득액 약 19만 5000 원)을 제공받았다.

...<중략>......
자. 피고인은 2013. 6. 18. 위와 같은 방법으로 이경재 등 3명으로부터 위 ‘선창’ 주점에서 34만원, 위 ‘볼매’ 유흥주점에서 150만 원(이 중 100만 원은 피고인의 나중에 지불할 술값을 선납해 준 것임) 상당의 향응(피고인 취득액 121만원)을 제공받았다.

피고인은 2012. 경부터 2014. 1경까지 수시로 인천관내 여객선 대표 내지 임원들로부터 해경 및 운항관리자들의 여객선 안전관리 업무시 편의를 봐 달라는 취지의 청탁과 함께 위와 같이 총 10회에 걸쳐 합계 738만 1,000 원(피고인 취득액 합계 약 315만 5000 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받음으로써 그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하였다.]

검찰은 장지명 과장이 매 평균 31만 5500원어치의 향응을 2년간 10회에 걸쳐 선사 관계자들로부터 받았노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2년 전 술 마신 사람들을 전부 불러내 그 기억들을 어떻게 재조합했는지도 신기할 따름이거니와 이것을 향응이라고 친다면 도대체 이 향응이 세월호의 운항관리규정 통과와 무슨 연관이 있다는 것일까. 그러나 검찰의 이런 시도는 이번에도 언론에 그대로 먹혀들었다. 거의 모든 언론은 이런 사실을 덮어둔 채 검찰의 발표만 여과없이 실었다. 5월20일자 KBS 뉴스만 보자.

[자막 : ‘선사 모임서 뇌물수수’ 해경 특공대장 구속.

앵커 : 해경간부가 선주들로부터 향응을 제공받고 부실한 안전점검을 눈감아 줬다가 구속됐습니다. 인천지검 해운비리 수사팀은 동해 해경청 특공대장 쉰일곱 살 장 모 경정을 구속시켰는데요, 뇌물수수, 또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장 모 경정은 지난해 인천해양경찰서 해상안전과장으로 근무를 하면서 인천항 선주들 모임에서 수백만 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로써 검찰은 일반 국민들로 하여금 해경이 선주들의 뇌물성 접대를 받고 세월호의 불법운항을 눈감아 준 죄인으로 인식시키는 데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2년 전 17만원어치 술을 얻어 마신 것도 뇌물 수수로 죄를 삼을 수 있는 검찰이 어째서 海警이 참여한 세월호 운항관리규정 심의과정에서 海警의 범죄사실을 찾아내지 못한 것일까.



海警은 ‘권한 없는 책임자’

다시 이야기를 원점으로 돌려 그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추적해 보기로 하자. 제주도에서 2박3일간 접대(?)를 받은 해양경찰관들은 월요일 밤에 시험운항중인 세월호를 타고 제주항을 출발, 다음날 오전 9시쯤 인천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오후 2시부터 열리는 ‘세월호 운항관리 규정’ 심사위원회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한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海警만이 아니었다.

심사위원회에는 海警 해상안전과 과장과 계장이 참석했고 해운항만청 공무원, 해운조합 인천지부 직원, 그리고 한국 선급 인천지부 직원과 한국선박안전기술공단 인천지부 직원 등 총 6명이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다.

진행방식은 운항관리규정의 요지를 설명하고 심사위원들의 검토 의견을 수렴하는 식이었다. 이날 검토할 서류들은 운항관리규정(보고서), 선박국적증서, 선박검사증서, 차량적재도, 보험증권(메리츠 화재), 선박제원표 등이었다. 운항관리규정은 사업자가 직접 작성해 관할 해양경찰서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다가 운항관리규정에 포함될 내용 중에 최대화물적재량이나 재화중량 등을 명시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었다(해운법 제21조 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15조 2항). 법 규정을 이미 해수부가 이런 식으로 만들어 두어 해경으로서는 사법권을 행사할 근거조차 남겨두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海警은 ‘권한 없는 책임자’가 됐고 이로써 검찰도 해경을 문제 삼을 수 없게 돼 버렸던 것이다.

항만 전문가들은 선박의 운항관리규정을 확정지을 때 가장 중요한 서류로는 ‘재화중량’, ‘차량 적재 대수’, ‘선박 복원성 계산서’ 등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날 청해진 해운측은 이 서류들을 단 한 건도 심사위원들에게 제출하지 않았다. 규정에 의해서 제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심사위원들 누구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운동선수를 뽑는 데 건강진단서도 제출하지 않은 사람을 앉혀놓고 ‘선발 심사’를 한 셈이었다. 海警은 해수부와 한국선급 그리고 선주들의 ‘들러리’만 섰던 셈이었다. 사고가 발생하면 이 ‘들러리’가 대신 몰매를 맞게 돼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최종 확정된 운항관리규정에 기재된 재화중량(3963톤)과 차량적재대수(총 148대)는 복원성 계산서의 승인 값(최대 3794톤, 차량 97대)을 초과하게 되는데도 아무런 검토 없이 통과하게 된 것이다.

이날 海警 측 심사위원들은 나름의 노력을 보이기는 했다. 그 결과는 청해진 해운측에 합격 승인 대신 ‘12개 보완사항’을 제시하면서 ‘조건부 승인’으로 마무리지어졌다. 겉으로는 모두가 심각한 얼굴로 열심히 일하는 전문가들처럼 보였을 것이다.


유병언이 비웃었을 대한민국의 해양권력

서로간의 표정이 화기애애하다 해서 반드시 속마음까지 그러하지는 않는 법이다. 아마도 청해진 해운측은 속으로 자신들로부터 접대 받고 즐거워하면서 형식적으로 公務를 집행하는 해양경찰관들을 경멸하고 있었을 것이다.

감사원의 감사 자료를 보면 청해진 해운 측이 海警을 우습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 발견된다. 청해진 해운은 海警이 요구한 ‘12개 보완사항9개만 처리했다. 나머지 3개는 무시했다. 특히 심사위원회(海警)선장이 직접 조선(操船-배를 조종함-)할 구간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할 것이라고 보완 요청한 항목에 대해 청해진 해운 측은 보완 대신 海警의 보완요청 문구 자체를 삭제해 버렸다. 이렇게 해 놓고도 2013225, 인천해양경찰서는 청해진 해운측에 세월호 운항관리 규정을 승인해 주었다. 이로써 세월호가 사실상 운항 허가를 취득한 셈이 됐다.

그날 밤 축배를 들었을 청해진 사람들과 유병언 회장 일가는 서로 수고했다며 덕담을 나누고 자신들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면서 해수부와 한국선급 그리고 海警을 신나게 비웃고 있었을 것이다. 선주들에게 비웃음을 사는 대한민국 해양권력의 초라한 肖像이었다. 그날 이후 탄생한 세월호는 인천-제주간 여객선으로서 정식 취항해서 2014415일 밤까지 운 좋게 바다를 떠다니며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

[ 2014-10-01, 15:3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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