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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警 김경일 艇長(정장)의 운명적 선택- “오랜만에 남쪽으로 한 번 돌아보자”

이동욱(조갑제닷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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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마지막 出航(출항)⑤ P123정의 南下(남하)는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구조자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행운이 됐지만 P123정 艇長(정장)과 승조원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惡夢(악몽)이 됐다.

두 대의 무선전화기

세월호 조타실에는 두 대의 VHF 무선전화기가 양쪽 벽에 한 대씩 거치돼 있었다. 左舷(좌현) 벽면에는 의무적으로 청취하게 돼 있는 ch16번의 무선전화기가 켜진 채 걸려 있었다. 일종의 핫라인인 ch16 무선전화기는 진도 VTS와 제주 VTS는 물론이고 전파통달 거리 내의 모든 선박들이 들을 수 있다.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이 무선전화기를 사용토록 돼 있었는데 인근의 모든 선박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릴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안전교육을 받은 바 없었던 세월호 승조원들 중에서 이 장비의 역할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세월호 조타실의 右舷(우현) 벽면에는 ch67번으로 설정해 둔 무선전화기가 걸려 있었다. ch67은 진도 항만VTS의 교신주파수이다. 일주일에 세 번씩 인천-제주를 왕복하는 세월호는 통과지역의 관제센터인 진도 연안VTS와 교신할 일이 거의 없지만 항로상 진도 VTS의 관제구역 내에서 관제 정보를 청취하기 위해 진도 VTS 채널인 ch67번을 설정해 두었다. 대신 제주항에 진입할 때는 진입보고 의무가 있어 제주 항만 VTS 주파수인 ch12번으로 돌려 사용해 왔다. 세월호가 진도 VTS의 관제구역으로 진입하면서부터 ch67번 무선전화기의 스피커를 통해 진도 VTS가 다른 선박들을 관제하는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세월호 조타실에서도 진도 VTS의 관제구역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 조타실에서는 진도 VTS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무선전화기와 핫라인처럼 쓸 수 있는 ch16번 무선전화기가 켜져 있었다.

해경의 관제사들은 전부 3급 항해사로 商船(상선) 근무 경력을 갖고 있다. 그들은 교통관제를 주임무로 하지만 의심나는 선박을 찾아 추적하는 경찰업무도 병행한다. 만약, 선박에서 허위 정보를 AIS에 입력하면 VTS의 모니터에서도 허위정보가 사실처럼 뜬다. 디지털 장비에 익숙지 않은 고깃배 선장이 자신의 배를 유조선으로 입력해 두면 VTS에서는 유조선 모양의 타깃이 등장한다. 이럴 경우 관제사는 유조선을 눈여겨 보지만 머지않아 의심을 하게 된다. 유조선이 갈 수 없는 구역으로 가거나 속도가 느리거나 해서 그 정체가 드러난다.

선박을 통해 이루어지는 밀수나 밀항 혹은 간첩선 등 각종 해양범죄들은 선박의 정체를 숨기거나 假裝(가장)하는 일이 빈번하다. 특히 북한의 어느 항구를 거쳐 이동하는 선박은 예의 주시해야 한다. 이런 배들은 중국에서 우리 영해로 진입한 다음 제주해협을 거쳐 북한의 동해로 드나들곤 한다. 이들은 AIS에 솔직한 정보를 입력하는 법이 거의 없다. 연안VTS 관제사들의 임무 중에는 이처럼 허위정보를 AIS에 입력한 채 운항하는 괴선박의 추적감시도 포함돼 있다. 사법권과 선박직 경력을 가진 해양경찰 소속의 연안VTS 관제사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07시 30분 조타실

07시 30분. 세월호는 태안반도를 지나 南進(남진)을 계속하다 흑산도 인근 해역의 무인등대가 설치돼 있는 매물도로 접근중이었다. 매물도는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에 위치하는 둘레 1km 정도, 最高點(최고점) 150m로 섬 전체의 60%가 草地(초지)와 상록수림으로 덮여 있는 무인도이다. 인천-제주 항로를 따라 내려오면 흑산도 인근 해역에서 우현으로 보이는 외딴 섬이 매물도이다.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의 매물도와 이름이 같아 지도에 따라서는 교맥도라는 표기를 하기도 한다. 그 섬  동쪽으로 14.8km 부근에 우의도가 있어 매물도와 우의도를 사이에 두고 큰 선박들이 오가는 주요 항로가 되고 있다.

박한결 3등 항해사(25·女)가 아침을 거른 채 조타실로 들어왔다. 1항사 강원식 씨(42)와 교대를 위해서였다. 그녀는 매물도를 통과하면 자신의 근무시각인 08시와 일치한다고 알고 있었다. 원래 그녀의 근무시간대의 항로는 도착지인 제주항 부근이었으나 어제 밤 2시간 30분 늦게 출항함에 따라 평소 1항사가 근무를 하던 곳을 그녀가 맡게 된 것이다. 앞으로 약 한 시간 후면 조류가 빨라 위험한 맹골수도를 통과하게 되므로 이준석 선장(68)도 계속 조타실을 지키고 있었다. 이준석 선장은 박한결 3항사가 들어오며 인사를 하자 “왜 아침을 안 먹고 다니냐. 잘 먹고 다녀야 한다”며 딸처럼 걱정해 주었다.

잠시 후 기관장 박기호 씨(53세)도 조타실로 들어와 인사를 나누었다. 기관장은 아침에 선장과 함께 식사를 하고 아래층의 기관실로 내려가는 게 보통이지만 밤사이 별 일은 없었는지, 배의 속도는 잘 나가는지, 제주항에는 몇 시에 정확한 입항을 하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조타실에 들르기도 한다.

세월호는 7시 30분경에 매물도를 우현으로 두고 통과하고 있었다. 濃霧(농무)가 있었다. 선장은 1항사와 3항사 박한결의 교대시간인 8시가 지나서도 계속 조타실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맹골수도를 통과하기만 하면 큰 문제는 없다고 보았다.


4월16일 08시 悲運의 P 123艇(정)

목포 해양경찰서 소속 100톤급 순찰정 P 123艇(정)은 통상 3박4일간 바다로 나와 순찰 및 경계 임무를 수행한 뒤 복귀해서 2박3일간 정비와 휴식을 갖는다. 해양경찰관 10명과 義警(의경) 3명으로 구성된 13명의 승조원들은 艇長(정장)인 김경일 경위(57)의 지휘하에 바다위에서 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인자한 노년의 얼굴을 가진 김 정장의 희망은 2년 뒤의 명예로운 퇴직일 정도로 소박했다. 평생을 해경으로 바다에서 보낸 김경일 정장을 보는 부하직원들의 신뢰는 대단했었다.

P123정의 순찰구역은 남북으로 약 30마일(48km)의 폭에 서해 領海(영해) 끝단까지 나가곤 한다. 북쪽 순찰한계선은 비금도와 마진도 부근이고 남쪽으로는 맹골수도 못 미처 있는 독거도까지가 순찰 한계선이었다. 그 날도 이들은 중국어선들의 불법漁撈(어로) 단속을 위해 순찰 구역을 항해 중이었다. 순찰지역이 넓어서 별다른 상황이 없을 경우 정장 임의대로 순찰구역을 정하고 순찰항해를 지속한다.

08시 무렵, 정장 김경일 경위는 “오랜만에 남쪽으로 순찰을 한 번 돌아보자”고 말했다. 지금까지 독거도 부근으로는 거의 내려간 적이 없었다. 중국 어선들은 비금도 부근에서 출몰하곤 했으나 요즘은 뜸해졌으므로 다른 海域을 노릴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이 배가 세월호의 자취를 따라 함께 南行(남행)하는 줄은 아무도 몰랐다. 조타수가 船首(선수)를 남쪽으로 돌리자 P123정은 느린 속도로 남하하면서 주변 해역을 정찰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 P123정의 南下(남하)는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세월호가 위기에 빠졌을 때 최근접 함정으로서 사고 발생 35분 만에 현장에 도착하여 침몰 전까지 선체 외부로 나온 승객들 172명중 79명을 구조할 수 있었다(나머지는 헬기가 35명, 어선과 어업지도선이 58명 구조). 그러나 구조자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행운이 됐지만 P123정 정장과 승조원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惡夢(악몽)이 됐다.

그들은 언론에 의해 구조실패로 몰렸고 급기야 대통령으로부터 해경 해체 선고를 받았으며 심지어 정장 김경일씨가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되는 사태를 맞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들이 남쪽이 아닌 북쪽 해역으로 순찰 구역을 결정했더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을 것이다. 대신 P123정의 어느 누구도 구조실패의 책임을 지는 일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운명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잔혹한 상황을 당시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채 P123정은 맹골수도를 향해 南進(남진)을 계속하는 중이었다. 한편, 해경의 지휘함인 3009함은 홍도와 가거도 사이 해역에서 중국어선 불법어로 검거작전에 나가 있었다.


4월16일 08시 30분

김태환씨는 아침 식사를 위해 식당 앞 로비의 소파에서 시간을 보내다 식당 문이 열리자 일번으로 배식판을 들고 아침 식단을 받았다. 이날 아침 김태환씨는 무엇을 먹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디저트로 바나나가 나왔다는 것만을 기억해 냈다. 식당이 문을 열었지만 학생들은 들어올 수 없었다. 학생들은 일반 승객들이 식사를 마친 뒤에 단체로 들어오게 했다. 대단히 넓은 식당이었지만 300명이 넘는 학생들이 한 번에 앉아 먹을 만큼은 되지 않아서 차례대로 식사를 하고 자리를 비켜줘야 했을 것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서던 김태환씨는 식당 앞에 학생들이 줄지어 선 것을 보았다. 대략 이때가 8시쯤 되었을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지난밤에 씻지도 않은 채 잠잔 것이 걸려 샤워장을 찾았다. 샤워장은 4층에 설치돼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남성 전용 샤워장으로 들어서자 입구에는 학생들이 벗어놓은 신발들로 가득했다. 김태환씨는 그 때문에 마루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신발을 벗어두고 바닥의 다른 사람들의 신발을 두어 발자국 밟고서야 마루로 올라설 수 있었다.

샤워장은 학생들로 가득 차서 시끄러웠다. 그러나 그가 샤워를 마치고 옷을 입고 있을 때 학생들은 우루루 빠져 나가고 거의 없었다. 머리를 털며 마루로 나오자 한 학생만이 뒤따라 나왔다. 김태환씨는 그 아이와 대화를 나누었다.

“몇 살이냐?”
“열여덟이요.”
대답하며 아이는 씩 웃었다.
“어디서 왔냐?”
“안산 단원고요.”
아이는 신이 나 있었다. 8시30분이 지나고 있었다.

김태환씨는 그제서야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이 경기도 안산의 단원고등학교 학생이란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그가 신발을 신기 위해 마루 끝에 갔을 때는 아까와는 반대로 다른 신발이 거의 없었고 한 학생과 김 씨의 신발만 마루에서 2m쯤 떨어진 곳에 놓여 있었다. 양말을 신었지만 그대로 바닥을 딛고 신발을 신어야 했다. 그런데 김 씨가 바닥을 딛자 물이 양말 속으로 스며들어왔다. 학생들이 우루루 몰려 나가면서 물기를 흘린 모양이었다. 하는 수 없이 김태환씨는 3층의 객실로 돌아가 양말을 갈아 신었다.

그는 다시 객실에서 나와 반대편의 베란다 밖으로 나갔다. 세월호의 베란다는 左舷(좌현) 전체를 돌아 우현 중간까지만 설치돼 있었다. 이때 김 씨는 평소와 다른 자신의 행동을 기억했다.

“저는 성격이 급한 편입니다. 제가 담배를 즐겨 피우는데, 입에 물면 그대로 불을 붙이거든요. 그런데 그 날은 한 번도 하지 않은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3층 베란다로 나오면서 담배를 입에 물었는데 제가 불을 붙이지 않은 채 계속 물고만 걸어 다닌 겁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3층 베란다를 다 둘러본 다음, 외부 계단으로 4층에 올라가 다 둘러보고 다시 5층으로 올라간 거죠. 그 때까지도 담배 불을 붙이지 않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도 내가 왜 그랬을까 싶어요. 내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옥상이라고 불리는 5층 船尾(선미) 갑판 우측에 도착해서야 김 씨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호주머니에서 접혀진 제주도 관광지도를 꺼냈다. 배 안에 진열되어 있던 팸플릿 형태의 제주도 관광지도였다. 김 씨는 핸드폰에 연결된 이어폰을 귀에 꼽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지도를 펼쳤다. 소금기 섞인 쌀쌀한 바람과 함께 흐린 아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부르는 노래를 누군가가 듣고 흉보지는 않을까 싶어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5층 갑판 위에는 김태환씨를 제외한 누구도 없었다. 시야에는 세월호의 거대한 청색 굴뚝만이 잿빛 하늘과 맞닿아 있는 듯했다. 5층에서 4층을 내려다보았다. 4층 베란다에 두 여학생들이 나왔다가 이내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담배를 다 피운 김태환씨가 꽁초를 버리다가 눈앞에 나타난 섬을 발견하고 놀랐다. 깎아지른 듯 벼랑 위에 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인 섬이었다.

“배가 섬 가까이 지나가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섬을 아주 자세히 볼 수 있었습니다. 바위가 많은 섬이었는데 꼭대기에만 나무가 있었어요. 알고 보니 그 섬이 屛風島(병풍도)였지요. 제가 수영을 좀 했어요. 그래서 섬을 보면서 수영하면 갈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가까웠단 얘기지요.”


맹골수도

세월호는 행정구역상으로는 전라남도 진도군의 최남단에 위치한 면적 약 0.3㎢, 둘레 약 1.6㎞, 최고점 129.4m의 무인도인 병풍도를 오른쪽에 두고 남하하는 중이었다. 김태환씨가 3층 베란다에서부터 5층까지 올라오는 동안 세월호는 맹골도(孟骨島)와 서거차도(西巨次島) 사이의 맹골수도(孟骨水道)를 지나고 있었다. 김씨가 병풍도를 마주하고 있던 상황에서는 우측 후방 약 11km지점에 맹골도가 있었고 그 섬과 동쪽으로 약 5.5km 지점에 서거차도가 있었다. 세월호의 항로는 두 섬 사이로 빠져나와 병풍도를 기점으로 변침을 하게 돼 있었다.

세월호가 통과했던 맹골수도는 황해를 통과하는 주요 항로로 인천항에서 출발해 남해行 여객선과 선박들이 주로 이용해서 1일 평균 수백 척의 배들이 통과하는 곳이다. 그러나 조류가 빨라 2002년부터 20년간 맹골수도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해난사고는 총 58건으로 그 중 선박충돌사고가 38건에 전복(顚覆)과 좌초사고도 각 6건씩 기록된 지역이다.  

유체역학(流體力學)의 원리를 정리한 스위스의 물리학자 베르누이(1700~1782)는 ‘유속(流速)은 통과하는 단면적에 반비례 한다“는 유명한 유체역학의 공식을 만들어 냈다. 그의 공식에 따르면 섬과 섬 사이의 폭이 좁을수록, 수심이 낮을수록 물살의 흐름은 빨라진다는 얘기다. 실제로 맹골수도(孟骨水道)는 우리나라에서 명량해협의 울돌목 다음으로 물살이 빠르기로 유명한 해역이다. 울돌목의 조류는 수면 평균 11노트, 바다 표층 최대 13노트가 된다. 초속 5.5m에서 6.5m의 속도로 물이 흐른다는 얘기다. 맹골수도가 그 다음으로 강한 조류가 흐르는데 최대 유속은 시속 6노트 이상. 심할 때는 파도가 없어도 초속 3m가 넘는 속도로 물이 흘러 장마철의 개울물을 보는 듯하다.


08시35분 조타실

08시35분. 세월호가 맹골수도를 통과하기 위해 약간의 좌변침을 했다. 조타수는 조준기씨(55)였다. 세월호의 침로(針路)는 135도, 시속 19~20노트로 항해중이었다. 세월호가 20노트의 속도로 6km 길이의 맹골수도를 통과하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6분 정도였다.

8시45분. 맹골수도를 빠져나와 병풍도를 향하고 있을 무렵 선장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조타실에서 나와 자신의 방으로 갔다.


‘물때’와 潮流

바다의 潮流(조류)는 좌우는 물론이고 상하로 움직이기 때문에 단순히 유체역학의 원리만으로 설명이 부족하다. 뱃사람들의 표현으로 ‘물때’를 알아야 더 정확한 조류의 强度(강도)를 알 수 있다. 달과 태양의 引力(인력)으로 바닷물이 보름마다 순환되는 조류의 성질을 일치감치 터득한 뱃사람들은 이 ‘물때’를 이용해서 항해를 하거나 고기를 잡아왔다. 세월호가 항해하던 그 날의 ‘물때’는 어땠을까.

4월16일은 음력 3월17일이다. 하늘이 잔뜩 흐려 밤새 항해하는 동안 누구도 달을 보지 못했겠지만 보았더라면 필시 보름달에서 약간 기운 상태였을 것이다. 보름이거나 그뭄이 되면 바다는 ‘사리’가 된다. 이때는 달과 태양의 위치가 일직선상에 놓여 지구에 미치는 인력의 크기가 최대치가 되는 때다. 당연히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최대치가 되고, 따라서 물살도 빨라진다. 이때가 大潮期(대조기)이다. 반대로, 상현반달이나 하현반달이 뜨는 때는 ‘조금’이다. 이때를 小潮期(소조기)라 한다.

바닷사람들은 ‘물때’를 15단계로 나누고 1물, 2물, 3물…11물, 한객기, 대객기, 조금, 무시, 1물, 2물…순으로 이름을 지어 쓴다. 1물이 느린 조류이고 숫자가 높을수록 조류가 빨라진다. 6물일 때가 ‘사리’로 바닷물의 상하 폭이 가장 큰 때이지만 조류는 계속 加速(가속)해서 11물때가 가장 빨라진다. 그러다 서서히 속도가 줄어든다. ‘조금’을 전후해서 한객기, 대객기, 무시 등의 이름이 붙은 때는 바다가 잔잔해지고 물이 맑아질 때여서 항해하기 좋은 때다.

세월호가 맹골수도를 통과하던 날의 ‘물때’는 ‘8물’이었다. 뱃사람들은 ‘8물’이라고 하면 바다의 상태를 한눈에 떠올릴 수 있다. 대조기에서 이틀 지난 날로 여전히 물의 이동량이 많고 물살이 빨라지며 몹시 혼탁하다는 얘기다. 국립해양조사원(www.khoa.go.kr)의 조류예측 자료는 당시 사고 지점의 조류를 자세히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국립해양조사원의 측정지점은 사고지점으로부터 약 2km 남쪽에 위치해서 실제 사고지점에서는 이 데이터보다 약 0.5노트 이상 더해야 한다.

4월16일 오전 05시50분에 조류는 남동방향 4노트 정도로 기록돼 있다. 그러다가 세월호 승객들이 아침 식사를 하던 08시24분의 바다는 轉流(전류) 시각이었다. 남동 방향으로 흐르던 조류가 북서 방향으로 흐름이 바뀌는 때였다. 이 시기를 전후한 약 30분 동안을 停潮(정조)라고 한다. 조류가 거의 멈추는 시기다. 이후 조류는 북서쪽으로 흐르기 시작해서 오전 11시 41분에 북서쪽으로 약 3.4노트의 속도로 빠르게 흘렀다. 따라서 사고발생 시점이던 08시48분 무렵 세월호 주변의 바다는 전류기를 벗어나 북서쪽으로 향하던 조류를 맞고 있었지만 그 속도가 0.5노트 이하로 빠르지는 않았다. 물의 힘이 배의 침몰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바다 위를 세월호가 스케이트처럼 미끄러지듯 항해중이었다는 얘기다.<계속>

 

[ 2014-10-08, 09:2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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