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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과 구조 순간을 복원한다
제3부 沈沒(침몰)②침몰 방송이 나간 후 구조본부를 운영하던 海警(해경)의 모든 상황실들이 청와대 수석실을 포함한 중앙 행정부처로부터 分(분) 단위로 걸려오는 전화에 답변해야 해 업무가 마비됐다. 한 장관의 여러 비서들이 경쟁적으로 전화를 걸어 같은 내용을 묻기도 했다.

이동욱(조갑제닷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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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시55분17초 - 강원식 1航士(항사), 제주 항만 VTS와 교신
  
  5층 객실에서 교감선생이 학교로 전화를 하고 있을 때 강원식 1등 항해사가 비틀거리며 조타실로 들어왔다. 그는 VTS에 구조요청을 하기 위해 VHF(초단파) 無線(무선) 전화기를 찾았다. 세월호 조타실에는 두 대의 무선전화기가 있었다. 우현 벽면의 ch 67은 진도 VTS와 연결돼 있었지만 배가 기울어 쉽게 잡히질 않았다. 그는 가까운 좌현 벽면의 ch 16 무선전화기를 잡았다. 핫라인이어서 진도 VTS와 제주 VTS는 물론이고 인근을 항해중인 모든 선박이 청취할 수 있었다. 그가 이 무선전화기로 통화만 하면 됐다. 그러나 그는 ch 16에서 ch 12로 주파수를 바꾸었다. 제주 항만 VTS 주파수였다. 그리고 “항무 제주”를 호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써 약 25km(15마일) 떨어진 진도 연안VTS에는 사고 전파가 되질 않은 채 87km(54마일)이나 떨어진 제주 항만 VTS에 최초의 사고 신고가 접수됐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그의 행동은 사고 발생 후 많은 헛소문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습관에서 비롯된 무의식적 행동으로 드러났다. 강원식 씨는 2013년 4월, 세월호에 1항사로 근무한 이후 언제나 그의 당직시간이던 04시~08시 사이에 배가 제주 항만 VTS의 관제구역 내로 진입하고 있었다. 연안 VTS에는 관제구역 진입 보고 의무가 없지만 항만 VTS에는 진입 보고 의무가 있다. 이 보고의무는 1항사인 강원식씨의 몫이었다. 그때마다 그는 초단파 무선전화기의 주파수를 제주 항만 VTS의 ch 12로 돌린 뒤 진입 보고를 해 왔던 것이다. 이 습관이 바로 그날, 결정적 순간에도 어김없이 작동한 것이다. 이로써 진도 연안 VTS 근무자들은 세월호가 급선회를 하며 좌현으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목포 해경으로부터 전화를 받을 때까지 18분 동안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결과는 지독한 惡夢(악몽)이 되어 13명의 관제사들을 덮치게 된다.
  
  강원식 1航士(항사)가 채널을 바꿔 제주 항만 VTS를 호출한 시각은 08시55분17초였다.
  
  강원식 1항사 : 항무 제주. 세월호. 감도 있습니까?
  제주VTS : 예. 세월호. 항무 제주.
  강원식 1항사 : 아, 저기…해경에 연락해 주십시오. 본선…위험합니다. 지금 배가 넘어가 있습니다.
  제주VTS : 예? 貴船(귀선) 어디십니까?
  강원식 1항사 : 빨리…빨리 좀 해 주십시오.
  제주VTS : 예. 알겠습니다. 일단 해경에 연락해 드리겠습니다. 채널 12번 청취해 주세요.
  강원식 1항사 : 지금 배가 많이 넘어가 있습니다.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빨리 좀 와 주십시요. 지금 병풍도 옆에 있습니다. 병풍도.
  제주VTS : 예. 양지했습니다.
  
  제주 VTS는 교신을 끝낸 08시56분, 해양긴급 신고전화 122를 걸어 제주 海警署(해경서) 상황실로 사고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09시00분에는 목포 해경서 상황실에 전화로 알렸다. 제주 해경서가 09시02분에 진도 VTS로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중이어서 연결되지 않았다. 진도 VTS는 목포 해경서 상황실로부터 09시06분에 전화를 받고 사고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목포 해경서는 제주 VTS로부터 연락을 받기 2분 전인 08시58에 학생으로부터 신고전화를 받고 이미 상황전파를 하고 있었다. 이로써 세월호에서 진도 VTS로 연락이 가든 안가든 상관없이 전국의 해양구조세력들에게 제대로 상황전파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검찰과 언론들은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진도 VTS가 미리 알지 못해서 ‘골든 타임 18분’을 잃어버렸고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우기는 중이다.
  
  
  08시58분02초 – 구명조끼 착용 방송
  
  강원식 1항사가 제주 VTS와 交信(교신)을 마치자 이준석 선장은 1항사에게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고 기다리라고 명령해라”고 지시했다. 1항사는 선장의 명령을 3층 로비 안내데스크에서 근무하는 박지영 씨에게 연락했다. 세월호의 비정규직 여승무원으로 일해 온 22세의 박지영 씨는 배가 기울어진 순간부터 조타실로부터 어떤 지시도 받지 못한 채 1분 간격으로 안내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 역시 안전교육을 제대로 받은 바 없었으므로 배를 모르는 수준에서 안내를 하게 된다. 만약 그녀가 선박 안전교육을 받았더라면 선장과 연락이 두절됐을 경우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비상 갑판으로 이동하도록 안내방송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했을 경우 많은 인원이 생명을 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유원지에서 타는 작은 보트와 세월호 같은 대형 선박을 동일시한 채 “움직이면 더 위험해지므로 제자리에서 가만 있으라”는 잘못된 안내방송을 계속해 버렸다.
  
  세월호가 국가라면 선장은 지도자이며, 안내방송은 言論(언론)이고, 승객은 국민이다. 사고 당시 세월호의 지도자가 언론에 제대로 정보전달을 하지 못하자 언론 역할을 하던 안내방송이 작위적으로 사실과 다른 정보(움직이지 말라)를 보도한 결과, 국민의 64%가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그런데 조타실과 안내 데스크는 처음부터 연락이 두절된 것일까? 적어도 08시58분까지는 교신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준석 선장의 ‘구명조끼 착용 지시’가 전달되어서 08시58분02초경에 박지영 씨의 여덟 번째 안내방송에서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안내멘트가 나오기 때문이다.
  
  안내방송 <08시56분55초> :
  현 위치에서 절대 움직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대 움직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 <08시57분29초> :
  단원고 학생 여러분 및 승객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안내 말씀 드립니다. 현재 2층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시고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 <08시58분02초> :
  다시 한 번 안내말씀 드립니다.
  구명동의가 착용 가능하신 승객들께서는 구명동의를 착용해 주시고…(청취불가…)이동하지 말고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08시58분 - 목포 해경 상황실의 5분간
  
  08시58분 : 세월호 승객들이 구명조끼를 찾아 입기 시작했을 때, 세월호와 가장 가까이 있던 해경의 순찰정은 P123정과 P57정이었다. P123정은 세월호와 약 12해리(22.224km)의 거리를 두고 있었고 P57정은 30해리(55.56km) 가량 떨어져 있었다. 세월호 옆으로 유조선 둘라에이스호가 지나가고 있었지만 구조능력은 취약한 배였다. 사고접수를 받은 목포해경서 상황실은 레이더 스크린에 나타난 세월호와 최근접 거리에 있는 해경 P정을 찾아냈다. 그리고 즉각 조치를 시작했다.
  
  목포해경 상황실은 南下(남하)중인 P123정에게 이동전화로 사고 내용을 전파하고 사고 해역으로 즉각 출동 지시를 내렸다. 거의 동시에 목포 어업정보통신국을 통해 어선 협조요청을 전파했다. 상황실로부터 연락을 받은 P123정 김경일 정장은 09시00분 정각에 최고 속도인 24노트로 사고 해역을 향해 출발했다.
  
  이후 목포서 상황실은 09시03분까지 약 5분 동안 다음과 같은 조치들을 내리고 있었다. ▲ TRS 무전기를 이용해 전 해경의 출동을 전파했다. ▲在舶(재박) 함정들의 즉시 출동을 지시했다. ▲인천의 해양경찰청과 서해청에 상황보고와 동시에 헬기 출동을 요청했다. ▲ 완도 및 제주 등 인접 해양경찰서에도 구조요청 메시지를 전파했다. ▲122구조대의 출동을 지시했다. ▲진도파출소에 어선을 동원한 인명 구조를 지시했다. ▲목포운항관리실을 통해 세월호 선장의 핸드폰 번호를 요청했다(선장의 연락처는 09시10분에 확인됐으며 최초 통화 시도는 09시15분이었다).
  
  09시02분 : 목포서 상황실장은 인천에 있는 본청 상황실장과 경비전화로 사고 사실을 전파했다. 본청 상황실장은 즉시 <문자 채팅방>을 개설하고 목포서에 확인 전화를 걸었다. 이 통화로 ‘관매산 남동 2.7마일(약 4.3km) 지점에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문자 채팅방>에 공지했다. 해경의 모든 단위부서장들은 문자채팅방의 내용을 동시에 읽고 자신의 의견을 문자로 개진하기 시작했다.
  
  09시03분 : 서해지방해양경찰청(청장 金守炫 치안감·56·간부후보)은 특공대의 헬기 출동을 지시했다. 동시에 상황대책팀의 비상소집을 발령했다.
  
  09시 04분 : 목포 해경 상황실은 모든 해경 함정에 사고 소식을 전파하고 집결지시를 내렸다.
  
  <목포 해경 상황실 : “모든 국. 모든 국. 여기는 목포 타워. 현 시각, 전남 관매산 남동 2.7 마일. 2.7 마일에서 여객선, 여객선 침몰 중. 침몰 중. 모든 선박은 그 쪽으로 집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는 목포타워. 수신 여부.”>
  
  09시05분 : 인천 연수구 송도동에 위치한 해양경찰청(본청)에서는 상황 담당관이 金錫均(김석균) 해양경찰청장(치안총감·49·行試)에게 사고 사실을 구두 보고했다. 이때 목포서는 진도파출소에 어선 및 낚시 어선 등 총동원 지시를 내리면서 상황1보를 전파했다. 동시에 해군 등 7개 유관기관에 상황을 전파하고 구조협조를 요청했다. 이후 목포서 상황실은 119 상황실에 소방헬기를, 진도군청에는 행정선 지원을 요청했다.
  
  
  09시05분 - 지휘체계를 구성하다
  
  서해청은 09시05분부터 22분까지 17분 동안 민·관·군의 모든 지원체계를 동원하면서 지휘통제체계를 구축했다. 동시에 사고현장 지역경찰서인 목포해경서의 현장지휘를 지원했다. 그 과정을 살펴보자.
  
  09시05분 : 서해청은 ▲해군 연락관을 통해 해군 3함대의 함정 지원을 요청했다. ▲서해 어업관리단을 통해 어업지도선의 지원을 요청했다.
  
  09시06분 : 진도VTS가 인근 항행선박들을 향해 구조협조를 요청했다.
  
  09시11분 : 서해청 상황실이 신고 학생과의 통화를 시도했으나 통화음 불량으로 상세한 정보 파악에 실패했다.
  
  09시16분 : 서해청 상황실의 레이더 스크린에는 세월호 부근으로 가장 가깝게 접근중인 김경일 정장이 모는 P123정을 비쳐주고 있었다. 서해청은 사고 지점을 약 10km 정도 남겨두고 24노트(약 44 km/h)의 속도로 접근중인 123정을 ‘현장지휘함(OSC:On-Scene Commander)’으로 지정했다. 선박이 ‘현장 지휘함(OSC)’으로 지정되면 수색 구조 매뉴얼에 따라 작전을 수행하면서 구조를 위해 등장하는 모든 선박과 항공기 등의 활동을 현장에서 지휘·통제하는 권한을 갖는다. 이는 ‘국제 항공 및 해상수색구조 편람’에 따른 것으로 全세계의 공통 규약이다.
  
  이로써 약 15분 뒤 현장에 도착하게 될 123정은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수행하면서 주변해역에서 출동 접근 중인 각종 선박과 항공기를 지휘·통제하는 권한을 확보했다. 그러나 OSC로 지정된 P123정에서 인근 선박이나 항공기와 직접 교신할 통신수단이 없었다. P123정이 작전 현장의 전투부대라면 이 부대의 후방에 위치한 지휘부는 목포 해경서였다. 당시 목포서장은 3009함에서 승선한 채 홍도와 가거도 사이에서 중국어선 검거작전을 지휘하던 중이었다. 그는 3009함에서 P123정 艇長(정장)과 교신하며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다만, P123정에 영상 採證(채증) 및 송출장비인 ENG 카메라가 없어 시각정보를 전혀 받지 못한 상태에서 목포 서장은 육성 전달된 정보만으로 사건 현장을 상상하며 지휘 지원을 해야 했다.
  
  목포 해경서에서는 진도 ‘지역 구조대책본부’가 구성됐고, 서해 지방 해경청에서는 서해 ‘광역 구조대책본부’가 구성됐으며 인천의 해양경찰청에는 ‘중앙 구조대책본부’가 구성되면서 해경중심의 구조작전 지휘체계가 완비됐다. 08시58분 사고 신고를 접수받은 뒤 18분 만이었다.
  ...
  
  이 무렵 P123정의 승조원 13명은 달리는 배 안에서 전원 비상태세에 돌입했다. 김경일 정장은 상황실과의 통화 끝에 대원들에게 승객이 350명 또는 450명 정도가 타고 있다고 전달했다. 안전팀장인 박은성 경사는 123정 후미에 실린 고속단정을 모는 책임자였다. 그는 100톤급 배 한 척으로 450명을 어떻게 건져내야 하는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30명만 타도 서 있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협소한 배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고현장을 상상해 보았다고 한다.
  
  “450명 정도가 탄 배가 쓰러지고 있다면 그 주위로 사람들이 새까맣게 물에 떠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이 배 한 척으로 어떻게 건져내나 잠시 고민하다 생각을 접었지요. 일단 구조부터 해야 하니까요.”
  
  그는 단정 조원 김용기 경장과 함께 船尾(선미) 크레인에 매달린 고무보트를 점검하러 나갔다.
  
  09시22분 : 서해청 상황실은 진도VTS, 목포 지방 해수청, 서해 어업관리단, 해군 3함대사, 여객선운항관리실 등에 상황보고서 제1보를 발송했다.
  
  
  문의 전화 폭주-청와대에서만 100통 넘어
  
  09시10분에 해양경찰청(본청) 김석균 청장은 해경이 주관하는 ‘중앙 구조대책본부’를 설치했다. ‘중앙 구조대책본부’는 09시16분부터 10시34분까지 현장 지휘를 하는 서해청과 목포서에 메신저를 통해 주요 조치사항을 전달했다. 현장 지휘부에 전화 통화나 무전기기 사용을 최대한 억제함으로써 구조업무에 전념토록 하는 방식이었다. 천안함 격침사건 이후 해군이 개발한 방식을 해경이 벤치마킹해 사용 중인 메신저 지휘 통신망의 정식명칭은 ‘상황 문자 정보시스템’이다. 상부로부터 수시로 결려오는 문의 전화가 작전에 지장을 초래하자 SNS를 활용해 만든 신개념 지휘통신체계이다. 당시 ‘상황 문자 정보시스템’을 통한 주요 지시사항은 다음과 같다.
  
  <09:16: 목포 VTS 인근 선박대상 구조협조 요청 지시, 현장 침몰우려 인명피해 등 현장 상황 파악 지시. / 09:21 : 구명동의 착용 지시 / 09:22 : 민간어선 최대 동원 구조 지시 / 09:33 : 여객선 구명보트 등 이선장비 준비 지시, 서해청장 현장 지휘 / 09:43 : 현장 상황 판단하여 선장에게 탈출 권고 지시 / 09:46 : 구조대, 특공대 현장 파견 승선 시킬 것 지시 / 09:50 : 경찰관 선박내 승선 구조 지시 / 09:54 : 특구단, 특공대, 구조대 총동원 지시 / 09:55 : 여객선 편승했으면, 여객 퇴선할 수 있도록 안내 조치 지시 / 09:57 : 구명벌 등 부유물 투하 지시 / 10: 24 : 해상 탈출 적극 유도 지시>
  
   한편, ‘중앙 구조대책본부’ 상황실은 09시19분부터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 총리실 안전관리과, 안전행정부 상황실에 상황을 전파했다. 이후 해양수산부 상황실(21분), 소방방재청 상황실(27분), 경찰청 위기관리센터(29분)에도 상황을 전파했다.
  
  이때는 이미 YTN 뉴스가 방송사 최초로 ‘속보 - 진도부근 해상 500명 탄 여객선 조난 신고’라는 자막을 내보내는 중이었다(09시19분01초).
  
  방송이 나가고 채 1분도 되지 않아 대책본부 상황실로 전화 문의가 폭주했다. 이때부터 사고 당일은 ‘중앙 구조대책본부’ 상황실은 물론이고 광역, 지역 구조대책본부 상황실까지 구조본부를 운영하던 해경의 모든 상황실들이 청와대 수석실을 포함한 중앙 행정부처로부터 분 단위로 걸려오는 문의전화에 답변하느라 업무를 포기해야만 했다. 실제 지휘 업무는 상황실 옆방에서 ‘상황 문자 정보 시스템’을 통해 말없이 진행되는 중이었다.
  
  그 바쁜 와중에 상황실로 문의해 오는 정보의 수준은 실상 구조 작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들이었다. 거의 모든 질문들은 그들의 직속상관이 갖게 되는 찰나적인 궁금증 해소용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승선자수, 구조자수, 사고의 원인 등은 구조 당시에 구조본부가 정확히 알 수 없는 내용들이었고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사항들이었다. 그러나 문의해 오는 쪽에서는 上部(상부)라는 권력을 앞세워 계속 정확한 답변을 요구해 왔다. 심지어 구조중인 와중에도 방송에서 보도된 숫자와 해경이 보고하는 숫자가 다르다며 어떤 숫자가 맞는지 문의하는 전화도 있었고 한 장관의 여러 비서들이 경쟁적으로 전화를 걸어 같은 내용을 문의하곤 했다. 그들은 ‘報告(보고) 경쟁’ 중이었던 것이다. 사고 당일 청와대로부터 걸려온 전화만 100통이 넘었다고 한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전원 구조하라”(?)-“누군들 빼놓고 싶겠는가”
  
  ‘높은 분들’일수록 해양사고의 본질을 잘 모를 뿐 아니라 해상 구조방식과 절차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해경 상황실로부터 전해 받은 숫자정보가 왜 수시로 뒤바뀌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用語(용어)도 이해하지 못한 채 분통을 터뜨리기 일쑤였다. 그리고 반드시 자신도 지휘에 한 몫 했다는 근거를 남기려 애썼다. 그 지시는 천편일률적이며 원론적인 ‘안전에 유의하고, 구조에 萬全(만전)을 기할 것’, ‘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 등으로 요약되곤 했다.
  
  이런 ‘높은 분’들의 걱정에 앞서, 현실은 어떤가. 이 정도 규모의 사고가 발생하면 모든 구조대원들은 ‘만전’을 기하며 ‘최선’을 다하게 돼 있다. 물론 훈련받은 그들은 자기 보호본능에 따라 ‘안전’에도 ‘유의’한다. 그럼에도 당연한 말, 현실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 말들이 ‘높은 분의 지시’가 되어 그 바쁜 와중에 현장 지휘관들에게 전달되는 중이었다. 불면증으로 수면제를 먹고 막 잠이 든 사람을 깨워서 ‘잘 자라’고 인사하는 격이다.
  
  높은 분들은 현장에서 전혀 쓸모없는 ‘원론적 지시’를 내리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책임을 다 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현장의 대원들에게 ‘완벽한 결과’를 요구한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전원 구조하라”는 식의 지시가 그렇다. 대체 누군들 빼놓고 싶겠는가.
  
  ‘원론적인 지시’와 ‘완벽한 결과’는 동전의 兩面(양면)이다. 그 동전의 값어치는 현실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공허한 명분’에 다름 아니다. 그 동전이 가치를 지니려면 능률과 실질이 바탕이 된 ‘어떻게’라는 방법론이 포함되어야 했다. 문제는, 윗사람들일수록 ‘어떻게’ 하는 것이 현장에서 능률적이고 실질적인 방법인지를 모른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들에게는 공허한 명분론적 지시와 추궁 말고는 기대할 것이 없다.
  
  하지만, 이 또한 대단한 위력을 갖는 것이, 현장의 대원들이 불가항력으로 완벽한 결과를 만들지 못하면 무슨 구실을 대든 생사람을 죄인으로 둔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 위선적 명분론이 지닌 괴력을 체감했으며 두려워한다. 그래서 높은 분들은 “만전을 기하고 최선을 다하라”는 쓸모없는 원론적 지시만으로도 그들 자신의 권위를 지킬 수 있다. 21세기 대한민국 리더십의 실상은 이처럼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계속)
  
[ 2014-10-21, 08:4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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