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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船室(선실)로 들어가면 못나온다. 죽는다” 생각에 구조 포기
제3부 沈沒(침몰)③그녀는 “여기서 굴러떨어져 죽으나 물에 빠져 죽으나 마찬가지인데 해 보기나 하자는 심정으로 다시 일어섰다”고 했다. “제가 여기서 어떻게 나가야 하나요?” 그런데 매정한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가 그쪽까지 신경 써야 해요? 그쪽에서 알아서 나가요.”

이동욱(조갑제닷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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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시55분 - 갑판 위의 목격자

해경의 모든 상황실이 전화의 융단폭격을 당하고 있을 때 다행히 그 옆방에서는 실제 지휘가 아무 간섭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그 방의 레이더 스코프에서는 사고 해역의 모든 배들이 한 점을 향해 船首(선수)를 돌리고 있었다. 세월호를 향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 무렵 세월호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나. 침몰 직전에 5층 갑판에 혼자 나와 있던 승객 김태환씨의 증언을 따라가 보자.


‘어, 배가 이렇게까지 넘어가도 되나?’

<5층 갑판에 올라와서 저는 右舷(우현) 뒤쪽 난간에 서서 섬을 바라보고 있었지요. 섬이 무척 가깝게 있었습니다. 지도를 펴서 이 섬이 무슨 이름을 가지고 있는지 찾아보려고 했어요. 바로 그때 배가 갑자기 우회전을 하는가 싶더니 선체가 왼쪽으로 스윽 기울더라고요. 하여간 우회전은 굉장히 급하게 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배가 왼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거지요. 오토바이 탈 때처럼 말입니다. 그 때 저는 ‘어, 배가 이렇게까지 넘어가도 되나?’ 이런 생각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런데 기울기가 점점 심해지는 겁니다. 뭔가 이상한 거잖아요. 후미 난간 양 끝에 주황색 구명조끼와 구명 튜브가 걸려 있었어요. 제가 그걸 가지러 한 발짝을 땠지요. 그런데 船首(선수)쪽에서 ‘꽝’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뭔가 육중한 철제 물체가 부딪히는 소리였습니다. 고개를 돌려 앞을 보니까 바다에는 이미 붉은색 컨테이너가 둥둥 떠 있고 흰색 스티로폼 같은 것들과 다른 화물들도 떠 있는 겁니다.

‘어, 이상하다. 이거 뭔가 잘못 됐다’는 생각과 동시에 배가 왼쪽으로 ‘확!’ 넘어갔습니다. 저는 저대로 반사 신경 덕분에 양 팔을 뻗어 난간을 꽉 잡았지요. 이 배를 타고 나서 제가 두 손으로 난간을 필사적으로 붙잡은 게 그때가 처음입니다. 안 잡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이고 지도고 전부 다 바닥에 떨어졌다가 左舷(좌현) 쪽으로 주욱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바다 속으로 튕겨져 나갔습니다.

입고 있던 파카 점퍼의 지퍼를 안 잠그고 있었는데 주머니 속의 지갑도 그때 빠져 나갔던 거 같습니다. 당시에는 몇 시인지 시계 같은 걸 볼 생각도 못해요. 제 몸이 본능에만 지배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서 있는 곳이 위험해지니까 歸巢本能(귀소본능) 같은 게 발동해서 올라온 길을 되짚어 가려고 했겠죠. 제가 난간을 잡고 배 중간쯤에 있는 아래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으로 이동한 겁니다. 방으로 가서 뭘 하겠다는 계획이나 그런 건 전혀 없었어요. 일단 올라온 길로 돌아가려고 한 겁니다.


수면은 20m 아래…수영도 못하고 죽을 상황에 절망하다

계단에 겨우 도착하니까 계단의 발판이 거의 옆으로 세워진 상태였습니다. 절대로 그냥 내려갈 수가 없는, 계단이 계단이 아닌 상태가 된 거예요. 그 계단 모퉁이 난간을 붙잡고 앉으니까 현실감이 안 들었어요. 무슨 장난 같다는 생각이 든 거지요. 처음에는 내가 무슨 놀이공원 같은 데를 온 건가 하는 생각으로 피식 피식 웃음도 나왔어요. 그러다 금방 현실을 깨닫게 되니까 ‘아, 그냥 이대로 죽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바뀌면서 바짝 긴장이 됐습니다.

右舷(우현) 아래를 보니까 3층이 확실하게 보이는데 그 3층에서 바다까지도 10m가 넘었습니다. 제가 있는 데서는 한 20m 이상 돼 보였어요. 제가 자신 있는 운동 가운데 하나가 수영입니다. 왕년에 운동 좀 했거든요, 같이 운동하던 제 친구들 가운데는 지금도 해군과 해경 특공대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일단 수영으로 이 상황을 벗어나보려고 생각하게 된 겁니다. 그러자면 현 위치에서 바다로 뛰어 내리면 됩니다. 섬도 가깝고 하니까 저 정도면 살 수 있겠다 싶었지요.

그런데 섬이, 조금 전에 바라 본 방향이 아니라 정 반대편으로 와 있는 거예요. 처음에는 배의 우현에서 보이던 섬이었는데 이제는 기울어진 左舷(좌현) 쪽으로 섬이 보이는 겁니다. 배가 쓰러지면서도 빙 돌고 있었던 거예요. 그럼 저는 섬이 보이는 쪽으로 뛰어 내려야 하는 거지요. 문제는, 제가 아무리 점프를 잘하더라도, 기울어졌다고는 하지만 폭이 몇십m가 되는 갑판을 가로질러 바다로 뛰어내릴 수가 없겠더라고요. 분명히 철제 난간이나 어딘가에 떨어져 다리가 부러질 게 틀림없었습니다. 그러면 수영도 못하고 죽는 상황이 되는 거지요. 제 얼굴이 그 때 아마 死色(사색)이 됐을 거예요.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요. 저는 ‘이대로 죽는구나’ 하고 포기한 채 앉아 있기만 했습니다. 제 뒤편 아래쪽에서 ‘픽’ ‘픽’ ‘픽’ 하는 소리가 들려요. 고개를 내밀어 보니까 배가 비스듬히 들려서 스크류가 절반쯤 물 밖으로 나온 채 물살을 튀기면서 돌고 있었습니다.>


08시59분 – 船室(선실)의 사람들

航跡圖(항적도)에 따르면 세월호는 급변침 후 좌현으로 기울면서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20노트에서 17노트, 15노트, 10노트…8시50분에는 5노트로 속도가 떨어졌다. 김태환씨가 돌아가던 스크류를 보았다면 8시55분대 이후였을 것이다.

김태환씨가 갑판 위에서 황당한 경험을 겪고 있을 때 선실의 김병규(세월호 생존자) 씨는 식당에서 아침을 들고 로비로 나서고 있었다. “집사람이 (객실로) 들어간다고 하는 거, 담배도 한 대 피울 겸,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밥 먹고 나면. 뿌리친 걸, 다시 간다는 걸, 다시 재차 잡아서 (아내를) 끌어당겼는데 (배가) 기우뚱하니까 컨테이너가 바바방 때리더라고요. 이 컨테이너 앞에 실었잖아.”(SBS, 그것이 알고 싶다. 6월7일자)

3층 船尾(선미) 화물기사 객실. 서희근씨는 단원고 학생들이 식당으로 몰려올 것을 예상하고 일찍 식사를 마친 뒤 객실로 돌아와 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배가 기울었다.

 “그때 나는 ‘아이고, 이거 사고 났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방에 서 있던 양인석씨는 쓰러져 버렸다고 한다. 당시 기울어진 각도는 대략 45도 정도였다는 것이다.

2학년 9반 김모 양은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배가 흔들리자 파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울기가 심해지더니 식탁 위의 식기가 떨어지고 반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김시연 양은 짧은 동영상 기록을 남겼다. 그녀는 배가 기울어 커튼이 공중에 붕 떠있는 장면을 촬영하면서 앵커처럼 상황설명을 곁들이며 친구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기도까지 녹화했다.

“커튼이 이만큼 젖혀졌다는 것은 지금은 거의 垂直(수직)이란 말입니다. 롤러코스터로 올라갈 때보다 더 짜릿합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잘 있겠죠? 船上(선상)에 있는 아이들이 무척 걱정됩니다. 진심입니다.” 

“부디 한 명도 빠짐없이 안전하게 구조되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는 진짜로 죽을 위기야. 이 정도로 기울었다. 오늘은 4월16일.”

“현재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시고 안전 우려 사고에 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08시49분에 심각하게 左舷(좌현)으로 기울어진 세월호에서 약 3분 뒤 최덕하 군이 119 상황실을 거쳐 목포해경에게 조난 신고를 하고 있을 때 325명의 단원고 학생들은 식당이나 객실 등에 흩어져 있다가 봉변을 당했다. 객실에서 학생들은 저마다 놀이공원에 온 듯 놀라움을 즐거움으로 바꾸려 애썼다. 8인 객실에 친구들과 머물렀던 박수현군은 이 순간부터 동영상 녹화를 시작했다. 여닫이문이 쉽게 작동하지 못할 만큼 기울어진 장면들을 박수현군이 영상에 담았고 친구들은 기울어진 방 안에서 떠들며 장난기 어린 걱정들을 하고 있었다.

세월호 승무원 박지영 씨의 첫 안내방송이 08시52분32초에 시작됐다.

“현재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시고 안전 우려 사고에 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입수된 여러 영상자료에 의하면 그녀의 안내방송은 08시59분까지 약 7분 동안 9회나 반복되고 있었다. 분당 1회 이상 방송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로서는 필사적인 노력이었을 것이다.


안내방송을 믿지 않고 탈출한 사람들

같은 시각, 세월호 조리부에서 일해 온 김종임(51·女) 씨는 휴일이면 늘 산을 탔던 등산 애호가였다. 그녀는 세월호 주방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칠부 바지에 반팔 런닝 차림으로 동료 두 사람과 일을 하던 중 사고를 접했다. 세월호의 주방은 좌현 중앙 後尾(후미) 쪽이었다. 배가 왼쪽으로 기울어지면서 그녀가 밖으로 나가야 하는 우현쪽은 비탈이 되고 있었다. 주방에서는 갑자기 식탁이 쓰러졌고 냉장고 문이 저절로 열렸다. 바닥으로 식용유가 쏟아져 물과 섞이며 미끌거렸다.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지만 주방에서 가만 있다가는 더 위험하다는 생각에 두 동료들과 싱크대를 붙잡고 위로 올라가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세 사람 모두 몇 번이나 굴러 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김종임씨는 갈비뼈가 부러졌고 발등이 찢어져 피가 나고 있었지만 본인은 기억을 하지 못했다.

金 씨는 너무 아파 탈출을 포기했다가 다시 일어났다. 그녀는 “여기서 굴러떨어져 죽으나 물에 빠져 죽으나 마찬가지인데 해 보기나 하자는 심정으로 다시 일어섰다”고 했다. 그녀는 배의 중앙쪽에 위치한 사원식당까지 이동해서 식당의자를 이용해 겨우 식당 뒤편 조리부 객실(3층 선실 우현) 쪽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동료들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한 채 뒤에 남게 됐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船尾(선미) 쪽으로 난 복도였다. 맞은편으로 객실들이 선미 쪽으로 길게 늘어선 곳이었다. 그 사이에 우현 갑판과 연결된 문이 있는데 그쪽으로 옮겨야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녀는 여기서 조리장 최찬열(58)씨를 만난다. 두 사람이 숨을 고르고 있을 때 맞은편 복도 쪽에서 기관부 선원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援軍(원군)을 만난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일곱 명의 기관부 선원들에게 소리쳤다.

“제가 여기서 어떻게 나가야 하나요?”

그런데 매정한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가 그쪽까지 신경 써야 해요? 그 쪽에서 알아서 나가요.”

金 씨는 망연자실했다고 한다.

옆에 있던 최찬열 씨가 김 씨를 격려했다. 그리고 “구명정을 띄우러 나가자”는 말을 했다는데 김 씨는 “구명조끼를 찾으러 가자”는 말로 알아들었다고 한다. 공통의 목적이 생긴 두 사람이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게 됐다. 두 사람은 서로 밀고 당기며 우여곡절 끝에 천정으로 변해가는 3층 右舷(우현) 갑판 쪽 출입구로 나갈 수 있었다. 흐린 하늘 아래로 찬 바닷바람이 불어 닥치는 중이었다. 기울어진 세월호의 외벽 계단을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며 무조건 위로 위로 올라갔다. 4층을 지나 5층에 가까워졌다. 이 두 사람 뒤로 또다른 70대 노인도 따라 오르고 있었다.


김태환 씨의 증언

<5층 갑판에서 배가 기울어져 중앙의 계단으로 겨우 이동했는데 계단을 제대로 내려갈 수가 없는 거예요. 잘 못해서 떨어지면 그대로 끝장인 겁니다. 그 자리에 앉아 버렸지요. 그러는 찰나에 아주머니 한 분이랑 아저씨 두 분이 힘들게 제가 있는 데로 기다시피 하면서 올라오셨죠. 이렇게 해서 네 명이 그 큰 배의 꼭대기 난간을 붙잡고 앉아 있게 된 겁니다.

제가 물어 보니 조리장 아저씨(최찬열 씨), 조리원 아주머니(김종임 씨)와 70대 할아버지 한 분이었어요. '왜 올라왔냐'고 하니까 조리장 아저씨는 '구명정을 띄우러 나왔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겠다'고 하는 거예요. 옆에 있던 70대 할아버지는 배에서 두 분이 밖으로 나가니까 멋모르고 막 따라 나온 거구요.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보니까 조리원 아주머니는 주방에서 일하던 차림 그대로 흰색 반팔 런닝 같은 상의에 칠부 바지 비슷한 차림이었는데 다리가 피칠갑이었습니다. 맨발인데 발등 부근이 심하게 찢어져서 피가 흐르고 있었는데도 올라온 거였어요. 그 아주머니는 아무 말도 못하고 벌벌 떨면서 울고만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 바닷바람이 매서웠거든요. 그 추운 아침에 실내에서 일하던 복장으로 더구나 맨발로 갑판 위에 올라왔으니 추웠겠지요. 제가 신고 있던 양말을 벗어 아주머니에게 신겨 드렸어요. 피가 좀 덜나게 하고 추위를 피하게 하려고 말입니다. 그리고 제 파카를 벗어서 떨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걸쳐 드렸지요. 

그 당시 배가 얼마나 급격하게 기울어졌는지는 나중에 병실에서 같이 입원했던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 실감났습니다. 형제 중 동생이 多人室(다인실) 오른편에 누워 있었는데 배가 기울면서 굴러서 왼편 벽 합판을 머리로 뚫고 나갔다고 회상해 주었어요. 그만큼 갑자기 심하게 기울었던 거지요. 그러니까 제가 계단에 매달려 앉아 있을 무렵에 船室(선실)에서는 다친 사람들도 많았을 겁니다.

우린 그 상태에서 막막했지요. 제가 호주머니를 뒤져보니까 전화기가 없어요. 그때 비로소 기억이 났어요. 조금 전에 바다로 떨어진 겁니다. 옆의 분들께 전화기가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70대 할아버지가 전화기가 있다고 하시면서 호주머니에서 꺼내 주시더라고요.


“船室(선실)로 들어가면 못나온다. 죽는다” 생각에 구조 포기


제일 먼저 생각난 친구가 해경 특공대에 있는 녀석입니다. 그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모르는 번호로 걸었는데 다행히 받아 주더군요.

“○○아. 나 태환이다.”
“왜? 왜? 빨리 끊어. 나 지금 바빠.”
“야. 너 배 넘어가는 거 아냐?”
“나 지금 거기 나가야 돼. 바쁘니까. 끊으라고~”
“야, 근데, 나 지금 거기 있다.”
“뭐? 그래? 정말로?…걱정하지 마. 지금 출동하니까, 금방 될 거다. 걱정하지 마. 알았지? 꼭 기다려.”

바빴으니 그 친구가 먼저 전화를 끊었는데 서운하기보다는 그 전화 한 통이 저를 무척 안심시켜주었던 것 같습니다.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우린 그 자리에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었지요.

마음이 진정되니까 배 안의 사람들, 아침에 본 수학여행으로 들뜬 학생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면서 배로 들어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날 제가 이런 마음을 두 번 먹습니다. 처음에 전화 끊고 한 번. 그리고 다시 몇 분 뒤에 한 번 더. 그런데 두 번 다 포기했습니다. 내려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내려가려고 작심하고 일어서서 보면 제가 올라온 곳은 이미 몇십 m의 낭떠러지가 돼 있었어요. 완전 수직이면 그냥 물로 뛰어들어가잖아요. 근데 이건 수직도 아닌 가파른 비탈로 수십 m 가 되는 거예요. 한 번 미끄러지면 몇 번 구르다 목이나 허리가 부러진 채로 물에 빠지는 거예요. 그걸 보니 감히 내려갈 엄두가 안 생기는 겁니다. 사람이 갈 수 있는 데가 아니었어요.

기울어진 계단을 붙잡고 어떻게 해서 선실로 들어간다 하더라도, 들어가면 그 길로 나올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들어가면 못나온다. 죽는다. 그런데 막말로 저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제가 목숨을 바칠 이유가 뭔가. 이런 생각으로 망설이면서 두 번이나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저 사람들도 어떻게든 구조될 수 있겠지 하는 식으로 마음을 고쳐먹었지요. 그리고 한 5분이나 지났을까요. 멀리 잿빛 하늘 아래로 붉은 색 헬기 한 대가 오는 게 보였습니다. 제 전화로 헬기가 출동한 것은 아닌데 저는 그렇게 여겼습니다. 무척 빨리 왔다고 생각했지요.>

이때가 09시30분이다.

배가 기울어진 8시48분 이후 약 42분 동안 세월호의 조타실에서는 강원식 1항사가 제주 항만 VTS와 재차 교신을 시도하고 있었다.(계속)

[ 2014-10-22, 17:5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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