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얼어붙은 江을 미친 듯이 달리다
탈북 여성詩人 김수진의 手記(6)江을 건너서자 중국의 맞은편 숲에서 한 사람이 나와 우리를 부축했다. 준비해온 따끈한 음식과 물들을 우리에게 권했다.

김수진(회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5. ‘태국기’는 무엇이고 ‘태국’은 무엇인가.
*(注:필자는 탈북 전까지 '태극기'를 '태국기'로 생각했었다고 말한다)


이틀 동안 산길을 걷다

이틀 동안 쉼 없이 산밭을 탔다. 끝없이 걷고 치달아 오르는데 내 나라 땅이건만 그 산의 이름조차 모른다. 물어볼 겨를도 없다. 브로커의 뒤를 따라 걷는 것도 아니고 브로커는 피하고 알려준 길을 따라 드문드문 인적(人跡)이 느껴지는 산 속을 셋이서 걷는다. 우리가 산길을 타는 건 국경 초소들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그중에 그래도 길을 아는 총각 애가 있어서 그 애의 뒤를 따라 걷는데 길을 여러 번 헛갈려 멀지 않은 길을 계속 돌아 갖은 고생을 하며 브로커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다달았다. 브로커의 뒤를 따라 또 몇 시간을 산길이 아닌 굽이진 촌길을 지나 이번에는 45도의 경사진 산을 끝없이 타고 올랐다. 내리막길이 하나도 없는 순수한 고지(高地)를 치달아 올랐다.

산밭을 타본 적이 없는 나는 얼음과 눈이 덮힌 산길에서 몇차례 굴러떨어졌는지 모른다. 한번은 얼마나 굴러떨어졌는지 브로커가 뛰어내려와 터진 머리를 감싸주고 쓰러진 나를 일으켜주며 살아있는가 하고 묻기까지 했다. 훗날 내 생각에 700m 고지는 실히 올랐다고 생각되었다. 산 고지 위에서 다시 내려가기 시작해서 눈앞에 나타난 것은 강이었다. 바로 두만강이었다. 브로커의 지시에 따라 맞은편에 와 서있는 자동차를 목표로 해서 꽁꽁 얼어붙은 강을 미친 듯이 달려야 했다. 강폭은 길지 않았다. 한 20m 정도 되어보였다.


드라마에서 본 위기탈출을 실제 연기(演技)하다

그런데 지친데다 얼어든 두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았다. 애가 탔다. 그래도 가야 했다. 추위와 공포에 쌓여 동태짝같이 얼어든 몸으로 정적(靜寂)의 얼어붙은 두만강가에 발을 들여놓았다. 걸음이 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음판의 소처럼 어정거리던 모습이 70 노인의 굼뜬 동작처럼 생각된다. 정적의 강가에서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오는 듯한 환각까지 내 정신을 유도해간다. 어느 순간에 온몸이 얼음판 위에 자빠질 뻔했다. 심상치않은 내 걸음을 지켜보며 함께 옆에서 걷던 총각이 내 몸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필경 타박상으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강을 건너서자 중국의 맞은편 숲에서 한 사람이 마중해 나와 우리를 부축해 재빨리 차에 싣고 어디론가 향했다. 그들은 이미 전에 준비해온 따끈한 음식과 물들을 우리에게 권했다. 비록 돈을 받고 하는 일이지만 그때만큼 인심(人心)이 고맙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선족(鮮族)인 것 같았다. 중국말도 하고 드문드문 하는 유창한 조선말로 보아 선족인 것 같았다. 드라마 속에서만 보아오던 위기탈출의 무시무시한 숨막히는 순간들을 직접적으로 연기하는 산 인간으로 이렇게 삼일간을 지나보냈다.

지금도 그때를 기억하면 심장을 졸이는 아슬아슬한 공포의 연기가 매캐한 느낌을 풍겨온다. 이제부터는 중국땅이라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아직은 갈길이 멀다고 했다. 절대 방심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하지만 중국이 처음이고 북송(北送)이라는 말 자체가 낯설은 나는 이 길이 그렇게까지 위험한 길인 줄 모르고 그냥 지칠 정도로 버스에 누워 끝없이 간다.


20여 명의 동행자들

도중에서 동행자들을 만나고 나니 일행은 20명이 되었다. 나와 그들은 서로 달랐다. 나는 중국어를 전혀 모르니 그들 속에서 벙어리인 셈이었고 그들은 신비(神秘)의 인간들이었다. 그들이 중국어로 저들끼리 이야기하면 나는 그들의 몸짓 눈빛을 보며 내용을 읽으려고 애쓴다. 그들은 완전무결한 내 선배들이었다. 새로운 세상에서 광명을 맛 본 그들은 이제 스무 살이 갓 지났을 것 같은 애들로, 의연해 보이고 놀랄 만큼 교훈과 개척정신이 강했다. 나는 그들에게 의지해 간다. 아무 일이 없을 듯이 ---해가던 우리들에게 드디어 일이 터졌다.

라오스 국경을 넘어서는 순간에 앞서 달리던 몇 명이 브로커의 차에 올랐다가 뒤따라오는 경찰의 요란한 연발 총소리와 함께 끝내 잡혔다는 소식이 핸드폰에서 울려나왔다. 다행히 중국말을 아는 탈북자들이 그 말을 엿듣고 불안에 떨며 달려주었다.

우리는 온 길을 거꾸로 다시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숲이 무성하고 곤충들이 욱실대고 폭우가 끝없이 내리는 산(山) 고지를 오르고 내리는 우리의 꼴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했다. 그 속에는 한국에 있는 엄마를 찾아 떠나는 열두 살짜리 탈북소녀도 있었다. 그 애는 울며 우리와 함께 산을 오르고 내리는데 진흙탕에 미끌미끌 자빠지는 곳이라 손을 잡아줄 형편도 못된다. 그냥 불쌍한 안타까움뿐이다. 새벽이 되어서야 생소한 한 곳에 도착하니 공포와 잡힌 사람들의 걱정 때문에 잠들지 못했다.

그들을 위한 최선이란 한국에 있는 브로커들한테 빨리 연락이 닿아 구원하는 길이라는 것을 중국에서 살아온 탈북자들이 뭐든 잘 알아 빨리 연락이 닿았고 훗날 그들이 무사히 우리와 함께 한국에 도착했다.


‘태국’이 도대체 뭘까?

그때 나는 일행들이 라오스 국경을 넘어 태국에 도착하면 위험한 행로가 끝이라고 했지만, 도무지 그 말의 까닭을 알 수 없었다. ‘태국’이 도대체 뭘까. ‘태국기’란 말은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그 의미가 떠오르지 않아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배우는데는 세 살 먹은 애한테도 머리 숙이는 나이지만 온통 중국말로 떠드는 그들에게 감히 말을 붙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겨우 태국이 뭐냐고 물었다가 “태국이 태국이지 뭐겠느냐” 하는 바람에 곤혹스러워 더 말을 붙여보지 못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서 겨우 끄집어 낸 것이 ‘태국기’가 한국 깃발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태국기'가 남조선 깃발이라는것을 아는 것은 전쟁세대뿐일 것이다. 본 적이 없는 북한 사람들은 태국기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면 태국은 무엇인가. 태국이란 한국의 한 부분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다시 3일 후에 라오스를 넘기 위한 도전에 나서 끝내 성공했다.

그렇게 태국에 도착했다. 도착해보니 한국이 아닌 남의 땅이었다. 그때 누군가 메콩강을 건너 태국에 도착하자 방콕에 가야 한다고 했다. 방콕이란 말이 낯익어 기억을 더듬어 중학교 세계지리 교과서에서 배운 타이의 수도 ‘방코크’를 기억해냈다. 북한말로 ‘타이’라는 나라였던 것이다. 방콕의 수용소에 도착해서야 모두 안도의 숨을 내쉬고 이제는 순수한 우리말로 바뀌었다.


책으로 만난 반기문과 김연아


서먹서먹하던 기운도 이제는 뒤바뀌어 친근감이 서로 오고갔다. 평화가 시작되었다. 서로 자기들이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꾸러미 헤치듯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들의 인생수업에 비하면 나는 갓난아기 같았다. 그때 내가 가장 놀랐던 것은 열여덟 살, 열아홉 살 아이들이 어린나이에 애기엄마가 되어 중국인 남편들에게 맡기고 온 아기들 생각이 나서 눈물을 흘렸다. 나도 그들과 함께 울었다. 그들 속에는 아기를 업고 방콕에 도착한 애들도 있었다.

처녀시절이라는 가장 소중한 시절들을 빼앗긴 그들의 모습은 눈물이 날 정도로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들 중에는 세 번, 네 번 북송(北送)되어 보위부의 감방에 갇혀 척추, 머리, 갈비뼈, 팔, 다리, 성한 데 없이 두들겨 맞아 부러진 뼈가 어긋나 육신(肉身)을 제대로 못 쓰는 사람들도 흔했다. 탈북영웅들이었다.

태국의 수용소에서 이제는 평온을 찾았으므로 대한민국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그려보기 시작했다. 이런저러한 말을 흘려듣기는 하지만 다 같이 처음 가는 길이라 믿을 수가 없다. 이제 나의 조국이기도 하고 보금자리이기도 한 대한민국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본격적으로 알고 싶었다.

태국의 수용소 안에 많지는 않았지만 두어 삼태기 될 만큼의 책이 있었다. 잡지들을 미친 것처럼 읽기 시작했다. 그 때 본 책들은 현실을 알 수 있는 신문들은 한 장도 없고 문예잡지들, 상품광고에 등장한 연예인들, 그리고 성공한 한국인에 대한 인물소개가 전부였다.

내가 가장 처음에 손에 집어든 책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책과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의 성공이 담긴 책이었다. 반기문 사무총장에 대한 책은 두 번 거푸 읽어 보았다. 이것이 내 머릿속에 처음으로 읽힌 대한민국이었다. 이렇게 방콕에서 3주간 있다가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나는 북한의 국경과 떨어진 곳에서 살다 보니 대한민국에 대하여 전혀 무(無)상식 상태에서 한국에 왔다. 비행기에서 내려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극기’를 알았고 아직은 그 깊이를 다 알 수 없는 대한민국을 밟게 되었다. (계속)

[ 2014-11-23, 15:4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