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는 저작권이 있으므로, 무단 전재 및 유포를 금합니다.
09시17분: 故 김 모씨 카톡-“바다가 창문 앞쪽에 있어”
제5부 救助(구조)② (09시21분)세월호는 45도로 기울고 있었다. 생존자 김 모씨 카톡-“방에 서 있던 애들 누워 있던 애들 진짜 다 날라왔어. 지금 전기도 다 나감”

이동욱(조갑제닷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08시58분. 목포 海警(해경) 사고 소식 전파

목포 海警(해경) 상황실은 08시58분에 통화를 마친 최덕하군의 신고전화를 근거로 즉시 사고 소식과 출동 명령을 전파하고 있었다. 이어서 故 박수현군의 동영상 촬영이 끝난 지 1분 뒤인 09시04분30초에는 P 123정에 출동 명령을 하달한다.

09: 04: 30 <지휘부 교신>
목포 상황실 : 모든 국. 모든 국.
여기는 목포 타워. 여기는 목포 타워.
현 시각 전남 관매산 남동 2.7마일. 2.7마일에서 여객선. 여객선. 침몰 중. 침몰 중.
모든 선박은 그 쪽으로 집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는 목포타워. 수신 여부.

09:04:50
P123정 : 여기 P123. 수신완료.

P 123정은 약 25분뒤 현장에 도착해 한 시간여 동안 172명의 생존자 중 45%인 79명을 구조해 낼 수 있었다. P정과 각종 선박의 동원령보다 앞서 해경의 潛水(잠수) 구조세력에게 출동명령이 먼저 하달됐다. 09시 정각을 기준으로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목포 해양경찰서 소속의 122구조대(09시00분), 서해청 소속의 해경 특공대(09시03분), 남해청 소속의 특수구조단(09시20분)에 긴급 출동 지시를 내렸다. 각기 임무별 특성이 다른 이들은 공통적으로 수상 인명 구조와 스쿠버 장비를 이용한 좌초 선박 내 인명 구조 능력을 갖춘 해양 구조세력이었다.

서해청 특공대 7명은 차량으로 출발해(09시35분), 목포항 전용부두에 도착(09시50분)한다. 이곳에서 배가 출항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 이들이 다시 차량으로 서해청 헬기장에 도착한 때가 10시25분. 여기서 헬기를 이용해 서거차도에 도착한 때가 10시45분. 이곳에서 어선을 이용해 세월호 침몰 지점 해역에 도착한 시각은 11시15분. 출동 명령을 접수한 지 2시간 12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서해청 특공대는 세 구조대 중 가장 먼저 사고 해역에 도착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잠수 구조용 선박도 없었고 살아있는 사람들도 볼 수 없었다.

해경의 特救團(특구단)은 형식적으로만 운용

목포 해경서의 122 구조대는 2011년 항공 구조대가 편성되면서 헬기를 이용한 항공 구조 임무를 이관했다. 현재의 122 구조대는 헬기도 자체 편재에서 사라졌다. 122 구조대가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短艇(단정)과 경비정 그리고 차량만 있었다. 이날 122 구조대 10명의 대원들은 안개로 출항이 어렵게 되자 차량을 이용해 75km의 거리를 약 1시간 만에 주파한 다음 진도 팽목항에서 어선을 잡아타고 세월호에 도착했다. 이들이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12시14분으로 출동 명령 접수 후 3시간 14분만이었다. 안개로 인해 단정이나 선박으로 이동할 경우보다 더 빨리 도착한 것이다. 사고 후 감사원과 검찰이 이들의 행적을 샅샅이 조사했으나 그 어떤 실책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5월19일, 朴槿惠 대통령은 “해경이 구조에 실패했다”면서 해경 해체를 선언한다. 다시 8일 뒤인 5월27일 오전,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海警의 122 구조대가 사고 직후인 9시에 출동명령을 받았는데도 헬기가 없어 신고 후 2시간20분이나 지나 현장에 도착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런 일이 다시는 있어선 안 된다”며 해경 해체 이유를 밝혔으나 대통령이 든 사례가 사실과 완전히 달랐다. 이로써 대통령은 엉터리 정보를 근거로 해양주권 수호기관인 해경을 해체했다는 지울수 없는 증거를 남기게 된다.

한편, 남해청 소속의 특수구조단(特救團)은 국가단위의 재난이 발생했을 경우 우선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전문적인 구조대로, 소방청의 중앙119 특수구조단과 유사한 성격으로 편성된 구조대이다. 소방청은 각 道(도)마다 이같은 복합재난에 대비한 특수구조단을 운용해 오고 있는데 해경은 이를 모델로 2012년에 창설했다. 그러나 해경의 特救團(특구단)은 전국 규모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11명의 대원으로 구성되어 남해청에서만 운용 중이었다. 해경의 122 구조대나 특공대의 인명 구조가 水中(수중)과 수상구조에 국한되지만 해경 특수구조단은 항공, 연안, 심해, 선박, 화재 등의 다양한 재난 사고가 해상에서 발생할 경우에 대비하여 포괄적인 인명 구조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이다. 특히 再(재)호흡기를 이용한 장시간 잠수, 40m 이상 大深度(대심도) 잠수도 한다. 그러나 지금의 청장(김석균)이 예산과 조직을 담당하는 기획조정관으로 근무하던 2011년 당시 이 조직을 설치하면서 자체 항공세력도 마련하지 않은 채 형식적인 규모로만 특구단을 구성했다는 해경 내부의 비판이 있다.

이런 해경 특구단에도 헬기가 편재에 없었다. 09시20분에 출동 명령을 하달받고 차량으로 김해공항에 도착한 뒤 (10:30) 고정익 항공기를 이용해 11시10분에 이륙한 후 12시경 목포 공항에 도착했다. 이들이 목포 공항에서 여수 해경청 헬기에 탑승한 시각은 13시. 사고 해역의 1508함의 갑판에 착륙한 시간이 13시30분이었다. 4시간 10분만에 도착한 이들도 각자 스쿠버 탱크 하나씩만 맨 상태였다.

서해청 특공대, 122구조대, 남해청 특구단 등 잠수 구조세력은 배가 물 속으로 들어간 뒤 한 시간쯤 지나서부터 도착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들에게 생존자 구조의 기회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09시30분 해경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구조 대기

08시 58분 이후 P123정을 비롯한 인근 해역의 모든 선박들이 세월호가 위기에 빠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사고 해역으로 船首(선수)를 돌리고 있었다. 이후 구조 선박과 헬기가 도착하던 09시30분 무렵까지 선실 내부는 짧은 영상들과 카톡 메시지 등이 간간이 남아 있어 당시 상황을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구조세력이 도착할 때까지 영상과 생존자들의 증언을 따라가 보자.

08시52분
세월호는 30도로 기울고 있었다. (검경 합수부 발표)

08시 56분
故 김시연 동영상 - '지하철도 그렇잖아. 안전하니까 좀만 있어달라고 했는데, 진짜로 좀 있었는데 죽었다고. 나간 사람들은 살고.' 

학생 박 모군 카톡 - '엄마아빠... 배가 많이 기울어졌어요. 보고 싶어요 ㅠㅠ'  


08시58분
강민규 교감 카톡 - “침착하세요. 방송에 귀를 주목하고 학생들에게도 침착하라고 독려 문자 부탁, 움직이지 마시고.”

故 박수현 동영상 - '진짜 물들어오면 우리 진짜 나가야 돼.'

故 김 모씨 카톡 - '계속 가만 있으래'

09시00분경
구조된 한 승객은 SBS 뉴스를 통해 이런 증언을 남겼다.

“가만 계시라고 움직이면 더 다치신다고 그리고 구명조끼 착용하시고, 구명조끼 착용하시고 나서 옆의 분들 도와 달라 이런 방송이 계속 나왔어요.”

출장길에 산타모를 적재한 채 이 배에 승선했던 김성묵씨는 3층 船尾(선미)쪽 객실에서 배가 기울어진 각도를 재고 있었다. 스마트 폰으로 재보니 45도 정도가 나왔다고 한다. 그는 안내 방송을 따라 객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생존자 김 모씨 카톡 - “얘들아. 진짜 장난 아니니까, 잘 들어. 단원고 다 뒤질지도 모른다”

09시01분
단원고 교감 카톡 - “기다려야 할 듯. 선생님들은 카톡 통해 학생들 확인해 달라”

09시 02분
생존자 김 모씨 카톡 - “진짜, 죽는다고. 배가 뒤집어졌어.”

09시04분
생존자 김 모씨 카톡 - “지금 한쪽으로 기울어져서, 구명조끼 입고 있고, 컨테이너 박스 다 떨어졌어.”

09시10분:“얘들아. 진짜 사랑하고 나는 마지막 동영상 찍었어”

09시05분
단원고 연극부 단체 카톡으로 故 김 모양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우리 진짜 죽을 것 같아.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다 용서해줘. 사랑한다.”

09시 07분
단원고 2학년4반 담임교사의 단체 카톡 - “지금 상황 어때?”

09시09분
故 박수현군 동영상 - “선생님도 괜찮은 건가?”

09시10분
어느 학생의 카톡 메시지가 발송됐다.
“다들 사랑해. 진짜 사랑해. 얘들아. 진짜 사랑하고 나는 마지막 동영상 찍었어.”

09시11분
기울어진 선실 내부의 모습이 약 30초간 촬영됐다. 음성은 녹화되지 않았다.

09시12분
故 최 모씨 카톡 - “컨테이너 다 떨궈졌다”

09시13분경
이 시각, 조타실에서는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는 선내 방송을 지시했다고 한다.

한 승객의 촬영 동영상-
40도 이상 기울어진 船室(선실) 모습이 영상이 잡힌다. 구명조끼를 입은 승객들이 갑판의 객실 외벽에 기댄 채 나란히 서 있고 대부분이 전화로 현재 상황을 알리고 있다. 한 승객은 아예 바닥을 벽면으로 삼아 기댄 채 흐린 하늘과 바다를 보며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승객들의 음성도 더러 녹음됐다.

“불난 것보다 더해요, 더해.”
“이거 30분 후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배 타는 학생들이나 전부 다 제대로 있나 모르겠다는 거야?”

이때 안내 방송이 나온다.
<안내 방송>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세요.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이면 더 위험해요 . 움직이지 마세요.”

이 무렵 3층 안내데스크 옆에서 머물던 승객 최재영씨는 박지영 양에게 조타실로 문의해 보라고 채근했다.

“헬기 오기 전까지도 무전을 몇 번 했으니까요. 제가 지영이보고 그랬거든요. 분명히 선장실에 무전을 해서 어떻게 해야 되냐, 보트라도 띄워서 탈출해야 돼냐…어떻게 해야 하나 한 번 물어봐라…사무장도 옆에서 무전기로 불렀는데 조타실에서 답이 없었어요.”

담임교사 2-4반 단체 카톡 - '얘들아-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조끼 입을 수 있음 입고'

09시20분:“지금 애들이랑 물건들이랑 다 밑으로 쏠려서, 아 존나 무섭다'

09시13분29초
승객이 선실 바깥의 기울어진 모습을 촬영했다. 안내방송도 동시에 녹음됐다.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세요.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이면 더 위험해요. 움직이지 마세요.”

외부의 갑판에는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배는 계속 기울어져 가는데 방송은 자리를 지키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고 승객 대부분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 채 빈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

09시15분
선실 대기 안내 방송이 계속 나오고 있다. 

09시16분
같은 시각, 단원고 교감이 교장에게 카톡으로 상황 보고-“배가 15도 기운 상태로 정지”

09시25분38초 학생 카톡-“이제 해경 왔대”

09시17분
故 김 모씨 카톡-“바다가 창문 앞쪽에 있어”

09시19분01초
YTN의 뉴스 속보가 자막으로 방송을 탔다.

<뉴스 속보 - 진도 부근 해상 500명 탄 여객선 조난 신고>

09시20분
생존자 김 모씨 카톡-“지금 애들이랑 물건들이랑 다 밑으로 쏠려서, 아 존나 무섭다. 배에 있던 화물들 바다로 다 떨어지고 난리남”

09시21분
세월호는 45도로 기울고 있었다.
생존자 김 모씨 카톡-“방에 서 있던 애들 누워 있던 애들 진짜 다 날라왔어. 미친 지금 전기도 다 나감”

09시23분
세월호는 52.2도로 기울고 있었다.
3분 사이에 7.2도나 급격히 기울어진 것이다.

故 김 모씨 카톡-“형, 배가 뭔가에 부딪혀서, 배가 안 움직이고 수상구조대인가 뭔가 오고 있대”

09시24분경
생존자 최재경씨-“방송을 또 한 번 하더라고요. 헬기가 지금 왔다고. 곧 구조선이 오니까 조금만 기다리라고.”(SBS <그것이 알고 싶다> 6월7일)

생존자 김 모씨 카톡-“꼭 기어 할꺼에요. 진짜 살아서 감^^”

故 김 모씨 카톡-“막 컨테이너 떨어지고, 방안 기울기가 45도야”

09시 25분
故 김 모씨 카톡-“데이터도 잘 안터져. 근데 지금 막 해경 왔대”(카톡 네임 웅기)

09시25분38초
학생 카톡-“이제 해경 왔대.”
“지금 속보 떴어. 아마 우린 듯.”

(09시28분44초)생존자 신 모씨 카톡-“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 놓는다. 사랑한다.”

09시26분
이 무렵 승객 김성묵(37)씨는 더 이상 船室(선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양 손을 뻗어 잡을 곳을 찾아가며 3층에서 4층 베란다 쪽으로 올라갔다. 학생들이 3층과 4층 홀에 많이 있었지만 그는 그 안으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배가 너무 기울어져 붙잡을 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선원 같은 사람들이 5층으로 기울어진 계단을 붙잡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 김성묵씨는 자신이 주변의 학생들을 도울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 머문 채 상황을 지켜보았다. 사고 다음날 그는 CBS 라디오 뉴스 프로에 출연해 사회자 김현정씨가 “왜 선원들을 따라가지 않았나”라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요.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안에 사람들을 옮겨 주느라. 그때 헬기가 도착하자마자 헬기 구급요원이랑 눈이 마주쳐서 안에 있는 분들 다 아이들부터 시작해서 옮겨 드렸습니다.”

09시26분45초
세월호 선체 20m 상공에 해경 B511 팬더 헬기가 접근중이었다.
이 상황에서도 세월호 조타실과 진도 VTS간 교신이 계속되고 있었다.

진도 VTS : 세월호. 1분 후에 헬기가 도착할 예정입니다.
세월호 : 잘 안 들립니다. 천천히 또박또박 말씀해주십시오.
진도 VTS : 1분 후에 헬기 도착 예정입니다.
세월호 : 다시 말씀을 해 주십시오.
진도 VTS : 1분 후에 헬기 도착 예정입니다.
세월호 : 승객이 너무 많아서 헬기 가지고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진도 VTS : 헬기도 도착할 거고요. 인근에 있는 선박들도 접근중이니까 참고하십시오.
세월호 : 예. 알겠습니다.

09시 27분
생존자 신 모씨 카톡-“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 놓는다. 사랑한다.”

09시27분06초
또 다른 영상에서는 구명조끼를 입은 승객들이 발코니의 기울어진 갑판 바닥을 바라보며 객실 외벽에 올라앉아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4층의 학생들을 걱정하고 있다.

“학생들은 다 어디에 있어요? 학생들?”
“학생들은 다 객실에 있어요.”

멀리서 헬기 소리가 들리자 한 승객이 바다쪽 난간을 붙잡고 손을 흔든다.

09시28분13초
MBC 뉴스 속보가 방송됐다.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오늘 오전 9시쯤 전남 진도군 관내도 인근 해상에서 인천에서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이 침몰중이라는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이 여객선에는 수학여행에 나선 학생 등 500여 명이 탑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09시28분44초
학생 카톡-“아직 움직이면 안 돼.”

이 시각의 영상에는 선실이 더 기울어지고 있는데 방송에서는 “선실이 더 안전하겠습니다”라는 멘트를 하고 있었다.

09시29분
故 김 모씨 카톡-“이제 해경 왔대” “아직 움직이면 앙대”

09시 30분
세월호가 53도로 기울었다.

이때부터 세월호의 1층 船尾(선미) 화물 적재층인 D데크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3층 객실에 머물던 기관부 선원 7명은 이 장면을 확인하고 더 이상 배가 복원될 수 없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이들은 승객들을 그냥 둔 채 자신들만의 탈출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세월호 일반 승객 가운데 이 배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화물차 운전기사들이었다. 이들은 자주 화물차와 함께 제주-인천간을 오가는 사람들이었다. 그 날 이 배에는 33명의 화물기사들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화물칸에 물이 차는 것을 발견하고 탈출을 결심한다. 화물기사들이 일제히 기울어진 선실로부터 밖으로 나와 3층 홀 옆의 출구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미 몇 명은 3층에서 4층으로 올라가는 베란다 난간을 잡고 움직이는 중이었다. 이날 사고 선박에서 화물기사들은 수많은 승객들의 탈출을 도왔다. 그리고 자신들도 전원 생존에 성공한다.

그 시각, 사고 현장에서 북동쪽으로 약 13km 떨어진 진도군 조도면 대마도의 어민 김현호(46)씨 부부는 한가한 철을 맞아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마친 뒤 TV의 아침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다. 화면에서 속보 자막이 흘렀다. 진도 부근에서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내용이었다. 부인이 “진도 부근이라는디 안 가봐?”라고 물었다. 김 씨는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 모르는 사람들 말만 듣고 1톤급 소형 어선을 몰고 나섰다가는 낭패라는 생각에 심드렁하니 대답했다.

“헌디, 진도 부근이라는디, 진도 부근이라도 여그 조도 부근인지 쩌그 위쪽 어딘지 어떻게 알어?”

부인도 할 말이 없었다. 진도군 조도면은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에 속한 지역이어서 넓은 바다 가운데 많은 섬들이 자리해 물길도 뱃길도 복잡한 곳이었다. 그렇게 부부가 TV화면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말없이 앉아 있었다.

같은 시각, 조도면 이장단장 겸 청년회장인 정순배씨는 해경으로부터 긴급구조 연락을 받고 있었다. 그는 내용을 정리해 조도면에 속하는 7개 섬의 해양 예비군인 어부들 250여명에게 단체 문자 발송을 준비해야 했다.

이때 전라남도 어업지도선 201호와 207호도 해상 근무 중 긴급구조 무전을 받았다. 고속 短艇(단정)인 201호의 박승기 항해사가 선수를 돌려 맹골수도쪽으로 방향을 잡고 全速(전속) 항진을 시작했다. 30~40분 정도 걸릴 것 같았다. 인근 해역의 모든 배들이 사고 소식을 듣고 그들처럼 船首(선수)를 돌리고 있었다.

그 시각, 세월호를 약 1km 앞두고 전속 항해중이던 해경의 P 123정은 인근 해역의 선박 가운데 세월호에 가장 가까이 접근중이었다. 흐린 날씨로 하늘과 바다가 거의 구분되지 않는 잿빛 공간 저 멀리 새하얀 선체의 세월호가 45도 이상 기울어진 상태로 눈에 들어왔다. 그 위로 붉은 색 팬더 헬기 한 대가 접근 중이었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 목포항공대 소속의 팬더 B 511호였다. 팬더 512호는 3009함에 실려 중국 불법어선 단속을 나갔다가 사고 소식을 듣고 침몰 지점으로 날아오는 중이었다. 제주항공대 소속의 팬더 513호도 1분 후엔 사고 해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계속)

[ 2014-11-30, 04:5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