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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警·官·民 구조대, 50분 동안 선체 밖으로 나온 173명中 172명 구조
제5부 救助(구조)③09시36분30초, 한 학생이 할머니와 통화를 했다. “할머니, 배가 한 쪽으로 기울었어. 깜깜한 데에서 난간을 붙잡고 있는데 나 죽을려나 봐.”

이동욱(조갑제닷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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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시30분, 구조가 시작되다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災難(재난)은 지진이나 풍수해와 화재 등으로 빚어지는 ‘자연재난’과 안전 불감증, 부주의 등으로 빚어지는 ‘사회재난’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재난사고를 대비하고 연구하는 防災學(방재학·Department of disaster prevention)에서는 재난 관리 활동단계를 ‘예방’-‘대비’-‘대응’-‘복구’ 등 네 단계로 구분해 두고 있다. 방재학 연구자들은 인간이 만든 문명의 속성상 대형 재난사고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고 한다. 그들은 발생 빈도와 피해규모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큰 혁신으로 본다. 이를 위해서는 재난사고가 발생하기 前단계에서 예방과 대비에 역점을 두어야 했다.

세월호가 4월16일 09시30분에 복원불능 상태로 넘어가기 직전까지의 상황을 防災學의 입장에서 보면 ‘예방’과 ‘대비’ 단계의 실패인 셈이었다. 선박 건조와 운항의 안전점검, 사고 발생시 승객들의 안전대책 강구와 비상탈출 도구 구비, 승무원의 안전교육과 훈련 등이 제대로 실시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로써 재난관리의 4단계 중 1, 2단계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넘어가면서 09시30분 이후 세 번째 단계인 ‘대응’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재난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대응’단계에는 생존자의 救助(구조)가 최우선 항목이 된다. 구조가 시작된 것이다.


海警·官·民 구조대, 선체 밖으로 나온 173명中 172명 구조

해양경찰청의 구조임무를 띤 구조 세력이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09시30분. 헬기 B 511호, P 123艇(정)이 순서대로 도착했고 제주 해경서 항공구조대의 헬기 B 513이 09시32분에, 목포 해경 소속의 B 512가 09시45분에 사고 해역에 도착해서 구조작업을 시작했다. 사고 접수를 받은 지 30분 만에 구조세력이 현장에 도착했다는 점은 생존자들에게는 대단히 運(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드넓은 바다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구조세력의 현장까지 도달 시간이 구조의 성패를 좌우하며 生(생)과 死(사)를 가른다. 세계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미국의 해양경비대 매뉴얼에 따르면 사고 접수 후 2시간 이내에 현장 도착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의 해경은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날 세월호 船體(선체)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모두 173명이었다. 이 중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입혀준 채 맨 몸으로 물로 뛰어든 정차웅군이 溺死(익사)한 채 해경에 인양되고 나머지 172명은 모두 생명을 건졌다. 해경의 팬더 헬기 B 511은 2회에 걸쳐 12명을 구조하고, B 513은 3회에 걸쳐 13명, B 512은 2회에 걸쳐 총 10명을 구조해 내 항공 구조세력에 의해 총 35명이 구조된다. 여기에 고속단정과 함께 구조에 참여한 P 123정이 정차웅군을 포함한 80명을 구조, 인양해 해경은 이날 세월호 선체 밖으로 탈출한 승객 173명 중 114명의 생명과 1구의 屍身(시신)을 건져냈다. 세월호에 허용된 구조시간이 얼마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배가 침몰할 때까지 약 50분 동안 114명의 목숨을 건져낸 것도 대단한 성과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해상 재난의 특징 중 하나가 광대한 해역의 넓이로 인해 신속한 구조세력의 투입이 어렵다는 점이다. 넓은 바다 위에서는 ‘서울에 배 한 척, 대전에 배 한 척’ 하듯이 드문드문 위치하기 때문이다. 오랜 해양문화의 전통을 갖고 있는 선진 해양국가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소에 지역별 민간 구조 세력을 지원하고 육성해 왔다. 해양의 예비군인 이들은 모든 해역의 어선과 어민들이 포함되며 각 지역에서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는 민간 잠수사들도 구조협회 등에 가입하여 해양 사고 발생시 구조자로 참여한다.


선진국의 海洋협조세력


미국은 1936년에 설립된 미국연안경비대 자원봉사단(USCG Auxiliary)이 미국연안경비대(USCG)의 직접 지휘를 받는 조직으로 활동중이다. 이들은 사법권만 없을 뿐 평시에 어선 및 선박 검사와 해양 순찰 및 수색 구조를 담당한다. 연간 1800만 달러 상당의 예산을 USCG로부터 지원받고 회원 3만 5000여명의 회비와 기부금 등으로 부족분을 충당하는 이들은 보트 4971척과 항공기 226대 및 무선설비 2641개 국을 보유, 운용중이다.  

영국의 왕립구명정협회(Royal National Lifeboat Institution: RNLI)는 1824년에 설립돼 2011년까지 13만 9832명을 구조해낸 기록을 갖고 있다. 4만 1000여 회원들 가운데 구조정 승무원으로 근무하는 회원들만 4600여 명이나 되고 기부금 조성자가 3만 5000여 명이다. 

일본도 1889년에 창립한 일본수난구제회(日本水難求濟會, Marine Rescue Japan)가 해양 예비군으로 활약하는 중이다. 5만4000여명의 회원을 중심으로 운용되는 이 단체는 일본 해상보안청, 사회보험청 등 관계관청과 자자체의 교육훈련 등 각종 지원을 받으며 전국어업협동조합, 전일본해원조합 등이 협력단체로 지원을 맡는다. 창립 이후 2012년까지 19만 3882명의 인명을 구조했고 3만 8757척의 선박을 구조해낸 기록을 갖고 있다.  

3면이 바다로 둘러쌓인 우리나라의 경우 1년 전인 2013년에 한국해양구조협회(Marine Rescue & Salvage Association of Korea)가 수난구호법 제26조에 의해 설립됐다. 협회를 중심으로 전국의 해역을 16개 지부로 나누어 구성을 마친 이 협회의 예산은 기부금과 회비로 충당해 오다가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 인천 해양경찰청 소회의실에서 지원사업 예산안 심의를 하던 중이었다.

이날 사상 최초로 한국의 해양 예비군인 한국해양구조협회에 해경이 지원할 예산액수는 5억 원. 그러나 이마저도 때마침 발생한 세월호 사고 소식과 함께 물거품이 됐다. 그 후 한국해양구조협회는 세월호 사고 해역에 해경과 함께 구조 지원세력으로 참여했다가 검찰의 강도높은 수사를 받게 된다. 이 협회의 黃大植(58) 구조·구난 본부장은 자동차, 집, 숙소, 사무실, 핸드폰, 개인통장 29개 등을 압수수색을 당해야 했고 가족과 친인척 모두의 통장이 조사대상이 됐지만 무혐의로 종결된다. 한국해양구조협회의 공동 부회장으로 기부금을 낸 구난업체 언딘도 같은 이유로 압수수색을 당한 바 있다. 이번 사건을 들여다 보면 유독 우리나라 언론과 검찰만이 이런 해양 협조세력을 두고 해경과 癒着(유착)관계라고 비난하는 남다른 무식함을 드러낸다. 협조와 유착간의 어휘 분별력도 없고 무엇보다 바다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것이다.  

이 날 사고발생 직후 진도 VTS가 인근 해역의 어선들과 연락을 취해 구조를 요청했고 목포 해경 상황실에서는 진도 군청을 통해 官公船(관공선)과 어업지도선의 출동을 요청했다. 비슷한 시각, 민간 구조세력인 한국해양구조협회에서도 전국의 잠수 인력에게 소집을 알렸다.

해경이 09시30분부터 구조작업을 펼치다가 38분 뒤인 10시08분부터는 민간 어선 2척과 어업지도선 2척이 구조에 가세한다. 해양 예비군이 참가한 것이다. 그 시각엔 세월호 船體(선체) 주변으로 대형상선 4척과 어선 50여 척의 배들이 구조세력으로서 모여 들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선체가 높아 수면 위의 수상 인명 구조에는 별 도움이 될 수 없었다. 대신, 1.1톤급 소형 어선인 피시헌터호와 태선호 및 고속短艇(단정)인 어업지도선 201호와 207호가 신속히 세월호 선체에 접근하여 난간을 붙잡고 구조를 기다리던 사람들 실어낼 수 있었다. 이들이 모두 58명의 승객을 구조한다. 이로써 선체 밖으로 나오던 승객 172명 전원이 구조된 것이다. 지금부터 구조상황을 시간별로 추적해 보자.


09시10분, B 511호 헬기 최초로 도착

09시 30분
B 511호 헬기에는 항공대장 양해철 경감과 부기장 김태호 경위가 조종을 맡고 있었고 電探(전탐사) 이명중 경사, 정비사 김범준 경장이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 뒤로 항공 구조사 박훈식 경위와 김재현 경장이 검은 수트복 차림으로 세월호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들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큰 배가 쓰러지는 중인데 주변에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였다.

이들 항공 구조대는 09시03분에 상황실로부터 전화연락을 받고 09시10분에 이륙함으로써 가장 빨리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신, 선체에 몇 명이 탑승하고 있는지에 관한 기타 정보를 전혀 갖지 못한 상태였다. 검은 잠수복 차림의 박훈식 경위를 포함한 항공 구조 대원들은 기울어진 배를 보고 무척 낯설어 했다. 목포 해양경찰들은 목포–제주간 선박들을 어지간해서는 한두 번 이상 乘船(승선)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래서 선박의 크기나 내부 구조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 날 아침 이들이 발견한 배는 그때까지 본 배 가운데 제일 컸으며 그렇게 큰 배가 저토록 말도 안 되는 자세로 기울어져 있는 것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게다가 선체 주변으로 사람들이 떠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奇異(기이)했다.

팬더 B 511호가 세월호에 가까이 도착하자 선체 주변에 컨테이너 몇 棟(동)과 약간의 화물들이 둥둥 떠 있는 것 이외에는 갑판이고 바다고 간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처음에 화물선인가 싶었다고 한다. 양해철 경감은 헬기를 몰아 선체 주위를 한 바퀴 선회하며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헬기가 선체를 거의 한 바퀴 다 돌아 船尾(선미) 쪽으로 방향을 트는 순간에 5층과 4층 사이 우측 통로 난간 쪽으로 사람이 보였다. 50도 가까이 기울어진 바닥에서 네 사람이 난간을 붙잡은 채 앉아있었다. 양해철 경감은 그들 머리 위로 機體(기체)를 이동시킨 뒤 몇 십초 간 제자리 비행을 시작했다. 전탐사가 채증을 위한 촬영을 하는 동안 정비사가 구조장비 호이스트(注:고리로 연결해 물건을 들어올리는 장치)를 준비했다.

이때 선실에서 헬기가 도착한 장면을 본 회사원 김성묵씨는 이제 구조가 되는가 싶었다. 그가 헬기를 보고 있으니 사람은 구하지 않고 사진을 찍는 듯했다. 그는 ‘도대체 헬기가 왜 온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때 팬더 B 511호의 양 경감은 조종간을 잡고 정지비행을 하면서 “구조사 투입 준비!”라고 명령을 내렸다. 정비사 김범준 경장이 호이스트를 작동시켰다. 박훈식 경위가 호이스트를 잡고 헬기에서 내려갈 준비를 마쳤다. 다시 양 경감이 임무를 주지시켰다. “안전하게 구조 임무 수행할 것!” 박훈식 경위가 下降(하강)하면서부터 양 경감은 09시49분까지 세월호 선체 상공에서 6명을 헬기에 싣게 된다.


조리실 김종임씨 헬기로 최초 구조

09시31분
박훈식 경위 뒤를 이어서 김재현 경장이 호이스트로 선체에 하강했다. 두 구조사는 선체에 내렸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발 디딜 곳이 마땅치 않았다. 배가 50도 가량 기울어진 상태여서 갑판과 선체 외벽의 모서리가 그나마 가장 안정적인 발판이었다. 이러다 보니 난간을 잡고 앉아있던 승객들도 불과 5m 전방에서 구조대원들이 내려왔지만 꼼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헬기에서는 정비사 김범준 경장이 호이스트로 바스켓을 내리고 있었다.

구조사 김재현 경장이 먼저 승객들에게 엉금엉금 기어서 접근했다. 박훈식 경위는 헬기로부터 내려오는 바스켓을 잡기 위해 공중을 주시했다. 흔들리며 내려오던 바스켓이 박훈식 경위의 손에 잡힐 무렵 김재현 경장은 승객 네 사람 중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끌다시피 해서 박훈식 경위가 있는 지점으로 이동했다. 이 아주머니가 조리실에서 선체 밖으로 탈출한 김종임씨였다. 그녀가 제일 먼저 헬기로 구조되었다. 그녀 뒤로 최찬열씨(조리실 직원)와 70대 노인이 구조되었고 맨 마지막으로 김태환씨가 바스켓에 몸을 실었다. 이로써 5층 난간에서 만난 네 사람 모두 가장 먼저 목포 해경서 항공 구조대에 의해 구조된다.

항공 구조사들이 이들 네 사람을 실어 올리는 동안 4층 난간에서도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바스켓을 잡고 있던 박훈식 경위가 이들 중 세 사람을 더 태워 올렸다. 6인승의 B 511호 팬더 헬기에 13명이 탄 것이다. 1700 마력으로 비교적 출력이 약한 팬더 헬기는 엔진에 무리가 갈 수 있었지만 상황은 급박했다. 그 무렵 제주 해경 항공구조대의 513호가 세월호 상공에 도착해 한 바퀴 旋回(선회) 했다. 당시 상황을 생존자 김태환씨에게 들어보자.


김태환씨의 증언

<잠시 후에 우리 머리 위로 헬기가 정지비행을 하면서 구조대원 한 분이 내려오셨습니다. 그 때부터 다시 경황없는 상황이 되는 거지요. 추운 바닷바람이 부는데다가 헬기 프로펠러가 불어젖히는 바람 사이로 소음도 엄청났고요. 한 분이 바스켓을 저희에게 끌고 오는데 배가 아까보다 더 기울어져서 거의 모서리를 밟고 엉금엉금 왔습니다. 거기서 제가 제일 젊기도 하고 다른 분은 年老(연로)하신데다 다친 분도 있고 해서 그 분들이 먼저 타고 갈 수 있도록 도와드렸습니다. 발 딛는 데를 잡아 드리고, 그러면 해경 분이 잡아 끌어주시고 했어요. 그 자리에서 제가 네 번째로 구조가 된 겁니다. 가장 먼저 온 구조헬기에 의해 구조된 거지요.

헬기로 구조된 사람들이 저를 포함해서 여섯 명이었을 겁니다. 헬기에 올라탄 뒤에 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제가 타고 왔던 배가 쓰러진 채 절반쯤 물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이었습니다.

나중에 병원에 있을 때 누가 물어요. 제가 헬기에 탔을 때 그 해경들에게 배 안에 사람이 많이 남아있다는 걸 이야기해 주지 않았냐고 말입니다. 저로서는, 그런 말 할 필요를 못 느꼈다고 해야 할 겁니다. 해경들이 어련히 알아서 할까 싶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가 겁이나서 들어갈 수 없던 곳을 해경에게 들어가라는 건 잘못이라고 봤어요. 제 목숨이 소중하면 해경 목숨도 소중한 거 아닙니까. 해경 목숨은 특별히 하나 더 있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우선 몇 명을 어렵게 구조해 준 것만도 고마운데 그 사람들에게 제가 뭐 잘났다고 가라마라 하느냐 이겁니다. 더구나 나중에야 이렇게 됐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배가 완전히 침몰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고, 배 안에서 계속 움직이지 말라는 지시에 승객들이 꼼짝없이 묶여 있었던 것도 몰랐으니까요. 저도 몰랐고요.>

항공구조사가 도착해 구조하는 것을 본 김성묵씨는 항공구조사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구조사가 김성묵씨에게 손가락을 펴 보였다. 김성묵씨는 5명을 올려보내라는 뜻으로 알고 자신의 주변에서 난간을 붙들고 있던 학생들을 추스려 한 명씩 윗층으로 올려 보냈다. 그가 항공 구조사를 도와 선실 내부의 학생들을 올려보내자 그 옆에 있던 화물 기사들이 김성묵씨를 돕기 시작했다. 잠시 후 항공 구조사는 양 손을 들더니 손가락 여섯 개를 펴 보였다. 김성묵씨와 화물 기사들이 학생들 여섯 명을 추려 올리기 시작한다.


09시32분: P123艇(정) 세월호 선체 부근에 도착

09시32분
P 123정이 세월호 선체 부근에 도착했다. 잿빛 바다 위로 흰색의 거대한 선체가 좌현 50도로 누워 있다는 것도 낯선 광경인데다가 흐린 하늘에 붉은 색 헬기 두 대가 구조를 위해 떠 있었지만 정작 사람은 보이지 않아 희한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P123정은 북쪽에서 내려와 세월호에 접근하는 중이었다. 이 무렵 세월호는 우회전 중 쓰러지면서 左舷(좌현)을 기울인 채 표류하기 시작해 조류를 따라 북동쪽으로 비스듬히 떠내려가는 중이었다. 남쪽을 향하던 船首(선수)가 서서히 돌아 북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P艇(정)은 50도 가까이 기울어진 세월호의 정면을 먼저 본 것이다.

P123정의 김경일 정장은 세월호 선체 右舷(우현)으로 한 바퀴 선회하면서 접안시킬 마땅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좌현부터 접근하다가 빨려 들어갈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P123정은 구조선이 아니고 해상에서 신속하게 기동 하도록 설계된 어선단속선이었다. 따라서 船首(선수) 갑판은 파도를 잘 가르도록 높게 만들어져 사람이 물에 빠지면 높은 갑판으로 인해 쉽게 건져 올릴 수가 없다. 그런 이유로 이 배의 船尾(선미)에 고속 短艇(단정)이 실려 있다. 인명구조같이 다른 선박에 接岸(접안)할 경우에는 단정을 투입하는 것이다.

船首(선수) 갑판이 높으면 비슷한 높이의 접안장소가 아니고서는 아무데나 접안도 못한다. 세월호 주변을 선회하던 P정은 사람을 찾으면서 배를 갖다 댈 접안 장소도 동시에 물색중이었다. 세월호 후미쪽은 이미 물과 너무 가까이 기울어져 P정으로서는 접안할 곳이 아니었다. 그 곳에 몇 사람이 난간을 붙잡고 있었지만 자칫하다가는 6825톤급의 세월호에 110톤급 P정이 물려 들어갈 수 있었다. 김경일 정장은 단정으로 구조하면 될 것으로 보고 계속 접안 장소를 찾아 배를 몰았다. 후미를 돌아 세월호 좌현 선수쪽으로 돌던 P 정은 비로소 접안할 만한 곳을 발견한다. 세월호 좌현의 5층 갑판이 기울어지면서 P정의 갑판과 비슷한 높이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김경일 정장은 그 쪽으로 배를 몰아 조심해서 접근해 들어갔다. 그 사이 P 123정의 후미에서는 박은성 경사와 김용기 경장이 크레인 작업을 통해 短艇(단정)을 내리고 있었다.


“할머니, 깜깜한 데에서 난간을 붙잡고 있는데 나 죽을려나 봐”

09시35분
세월호가 53도로 기울었다. 침수한계선인 D데크가 전부 물에 잠겼다. 흘수선까지 물에 잠긴 것이다. 이로서 세월호는 선박으로서의 復原力(복원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가 됐다.

09시36분
선실이 더 안전합니다. 움직이지 마세요.

09시36분30초
KBS 뉴스속보가 나갔다.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오늘 오전 9시쯤 전남 진도 해상에서 승객 등 350명이 탄 여객선이 침수중입니다. 이에 따라 해경 구난함이 현재 출동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오늘 오전 9시쯤 전남 진도 해상에서 승객 등 350명이 탄 여객선이 침수중입니다. 이에 따라 해경 구난함이 현재 출동하고 있습니다.>

이 무렵 4층 선실 내의 故 김시연 양의 동영상이 남겨졌다. 영상에서 학생들은 아직 위기를 감지하지 못한 듯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시각, 한 학생이 할머니와 통화를 했다. “할머니, 배가 한 쪽으로 기울었어. 깜깜한 데에서 난간을 붙잡고 있는데 나 죽을려나 봐.”

09시37분 54초
어느 학생이 남긴 영상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기울어진 선체 벽에 기댄 채 앉아있는 장면이 들어 있었다.

09시38분33초
故 박예슬 양이 남긴 동영상 - “헬리콥터가 와.” “구조 좀…” “사람들이 바다로 뛰어내린다”

P 123정에서 내려진 고속단정이 세월호를 향해 발진하는 장면이 P정의 후방카메라에 녹화됐다. 단정은 기울어져 침수중인 세월호의 선체 중앙 부분으로 금새 도착했다. 이미 그 곳에 구명조끼를 걸친 채 나와 선체에 매달려 있는 승객들이 보인다. 그들이 기관부 선원들이었지만 해경은 이런 사실을 알 도리가 없었다.

09시39분
월호는 54.9도로 기울고 있었다.
카톡-“해경이 왔다. 근데 움직이면 안 된다.”


09시39분48초,
박상욱 경장 등 세월호에 올라 구명벌 두 개를 바다로 던지다

09시39분48초
고속단정이 선체 3층 중간에서 선체 밖에 나오려는 승객들을 태워 P 123정으로 복귀하고 있다. 이때부터 세월호 선체 밖으로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오기 시작했다. 승객들의 탈출 지원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기관부 선원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서 모두 생명을 건진다. 그들 뒤로 구명조끼를 걸친 열댓 명의 사람들이 물로 뛰어들어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P 123정의 船首(선수)쪽이 세월호 5층 갑판에 접안되자 박상욱 경장(37)이 좌현으로 기울어진 세월호로 뛰어 올랐다. 객실이 시작되는 3층이 수면 가까이로 쓰러지고 있었지만 그때까지 3층은 물이 들어차지 않았다. 그는 조타실 창문으로 사람을 발견했다. 이형래 경사도 세월호로 올라 탄 뒤 난간에 설치 된 救命(구명)벌을 발로 차 바다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두 대가 떨어졌으나 펴진 것은 한 대뿐이었다.

이 무렵 인천 용유초등학교 동창 환갑 여행에 참가한 김정근(60)씨가 17명의 동창 가운데 제일 먼저 3층 多人室(다인실)에서 로비로 나왔다. 그가 기울어진 3층 로비를 보니 구명조끼를 걸친 학생들이 반쯤 세워진 바닥을 벽 삼아 기댄 채 서 있었고 몇몇 다친 사람들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인 듯 보였다. 그때 3층 식당과 객실 사이의 안내 데스크 부근에서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한 젊은 여성이 다람쥐처럼 천정에 매달린 채 무전기로 통화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 여성이 스물두 살의 박지영 양이었다. 그녀는 연신 무전기에 대고 “퇴선시킬까요”라고 묻고 있었지만 상대방으로부터 아무런 답신이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박지영 양은 아직 구명조끼를 걸치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 구명조끼를 던져 주며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승객들을 보살피기 시작했다. (계속)

[ 2014-12-01, 17:0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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