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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객실에 물 들어차자 승객들 ‘潛水(잠수) 탈출’ 시작
제5부 救助(구조)④船室(선실)에 물이 차는 순간 이중재씨의 증언 “그때 선실 로비의 사람들은 미끄러지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로 날아다녔어요. 그 와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골절상 등을 입고 피 흘리며 쓰러졌고요.”

이동욱(조갑제닷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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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경(58)씨 등 몇몇 어른들의 영웅적인 행동


09시40분04초
평소에 잘 드러나지 않던 사람이 집단의 위기가 발생하면 튀는 경우가 있다. 두 가지 유형 중 하나다. 첫 번째 유형은 진정한 利他心(이타심)을 발휘해서 타인에게 도움을 베푸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진정한 영웅으로 존경받아 마땅하다. 다른 한 유형은 위기를 이용해서 자신의 利己心(이기심)을 채우는 허영기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영웅심리에 도취되어 공동체에 극심한 害惡(해악)을 끼친다. 이날 세월호 승객들 중에는 김성묵(37)씨처럼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이 비교적 많았다.

세월호 船尾(선미) 3층 좌현에서 기관부 선원 7명이 해경의 고무보트에 의해 구조되고 있을 때 5층 선실에 머물렀던 승객 김홍경(58)씨 등 몇몇 어른들은 영웅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의 탈출을 미룬 채 다른 사람들의 탈출을 도왔다. 김홍경씨는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방송을 듣고 구명조끼 函(함)을 찾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주며 자신도 입었다. 그는 탈출 결심을 하고 선실 밖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커튼 20장을 엮어 밧줄을 만들어 사람들의 탈출을 돕는다. 그가 5층 선실 밖으로 탈출하던 중 4층으로 내려가는 계단과 갑판 통로(발코니)에 학생과 승객들 10여 명이 난간에 매달린 채 꼼짝을 못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김 씨는 자신의 탈출을 미룬 채 이들의 구조를 돕기 위해 4층 우현 발코니로 내려갔다.

김홍경씨가 4층 발코니에 도착했을 때 화물기사 김동수(49)씨가 소방호스를 끌어오고 있었다. 4층 우현 발코니에서 객실로 들어가는 입구가 우물처럼 변해 있고 그 속에 학생들이 갇혀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무거운 철제 출입문은 열린 채 고정돼 있었다. 그 통로는 문에서 3m 정도 直進(직진)한 다음 T자 형태로 내부에서 통로가 갈라진 곳이었다. 갈라진 곳의 맞은편 벽은 바닥으로 변하는 중이었고, 통로 입구는 우물 입구로 바뀌고 있었다. 나오려면 3m나 되는 철제 벽면을 기어올라 문밖으로 나온 뒤에도 다시 2m정도 올라와야 90도로 꺾인 객실 외벽을 만나게 된다. 거기서 비로소 김동수씨가 버티고 있는 4층 베란다의 벽면을 밟을 수 있었다. 김동수씨가 소방호스를 통로 속으로 집어넣기 위해 4층 갑판 통로에 고정된 벤치의 등받이를 딛고 접근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벤치의 등받이를 밟을 수 없을 테지만 이때는 이미 등받이가 바닥이 된 상황이었다.

김홍경씨가 이 장면들을 자신의 스마트 폰에 담기 시작했다. 펩시콜라 자판기가 쓰러져 있고 그 옆으로 구명조끼를 입은 승객 10여 명이 선실 외부로 통하는 계단의 난간을 붙잡은 채 앉아 있는 모습들이 들어왔다.

09시40분22초
세월호 4층 발코니에서 김동수씨가 던져준 소방호스를 잡은 학생이 올라오기 시작하자 김동수씨가 호스를 힘겹게 잡아당기는 장면이 김홍경씨의 영상에 남겨졌다.

09시41분
세월호가 55.4도로 기울었다.

한 학생의 카톡-“아, 보고 싶어. 엄마”

09시41분26초
해경의 고속 短艇(단정)이 선체 중앙부 4층 난간의 승객을 구조하는 중이었다. 같은 시각, 한 학생(생존)이 카톡을 남겼다. 
“창문 바로 앞에 컨테이너, 떠내려가고 있어. ㅆ ㅂ 방송도 안해 줘. 걍 가만히만 있으래.”
선실 내부에서는 300명 넘는 사람들이 탈출을 결심하지 않은 채 선실에 대기하기를 선택하고 있었다.

09시42분
세월호가 56.5도로 기울었다.

한 학생(생존)의 카톡-“아빠가 속보 떴다고 보라고 해서, 숙소 안에 다 있어, 배터리 단다고 지피에스 켜 놓고, 배터리 다니까 기다리래 ㅜㅜ.”

09시42분10초
항공 구조사가 외벽을 붙잡은 채 5층 난간 안에 있는 여학생을 난간 밖으로 유도해 이동중이다.

09시42분18초
고속短艇이 P 123정으로 구조자들을 이송중이다.


大馬島(대마도) 거주 피시헌터(1.1톤) 선장 김현호씨 출동

09시42분33초
고속단정이 P123정에 도착. 선체 외벽에서 구조 작업 중인 해경 항공 구조사는 아직 여학생의 이동을 안내 중이었다. 발 디딜 곳을 찾느라 몹시 진행이 느리다.

이 시각, 진도군 조도면 정순배 회장은 한 번에 25명씩 조도면에 거주하는 어민 250여 명에게 긴급 문자메시지를 돌렸다. 大馬島(대마도)에 거주하는 피시헌터(1.1톤) 선장 김현호씨 핸드폰에서 문자도착 소리가 났다. 부인과 함께 TV 연속극을 보던 김 씨는 혹시 하는 생각에서 문자를 열어 보았다.

 <긴급상황 맹골 근처 여객선 침몰중. 학생 500여명 승선. 어선 소유자 긴급 구조요청. 정순배>   

 김현호씨는 문자 메시지에 ‘맹골’이란 단어를 두 번이나 확인했다. 그리고 용수철같이 몸을 세웠다. 조도면 사람들이라면 맹골 수도의 위험한 물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필 그 험한 水道(수도)에서 배가 가라앉고 있다니. 김 씨는 검은 색 점퍼를 걸쳐 입고 마당 한 편에 연료를 담아 둔 20리터짜리 말통을 낚아채며 배가 있는 곳으로 달려 나갔다. 집 앞 30여m쯤에 있는 대마항에 그의 어선 피시헌터호가 정박중이었다. 그가 배로 달려가는 중에 마을 형님 김승태(53)씨를 만났다. 그도 문자 메시지를 보고 달려 나오던 참이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김현호씨의 1.1톤급 어선 피시헌터호에 몸을 실었다. 이들이 피시헌터호에 올랐을 무렵에는 대마도 대막리에 거주하는 김준석(40)씨도 마을 형님인 김대열(44)시를 태선호(1.05t)에 태우고 또 다른 선착장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이들 네 사람이 두 대의 漁船(어선)으로 출발한 대마도의 위치를 조금 설명할 필요가 있다. 맹골도에서 동쪽으로 약 5km 부근에 서거차도와 동거차도가 남북으로 비스듬히 위치한다. 맹골도와 이들 두 섬 사이가 맹골수도이다. 서거차도의 동남쪽에 동거차도가 있지만 멀리서 보면 두 섬은 거의 연이은 듯 보인다. 대마도는 서거차도와 동거차도 두 섬에서 다시 동쪽으로 약 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곳 대마도에서 사고지점인 남서쪽의 병풍도까지는 약 11km 떨어져 있는 것이다.
 
김현호씨는 김승태씨를 태우고 배를 몰아 동거차도 아래의 무인도 북섬을 향했다. 맹골수도로 가기 위한 코스인데, 이곳을 지나면 약 7km 떨어진 맹골수도와 병풍도 부근이 관측 가능해진다. 지구의 曲律(곡률)반경과 관측자의 눈높이(선박의 갑판 높이+관측자의 눈높이를 합하면 대략 3m)를 감안하면 수평선까지 관측 가능한 거리는 거의 6~7km 정도가 된다. 

“우리 섬에서 바로 앞으로 2분 정도 나가면 무인도가 있어. 북섬인디 그 옆으로 딱 도니까 사고 현장이 바로 보여불어. 병풍도쪽으로. 보자마자 30노트 전속력으로 달려갔제. 그 동안 뒤에서 승태 성님이 말통으로 기름 부어 넣고. 한 15분 걸렸을 거여.”

피시헌터호와 태선호가 全速(전속) 항진중이었다.


09시44분:
학생의 카톡-“더 이상 답장 못할 듯”

09시43분00초
해경 B511 헬기가 바스켓 내려준다.

학생(생존)의 카톡-“휴대폰으로 뭐 하지 말래, 나 무서워, 진짜 무서워 괜히 배 타가지고”

09시43분53초
여학생이 헬기에 무사히 도착한다.

09시44분
학생(사망)의 카톡-“더 이상 답장 못할 듯”

09시44분23초
B 511 헬기: 상황실. 여기 호텔 2. 현재 6명 구조. 511호기 6명 구조. 서거차도. 서거차도 방파제로 이동합니다. 수신 여부.

팬더 B 511호 기장 양해철 경감은 승객을 더 이상 태울 수 없다고 판단하고 離脫(이탈)비행을 시작했다.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헬기 駐機場(주기장)이 있는 곳은 약 5km 떨어진 서거차도 해변. 양해철 경감은 511호를 몰아 서거차도 해변에 구조 승객들을 내려놓은 뒤 다시 현장으로 복귀 비행을 반복하게 된다.

한편, 511호가 떠난 자리를 채운 제주 해경의 513호에서는 柳規錫 경장이 바스켓을 타고 내려왔다. 그는 세월호 선체 위에서 구조 중이던 목포 해경의 박훈식 경위와 김재현 경장과 합류하게 된다. 한때 박훈식 경위의 지휘를 받기도 했던 柳 경장이 선체에 발을 딛고 보니 船尾(선미)쪽 20여m 떨어진 곳에 구명조끼를 입은 몇 명의 사람들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류 경장과 김재현 경장이 그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발을 옮기는 곳은 30여m 벼랑 끝단이었다. 잘못 미끄러졌다가는 최소한 골절부상을 입은 채 물로 빠지게 될 곳이었다. 이들에게는 붙잡을 난간도 없었다.

생존자 윤길옥씨-“이 헬기가 확성기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우현 갑판)서 사람 구조할 때 해경이 이쪽, 이쪽(갑판)으로 들어왔더라고요. 거기서라도 그냥 소리라도 빨리 물에 뛰어들라고 소리만 쳤어도 많이 나왔을 건데 전혀 그런 게 없었어요.”(SBS <그것이 알고 싶다> 6월7일)

4층 베란다에서 학생들을 도와 헬기의 항공 구조사에게 올려 보내던 김성묵씨는 또 한 대의 헬기가 도착한 것을 보았다. 그는 선실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소방호스를 가져와 베란다 기둥에 묶은 다음 다른 한쪽을 4층 홀 쪽으로 던져 넣었다. 학생들이 힘겹게 소방호스를 붙잡고 올라왔다. 2명이 올라왔다. 김성묵 씨는 이대로는 너무 늦다고 판단했다. 그는 소방호스 한 개를 더 구해와 던져 넣었다. 새로 던져 넣은 호스를 붙잡고 학생 1명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 시각, 또 다른 장소에서 화물기사 김동수씨도 소방호스로 학생들을 끌어 올리는 중이었다.


09시47분경, 객실
3층부터 侵水(침수)가 시작

09시46분25초
세월호가 61.2도를 넘어섰다.

조타실로부터 내려온 반바지 차림의 승객이 P 123정으로 올라탄다. 그가 세월호 선장 이준석씨였다는 사실을 당시에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세월호 선체에 올라 탄 이형래 경사가 구명벌을 펼치기 위해 노력 중이었지만 두 개만 떨어지고 그 중 한 개가 펼쳐졌다. 나머지 구명정은 제자리에서 脫去(탈거)되지도 않고 있었다. 박상욱 경장이 조타실 쪽으로 올라가기 위해 몇 번 시도하다 미끄러지며 실패하자 P 123정에 실려 있던 홋줄을 가져와 조타실로 던져 올렸다. 조타실에서 누군가가 이 홋줄을 잡아 문 손잡이에 연결했다. 박상욱 경장이 조타실로 올라가려 홋줄을 두 손으로 단단히 붙잡았다. 그러나 위에서 사람들이 홋줄을 잡고 내려오는 바람에 올라가지 못한다.

09시47분경
세월호가 62도로 기울었다.

객실이 있던 3, 4, 5층 가운데 3층부터 侵水(침수)가 시작되었는데, 그 시각은 09시47분경으로 보인다. 물이 입구에서부터 차들어오자 생존자들은 밀려드는 물을 정면 돌파한다. 그들은 물 속으로 潛水(잠수)를 시도해서 배 밖으로 빠져 나갔다. 이른바 ‘잠수 탈출’이 시작된 것이다. 이때 잠수 탈출을 시도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溺死(익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상황을 살펴보자.


단원고 박준혁 군 潛水(잠수) 탈출에 성공

3층 복도 여자 화장실 앞. 단원고 배드민턴부원이던 박준혁(16) 군은 구명조끼를 입은 채 승객 10여 명과 함께 거의 50분 가까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가 구명조끼를 입을 때 여섯살바기 권지연 양이 보여 직접 조끼를 입혀 주었다. 사람들이 비교적 차분하게 기다리는 동안 박 군은 상황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런데 헬기 소리가 들리고 방송으로 구조대가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박 군이 제일 먼저 한 일은 권지연 양을 윗층으로 갈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었다. 권지연 양은 이렇게 박 군의 손에서 떠나면서 4층으로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잠시 후 3층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이 입구부터 차오르면서 탈출할 곳이 사라져 버렸다. 박 군과 일행은 최후의 수단으로 물 속으로 잠긴 입구를 통해 빠져나가는 방법을 택했다. 박 군은 물 속으로 뛰어든 뒤 크게 숨을 몰아쉬고 잠수를 했다. 그는 뿌연 물 속에서 희미하게 빛이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의 뒤를 따라 다른 사람들도 물 속으로 잠수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잠시 후 세월호 선체 밖으로 빠져나와 바다 위로 떠오르면서 구조될 수 있었다.


김성묵씨의 회고

“홀에 있던 아이들이 난간 잡을 데도 없고 벌써 기울어져 있는 상태라 바닥을 붙잡고 올라와야 되는데 거기가 미끄러져서 잡을 수가 없는 상태였고요…그래서 소화기 줄을 호스를 이용해서 끌어당기는데…몇 명 못 구했는데 너무 90도 가량 기울어지다 보니까 아이들이 힘이 부족해서인지 잡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때 홀에 한 30~40명 정도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제 눈에 보이는 아이들만…제가 구조하던 입구 문 쪽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인원이 한정돼 있었어요. 바닷물이 너무 빨리 올라 차니까. 정말 순식간이었습니다.”

소방호스를 밀어 넣던 화물 기사 김동수 씨가 그 아래에서 호스를 기다리던 성인 남자에게 소리쳤다.
 '아저씨! 여자애들 이 루트 포기하면 안돼요! 이 루트 포기하면 안 돼요! 저기 있다는데…”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현장이 된 로비

김동수씨의 설명이다.

“이 밑에는 커튼으로 안 되니까 호스를 끝까지 내린 거예요. 여기 의자(벤치)에 묶었죠. 의자에 묶었는데도 힘드니까, 저도 몸이 막 딸려가니까 제 몸에 묶어가지고 호스를 여기까지 끌어서 여기에서 다시 여기까지 끌어 올렸죠. 저는 이쪽에 학생 하나가 있어 가지고 부르니까 그리고 뛰어가 보니까 여기는 물이 차오르고 있고, 절벽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냥. 아무 것도 없으니까.”(SBS <그것이 알고 싶다> 6월7일)

생존자 최승필씨 증언-“밑의 3층에 있던 사람들도 그 물에 둥둥 떠서 이렇게 올라와야 정상인데 한…네 명, 다섯 명밖에 안 떠올라오는 거예요. 나머지 복도에 있는 사람들은 아마 천장이나 이런 데 다 부딪히거나 어떻게 돼 가지고 거기에 걸려서 못 빠져나오는 거겠죠. 그런데 옆을 딱 보니까 고등학생들은 거기에 쫙 있고 ”야, 물들어 오니까 빨리 와.“ 하는데도 안 와요. 계속. 그 사이에 물이 점점 빨리 들어오는데 그 아기하고 전부 다 호스만 꽉 잡고 있었어요. 물이 꽉 차고 오는데, 우리는 쭉 뜨는 데, 옆에 있던 애들이 나와야 하는데 위에서 내려오는 물 압력 때문에 이쪽에서 애들이 나오질 못했나 봐요.”(SBS <그것이 알고 싶다> 6월7일)

船內(선내)로 물이 들어오던 순간 3층 로비 부근에서는 또다른 탈출이 진행되고 있었다. 물이 3층으로 밀려들어오면서 갑자기 배는 더 기울어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로비는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쏟아지는 물건처럼 왼편으로 쏟아지듯 굴렀다. 그 쪽으로 물이 들어오는 중이었다.

인천 용유초등학교 동창 환갑 기념여행을 떠났던 이중재(60) 씨는 물이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방송을 믿고 객실 문 앞에서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물이 들어오는 순간 그는 바다가 더 안전하겠다는 판단을 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울어진 선체의 3층 로비 중앙을 통과해야 바다로 나가는 난간이 있었다. 이중재 씨보다 앞서 출발한 성인 남자가 난간에 거의 도달할 무렵 갑자기 편의점 쪽으로 몸이 쏠리면서 철문에 머리를 세게 부딪혔다. 그 남자는 피를 흘리면서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이중재씨는 “그때 선실 로비의 사람들은 미끄러지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로 날아다녔어요. 그 와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골절상등을 입고 피 흘리며 쓰러졌고요.”라고 회상했다.

배의 기울기가 더 심해지는 와중에 이중재씨는 3층 중앙 로비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3층으로 빠져나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3층에서 난간쪽으로 나갈 수 있는 곳에는 이미 바닷물에 점령 당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학생들이 3층 중앙로비에서 4층 중앙로비로 연결된 계단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말이 계단이었지 기울어진 배에서 계단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는 난간이 계단에 붙어 있어 그걸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로서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승객들의 비명을 들으며 그는 4층 베란다쪽으로 올라가려 애썼다. 하지만 출입구가 우물로 변해 4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편의점 문을 붙잡아 주어야만 그걸 밟고 올라설 수 있었다.


박지영 양의 奮鬪(분투) “누난 너희들 다 탈출하고 나갈 거야.”

그때도 구명조끼도 걸치지 않은 박지영 양이 허리까지 올라오는 물살을 헤치고 돌아다니면서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눠주고 있었다. 한 학생이 물었다. “누나는 왜 구명조끼를 안 입어?” “누난 너희들 다 탈출하고 나갈 거야.” 그녀는 계속 기울어진 선실내부를 요령 좋게 옮겨 다니면서 다친 사람들에게 휴지를 전해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중재 씨가 출입문과 씨름하는 모습을 본 박지영 양이 다가와 문을 잡아 주었다. 그로인해 이중재 씨가 가까스로 4층 베란다 바닥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도 여전히 우물 같은 수직 통로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구명조끼를 걸친 사람들과 온갖 물건들이 물살에 휩쓸려 이리 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물이 3층 바닥 전체를 휩쓸고 있었던 것이다.

이중재 씨는 갈 곳을 올려 보았다. 그 때까지 잡을 곳이 거의 없는 벽면을 어렵게 짚어가면서 올라왔던 이중재 씨는 더 이상 그런 방식으로는 오를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힘이 빠져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다. 그는 “여기서 이제 죽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바로 그때 소방 호스가 내려왔다. 그가 호스를 잡고 힘을 쓰려는데 누군가가 “애 좀 받아주세요”라고 소리쳤다. 이씨는 아이를 받았다. 권지연양이었다. 그는 아이를 머리 끝까지 밀어 올렸다. 위에서 사람들이 아이를 받아주었다. 이번에는 이씨가 호스를 잡고 오를 차례였다. 바로 그 순간 통로 속으로 밑에서부터 바닷물이 거세게 차올랐다. 그리고 소방호스를 잡은 이씨를 수직으로 밀어 올렸다. 이중재씨는 그 상태로 船體(선체) 밖으로 밀려나 바다로 빠져 떠있다가 구조된다.


“뛰어 내려라! 뛰어 내려!'

그 무렵 3층 로비에서 외부로 나가는 통로의 문은 열린 채 고정돼 있었지만 그곳으로 이미 물이 들어찼다. 학생들이 갈 곳 없는 뒷걸음질만 하고 있었다. 나갈 곳이 바닷물에 장악된 것이다. 화물기사 한승석 씨와 강병기 씨가 탈출을 외쳤다. 그리고 일반 승객과 학생 10여 명을 강제로 물 속으로 밀어 넣었다. 잠수해서 문을 통과해 밖으로 나가도록 했다. 이 학생들은 나중에 구명조끼를 입은 채 바다에 떠 있다가 해경의 단정으로 구조된다.

생존자 윤길옥 씨 증언-“저는 무조건 물 속으로 뛰어들었는데, 그냥 몸이 배 밑으로 싹 쓸려들어가서 바닷물 두 모금 먹고 하니까, '아이고 죽었구나.' 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러다 구명조끼를 입었으니 물 밖으로 몸이 솟구치더라고요.”

생존자 한승석 씨의 증언-“(3층 중앙 로비에서) 계속 대기하고 있는데 구명조끼 입은 한 사람이 물 속으로 딱 들어가더라고요. 이상했어요. 이상하다. 저 사람이 갑자기 왜 뛰어들지? 물 속으로? 아닌 게 아니라 딱 보니까 물이 찼던 거예요. 그쪽으로 바로. 그 사람은 바로 그 출구에 있었거든요. 여기로. 여기가 난간이잖아요. 여기(3층 갑판)가 물이 딱 들어오기 시작하니까 물 높이가 여기보다 더 높아져 버린 거지요. 많이 높아졌어요. 다급한데 소리 지르면서 “다 들어가!” 그러니까 물 속으로 들어가니까, 그 다음에 앞에 있는 사람들도 다 같이 따라 들어온 거라고요.”

생존자 최재영 씨 증언-“(탈출 당시) 남학생 2명, 여학생 3명, 이렇게 보였거든요. “뛰어내려라! 뛰어 내려!” 막 계속 소리 지르니까 남학생들은 뛰어내렸거든요. 그런데 여학생 3명은 못 뛰어 내려요…해수면하고 이제(3층 로비 문이) 자꾸 닫히는 거예요. 닫히면 못나오잖아요. 이제 마지막 (탈출구가) 닫히면서 그 여학생들 눈빛을 봤거든요. 그래서 그거 때문에 좀 힘들어요. 제가…”(SBS <그것이 알고 싶다> 6월7일)

잠시 후 4층에서도 이와 같은 잠수 탈출이 시작됐다.(계속)

[ 2014-12-03, 03:3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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