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는 저작권이 있으므로, 무단 전재 및 유포를 금합니다.
P 123艇, 세월호 船室(선실) 유리창 깨고 최초로 내부 승객 5명 구조
제5부 救助(구조)⑤양대홍 사무장, 부인에게 전화 걸어 “배가 많이 기울어져 있어. 수협통장에 돈이 좀 있으니까 그걸로 아이들 등록금 해라.” 부인이 무슨 상황이냐고 물었다. “길게 통화 못해.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갈 거야.”

이동욱(조갑제닷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

>
  
  
  09시48분00초
  3층 船首(선수)쪽 多人室(다인실)로도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입구쪽에서 밀려들어오는 물살에 반대쪽으로 밀려버렸다. 사람들은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선수 벽면쪽이었다. 선반들이 설치되어 있고 담요와 구명조끼 적재함 같은 가구들이 비스듬하게 세워진 모습이었다. 선반의 칸막이가 이들에게 사다리가 되어 주었다. 밑에서 물이 차오르고 사람들은 선반을 한 칸씩 밟으며 올랐다. 다섯 사람이 매달렸다.
   그 시각, 조타실로부터 사람들이 미끄럼틀 타듯 기울어진 바닥을 타고 아래로 내려와 차례차례 P 123정으로 옮겨 타기 시작했다. 일부는 조타실쪽에 묶어둔 홋줄을 잡고 내려온다. 박상욱 경장은 이들이 전부 내려온 다음 홋줄을 잡고 조타실을 향해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09시48분25초
  박상욱 경장은 조타실 문까지 홋줄을 붙잡고 올라갔다. 하지만 그는 조타실 바닥에 도달한 뒤로 더 이상 손잡을 곳을 발견할 수 없었다. 거의 뒤집어진 상태로 바닥이 천정처럼 변한 텅 빈 조타실 문에 매달린 채 더 이상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자 그는 홋줄을 잡고 다시 내려와야 했다. 선체의 기울기는 62도가 되고 있었다. P 123정 김경일 정장은 3층부터 물에 잠기는 장면과 박상욱 경장이 후퇴하는 모습을 보고 지휘부와 즉시 교신한다.
  
  09시49분16초
  P123정장:“아, 목포타워. 여기는 123. 현재, 현재 본국이 左舷(좌현) 船首(선수)를 접안해 가지고 승객을 태우고 있는데, 경사가 너무 심해가지고 사람이 지금 하강을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 잠시 후에 침몰할 것 같습니다. 이상.”
  
  09시49분37초
  조타실로 진입 시도 중인 123정 옆으로 선체 중앙부에서 구조자들을 가득 태운 7인승 短艇(단정)이 123정을 향해 접근중이다.
  
  09시50분26초
  P 123정장:“아, 여기는 123. 현재 배가 약 60도. 60도까지 기울어가지고 지금 艦首 현측이, 좌현 현측이 완전히 이제 다 침수되고 있습니다. 이상.”
   이때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는 학부모들에게 사고소식을 문자 메시지로 발송하고 있었다.
  
  
  <<해경 헬기, 구명벌 바다로 투하>>
  
  09시51분20초
  해경 헬기 B 512호가 상공에서 물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장면을 확인한 후 구명벌을 바다 위로 투하한다. 약 15초 후 노란색 구명벌이 둥근 원형으로 펼쳐지자 5명 가량의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헤엄을 치며 접근중이다.
  
  09시52분34초
  B 521 헬기에서 항공 구조사가 水鏡(수경)을 쓴 채 호이스트로 하강하기 시작한다. 같은 시각, 인근 상공에서 B513호가 세월호 선체 주위를 旋回(선회)중이다.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고 선수 쪽에 컨테이너와 화물들이 둥둥 떠 있다. P 123정 옆으로 주황색 지붕이 덮인 구명벌도 떠 있다.
  
  09시52분43초
  P 123정장:“목포 타워. 여기는 123. 현재 승객 절반 이상이 지금 안에 갇혀서 못나온답니다. 빨리 122구조대가 와서 빨리 구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상.”
  
  상황실:“123 직원들이 안전장구 갖추고 여객선 올라가 가지고 승객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안정시키기 바람. 이상. 지휘부.”
  
  P123정장:“타워. 여기는 123. 현재 여객선 상태. 상태. 좌현 완전히 침수했습니다. 완전히 침수해 가지고 현재 좌현 쪽에서는 더는 구조할 수 없고 현재 상태를 봐서 항공 헬기 이용한 구조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상.”
  
  09시53분18초
  B512호의 항공구조사가 바다로 하강해 물 위의 생존자들을 구명벌에 태우고 있다.
  
  09시54분경
  <동영상>“배가 기울어졌어요. 물이 고여요. 물이!” (소란) “엄마, 안녕. 사랑해!”
  
  학생 유가족 증언:“전화가 왔는데, 얘 전화가 아니고 다른 전화예요. 그래서 (받았더니) “할머니! 할머니! 배가 기울어져서 지금 배가 한쪽으로 빠지는데 나 죽으려나봐. 잘못하면 죽어.” 그러면서 “깜깜한데 이거 붙잡고 있어” 그러더라고. 그래서 전화를 했더니 한참 만에 받더니 “할머니 끊어” 이래. 그러니까 그때가 10시쯤 가까이 됐나 봐요.”
  
  09시55분
  P정이 세월호에서 잠시 멀어지며 전남 707 官公船(관공선)이 접근한다. 110톤급 P정은 구조자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당시 P정이 관공선으로 인계한 구조인원은 47명이었다.
  
  09시56분
  학생(死)의 카톡-"엄마아빠… 배가 많이 기울어졌어요, 보고싶어요 ㅠ ㅠ"
  
  
  <<乖離(괴리) 보인 목포해경과 현장 구조정 간의 상황인식>>
  
  
  09시57분08초
  P 123정장:“아. 현재까지 구조인원은, 현재는 인원 파악하고 있습니다. 지금 인원은 진도 707 행정선이, 행정선이 본국 옆쪽에 계류해가지고 그 쪽으로 구조인원을 인계하고 나서 다시 구조하겠습니다. 이상.”
   상황실:“그렇게 그쪽으로 인계하고 나서 貴船(귀선)은 신속히 가서 계속 구조하기 바랍니다.”
   P 123정장:“완료. 완료.”
  
  09시57분45초
  당시 P정은 영상정보를 전송할 ENG 카메라 같은 장비가 없었다. 목포해경서장은 사고 현장의 영상 정보를 확보하지 못한 채 P정에게 지시를 하는 중이었다. P123정장의 상황 묘사를 상황실에서는 상상력으로 조합하면서 구조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현실과 괴리가 발생했다.
   목포 서장:“기울었으면 근처에 어선들도 많이 있고 하니까 배에서 뛰어내리라고 고함을 치거나 마이크로 뛰어내리라고 하면 안 되나? 반대 방향으로?”
   P 123정장:“123. 여기는 123. 현재 左舷(좌현)이 완전히 침수되어 가지고 좌현 쪽으로 뛰어내릴 수 없습니다. 완전히 눕힌 상태라서 항공에 의한 구조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상.”
   목포 서장:“그러니까 항공 구조는 당연히 하는데-. 정장이 판단해 가지고 우현 쪽으로 좀 그 난간 잡고 올라가서 뛰어내리게 해서 바다에서 구조할 수 있는 방법을 빨리 검토해. 그렇게 해야지 만약에 침몰 직전에 위험이 더 크니까 뛰어내리게 조치하라구.”
   P 123정장:“수신완료. 참고로, 현재 여기저기 사람들이 다 있는데 못 나오고 있습니다. 일단 그 지시한 대로 좌현 쪽으로 한 번 해보고, 하라고 계도하겠습니다. 이상.”
   목포 서장:“차분하게, 차분하게. 마이크를 이용해서 활용하고, 그 다음에 우리가 당황하지 말고 우리 직원도 올라가서 하고, 그래 안하면 마이크를 이용해서 최대한 안전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이상.”
  
  
  <<10시02분 생존학생 카톡-“96도 기울었대요, 아예 못 일어나요”>>
  
  
  09시59분
  학생(死) 카톡-"너무 무서워, 핸드폰 제대로 안돼고, 지금 캐비닛 (엎)어져서, 옆방애들 거기에 깔렸어, 어떡해"
  
  09시59분30초
  서거차도에 1차 구조자 6명을 내려준 뒤 다시 돌아온 해경 팬더 B 511호에서는 62도 이상 넘어진 세월호 외부의 난간을 붙잡고 앉아 있는 여러 명의 승객들을 발견한다. 그들 옆으로 구조대원들은 船體(선체) 외벽의 창틀을 발판삼아 엉금엉금 기면서 이동하고 있다. 난간 밖으로 나온 승객들도 비슷한 자세로 이동 중이다.
  
  09시59분40초
  船尾(선미)측 4층 발코니 통로에 구명조끼를 입은 6명 가량의 승객들이 구조를 기다리며 난간을 잡고 있다.
  
  09시59분50초
  해경 B 511 헬기에서는 두 명의 구조대원이 유리창을 바닥삼아 앉은 채 아래층 외벽 난간에 매달린 승객들의 구조 방법을 논의 중이다.
  
  10시00분
  세월호가 64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학생 카톡-“배가 60도 기울었는데 침몰하고 있어”
   생존 학생 카톡-"아직은 괜찮은데 밖에 있는 애들이, 아뇨, 전화 안터져요"
  
  10시01분05초
  헬기에서 내려진 1인용 바스켓에 2명씩 태워 올리기 시작한다. 5층 꼭대기 난간 끝에는 구명조끼를 입은 여학생이 홀로 난간에 앉아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이 무렵 단원고등학교가 학부모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단원고]현재 120명…(판독불가)…계속 안전하게 구조중에 있습니다. 정보 계속해서 전해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10시01분33초
  김홍경 씨 영상–배는 완전히 기울어져 벽이 바닥으로 변한 대신 바닥은 또다른 벽이 된 장면을 담았다. 난간 밖으로 구조헬기가 보인다.
  
  10시02분
  생존 학생 카톡-“96도 기울었대요, 아예 못 일어나요, 배 안이요 ㅠ ㅠ”
  학생(死) 카톡-“90% 이상, 기울었대”
  
  <<양대홍 사무장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갈 거야”>>
  
  10시03분
  선원 출신의 양대홍(45) 사무장은 핸드폰으로 부인 안소현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4년 전 청해진 해운에 입사해 근무하다 사무장으로 진급한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배가 많이 기울어져 있어. 수협통장에 돈이 좀 있으니까 그걸로 아이들 등록금 해라.”
   아내가 무슨 상황이냐고 물었다.
   “길게 통화 못해.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갈 거야.”
   양 사무장은 그 길로 선원식당 칸에서 아르바이트생 송 모(19) 군이 빠져 나갈 수 있도록 창문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송 군은 생존자에 포함됐다.
   아내 안소현씨는 “남편이 그 상황에서 탈출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며 탈출하지 않고 끝까지 사람들을 구하러 더 위험한 곳으로 들어갔을 거”라고 말했다.(채널A 인터뷰. 5월15일)
  
  10시03분40초
  B511 헬기가 3층 난간에 나와있는 승객들을 한 명씩 바스킷에 태워 구조중이다. 어업지도선 전남 207호가 현장에 도착한다.
  
  학생 문자 메시지-"구명조끼 입고 애들 모두 뭉쳐 있으니까. 아직 복도. 지금 걸어갈 수 없어. 복도에 애들 다 있고 너무 기울어져 있어."
  
  
  <<“애기 여기요! 애기 여기 있어요!”>>
  
  10시04분경
  4층에서는 최승필 씨가 출구 쪽으로 올라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그때 여섯 살바기 권지연 양을 보호하고 있던 학생들이 최승필 씨에게 일제히 소리쳤다.
   “애기 여기요! 애기 여기 있어요!”
   “애기 여기 있어요!”
   모든 학생들이 아기부터 살려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최승필 씨가 아기를 건네받고 보니 아침에 휴대전화를 충전하러 갔다가 마주친 권지연 양이었다. 그는 권지연양을 잡은 채 조금 더 올라갔다. 그러나 더 이상 붙잡고 오를 곳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의 앞에 소방호스가 내려져 있었다. 그가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였다. 하지만 권지연 양을 묶어 올리기에는 너무 짧았다. 그는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김동수 씨와 눈이 마주쳤다. 소리를 질렀다.
   “소방 호스 좀 더 내려 주세요. 이 애를 묶어야겠어요.”
   김동수 씨가 호스를 끌어다 더 내려주었다. 최승필씨가 호스를 당겨 아이를 묶으려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려보았다. 그때였다. 안개처럼 증기가 올라온다 싶더니 갑자기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바닷물이 쏴아 하면서 밀려 들어왔다. 4층이 물에 잠기던 순간이었다. 그 물살에 자판기가 쓰러진 채 둥 둥 떠내려갔다. 그 사이로 구명조끼를 걸친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이 무렵 로비 안쪽으로 물이 차오르자 단원고 학생들이 일거에 탈출한다. 단원고 2학년 6반 남윤철(36·영어) 교사와 체육·학생인권부장 고창석(43) 교사 등이 학생들을 출구 쪽으로 내보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두 교사는 물살에 휩쓸렸다. 급박한 순간이 닥치자 교사들은 학생들을 먼저 구하려 애쓴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들은 안전교육이나 구조방법에 문외한이었다. 단원고 교사 14명 중 11명이 船室(선실) 내에서 사망해 직군별 생존율 최하(21.4%)를 기록했다.
  
  
  <<어업지도선 박승기 항해사, 바닷물에 뛰어든 사람 없어 이상하게 생각>>
  
  10시04분15초
  전라남도 어업지도선 201호 박승기(44) 항해사가 탄 1톤급 어업지도선 201호가 500m 전방에 옆으로 쓰러져 침몰중인 세월호로 접근중이었다. 카메라가 장착된 헬멧을 쓴 박승기 항해사는 세월호에 가까이 갈수록 船體(선체)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물과 싸우고 있을 줄 알았으나 예상과 달라 당황했다는 것이다. 이 시각 세월호의 기울기는 65도를 넘어서는 중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밖에서 보이지 않았다. 어업지도선이 세월호로부터 30m 정도로 가까이 근접하자 비로소 船尾(선미) 난간에 몇 사람이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배를 그 쪽으로 몰았다.
  
  이 무렵 피시헌터호 선장 김현호씨는 전속력으로 배를 몰아 세월호 부근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피시헌터 호를 따라 태선호도 달려오고 있었다. 두 척의 소형 어선으로 달려오던 네 사람은 현장에 다가설수록 할 말을 잃었다. 난생 처음 보는 대형 여객선이 65도 가까이 왼쪽으로 넘어지는 장면은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쓰러져 가는 여객선 주위로 해경의 123艇(정)도 보였고 고무보트 고속 단정과 관공선도 보였다. 무엇보다 대형 상선 네 척과 중형급 어선 50여 척이 쓰러져가는 여객선 주위로 몰려든 채 대기중이었다. 이들 선박은 갑판이 높아 세월호 선체에 접안이 어려운 배들이었다. 접근해서 구조할 수 없는 배였던 것이다. 50여 척의 배들이 구경하듯 세월호를 빙 둘러싼 채 대기하는 틈 속으로 배를 몰고 접근했다. 해경 순찰정들이 어선들의 세월호 근접을 막았다. 2차 사고를 막기 위해서였다. 김현호씨는 이해는 했으나 쉽게 빨려들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큰 배가 가라앉으면 작은 배가 딸려가긴 하는데, 지금처럼 천천히 물을 먹으면서 가라앉으면 괜찮을 성 싶었지요.”
  
  그는 배를 몰아 가까이서 보니 세월호 선체 위로 객실 3개 층이 보였는데 그 중 1층과 2층은 벌써 수면 아래로 잠겼고 3층도 흐린 물살이 넘실대고 있었다. 거기서 구명조끼를 걸친 사람들을 해경의 고속단정과 두 척의 어업지도선이 이리저리 움직여 실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구조 규모는 소규모였다. 김현호 씨는 배가 가라앉는 속도에 비해 구조가 너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10시05분경
  학생(死) 카톡-"너무 무서워"
  
  3층 船首(선수)쪽 多人室(다인실)에서는 쏟아져 들어오는 물살에 다섯 사람이 벽쪽의 선반으로 밀려났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이 선반들은 가로로 길게 설치돼 칸 칸마다 담요와 구명조끼가 차곡차곡 놓여진 곳이다. 그런데 배가 기울면서 이 선반이 세로로 세워졌다. 선반의 칸막이들이 발판으로 변했다. 다섯 명은 사다리가 되어버린 선반에 줄줄이 매달렸다. 이들은 연신 쏟아져 들어오는 물을 피해 선반을 밟고 한 칸씩 위로 이동해 갔다. 그러다가 드디어 先頭(선두)에 선 청년이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는 지경이 이르렀다. 그의 앞에는 세월호 측면이 보이는 유리창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유리창을 통해 청년은 해경의 P 123정을 발견한다. 그는 창 밖으로 P정이 접안하고 있는 장면을 보면서 유리창에 구명조끼를 대고 흔들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바닷물에 밀려 선반을 붙잡고 매달린 지 15분 만이었다.
  
  P 123정의 해경들이 세월호 船首(선수) 아래쪽의 3층 선실 유리창으로 주황색 구명조끼를 흔들면서 구조 요청하는 장면을 발견했다. “여기야. 여기! 여기, 깨! 여기! 여기!” 해경들이 소리치며 작은 쇠뭉치로 유리창을 가격하기 시작했지만 번번이 쇠뭉치가 퉁겨졌고 유리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 대원이 다른 도구를 찾으러 P정 후미로 사라졌다. 유리창 아래로 사람들이 절박한 표정으로 올려다 보고 있었다.
  
  <

>
  
  
  10시05분52초
  선체 내부의 승객들을 구조하기 위해 P정 승조원들이 유리창을 깨려 애를 쓰고 있을 때 목포 서장은 P 123정장에게 무전으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목포 서장:“정장. 그러면 다시 한 번 침착하게 방송해 가지고 반대 방향 쪽으로 뛰어내리게끔 유도해봐. 지금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이 웅성웅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일 먼저 한 사람만 밖으로 빠져나오면 다 줄줄이 밖으로 따라 나오니까 방송해가지고 방송 내용이 안에까지 전파될 수 있도록 한번 해 보세요.”
  
  현장을 보지 못한 목포 서장은 답답한 나머지 간절히 호소하듯 정장에게 지시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현장에 있는 정장으로서는 그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알고 있었다. 이미 선체로 물이 들어오는 중이었고, 선체로는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을 정도로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10시06분
  학생(死) 카톡-“지금 구조중인데 저희 학교-학생 말고, 다른 승객들부터 구조중인가 봐요”
  
  10시06분43초
  P123정 대원이 쇠막대를 가져가 세월호 船首(선수)쪽의 3층 유리창을 가격하고 있었다.
   이 무렵 단원고에서 학부모들에게 다시 한 번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안심시키기 위한 내용이었다.
   [단원고]학생 우선으로 구조중이며 배가 침몰상태가 아닌 배가 기운 상태이며, 여러 척의 구조 배가 도착해 있는 상황입니다.
  
  10시07분
  세월호가 68.9도로 기울어졌다.
  
  10시07분35초
  P 123정이 세월호 船室(선실) 유리창을 깨는 데 성공했다. 세로로 세워진 선반을 밟고 선 사람들이 유리 파편을 피하기 위해 선반 안으로 얼굴을 들이민 채 기다렸다. 유리가 전부 깨진 다음에야 다섯 사람이 모두 구조될 수 있었다. 그 중 두 사람은 배가 너무 기울어지는 바람에 해경이 홋줄을 창 속으로 넣어주어야 했다. 이들다섯이 갇힌 선실 내부에서 구조된 사람들이었다.
  
  이때부터 세월호의 기울기가 급속도로 증가한다. 깨진 유리창을 통해 선체 속으로 물이 빨려 들면서 배가 더 빨리 가라앉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기울기는 68.9도. 09시47분에 62도였던 것이 10분 동안 6.9도가 기울어졌는데 이때부터 10시10분까지 약 3분 만에 9도나 더 빨리 기울어진 77.9도를 기록하게 된다. 이후 17분까지 불과 7분 만에 31도나 더 돌아버린다. 선체 위에서 헬기로 사람을 구조하던 박훈식 경위는 당시 상황을 “드럼통처럼 배가 돌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10시08분32초
  어업지도선 201호가 세월호 좌측 船尾(선미)에 도착한다. 이때 구명복을 입지 않은 남자 승객을 먼저 싣고서 동반 침몰을 피하기 위해 급히 뒤로 물러났다. 옆에 207호도 같이 움직였다. 이들 뒤로 피시헌터호와 태선호가 도착해서 구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10시09분
  학생(死) 카톡–“저희 배에 있어여.”
  배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10시09분20초
  세월호 船尾(선미)에 다시 승객이 나타났다. 그는 기울어진 난간을 붙잡은 채 구조를 기다렸다. 어업지도선 201호가 재차 接岸(접안)을 시도한다. 접안이 되는 순간 어업지도선 요원 한 사람이 세월호 3층 난간으로 올라간다. 그는 위에 앉아서 구조를 기다리던 승객을 데리고 어업지도선으로 옮겨 태운 뒤 배를 후진시켜 오른쪽 후미 깊숙한 곳으로 재차 접안시킨다.
  
  10시10분15초
  행정선 전남 707호가 P123정 옆으로 접근해 고무보트 고속단정으로부터 구조자를 직접 옮겨 태운다.
  
  10시10분20초
  어업지도선이 세월호 船尾(선미)에 접안한 채 구명조끼를 걸친 세 사람을 옮겨 태운다. 이 때 두 남성이 맨 앞에서 기다리다가 구조선이 다가오자 뒤에 있던 나이 많은 여성을 먼저 태운 뒤에야 배로 올라탔다. 배가 급격히 기울어지면서 사람들은 난간을 거꾸로 붙잡은 채 움직이는 상황이 됐다.(계속)
  
  
  

[ 2014-12-04, 09:4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