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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17분 마지막 카톡 “배가 기울고 있어. 엄마, 아빠. 보고 싶어. 배가 또 기울고 있어.”
제5부 救助(구조)⑥10시15분 안내데스크가 있는 3층 로비에서도 이 무렵 처음으로 대피를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 생존자 전영문 씨는 故 박지영 양이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뛰어내리세요. 밖에 구조대 있어요”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동욱(조갑제닷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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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12분 학생(死) 카톡- “나 무서워, 너무”

10시11분경
故 박수현 군이 4층 右舷(우현)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학생들을 사진으로 찍어 전송했다.
 단원고 학생 가족:“우리 아들이 핸드폰을 그날 갖고 갔으면 핸드폰이 물에 빠져서 연락이 안되는데 우리 아들이 핸드폰을 놓고 갔어요. 책상에. 그래서 계속 문자가 오길래 나는 그냥 장난인 줄 알았어요. 지네끼리 무슨 장난하나 했더니 이때부터 사고가 난 거예요. ‘얘들아. 움직이지 말고 있어’라고 선생님이 그랬어요. 담임 선생님이. ‘지금 상황이 어때?’ 하고 애들한테 물어봤어요. 그러니까 애들이 ‘아직 다친 애들은 없습니다’라고 답하니까 선생님이 ‘다행이다.’ 하니까,  ‘선생님, 혹시 조끼 입으셨나요?’라고 묻자 선생님이 ‘응. 입었어. 애들아. 움직이지 말고’ 그러니까 지들끼리 ‘살아서 보자’. ‘전부 사랑합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살아서 만나자.’ ‘이따 만나자. 부디.’…지들끼리…”(SBS <그것이 알고 싶다> 4월26일)

10시11분15초
세월호 3층의 깨진 유리창에서 빠져나온 한 사람이 물에 빠진 채 파도를 타고 있었다. P 123정은 구명부이를 던져 승객을 구조하는 중이다. 이 사람에게 구명 부이가 달린 로프를 던지고 끝까지 잡아 당긴 사람은 P 123정에 구조된 세월호 승무원이었다. 

10시11분20초
어업지도선 201호가 구조자들을 태우고 관공선 진도 아리랑호로 이동하고 있다.

10시11분35초
진도 아리랑호에 구조자들을 옮겨 태운 어업지도선 201호가 다시 세월호 방향으로 船首(선수)를 돌린다. 같은 시각, 선수 쪽에서는 P 123정이 물에 빠진 승객을 끌어올리는 중이다. 세월호 상공엔 두 대의 헬기가 제자리 비행을 하며 승객을 구조중이다.

10시12분
학생(死) 카톡-'나 무서워, 너무'


“니가 시방 나 죽여불라고 그러냐”

10시12분15초
어업지도선 201호가 세월호 좌현 船尾(선미)쪽으로 접근중일 때 1.1톤급 소형 어선 피시헌터호가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 뒤로 어업지도선 207호가 구조자들을 싣고 있었다. 어업지도선 201호는 접안할 장소를 찾지 못한 채 뒤로 빠졌다.

당시 구조상황은 어업지도선과 해경의 고속短艇(단정) 등 세 척의 단정이 소수의 인원을 싣고 빠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들은 부근에 대기중인 행정지도선 전남 707호와 진도 아리랑호로 달려가거나 P 123정으로 가서 사람들을 옮겨 태운 뒤 다시 선체에 매달린 사람들을 구조하러 가고 있었다. 피시헌터호 김현호 선장은 좌현 선미쪽에 사람들이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았다. 김현호씨는 엔진 알피엠(rpm)을 올려 피시헌터 호를 세월호의 선미쪽으로 몰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다 경험이 김현호씨보다 더 많은 김승태씨가 “니가 시방 나 죽여불라고 그러냐”며 말렸다.
 8층 건물 같은 덩치에 길이만도 145m에 달하는 거대한 船體(선체)가 가라앉고 있는데 자칫 배가 가라앉으면 세월호의 20분의 1도 안 되는 피시헌터 같은 1.1톤급 어선은 함께 水葬(수장)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P 123정도 피시헌터호의 접근에 경적을 울리며 경고를 했다. 하지만 선장 김현호씨는 3층 난간에 매달린 사람들이 겁이 나서 물로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물로 뛰어들면 구조할 수 있는 선박들이 많았지만 물이 무서워 가라앉는 배를 붙잡고 있다가는 배와 함께 가라앉게 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피시헌터 옆에서 같이 움직이던 태선호 선장 김준석씨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이들은 세월호 후미로 돌진해 접안한다.

10시13분
학생(死) 카톡-“몰라요 구조해준다는데”

10시13분05초
피시헌터호가 세월호 후미 접안에 성공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고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 동승했던 김승태 씨가 구조에 앞장섰다. 후미에서는 어업지도선 207호, 해경 고속단정, 피시헌터호 등 短艇(단정) 세 척이 구조를 하고 있었다. 배는 거의 80도가 넘어서고 있었다.

10시13분50초
사람들이 해경의 7인승 고속단정으로 옮겨 탔지만 뒤이어 사람들이 계속 올라타다가 고속단정 후미에 접안한 어업지도선 201호로 건너 타고 있다. 고속단정과 나란히 접안하고 있던 피시헌터호로도 사람들이 옮겨 탔다. 이어서 201호도 비좁아 공간이 없자 그 옆에 접안한 태선호로 사람들이 넘어갔다.


故 박지영 양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뛰어내리세요”
 
10시15분
안내데스크가 있는 3층 로비에서도 이 무렵 처음으로 대피를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 생존자 전영문(61)씨는 故 박지영 양이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뛰어내리세요. 밖에 구조대 있어요”라고 외쳤다고 한다.
 당시 3층 로비엔 구명조끼를 입은 학생 20여 명을 포함해 30여 명의 승객들이 배의 왼쪽 벽을 바닥삼아 쓸려내려와 있었고, 바닥이 되어버린 3층 船室(선실) 왼편 창문과 출입구로 시커먼 바닷물이 거침없이 차올랐다. 박지영 양의 외침과 거의 동시에 난간에 매달렸던 사람들은 바다로 뛰어들었다. 로비에 남은 사람들 중 일부는 바닷물 속으로 潛水(잠수)하기 위해 뛰어내렸고, 일부는 물에 떠밀려 4층 출구 쪽으로 올라갔으며 나머지 일부는 물로부터 탈출하지 못하게 된다. 박지영 양도 이곳에서 마지막을 맞았다.

10시15분15초
이 시각, 세월호 船體(선체) 각도가 90도가 됐다. 완전히 옆으로 서버린 것이다. 그 다음부터 선체는 계속 돌면서 구조선 쪽으로 넘어오기 시작한다. 이때 어선과 단정, 어업지도선에 탄 구조대원들이 옆에서 구조하던 다른 대원들에게 고함친다.
 “배가 많이 기운다! 배가 많이 기울어! 배가 많이 기운다고!”
 “어! 배 기운다. 배 기울어! 어이! 배 기울어! 배 기울어!”
 “배가 지금 계속 기울고 있다고!”
 피시헌터호의 김승태씨도 김현호씨에게 소리쳤다.
 “야, 너 배 들어간다!”
 김현호씨가 비로소 상황을 파악하고 배를 急(급)후진시켰다.

10시15분24초
어선과 어업지도선 및 고속단정이 일제히 後進(후진)하기 시작했다.

10시16분07초
세월호가 100도로 넘어간다.

10시17분
세월호가 108.1도로 전복되는 중이다. 선체 외부의 모든 난간과 갑판이 물에 잠겼다. 이때 마지막 카톡 메시지가 학생으로부터 발송됐다. 이 메시지의 주인공도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다.
 “지금 더 기울어”
 “배가 기울고 있어. 엄마, 아빠. 보고 싶어. 배가 또 기울고 있어.”

이 시각, 소방호스를 이용해 학생과 일반 승객 20여 명을 당겨 올렸던 화물기사 김동수 씨는 최후의 순간을 직감하고 자신도 탈출하기 위해 그 자리에서 떠나야만 했다. 그의 옆에는 소방호스에 묶인 채 끌어 올려진 권지연 양이 바닥에 앉은 채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들고 안으며 객실 쪽을 돌아보았다. 이때 그는 물에 잠기는 유리창 안쪽에서 창문을 두드리던 학생과 일반 승객들의 마지막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게 된다.

“이쪽에서 물이 차면서 이쪽 창문에 학생들하고 일반 손님들이 막 그 창문 때리는 거 봤고, 제가 나오면서 그거 다 봤거든요. 창문에서 물이 차면서 물이 안에서 잠기면서 밑에서부터 계속 잠길 때 때리는 모습을 다 봤으니까, 그것이 제일…”(SBS <그것이 알고 싶다> 6월7일)

그는 몸을 돌려 나오면서 자기 옆에서 탈출하던 학생에게 권지연 양을 맡겼다. 단원고 2학년 박호진 군이었다. 그는 김동수 씨가 전해주는 권지연 양을 받아 안았다. 김동수 씨는 박호진 군의 등 뒤에서 박 군을 감싸며 바다 쪽으로 탈출을 시작한다. 바로 돌아서면 난간 밖 바다였고 단정들이 구조를 위해 달려들 기세였다. 마지막 순간인 듯 더 이상 船體(선체) 안에서는 머물 곳이 없었다. 김동수 씨와 박호진 군은 물론 부근의 모든 승객들이 일제히 바다로 몸을 돌렸다.  


201호 선장의 고함 “잡기만 해! 잡아! 잡아! 잡아!”

10시17분10초
110도로 기울어진 세월호가 서서히 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어업지도선 201호는 다시 세월호 부근을 선회하다 절반 이상 가라앉은 선체 중앙의 屋外(옥외) 계단 부근에서 구명조끼를 걸친 사람을 발견하고 침물중인 세월호로 접근한다. 어업지도선의 한 요원이 고함과 손짓으로 접안 위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10시17분35초
110도 이상으로 세워져 顚覆(전복) 직전인 세월호 각 층의 갑판은 절반 이상이 물에 잠긴 채 회랑을 만들고 있었다. 그 속은 급류였다. 한 사람이 세워진 5층 갑판과 4층 갑판 사이 골목처럼 변한 곳에서 201호 쪽으로 물살을 가르며 솟아나듯 나타났다. 201호 선장이 고함을 쳤다. 박승기 항해사가 손을 뻗었다.
 “잡기만 해! 잡아! 잡아! 잡아!”

10시17분50초
201호의 두 요원이 승객의 양팔을 잡아당겼다. 201호가 파도에 휩쓸린 채 뒤로 물러났다. 잠시 후 승객은 201호 갑판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생명을 구한 것이다.

10시18분09초
세월호는 바닥을 하늘을 향하여 드러낸 채 옆으로 완전히 누워 버렸다. 갑판은 海面 밑으로 잠겨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우측 外壁(외벽)의 영문로고 CHUNGHAEJIN이 수면과 나란히 깔린 채 하늘을 향하고 있다. 외벽의 유리창들도 일제히 하늘을 향한 채 물 밖으로 간신히 그 모습만 보여주는 중이다.


“門(문)이 계속 물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물 속으로…” 
 
10시18분34초
좌현부터 쓰러지며 수면과 나란히 드러누웠던 세월호의 우현 외벽 유리창들이 5층 꼭대기부터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배가 한 바퀴 돌고 있는 것이다. 그 위로 4층과 3층 유리창들이 물 위로 올라와 3층이 맨 위가 되고 4층이 아래로 뒤집어지고 있다. 어업지도선 201호가 물에 잠긴 유리창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현 4층 船室(선실) 끝 통로와 난간 부근에 20여 명의 사람들이 몰려 나와 매달려 있다. 고속단정도 201호와 나란히 기울어진 선체 중앙으로 접안을 시도한다. 

10시18분56초
선체 옥상이던 5층 우현이 완전히 물 속으로 잠기고 4층도 잠겨가는 순간, 어업지도선 207호가 3층 발코니 쪽으로 접안을 시도하고 있을 때 201호는 진회색 바닷물이 일렁이는 4층 난간에 매달린 사람들을 구조하기 시작했다. 201호는 바닥처럼 깔린 유리창 위로 접안한 상태였다. 뻘물처럼 흐린 바닷물이 격하게 일렁이며 4층 유리창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 안에서는 구명조끼를 입은 승객들이 애타게 유리창을 때리고 있었다. 10mm가 넘는 두꺼운 유리창으로 인해 그들의 외침은 들리지 않았고 안타까운 몸짓만이 어른거렸다. 201호의 왼쪽에서는 해경의 고속단정도 엔진 회전수를 높이며 언덕처럼 변해가는 세월호 右舷(우현) 외벽에 올라타기 시작한다.

당시 박승기 항해사는 이런 증언을 남겼다.
 “4층 객실에 門(문)이 하나 열려 있고, 거기서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들을 태우고 있는데 한 1분 있으니까 그 문이 물 속으로 잠기는 거예요. 문이 계속 물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물 속으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6월7일)


피시헌터호와 해경의 고무보트가 집중 구조


10시19분00초
세월호의 좌현과 갑판은 모두 물 속으로 처박힌 채 배가 점점 더 돌고 있었고 右舷(우현) 베란다 쪽과 선체 우현 외벽만이 물 위로 비스듬이 솟아 경사면을 이룬 상태에서 사람들이 대거 물 속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5층은 완전히 물 속으로 들어갔고 4층 난간 쪽은 외벽이 물 밖에 있는 상황이었다. 아직 3층은 온전했다. 201호가 달려들었다.
 
이때가 많은 승객들이 한꺼번에 탈출하던 순간이었다. 십여 명의 승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권지연 양을 안은 박호진군과 그를 뒤에서 보호하던 김동수씨도 밀리듯 201호의 船首(선수)에 닿을 수 있었다. 박호진 군은 배에 오르지 않고 201호 요원들에게 애기부터 받으라고 소리쳤다.
 “애기! 애기!”
 이미 구조되어 201호 단정에 타고 있던 학생도 덩달아 소리쳤다.
 “애기! 애기!”
 구조요원이 박 군으로부터 애기를 받아 뒷사람에게 넘겨주었다. 그 순간 박 군과 김동수씨가 201호 선체로 올라설 수 있었다. 김동수 씨는 권 양을 살펴보러 안쪽으로 들어갔다. 소방호스로 구조하던 김성묵 씨도 이때 막 배를 타고 탈출하게 된다. 201호가 이들을 태우고 뒤로 물러날 때까지 약 40초 동안 4층 난간도 흐린 물 속으로 완전히 잠겼다.

이 순간 세월호 4층 난간에 매달렸던 사람들이 바다 속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바닷물 속에서도 난간을 잡고 있었다. 그때 부근에서 맴돌던 피시헌터호가 달려 들었다. 선장 김현호씨가 배를 몰고 김승태씨가 배의 船首(선수)쪽에 납작 엎드려 상체를 앞으로 최대한 내민 채 두 팔을 뻗었다. 물 속에 빠진 채 난간을 붙잡고 있던 사람들이 달려오는 피시헌터호를 보며 손을 뻗는다. 거리는 약 5m 정도였다. 피시헌터호는 이들의 손을 잡아 당겨 배에 올리는 데 성공한다.

10시19분07초
세월호가 계속 몸체를 틀면서 가라앉자 이때부터 사람들은 배를 버리고 물로 뛰어들기 시작한다. 피시헌터호의 김승태씨가 이물(선수)쪽에서 손을 뻗어 사람들을 붙잡을 때 선장 김현호씨는 엔진을 계속 걸어둔 채 자신도 배 옆으로 나와 물에 빠진 사람의 구명조끼를 잡아 당겼다. 피시헌터호는 마치 언덕 위로 올라서듯 비스듬하게 경사면을 이룬 세월호 우현 외벽 위로 힘겹게 붙고 있었다. 그 옆으로 해경의 고속단정인 고무보트에서도 사람들이 구조되고 있었다. 어업지도선 201호에도 이물쪽으로 구조요원들이 나와 세월호 난간쪽의 사람들을 건져 올렸다. 다시 그 오른쪽으로는 김준석씨가 모는 태선호가 세월호 3층 난간에 매달린 사람들을 향해 접근 중이었다. 세월호 後尾(후미)쪽에 위치한 어업지도선 207호도 물 속의 사람들을 건져올리기에 바빴다.

10시19분25초
피시헌터호와 해경의 고무보트 주변으로는 바닷물로 뛰어든 사람들이 다가와 매달렸다. 피시헌터호에 탄 사람들은 닥치는 대로 구명조끼를 붙잡고 끌어올렸다. 해경의 7인승 고무보트에서는 금방 수십 명의 구조자들로 滿船(만선)이 됐다. 발디딜 틈이 없자 구조된 사람들 대여섯 명이 바로 옆 피시헌터호로 옮겨 타기 시작한다. 201호 우측으로는 태선호가 김대열(44)씨를 이물쪽에 앞세운 채 밀고 들어가 물에 빠진 사람들에게 배를 들이밀었다. 주변에서는 50여 척의 선박들이 이 장면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10시20분, 短艇(단정)들이 구명조끼 입은 승객들을 건져 올리다

10시19분30초
잿빛 바닷물이 4층 유리창을 완전히 점령했다. 세월호에서 사람이 하늘을 보고 숨 쉴 공간은 더 이상 없었다. 피시헌터호의 김현호씨는 그 와중에 물결 아래로 보이는 유리창 속에서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모습을 목격한다. 창문마다 한 명 혹은 두 명씩 있었다고 기억한다. 김현호씨는 그들을 향해 출구쪽을 가리키며 “옆으로 오시오! 옆으로!” 하고 손짓을 섞어가면서 외쳤다. 그러자 안에서는 “안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시 김현호씨는 왜 안 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고 한다. 그는 배 안에 통로가 연결되어 있을 텐데 왜 출구쪽으로 나오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상황은 배가 기울어져 이동도 불가능했을 뿐 아니라 육중한 철제문이 덮개로 변해버려 안에서 열고 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10시19분52초
좌현이 완전히 물속으로 들어간 세월호의 船首(선수) 쪽 우현 5층과 4층도 완전히 잠겼다. 船尾(선미)쪽은 우현 3층과 4층 절반이 잠겼다. 선체 중앙, 외벽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피시헌터호와 해경의 단정, 어업지도선 201호 등 소형 선박 세 척이 구조 중이었고, 그 우측 10여m 떨어진 곳에 태선호가, 다시 20여m 떨어진 곳에 207호가 파도와 싸우며 가라앉는 세월호에 접안을 시도 중이다.

10시20분14초
우현 3층의 後尾(후미)도 잠겼다. 피시헌터호는 22명을 태운 채 물러났다. 태선호도 20명을 태운 채 뒤로 빠졌다. 어업지도선도 더 이상 접안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세월호는 접근하는 구조선박들을 외면하듯 몸을 돌리면서 물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해경의 고속단정이 마지막까지 접안을 시도하며 보이는 사람들을 전부 건져 올리고는 뒤로 후퇴하기 시작한다.

10시20분46초
우현 3층 선미쪽은 유리창 다섯 칸을 남기고 후미 끝까지 물 속에 잠겼다. 단정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물에 떠 있는 승객들을 건져 올렸다.

10시21분11초
3층 전체가 물 속에 잠겼다. 유리창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구조활동을 벌이던 구조선들이 인근 선박으로 사람들을 옮겨 태우고 있다.

10시21분19초
세월호가 최후의 몸부림을 치기 시작한다. 물보라를 길게 내뿜으며 船體(선체)를 완벽하게 뒤집기 시작한 것이다. 2층 유리창이 水壓(수압)으로 터져 오르면서 물보라가 솟았다.


에어 포켓은 처음부터 없었다

10시21분53초
어업지도선 201호가 구명조끼를 입은 채 바닷물에 떠 있는 승객에게 접근해 건져 올린다. 이때 세월호의 船室에는 에어포켓이 존재할 수 없었다. 일반 어선과 같은 鐵製 隔室(철제 격실)이 아니라 세월호의 격실은 모두 합판으로 조립 구성된 공간이었다. 水密(수밀)이 불가능했다. 더구나 일반어선에 에어포켓이 형성되기 위한 조건은 배가 측면으로 바가지 엎어지듯 갑자기 전복되었을 경우에에 한한다. 서서히 돌아누울 경우는 배 안의 모든 빈 틈을 물이 비집고 들어가기 때문에 에어포켓이 만들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세월호는 1층 화물칸 D데크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 09시30분부터 약 50분 동안 합판 재질의 객실들을 한 층씩 채워가며 전복되었기 때문에 에어포켓은 처음부터 없었던 셈이었다. 이렇게 되면 설사 사고 현장에서 스쿠버 구조요원들이 잠수를 해서 물속으로 들어간다 해도 생존자가 구조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수중 溺死(익사) 사고는 3분이 결정짓는다. 3분이 경과하면 호흡정지로 뇌에 전달되어야 할 산소공급이 차단된 우리의 신체는 기능이 정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시 이런 사실을 아는 현장 사람들은 ‘끝났구나!’ 하는 탄식과 눈물어린 안타까움을 가슴에 묻은 채 돌아서야 했다. 

10시22분30초
세월호는 군청 색깔의  바닥을 水面(수면) 위로 드러낸 채 완전히 뒤집어졌다. 엔진이 실린 後尾(후미)쪽은 물 속에 가라앉았고 船首(선수)쪽 절반만 물 밖으로 나온 채였다. 선수 아래의 球狀船首(구상선수·Bulbous Bow)가 45도로 하늘을 향해 들려졌다. 돌고래 같았다.

10시22분37초
선체 측면의 배수구로 물보라가 뿜어져 나왔다. 계속해서 선체 내부로 물이 채워지는 것이다.

10시22분48초
세월호는 점점 가라앉으면서 왼쪽으로 돌아눕기 시작했다. 선체의 80%가 완전 침몰된 채 선수 쪽 일부만이 남았다. 이곳은 균형수가 실려 있을 곳이었지만 평형수가 빠진 관계로 텅 빈 공간 속에 에어포켓이 형성되는 중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었다.


10시35분 사실상 세월호의 구조작업은 종료

10시23분23초
선수 右舷(우현) 외벽에 표시된 영문로고 ‘SEWOL 세월’이 하늘을 향했다. 비어있던 밸러스트 탱크에 남은 공기로 인해 한동안 세월호는 구상선수만 물 밖으로 내민 채 잠겨버렸다.

10시25분48초
해경 B511호 헬기가 공중 선회중이다. 주변엔 컨테이너 박스들과 스티로폼, 일반 화물 들이 어지럽게 떠 있다. 단정들이 수상에 사람이 있는지 계속 선회하며 수색중이다.

10시28분
P 123정이 전남 어업지도선 207호 단정으로부터 의식불명인 익수자 한 명을 인수 받았다. P정 갑판에서 海警(해경)들의 심폐 소생술이 실시됐다.

10시31분
약 3분 뒤 이 사람은 급하게 물을 토하며 가쁜 호흡을 시작했다. 또 하나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해경은 그가 의식을 완전히 회복한 때를 35분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 사람의 신원을 확보하지 못했다. 해경의 기록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10시 35분을 기점으로 사실상 세월호의 구조작업은 종료되었다.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09시30분부터 구조가 시작되어 10시35분까지 65분 동안 P 123정, 고무보트 고속단정, 헬기 3대, 어업지도선 201호와 207호, 민간 어선 피시헌터호와 태선호 등 5척의 선박과 1척의 단정 그리고 3대의 헬기가 172명을 살려낸 것이다. 살아남은 이들 가운데 세월호로부터 양 팔을 자유롭게 흔들면서 두 발로 바닥을 밟으며 ‘걸어 나온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모두가 생존본능에 의지한 채 붙잡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면서 몇 번의 마음 졸임 끝에 겨우 살아남은 것이었다.

10시 42분
세월호 침몰 선체 부근 해역에서 P 123정의 고무보트가 한 명의 익수자를 발견하고 인양했다.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고 얼굴에 피가 많이 흐르고 있었다. P정 갑판으로 옮겨 즉각 심페 소생술을 실시했지만 5분 후에도 어떤 생체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P 123정은 헬기 지원을 요청했다. 단원고 2학년 정차웅 군이었다. 이로써 수상구조는 막을 내려야만 했다. 더 이상 구조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10시 48분 19초
P 123정 김경일 정장과 목포 서장과의 마지막 교신이 있었다.
 상황실:“그럼 지금 선박에는 여객선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거지?”
 123정장:“현재 확인이 안 되나 승무원 말 들어보니까 학생들이 이삼백 명 탔다는데 많은 학생들이 못 나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상황실:“그럼 많은 학생들이 선박 내에 있다는 것이 정확한지.”
 123정장:“정확함”                                                                                                   (끝)

[ 2014-12-05, 16:0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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