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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혼란
제6부 - 구조의 성공, 복구의 실패 그리고 재난의 확산-②

이동욱(조갑제닷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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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지역의 재난 부처 공무원들은 세월호가 침몰하던 오전 9시경부터 팽목항으로 생존자들이 이송될 것을 알고 모여들고 있었다.

그들은 ▲전남 소방본부를 지휘부로 둔 해남 119 소방서 인력(진도에는 소방서가 없다) ▲전남 경찰청을 지휘부로 둔 진도 경찰서(陸警) 인력 ▲진도군 보건소 인력 ▲진도 인근 육군 의무병력 ▲진도 군청 인력 등이었다. 소방 인력만 해도 250명에 구급차 17대, 기타 관용차 13대가 동원됐고 경찰도 비슷한 규모의 병력을 트럭과 버스로 들어왔다. 보건소 인력도 구급차와 함께 흰 가운을 걸친 의료진들이 대거 몰리기 시작했다. 대략 500여 명이 넘는 제복 차림의 공무원과 사복 차림의 공무원들, 그리고 각종 언론사의 사진 기자와 리포터들이 뒤섞였다. 방송사 로고가 찍혀있는 방송 차량들이 팽목항으로 연결된 도로를 따라 줄지어 밀려들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유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해상 재난으로 인한 환자가 육상에 도착하면 재난 부처 공무원들은 소방의 119구급요원들과 보건소 의료 인력들을 긴급 투입시켜 현장에서 응급치료를 한 뒤 일반 병원으로 후송하는 체제를 따르고 있었다. 해난 사고이기 때문에 해양경찰관들이 수사를 해야 하는데 그 주 무대는 해운사와 한국선급 등이 몰려 있는 인천과 서울 등 대도시가 된다. 그러므로 팽목항 현지에서 해경의 역할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바다에서 생존자를 구조한 해경이 육지에 도착해 의료진에게 생존자들을 이송하면 해경의 구조 임무는 더 이상 진행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날 아침 목포 해경서 수사정보과 박석영 과장(경정)은 해난 사고 소식을 접하는 순간 현장으로 정보과 형사들을 파견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즉시 정보관 김동철 경사와 공용철(42) 경장을 팽목항으로 급파한다. 두 사람 중 공용철 경사는 팽목항에서만 이틀 동안 머물게 된다. 그의 動線(동선)을 따라가 보자.

10시00분.
중대본에서 1차 공식 브리핑이 나갔다. <476명 승선. 단원고 학생 325명>이라고 공 경장의 카톡으로 문자가 들어왔다.

10시05분.
공 경장이 팽목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전남 경찰청과 진도 경찰서 직원들이 팽목항 물양장 앞 광장에 천막을 치고 현장 상황실을 운영하고 있었고, 전남 소방청과 해남 소방서에서도 그 옆에 현장 상황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현장 상황실은 全紙(전지) 크기의 화이트보드를 받침대로 세워둔 것으로 각종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지휘부에게 브리핑을 목적으로 준비된 것인데, 소방 상황판 옆으로 약 5m 떨어진 곳에 경찰 상황판이 나란히 섰다. 주로 119 상황실과 연락이 오가던 소방 상황판에서 먼저 정보가 정리됐고 경찰은 이를 보고 자기네 상황판으로 정보를 옮겨 적는 식이 되고 있었다. 틀린 정보가 소방 상황판에 실리게 되면 그대로 경찰 상황판으로 확대될 수 있었다. 육지로 올라온 해경은 아무런 힘이 없었다. 사복 차림의 공 경장은 소방과 경찰이 입수한 정보가 상황판에 기록되면 언론사 기자처럼 이것을 입수해 목포해경서로 전화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10시10분.
소방 상황판은 <▶조도면 급수선 구조자 47명(-> 전남 관공선 707호)> 라고 기록하고 있었다. 급수 공급을 위해 조도면을 오가는 선박이 47명을 태워 전남 관공선 707호로 이송했다는 의미다. 곧이어 10시 30분에 소방 상황판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었다.

10시 30분.
▶조도면 급수선 구조자 27명 (-> 명인스타 낚싯배)
▶해경 선박 구조자 89명 (-> 조도 고속 페리)
▶나머지 인원 예정 (-> 동거차도, 조도면)
 
공 경장은 이 사실을 목포서 정보과장 박석영 경정에게 보고했다. 박 과장은 해경 상황실을 통해 구조 정보를 입수해 비교 대조해 갔다. 그때까지 소방 상황판의 구조 총원은 163명이었다. 해경 상황실에서 들려오는 통신 내용을 참고해 보면 항공 구조대와 P123정에서 구조해낸 숫자가 얼추 들어맞기는 했지만 정확한 숫자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300여 명 가량이 구조되지 못했다는 점은 확연히 드러나고 있었다. 다만 동거차도와 조도면 등지에 나머지 인원이 들어올 것이란 문장이 눈에 거슬렸다. 동거차도에도 생존자들이 실려 갔을까. 사고 초기의 상황정보라 어느 정도의 오차는 있을 수 있다고 보았다. 공용철 경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을 당시는 10시40분으로 해경 상황실 내에서는 전원 구조가 절망 쪽으로 기울던 무렵이었다. 배가 가라앉기 시작하고 구조에 더 이상의 진척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박 과장은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정확한 사실들만 남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잠시 후 팽목항 현장에 나와 있던 공 경장의 눈이 크게 뜨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11시00분.
소방 상황판 : <▶ 190명 팽목항 입항>

갑자기 190명이 더 구조됐다는 이야기다. 합치면 구조자들이 총 353명이 된다. 해양대 출신에 선박직 경험이 있는 공 경장은 의아했다. 바다에서 여러 척의 배들이 이동 중인데 갑자기 190명이 승선할만한 배가 등장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애초부터 등장하지도 않았다. 89명이 탄 배가 등장한 이후에 한참 지나서 190명이 탄 배가 나타난다? 배 이름도 나와 있질 않다. 육지가 아닌 바다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기 힘들다. 19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태울 배라면 적어도 500톤 가까운 선박인데 그렇다면 오전 일찍부터 그 배의 이름이 어디 선가로부터 들렸어야 했다. 일반 어선으로는 그 정도 사람을 태울만한 배가 진도 연안에는 없다.

사고 해역의 구체적인 상황을 보고받지 못한 공 경장은 진위 여부를 가릴 방법이 없었지만 그의 몸에 밴 해양 상식으로서는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는 소방 상황판을 맡고 있는 소방청 직원에게 신분을 밝히고 이 정보가 확실한지 물었다. 그러나 멀뚱하게 얼굴만 쳐다볼 뿐 그 직원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자기는 적기만 했을 뿐이라는 태도였다. 잠시 후 그 바로 옆 경찰 상황판에도 190명이 적히게 된다. 공 경장은 경찰관에게 해경이라고 신분을 밝히고 이게 확실한지를 물었다. 그 경찰관은 알면서 왜 묻느냐는 투였다. 소방 상황판이 그렇게 적었으므로 자기도 그렇게 적은 것이라고 속삭이듯 말했다.

이 와중에 ‘학생 전원 구조’라는 첫 보도가 나간다. 11시01분, MBN과 MBC가 자막으로 내 보낸 뒤 과 <채널A>가 11시03분에, SBS가 11시07분에, KBS가 11시 26분에 각각 전원 구조 소식을 알리고 있었다. 그 사이 11시08분에는 단원고등학교 당국이 학부모들에게 전원 구조 문자를 알렸고 11시09분에는 경기도 교육청이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자방송으로 전원 구조를 알렸다.

공 경장은 핸드폰으로 들어오는 ‘전원 구조’가 맞느냐고 목포서 정보과로 물어보았다. 정보과에서는 금시초문이고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팽목항의 소방과 경찰은 조만간 생존자 353명이 부두로 들어온다고 하고, 서울의 방송들은 470여 명이 넘는 승객 전원이 구조됐다고 하는데 정작 사고 해역에서 생존자들을 건져낸 해경의 정보과에서는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어느 숫자가 맞는 것일까. 그 많은 사람들은 그렇다면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재난 부처 공무원 집단이 팽목항으로 모여들었지만 팽목항에서 이들을 총괄하는 지휘라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틈에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유통되기 시작한다. 혼란이 시작된 것이다.

11시12분.
전남 관공선 707호가 입항했다. 47명의 세월호 생존자들이 그 배에서 내렸다. 공용철 정보관이 달려가 보니 발등과 종아리에 화상을 입은 환자들이 부축을 받으며 많이 내렸다. 당시 공 경장은 배에 화재가 발생한 줄 알았다고 한다.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지는 중에 환자들은 下船(하선) 즉시 대기 중인 구급차로 인근 병원에 분산 입원 됐다. 공 경장은 이 배를 몰던 선장과 해경 직원에게 190명이 탄 배가 있는지 물었으나 금시초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707호 탑승자 명단을 갖고 있는 사람을 찾아내 자신의 수첩에 베껴 적었다.

11시15분.
중대본에서 2차 공식 브리핑을 했다. 공 경장의 핸드폰 문자로 그 내용이 들어오고 있었다.
<중대본 2차 브리핑 : 공식구조자 161명>
점점 더 헷갈리는 상황이 되어 갔다.

바다와 배를 아는 해경은 190명을 태웠다는 선박의 존재를 미심쩍어하는 반면 육지경찰과 소방은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팽목항에서는 공용철 정보관이 누구를 붙잡고 물어도 “190명이 탄 배가 곧 들어온다”는 말만 반복할 뿐 정보의 출처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기실 소방대원이나 경찰관도 출처를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더러 구체적인 내용을 전하는 소방관과 응급처치요원, 경찰관들이 있기는 했다. 그들은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동거차도인가 어디 섬에 내려 주었던 사람들을 전부 태우고 처음에는 목포로 가려고 했는데 너무 멀고 날씨도 안 좋고 해서 팽목으로 들어온다고 합니다. 예? 아까 저기 누가 나한테 그랬는데 누구더라? 아, 바쁘니까요. 지금 보다시피 정신이 하나도 없잖습니까.”

“지금 큰 배가 두 척이 들어 온 대. 한 시간 간격으로. 그러니까 한 대는 조도 페리호로 서거차도에서 89명을 태우고 오는 것이고 다른 한 배가 그것이지. 글쎄 분명히 두 척이 오고 있다고 들었어. 한 시간 간격으로 두 척이.”

사람들은 어디 다른 섬에 다 내렸을 거라고들 했다.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누구에게서 들었나를 꼬치꼬치 캐고 다니는 공 경장은 얼마 안 가 부근에 출동나온 소방과 경찰들로부터 절반쯤 기피인물이 되고 있었다.

11시50분.
낚싯배 명인 스타호가 팽목항에 들어왔다. 27명이 타고 있었고 중상자와 경상자들 모두 구급차로 민간 병원으로 이송했다.

11시58분.
공 경장의 카톡으로 <구조자 진도 체육관에 도착>이라는 문자가 들어왔다. 몸이 성한 생존자들과 앞으로 밀어닥칠 유가족들의 대기 장소를 진도군청이 진도 실내체육관으로 정한 것이다.

공 정보관은 수첩에 명단을 빼곡하게 적어 갔다. 그러면서 낚싯배 선장에게 혹시 근처에 190명이 탄 배를 본 사람이 있는지도 물어보았다. 선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라는 뜻인지 모른다는 뜻인지 애매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근처에 사진기자들과 방송기자들이 촬영장비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공무원들과 뒤섞이는 중이었다. 경광등을 번쩍이는 구급차의 사이렌이 여기저기서 울리고 차량이 뒤엉켜 서로 옥신각신 하는 등 소음은 대단했다.

12시11분.
중대본에서 3차 공식 브리핑을 했다고 알려 왔다. 이번에는 <179명 구조. 선사 여직원 1명 사망>이란 내용이었다.

12시25분.
공 경장의 카톡으로 해경청장이 3009함에 도착했다는 문자가 들어왔다.

12시35분.
서거차도에 입항했던 조도 페리호가 생존자 89명을 태워 팽목항으로 출발한다고 알려왔다. 그런데 잠시 후 생존자 숫자가 89명에서 90명으로 수정됐다.

공 경장은 人山人海(인산인해)를 이루는 와중에 팽목항 대합실 계단 끝에 자리하고서 자신의 수첩을 정리해 갔다. 빼곡하게 적힌 낯선 이름들을 세어 보지만 답이 나올 리 없었다.

13시04분.
해경청으로부터 청와대로 370명을 구조했다고 보고했다. 370이란 숫자는 의문의 190명을 더한 숫자와 얼추 비슷하다. 누군가가 소방청의 상황판에 적힌 내용을 검증 없이 해경 상부로 전달한 모양이었다. 관료사회에서는 이런 정보를 빨리 전해주는 것을 능력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짙다. 이번 건도 그런 모양이었다. 그러나 해경 내부에서는 반론이 있었던 것 같았다.

13시05분.
1분도 안 돼 목포서 박석영 과장이 공용철 경장에게 전화를 걸어와 의문의 선박을 빨리 확인해 보라고 지시했다.
 
“공 경장. 이거, 89명은 맞는 거 같은 데, 아무래도 190명은 좀 아닌 거 같다. 근처에 그만한 배가 있었나? 내가 현장에 알아보니까 그만한 한 배는 없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배가 있었을까? 이거 의심스러운데, 좀 더 알아봐라.”

해경의 중간 간부들은 고개를 젓고 있는데 상층부에서는 청와대로 덜렁 보고해 버린 것이다. 이런 일이 왜 벌어진 것일까. 기자가 지난 6개월 동안 해경을 가까이서 취재해보니 해경 안에는 ‘바다를 아는 해경’과 ‘바다를 모르는 해경’으로 나뉘어 있음을 알게 됐다.

해경 상층부는 의외로 행정직이 많은 반면 선박직 경력자가 드물다. 그래서 위로 갈수록 오히려 바다를 잘 모르는 고위직들이 수두룩하다. 대신 이들은 박사급 고학력자, 행시 등 고시 출신자들로 武人이라기보다 文人이었다. 이런 文人 기질의 해경들은 배를 타고 현장에 나가 근무하는 정통 武人 기질의 해경들보다 진급이 빠르다. 해경 내부에서도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홀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다를 아는 해경인 중간 간부들은 청와대로 보고된 내용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곧장 현장 확인을 독촉한 것이다. 공 경장은 서거차도에서 팽목항으로 오는 중인 조도 페리호 선장과 통화를 시도한다. 팽목항 부근 해역에서 가장 큰 카페리를 보유한 船社(선사)는 西(서)진도 농협 소속의 ‘조도 카페리호’이다. 그런데 이 배가 아니라 비슷한 규모나 더 큰 배가 같은 항로에서 생존자 이송을 한다면 선장들끼리는 틀림없이 무선을 주고받았으리라 추정했다. 육지가 아닌 망망대해로 나가면 서로 같은 방향으로 항해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선장들은 同志愛를 가진다. 바다에서는 경상도 전라도가 없다. 지역감정을 육지의 배부른 사람들이 만든 몹쓸 장난질로 여기는 것이 뱃사람의 생리다. 
 
공 경장은 대합실 앞에서 한 경찰관에게 다가가 사정을 말하면서 현재 팽목으로 오고 있는 조도 페리호 선장의 핸드폰 번호를 부탁했다. 상황을 이해한 경찰관은 西진도 농협을 통해 선장의 전화번호를 구해 주었다.

13시16분.
공 경장이 조도 페리호 선장 김준영 씨와 통화를 한다. 그는 서거차도로 출발해서 팽목항에 이르는 중간쯤에 와 있다고 했다.

“선장님. 혹시 근처에 190명이 탄 배 한 척이 더 있습니까?”
“190명? 글쎄, 여기 나온 배 중에서는 못 본 것 같은데.”
“선장님 확실하게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잘 못되면 큰일 나는 수가 있으니까요. 정말 없는 겁니까?”
“여기 나온 카페리는 내 배밖에 없어요. 우리 회사에서도 내 배 말고는 안 나왔어요. 정말이오.”
“진짜 확실합니까? 진짜 없어요?”
“글쎄, 화실하다니까.”
 
西진도 농협 소속의 카페리들이 가장 큰 배인데 그 날은 한 척만 출항했고 그 배가 자신이 몰고 있는 배라는 것이다. 더구나 사고 현장에서 자기 배만한 카페리는 한 척도 없었다고 딱 부러지게 말했다. 이로써 공 경장은 190명이 誤報(오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계속>

[ 2014-12-17, 14: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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