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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포켓과 다이빙 벨의 黑色戱劇(흑색희극)
제6부- 구조의 성공, 복구의 실패 그리고 재난의 확산(4)부모들은 핸드폰을 들고 끊임없는 상상을 반복했다. “만약에 죽었다면, 만약에 살았다면….” 모든 상상들은 이내 눈물로 귀결되고 있었다.

이동욱(조갑제닷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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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시23분
  사고해역에 표류 중이던 컨테이너들을 해경 P37정이 안전지대로 예인하기 시작한다. 잠수 특공대들이 이날 18시부터 선체로 진입하는 가이드라인 설치 작업에 돌입하게 된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그 시각에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교정에서 학부모들을 태운 버스가 목포를 거쳐 진도대교에 진입하고 있었다.
  
  진도군 실내체육관
  
  버스 안은 대체로 조용했다. 대부분이 말을 하지 않았다. 모든 부모들의 관심은 오직 자기 자식의 生死(생사)였다. 다른 어떤 것도 대화의 소재가 될 수 없었다. 사고 소식을 접한 후 아이에게 백 번도 넘게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휴대폰만 손에 꼭 쥔 채 가끔씩 열어보곤 했다. 그러다가 걸려온 전화벨 소리에 실낱같은 희망으로 걸려온 번호를 보지만 사고 소식을 접한 친척들의 전화여서 맥은 맥대로 다 풀려 절반쯤 탈진한 상태가 됐다. 그러는 동안 끊임없는 상상을 반복했다. “만약에 죽었다면, 만약에 살았다면….” 모든 상상들은 이내 눈물로 귀결되고 있었다. ‘끔찍하다’는 표현이 이토록 절절하게 다가온 적도 없었을 것이다. 이들을 태운 버스가 비교적 차분할 수 있었던 다른 이유로는 구조된 학생의 부모들이 함께 타고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말을 하지 않으면 누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인데, 생존 학생의 부모들로서는 더욱 말조심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들의 적극적인 침묵이 버스 내부를 더욱 조용하게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슬픈 어른들을 태운 대형버스들이 줄지어 진도군 실내체육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2011년 5월에 개관한 진도군 실내체육관은 뒤편의 공설운동장과 함께 진도군민 최대의 체육시설이다. 진도읍 동의리 저수지 위 산등성이를 밀고 지어진 진도군 실내 체육관은 1500 객석에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지어졌지만 개관 이래 객석과 농구 코트가 있는 바닥까지 사람들로 가득찬 적이나 24시간 연속 조명을 켜 둔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던 이곳에 4월16일 오후부터 진도군청이 세월호 침몰사고 재난본부를 설치한다. 이로써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의 임시 대기 장소로 변모하는 중이었다.
  
  진도군청 직원들은 농구 코트가 있는 바닥 전체에 비닐 매트를 깔았더. 실종자 가족들의 임시 대기 장소로는 코트의 한 가운데에서 우측 편으로 매트리스와 대형 모포를 가지런히 펼쳐 놓아 구분해 두었다. 펼쳐진 모포 한 장당 한 가구가 쓸 수 있는 공간으로 유도했다. 약 200여 곳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나중에는 체육관 코트 전체가 실종자 가족들의 공간이 된다. 코트 좌측에는 대책본부와 자원 봉사자들의 테이블이 위치했고 핸드폰 충전을 위한 장소 등이 마련됐지만 개별적으로 나눠줄 침구류 등은 아직 한쪽에 그대로 쌓아 두고 있었다. 당장 오늘 밤에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정면의 무대 왼편에는 ‘응급환자 이동진료소’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이동병원을 마련했다. 체육관 입구에서 내부로 향하는 로비에도 경찰, 119소방, 보건소 등 구조직 공무원들의 임시 사무소가 설치됐다. 그들 옆으로 경찰 어머니회 자원봉사단과 여러 종교단체에서 나온 자원봉사단들의 책상이 줄지어 마련됐고 이들로부터 기부된 컵라면과 간식, 생수 등 각종 구호물품들이 적재되고 있었다. 웬만한 마트의 물류창고를 방불케 했다.
  
  밖으로 나가면 버스가 들어와 사람들이 내리게 되는 입구에 생존자 명단이 비치된 게시판을 세워 두었다. 가로 길이가 약 2m 되는 화이트보드를 세운 뒤 구조자의 이름과 소속이 적힌 4절 크기의 명단을 여러 장 붙여 두었다. 현지에 미리 내려왔던 취재기자들은 낮 시간 동안 팽목항에서 취재를 하다 그들 중 일부가 오후 5시 무렵부터 진도군 실내체육관으로 이동했다. 취재 영역이 두 곳으로 나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준비가 거의 끝날 무렵 학부모들을 태운 관광버스들이 500여m 아래 동의 삼거리 쪽에서 체육관으로 줄줄이 올라오고 있었다. 경비와 안내를 맡아 현장에 나온 의경들은 잔뜩 긴장한 채 마른 침을 삼키고 있었다.
  
  구조자 명단에 내 자식의 이름이 없을 때
  
  오후 5시. 학부모들을 태운 버스가 진도 실내체육관 앞에서 멈췄다. 침통한 표정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어머니 아버지 구분 없이 모두가 빨갛게 충혈되어 퉁퉁 부은 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구조자 명단이 걸린 게시판을 보자 서로 달려가 자식의 이름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심정이 살면서 그토록 간절했던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여지없는 절망감으로 빠져들었다. 곧이어 통곡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이고 내 새끼, 어디 있니”
  
  이런 곡성은 삽시간에 전염되듯 퍼져 나갔다. 대다수가 자녀의 이름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터져 나오는 울음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며 지켜선 경찰관을 붙들고 “우리 아이 좀 찾아 주세요”라고 하소연하는 부모도 있었다. 240여 명의 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울음소리가 달랐고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는 몸짓이 달랐을 뿐이었다. 그 사이에 대기 중이던 취재기자들의 카메라 셔터가 연신 눌러졌다. 집단적인 슬픔은 금방 주변으로 전염되어 기자나 경찰이나 모두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슬픔은 나누면 작아진다고들 하지만 이곳에서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 말이었다.
  
  약 10여 분 뒤 이들은 공무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의 안내를 받아 실내 체육관 안으로 들어선다. 이때부터 이들은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기나긴 정신적 고통과의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그러는 동안 생존 학생의 부모들은 자녀가 입원 중인 병원으로 이동하거나 체육관 안쪽에 남아있던 자녀와 조우하게 되지만 이들의 감격적인 만남은 취재진들의 관심을 벗어나 있어 조용히 뒤로 물러나게 됐다.
  
  이날 오전, ‘전원 구조’라는 결정적 誤報(오보)를 양산했던 언론과 방송들은 ‘생존자 여부’와 ‘구조 가능성’으로 관심이 옮아가고 있었다. 재난보도에 관한 취재 윤리나 보도 기준 등을 제대로 교육받은 바 없는 이들은 무차별적인 선정 보도 경쟁으로 또 다른 재난을 빚어내기 시작한다.
  
  차분하게 복구단계로 들어서야 했지만 이미 경쟁을 시작한 언론과 방송들은 보다 흥미 있는 게임을 노렸다. 유가족들이 진도에 도착하기 얼마 전인 오후 4시24분. 인터넷 신문 <노컷뉴스>는 ‘천안함이 폭침이 아니라 좌초’라고 주장하던 신상철 씨의 ‘에어포켓’ 주장을 기사화하고 있었다. 신 씨는 “배가 완전히 뒤집혀 있는 상태인 만큼 에어포켓이 형성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그는 “공기주머니는 배가 완전히 물 밑으로 가라앉더라도 인위적으로 빼지 않는다면 여전히 남아 있게 된다”며 빨리 잠수부들을 투입해 격실마다 수색하면 생존자들을 최대한 찾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를 필두로 그날 오후 모든 종편들은 ‘에어포켓’과 생존자의 구조 가능성을 주제로 올렸다. 그러면서 잠수 구조가 더디게 진행되는 이면에 또다른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을 소설처럼 떠벌리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구조지휘를 하는 海警은 이 무렵부터 악당처럼 취급되기 시작한다. 이로써 대다수 국민들이 ‘비합리적인 희망’을 품게 되고 ‘황당한 음모론’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자식의 生死를 몰라 경황이 없는 실종자 가족들은 언론과 방송이 조성한 이러한 분위기에 노출되면서 선동에 이용당하는 피해자가 되어야 했다.
  
  예전 같으면 경기도 안산 사람이 전라남도 진도읍의 산 속으로 왔을 경우 외지와의 정보 교류가 거의 불가능했겠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인해 정보 차단의 벽이 사라진 세상이 됐다. 이런 문명의 발달이 가져온 부작용 중 하나가 유언비어의 급속한 확산인데, 이날 바로 그러한 현상을 보게 된다. 자녀의 실종 소식에 망연자실한 부모들은 종편이나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지만 외부에 거주하는 그들의 친인척들은 그렇지 않았다. 실종자 가족의 친인척들이 진위가 가려지지 않는 여러 ‘최신 정보’들을 접하고 ‘퍼나르기’를 통해 실종자 가족들에게 ‘최신정보’들을 끊임없이 공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구조본부를 운영하던 해경도 이런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들은 그날 오전에 사력을 다한 구조가 끝나고 인간적인 한계에 직면한 체 세월호의 침몰을 지켜본 다음, 이날 오후부터 마지막 생존자의 확인을 위한 잠수 수색과 인양 단계로 넘어가는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이들에게 난데없이 ‘에어포켓’을 주장하며 ‘선내 에어 공급’을 하라는 독촉이 학부모들로부터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에어 주입은 두 가지 합리성을 갖고 있었다. 첫 번째는 인양을 위한 선체의 부력 유지였다. 두 번째는 정말 생존자가 존재할 가능성을 위해서였다. 이 상황에서는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실종자 가족을 설득하느니 그들의 요구대로 따르는 편이 선체 부력 유지를 위해서도 좋은 방법이었다. 해경 지휘부는 이런 방향으로 회의를 진행해 가고 있었다.
  
  신상철-이종인 유착
  
  오후 6시경
  진도군 실내체육관의 혼란이 어느 정도 수습되고 실종자 가족들의 쉼터가 체육관 내부에서 자리 잡히자 실종자 가족들은 하나 둘씩 팽목항을 향해 택시를 부르거나 버스를 이용해 이동하고 있었다. 팽목항에서 섬 내륙으로 24.5km나 떨어진 진도군 실내체육관에서는 바다의 그림자도 볼 수 없는 곳이었다. 자연히 사람들은 팽목항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무렵부터 사람들은 아이들의 생존 가능성을 점점 더 크게 잡기 시작한다. 비현실적 가정임에도 불구하고 다수가 그런 쪽으로 생각을 하기 시작한 데에는 방송의 ‘에어포켓’을 빙자한 시청률 게임이 큰 위력을 발휘한 때문이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참고로, 2010년 3월26일 천안함 폭침 당시 신상철 씨의 좌초설을 뒷받침하며 전문가 행세를 한 알파 잠수 대표 이종인 씨란 사람이 있다. 이번 세월호 사건에서 그가 다이빙 벨을 들고 나오는 데, 난데없이 언론이 이종인 씨의 다이빙 벨에 주목한 것이 아니었다. 신상철 씨가 사고 첫날 오후에 ‘에어포켓’을 거론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자 그는 다음 날인 17일, 자신의 웹사이트 <서프라이즈>에 글을 기고하면서 다이빙 벨 사진과 함께 이종인 씨를 극찬하고 있었다. 일부를 발췌해 본다.
  
  <(중략) 제가 알고 있는 한, 바다에 침몰한 선박에 대한 인양과 침몰된 선박 내에 갇힌 조난자에 대한 구조에 있어 최고의 민간 전문가는 알파잠수 이종인 대표입니다. 그는 인하대 조선공학 전공으로 잠수와 인양업계에서 30년간 뼈가 굵은 국내 최고의 전문가입니다.
  
  인양업체의 규모에 있어서는 천안함 때 인양을 맡았던 88수중개발 등 대형 인양업체가 있고 그 업체들 역시 현재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현 시간 선박 내에 갇혀 있는 승객에 대한 구조를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지, 잠수부들의 접근은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지 등에 대한 판단과 조언에 있어 그를 능가할 전문가가 드물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문제점은, 어떠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지나치게 관료적 접근과 고집을 고수함으로 인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2010년 천안함 사건의 경우, 정부와 군에서는 해군특수부대들 - UDT(수중폭파)와 SSU(심해잠수) 요원만으로 충분하다고 고집 피우며 민간에 협조와 조언조차 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종인 알파잠수 대표는 울분을 터트리더군요.
  
  현재 세월호에 잠수부들이 접근하기 힘든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빠른 유속의 조류>와 <탁한 시야>와 같이 열악한 환경일 경우에는 어떤 방식으로 잠수부들이 내려가서 구조할 수 있는지에 대해 탁월한 능력과 함께 그가 실제로 적용을 해 보았던 사례에 대해 이종인 알파잠수 대표로부터 실물과 함께 직접 제가 설명들은 바가 있어 아래와 같이 긴급히 소개합니다.(이하 생략)>
  
  이종인 씨의 다이빙 벨은 개방식이어서 강한 조류에는 아무런 역할도 못한다는 사실을 어지간한 구난 전문가라면 감을 잡을 만도 하다. 그런데 신상철 씨는 ‘실물과 함께 직접 설명들은 바 있다’며 강력 추천하고 있었다. 그의 이런 추천 떡밥을 대다수 언론과 방송들이 달려들어 덥석 물었다.
  
  이쯤 되면 ‘신상철-이종인 간의 유착’이 아니고 무엇이라 해야 하나. 그러나 언론과 방송은 이들의 유착관계에 대한 의심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해양구난의 협조세력들을 해경과의 유착으로 몰았다. 검찰과 감사원은 구난업체 언딘과 한국해양구조협회 관계자들을 조사하고 통장과 핸드폰까지 압수수색까지 했지만 해경과의 유착관계는 손톱만큼도 밝혀내지 못했다. 그 와중에 건실한 중소기업 언딘은 은행권으로부터 합법적 자금 지원이 차단되는 사태를 맞았다. 멀쩡한 ‘창조적 중소기업’ 하나가 언론과 방송의 거짓보도로 ‘창조적 파괴’의 대상이 된 것이다.
  
  한편, 사고 첫날 저녁 무렵에는 신상철 씨의 ‘에어포켓’이 단연 최고의 주제어가 될 정도였다. 그의 이런 주장은 종편에 출연하던 많은 평론가와 전문가란 사람들에 의해 증폭된다. 한술 더 떠 이날 밤부터 에어포켓속의 생존자를 가장한 거짓 문자 메시지 등이 난무하기 시작하고 언론은 이를 가감 없이 보도해 상심한 실종자 가족과 전 국민을 깜빡 속게 만든다. 에어포켓을 기억하는 사람들일수록 쉽게 속을 만한 생존자들의 카톡 메시지가 유포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써 실종자 가족들이 다시 한 번 속임수에 걸려드는 黑色戱劇(흑색희극), ‘블랙 코미디’가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진도군 실내체육관에 머물던 실종자 가족들은 팽목항으로 가고 있었다. 이날 오후의 팽목항으로 다시 가 본다.
  
  팽목항 2
  
  오후 2시30분경
  팽목항에서 조도 페리호로부터 90명의 생존자들이 하선한 이후 바다에서 육지로 들어오는 생존자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구조인력들로 들끓던 팽목항은 서서히 열기가 식어 가고 있었다.
  
  오후 4시30분경.
  개인 차량으로 이곳에 도착한 실종자 가족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더러는 부부로 보였고 더러는 형제 자매로 보였다. 연신 눈물을 훔치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들이었다. 그들은 세월호 일반 승객의 실종자 가족들 같았다.
  
  오후 5시경.
  팽목항 대합실 부근에 모인 실종자 가족들은 10여 명이 되어 있었다. 이들은 제복차림의 해경들과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넥타이 없는 양복 차림의 공용철 경장이 구경꾼처럼 가까이 가 보니 해경의 멱살을 붙잡고 “빨리 사고 현장으로 가야 하니 배를 대라”고 야단이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세월호 승객들이 아직 살아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므로 애가 탔을 것이고, 한시가 급했을 것이다. 그런 시비가 5분이 멀다않고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었다. 3009함과 서해청 상황실에서 수색 구조 회의를 하고 있는 해경의 지휘부는 아직 팽목항에 도착하지 않았고, 이곳에 나와 있는 해경들은 진도 파출소 인력으로 배를 출항시킬 아무런 권한도 없는 말단 경찰관들이었다. 공 경장은 목포 정보과로 전화보고를 통해 제복 차림의 해경들을 유가족들이 보이지 않는 외곽으로 배치하는 게 좋겠다는 건의를 올렸다. 그의 건의가 받아들여지면서 함선 근무자가 아닌 해경들은 사복 차림이 아닐 경우 팽목항 외곽으로 근무 위치를 바꾸게 된다.
  
  그 무렵 팽목항의 대다수 구조직 공무원들도 세월호의 많은 생존자들이 아직도 어느 섬에 있다고 믿고 있었고 사고 현장에서는 선체 수색작업이 진행되는 줄로 알고 있었다. 사고 현장의 물속 사정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었다. 생존하리라 믿는 공무원들도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었다. 그들은 “어선들도 그렇게 많이 나갔고 하니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들 했다. 게다가 어디선가 에어포켓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선체 안에도 생존자들이 갇혀 있다는 말들이 돌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확인하게 된 공 경장은 자신도 미심쩍어 해경이나 뱃사람들에게 선체 내부의 생존자 여부에 대해 묻고 다녔다. 하지만 그 바다의 상황을 알 만한 사람들은 한 결같이 고개를 떨구면서 “절망적이라고 봐야지 뭐…”라고 답했다.
  
  오후 5시30분
  팽목항 대합실 앞으로 외부에서 유입되는 실종자 가족들이 점점 불어나 50여 명이 되었다. 그 대신 오후까지 그곳을 가득 메운 구조요원들은 많이 줄어들었다.
  
  오후 6시.
  대책본부와 실종자 가족 대기소가 진도군 실내체육관이었는데 답답한 가족들이 팽목항 대합실 앞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어둠이 내리면서 실종자 가족들이 100여 명으로 늘어났다. 팽목항 뒤편의 산들이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면서 팽목항 대합실 주변만 환한 불빛이 고여 있는데 이곳으로 분노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여기저기서 울음과 욕설과 싸우는 소리가 났다. 이들은 해경을 찾다가 제복 입은 해경이 보이지 않자 제복 입은 공무원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소방과 경찰이 천막을 치고 테이블과 상황판을 놓아두고 있었으니 누가 봐도 이곳이 지휘소라는 걸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실종자 가족들은 이곳에 책임지고 현장 상황을 설명할 만한 지휘관이 없다는 사실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 분노는 오래지 않아 해경 지휘부를 향하고 있었다.
  
  오후 6시30분
  실종자 가족들은 금새 200여 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점점 더 불어나고 있었다. 어둠이 짙게 내리면서 조명등 외곽으로 사람들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무렵에는 300여 명으로 늘어났다. 그들을 따라 취재기자들도 들어오고 있었다. 줄잡아 500~600여 명이 몰려들었다. 해경의 진도파출소 김성식(경감) 소장이 이들을 맞았다. 답답함이 폭발 직전으로 몰렸던 실종자 가족들은 김 소장에게 고함치듯 질문거리를 던져댔다. 마이크나 확성기 같은 도구도 없는 맨바닥에서 즉석으로 상황 설명을 해야만 했다. 김 소장이 물양장 쪽을 등지고 유가족들이 반원을 그리며 에워싸고 있었다. 김 소장이 설명을 시작했다.
  
  “여러분들 가슴이 많이 아프실 겁니다. 현재 우리 해경은 최선을 다해서 마지막까지 생존자들을 찾기 위해 수색작업을 진행하는 중입니다. 그런 곳으로 지금 이 밤에 배를 타고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너무 위험하고…”
  
  설명이 중단됐다. 실종자 가족들의 항의가 일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원하는 답이 아닐 경우 설명을 중단시키면서 “왜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는데 안 된다고 하느냐”는 식의 반론을 폈다. 그 반론에 따라 답변을 해 가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왜 안되냐”는 반론이 나왔다. 그 사이에 많은 실종자 가족들이 분노 섞인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식의 질의응답이 서너 번 가더니 결국 “야 이 새끼야, 너희 지휘부 나와” 하며 욕설이 등장했다. 해경은 필요 없다는 소리와 함께 욕설들이 난무했다. 제복 입은 공무원을 향한 욕설이 뇌관처럼 작동했다. 거의 동시에 누군가가 현장의 상황실용 간이 책상을 뒤집어엎었다. 그 옆에서도 집기를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이 현장 상황실의 간이 책상과 의자 같은 집기들은 이날 밤 이후 일주일 동안 매일 대여섯 번씩 뒤집어엎는 도구로 사용됐다. 이런 상황이 매일 반복된 것이다.
  
  그날 밤 팽목항의 제복 입은 공무원들은 모두 겁에 질렸다. 육경과 소방 지휘부가 다 나와 있었지만 이들은 현장 상황을 이해시킬 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공 경장은 “실종자 가족들도 이해가 갔다”고 회상했다. “아들딸들이 저 바다 속에 갇혀 있다는데 이 상황을 지휘하는 사람도, 설명해 주는 사람도 없다는 게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옆에서 지켜보는 저도 이해가 갔으니까요.”
  
  공 경장은 그때 비로소 정부의 재난 대비 프로그램이 전혀 구비되어 있지 않았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가라앉는 배 안으로 들어가 수색하라는 말도 안되는 매뉴얼을 만들고 강도 높은 훈련이나 하라는 헛소리가 아니라 진짜 매뉴얼은 엄청나게 몰려드는 분노한 유가족들을 상대하면서 어떻게 이들을 진정시키고 이해시키면서 통제하느냐 하는 매뉴얼이 있었어야 했습니다. 그게 없었던 겁니다.”
  
  조급한 실종자 가족들에게 객관적이고 사실에 바탕을 둔 설명을 해주고 이해시키려는 조직적 대응이 필요했었다. 그러자면 현장을 잘 이해하고 동시에 알기 쉽게 설명을 할 수 있는 해경 수뇌부가 실종자 가족들과 소통을 했어야만 했다. 마찬가지로 그 사람은 현장 상황실과 긴밀한 정보교환이 이루어져야 했다. 하지만 그날 현장에서는 그런 사람도 조직도 존재하지 않았다.
  <계속>
[ 2014-12-21, 08: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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