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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6의 비밀(1)/처음부터 뒤집어쓰기 시작한 海警
언론은 중대본을 海警이라 간주하고, “정확한 승선자 수도 모르는 이런 海警이 무슨 구조를 하겠냐”고 질타를 가하는 중이었다. 언론은 海警을 “전원 구조에 실패했다”고 몰아세우며 海警을 악마로 만들어 가는 데만 골몰했다.

이동욱(조갑제닷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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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存의 바다로 내몰리는 海警들

2014년 6월 하순. 태양이 무르익어가면서 세상은 피서철로 접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일대는 피서철의 휴양지와 동떨어진 지역이었다. 항구 주변은 그 흔한 비치 파라솔 대신 각지에서 모여든 자원봉사단들의 지원 텐트와 실종자 가족들의 임시 주택들이 자리했고, 구난업무를 수행하는 해경과 해군의 컨테이너 사무실들로 인해 작은 마을이 형성됐다. 이 지역에서 버티는 실종자 가족들은 분노와 원망을 끌어안고 있었고 자원봉사자들은 연민의 표정을 고수했으며 해경과 해군 등 공무원들은 두려움과 난처함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팽목항의 분위기는 물에 젖은 수건 같았다.

기자가 도착한 6월24일 오전에 침몰선 세월호에서 여성으로 보이는 익사체 한 구를 인양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6월8일 船內에서 2구를 인양한 뒤로 무려 17일 동안 단 한 구도 찾아내지 못하다가 드디어 한 사람의 屍身(시신)을 인양한 것이다. 침통했던 실종자 가족들에게는 슬픈 희망의 빛이 감돌았다.

익사자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소지품과 실종자 가족들의 확인을 통해 익사자의 신원은 금방 밝혀졌다. 이로써 세월호 승선자 476명 중 생존자 172명을 제외한 304명의 희생자 가운데 293명의 시신이 인양된 것이다. 팽목항의 실종자 가족 거주지는 이제 12가구에서 11가구로 줄어들었다. 아직도 저 어둡고 차가운 물 속에서 잔류하는 11구의 희생자들은 이승에 남은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부유중일 것이다.

어렵게 배를 얻어 타고 한 시간 넘게 파도에 시달린 끝에 사고 해역에 떠있는 바지선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거기서 잠수 수색 현장을 지휘하는 海警 지휘부 간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 대부분은 이번 수색작업이 끝나면 옷을 벗게 될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최소 20년 이상 海警 제복을 입고 견장에 부착된 계급장처럼 부끄럽지 않은 자세로 바다를 지켜왔다고 자부할 사람들이었지만 대통령의 海警 해체 선언 앞에서는 모두가 자신의 무기력함만을 확인한 듯 허탈한 표정이었다. 두 달 넘게 계속되는 잠수 수색작업자들을 독려하기 위해 어느 海警도 한국인이라면 으레 하는 그 흔한 “파이팅”을 외치는 사람이 없었다. 부하들이 목숨을 걸고 들어가는 심해 잠수 수색을 지휘하는 처지이지만 잠수 병력들의 사기를 도모할 특단의 대책 같은 것은 없는 듯했다. 사건 발생 직후부터 두 달여 동안 언론과 방송으로부터 숱하게 두들겨 맞아 왔던 이들 海警은 거의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있었다. 그들은 사고 현장이나 海警의 실상에 관한 오보나 비난에 더 이상 흥분하지 않았다. 많은 간부들이 말을 꺼렸다. 겨우 입을 열면 사실을 바로 잡을 수 있는 팩트들을 겨우 제공했지만 그마저 허공에다 대고 읊조리듯 감정 없는 기계음같은 대답을 흘렸다. 그들은 아무런 기대도 없었다. 그들은 오직 현재의 주어진 임무에만 몰입하려 애썼다.

대통령에 의해 ‘해체가 예정된 海警’이었지만 그들의 직업적 정체성은 여전히 海警이었다. 아직도 그들에게는 격한 조류와 싸우며 가장 깊은 곳은 수심 48m나 되는 침몰선 내부를 수색해 실종 사체를 찾아내고 인양하는 구난임무가 남아 있었다. 목숨 걸고 수행해야 할 임무 기간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언제 끝날지도 모를 만큼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사실은 생존자의 구조가 끝나고 생존 가망이 전혀 없다고 판단되면 구조 임무는 종료되면서 海警은 손을 놓아야 했다. 시신 인양은 구난에 속하며 이는 지방자치단체장과 민간 구난업체의 일이 된다. 법에도 그렇게 명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海警이 두 달 넘게 구난업무에 시달리게 된 것은 이 나라의 힘있는 어느 누구도 구조 종료를 선언하지 않은 결과였다.

海警은 침몰하는 배 위의 생존자와 비슷했다. 세월호 수색작업이 끝나면 그들이 타고 있던 海警이라는 61년 된 巨艦(거함)은 해체 순서를 밟게 될 것이고, 간부직 대다수가 옷을 벗게 될 것이란 사실은 직업전선이라는 생존의 바다에서 그들이 타고 있던 배가 완전히 가라앉는다는 걸 의미했다. 그들은 생존의 바다에서 헤엄을 쳐 가며 50대 후반의 나이로 생존투쟁을 다시금 해야 하는 처지로 내 몰린 것이다. 혹자는 생존할 수 있겠지만 혹자는 실패한 채 가라앉을 것이다.

작금의 이런 海警에게 海警으로서의 임무수행을 계속하게 만드는 힘은 봉급도 진급도 아니었고 훈장이나 포상도 아니었으며 기대 못할 국민적 응원이나 격려도 아니었다. 그들은 이런 것들을 포기한 지 오랜 듯싶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임무에 투철하려 애쓰고 있었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직업적 관성이었을까. 그들은 모든 것을 초월한 듯 오직 임무에만 몰입하려 애썼다. 그것만이 그들을 海警으로써 버티게 하는 힘이 되고 있었고, 자신을 자신으로 머물게 하는 힘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뭐라고 위로의 말을 찾으려 해도 쉽지 않았다. 어느 정도 말문이 트이자 기자는 오전의 수색 성과에 대해 다행이라고 위로의 말을 했다. 그들은 무표정하게 “운이 좋았습니다”고만 했다. 기자가 “이제 몇 명 남은 겁니까. 11명이지요?”라고 하자 “그렇지요”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는 직감을 잘 믿지 않는 편이지만 가끔은 들어맞을 때도 있다. 이날 海警 간부들의 태도는 주눅이 든 이유 말고도 뭔가가 있어 기자로 하여금 찜찜함을 느끼게 했다.

계산 해 보면 드센 조류속에서 침몰로 인한 304명의 희생자 중 293명을 잠수해서 인양했다는 사실은 全세계 해양 救難史(구난사)에서도 없는 성과다. 게다가 이제 11명만 찾으면 완벽하게 인양하는 셈이다. 목표가 한 걸음 더 가까웠는데 왜 이들은 자신감조차 드러내지 않는 것일까. 세계 신기록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한국인인데 말이다. 게다가 묘한 불안감이 그들의 얼굴에서 언뜻 언뜻 보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날 밤 늦도록 기자는 바지선상에서 海警 간부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6시간마다 오는 停潮期(정조기)를 어느 정도 지나서 잠수 수색조가 휴식을 취하던 중이었다. 파도는 잔잔했지만 물소리가 사라지지 않았다. 조류가 만드는 물소리였다. 농무(濃霧)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바지선 부근의 물살이 장마철에 불어난 개울물과 흡사했다. 파도 없는 바다에서 콸콸대는 물살이 있다는 게 신기하고도 두려웠다.

그 무렵 기자와 어느 정도 친하게 된 李春宰(이춘재) 경비안전국장에게 궁금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이제 11명 남았는데, 그동안 건져 올린 屍身 중에는 명단에 없던 사람이 나오거나 하는 일은 없었나 보지요?”
 “예. 없었어요. 앞으로도 없어야 하겠지만 없을 겁니다… 아마도…”
 “확신합니까?”
 “…사실, 우리가 불안 불안한 게 그 점이기도 해요.”
 “!”
 바로 그 불안감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어찌 어찌 해서 승선자 명단을 海警이 최종 확정 발표한 것이 5월8일입니다. 476명이지요. 거기서 생존자 172명을 제외한 304명의 명단도 海警 형사과에서 다 작성한 겁니다. 가족들 DNA까지 채취해서 파일을 만들었어요. 뭐 그만큼 정확하게 했으니 우리는 믿기는 합니다만, 우리가 발표해 놓고도 불안한 건 사실입니다. 큰 배라는 게, 비행기와 달라서 명단 없이도 얼마든지 몰래 승선할 수도 있는 것이고 하니까 혹시라도 그런 시신이, 명단에 없는 시신이 한 구라도 발견되면 총 인원수 전체가 不信(불신) 받는 처지가 되는 거지요.

이미 해체시켜 버린 海警이니까 그걸 핑계로 언론과 방송이 더 두들겨 팰 게 뻔하고요. 그래서 우리는 시신이 한 구 한 구 인양될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한 겁니다. 나중에 유가족들이 나타나고 신원이 확인되면서 명단과 맞아 떨어지면 그제야 콩닥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는 중이지요. 그러면서도 아직 남은 시신들이 있으니까 마음을 놓지 못하는 겁니다. 참…가장 어렵고 힘든 일을 하면서도 가장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말은 못하지만 海警들은 속으로 피를 토하는 심정입니다.”

海警의 불쌍한 처지도 처지이지만, 도대체 승선자 명단은 어떤 과정을 거쳐 476명이라고 확정한 것일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기자의 취재는 상경하면서 다시 시작됐다.


일곱 번 번복한 승선자수

해양사고가 발생하면 해양경찰청은 여객선과 誘導船(유도선)의 업무를 담당하는 ‘안전과’와 인명을 구조하는 ‘수색 구조과’가 개입한다. 해양교통사고가 발생하거나 익사자가 발견될 경우에는 ‘형사과’가 동원된다. 침몰사고의 익사체가 발생하는 사건에서 ‘형사과’는 사고발생 경위와 사고 원인을 밝히고 인양된 시신의 정확한 신원정보를 검증하는 등 수사 전반에 관하여 일선 부서를 지휘한다.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해양경찰청 형사과는 서해청에 설치된 수사본부의 수사 진행 사항을 지휘하는 동시에 시신이 인양될 경우 유가족에게 인도될 때까지 업무 처리 과정을 지도한다. 따라서 형사과는 세월호가 침몰한 그날 오후 청해진 해운사측에 승선자 명단을 요청해 두고 있었다. 참고자료로 쓸 목적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대형 여객선 세월호가 옆으로 기울어진 뒤 102분 만에 침몰해 버린 이번 사고에서 海警 구조대원들에 의해 구조된 생존자들은 그날 오후부터 진도 팽목항으로 이동했다.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은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고, 큰 불편이 없는 생존자들은 진도 실내체육관으로 옮겨갔다. 현장에서 생존자들의 현황파악은 시작되고 있었다. 인근 병원과 진도체육관에서 파악된 세월호 생존자는 총 179명으로 집계되고 있었다.

그날 오전 09시04분 안전행정부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주관하며 나섰다. 혼란을 겪던 언론들은 중대본이 출범하자 곧바로 중대본에 승선자와 실종자 및 생존자의 정확한 숫자를 요구했다. 정확하지 않다면 ‘아직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다’고 솔직하게 대응했어야 했는데 중대본은 정직할 만큼 용감하지는 못했다. 급한 대로 검증 없이 승선자와 실종자 및 생존자의 숫자를 끌어 모아 발표했다. 그러면서 만 열두 시간 동안 일곱 차례나 승선자와 생존자 수를 번복하고 또 번복해 갔다.

▶오전 10시00분 중대본, 1차 공식브리핑 '476명 승선,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
▶오전 11시15분 중대본, 2차 공식 브리핑 '공식구조인원 161명'
▶낮 12시11분 중대본, 3차 공식 브리핑 '179명 구조…선사 여직원 1명 사망' (1차 번복)
▶낮 01시30분 중대본, '구조 368명, 사망 2명 확인'(2차 번복)
▶오후 02시30분 중대본, '구조 180명, 사망 2명, 실종 290여명'(3차 번복) 
▶오후 03시00분 중대본, 승선자 477명 중 구조 180여명, 사망 2명, 실종 290여명(4차 번복)
▶오후 05시00분 중대본, 5차 브리핑 '탑승 459명, 구조 164명, 사망 2명, 실종 293명'(5차 번복)
▶저녁 08시00분 중대본, '탑승 459명 구조 164명, 실종 290명, 사망 5명'(6차 번복)
▶저녁 08시30분 중대본, 승선자 477→459→462→475명으로 변경 (7차 번복)

중대본은 스스로 여론의 분노를 자초했다는 판단이 서자 이날 오후 정확한 승선자 수 파악 임무를 해양경찰청에게 떠밀어 버렸다. 그러나 언론은 중대본이 곧 海警이라 간주하고, “정확한 승선자 수도 모르는 이런 海警이 무슨 구조를 하겠냐”고 질타를 가하는 중이었다. 언론은 海警을 “전원 구조에 실패했다”고 몰아세우며 海警을 악마로 만들어 가는 데 골몰했다. 그러면서 ‘중대본’의 실수를 ‘海警’의 무능으로 착각한 점에 대해서는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중대본의 실책이 海警의 실책으로 변질되고 있었다.

                                                                                                                       <계속>

[ 2015-01-07, 22:4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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