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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6의 비밀(3)/승선자 명단에도 없는 생존자 출현!
사실 확인은 이렇게 어렵다.

이동욱(조갑제닷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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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을 '사실'로 입증하는 지난한 과정


자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좌절감에 지친 최 경사는 벽에 붙여놓은 생존자 명단을 뚫어지게 보면서 그 명단이 작성되던 상황을 머리 속으로 그려보았다. 그녀가 받은 생존자 명단은 진도군청 직원 두 사람이 작성한 것이었다. 담요를 둘러쓰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사람들, 젖은 옷을 갈아입으러 다니는 사람들, 동료나 친구들을 찾기 위해 전화를 걸고 있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을 진도군 실내 체육관에서 군청 직원은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하고 물었을 것이다. 게다가 헬기로 구조된 사람들과 배로 구조된 사람들이 각기 다른 루트로 명단이 작성돼서 이들에게 전달됐을 것이다. 틀림없이 중복 기재된 이름들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179명이란 얘기다. 믿을 수 없는 숫자였다. 최 경사는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싶었다고 한다. 

형사과장은 베테랑이었다. 그는 崔 경사가 답답해하던 모습을 보고는 연안여객 터미널 세월호 탑승 현장으로 나가 있던 형사들을 호출했다. 그리고 즉시 CCTV를 돌려보도록 독려했다. 자정이 조금 지나자 형사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개찰구로 탑승한 사람들을, CCTV를 통해 세어보니 총 404명이라고 했다. 자동차로 승선한 사람들과 개찰구가 아닌 부두로 승선한 선원들도 있을 것이다. 새벽 한 시가 넘어가자 외근 나간 형사들이 돌아왔다. 최 경사가 海水部(해수부)에 세월호 선적 자료를 요청하고는 의자에 몸을 뉘었다. 순 과장을 포함해 다른 형사들도 숙직실이나 휴게실의 빈 자리를 찾아 쓰러지듯 잠으로 빠져들었다.

4월17일 오전, 형사과 회의실 3면의 벽은 아예 세월호 승선자 명단으로 도배가 되고 있었다. 한쪽은 청해진 선사 본(本), 그 옆엔 생존자 명단으로 목포 해양경찰서 본, 이어서 서해청 본, 해양수산부 본, 그리고 차량의 선적 리스트까지. 선적 리스트에는 이름과 법인 또는 개인 표시가 돼 있고 전화번호와 차량 번호 및 운임 등이 기록돼 있었다.

머리 감는 걸 포기한 채 세수로 화장을 대신하고 자리에 앉은 최주연 경사는 벽에 부착된 생존자 명단과 승선자 명단을 번갈아 들여다보다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승선 명단에 없는 생존자의 이름들이 승선자 명단의 유사한 이름과 겹쳐 보이곤 했다. 예를 들어 승선자 명단의 ‘김종환’이 생존자 명단의 ‘김동환’과 겹쳐 보인다든지, 승선자 명단의 ‘박기환’과 생존자 명단의 ‘박이한’ 등으로 아슬아슬하게 어긋나는 이름들이 겹쳐졌다. 최 경사는 상상력을 동원해 생존자 명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다시금 더듬었다. 구조된 사람들에게 자필로 이름을 쓰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口述(구술)에 의존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소리글자인 한글의 전달과정에서 오기(誤記)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漢字 이름을 물어보았더라면 시간은 걸리더라도 이름은 정확하게 기록했겠지만…이런 의심이 가는 이름들이 모두 22명. 만약 이들이 동일인이라면 11명으로 승선자 명단에 꼭 들어맞는 셈이었다.

17일 오후부터 그녀는 동료 형사들과 함께 명단에서 추출된 22명에게 일일이 전화 통화를 하며 실제 탑승 여부를 확인해갔다. 탑승 확인이야 본인이 주장하면 될 일이었지만, 이를 '사실'로서 입증해야만 하는 형사로서는 일이 거기서 멈추질 않았다. 그들 모두의 주민등록을 조회해서 개인식별 작업을 거쳐야 했다. 그 날 밤 늦게 이 작업이 끝났을 때, 최 경사는 의심됐던 22명이 사실은 11명이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로써 승선자 명단에 없는 생존자는 현재까지 나타나지 않은 셈이 됐다. 생존자 숫자는 179-11= 168명으로 정리되는 듯했다.

승선자 명단에도 없는 생존자들

생존자 명단과 승선자 명단 대조작업을 하면서 형사들은 내내 찜찜했다고 한다. 그 찜찜함의 정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났다. 선원 가운데 1등 항해사와 3등 항해사는 생존자로 구조되어 언론의 뭇매를 맞는 중이었는데, 목포 해양경찰서로부터 받은 생존자 명단에는 이들 두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목포 해경의 생존자 숫자가 다른 곳의 생존자 숫자와 같다?!

생존자 명단에는 없지만 구조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되는데…이런 경우가 또 있을 수 있다는 판단에 형사들은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한 명씩 개인식별 작업을 시작해야 했다. 당시 생존자들은 여러 지역으로 분산되어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들이 분산 입원된 병원들은 모두 25개소. 이들 병원에 공문을 보내 세월호 생존자 내원(來院) 및 입원현황을 파악하고 화물트럭 기사들을 대상으로 무임 동승자 여부를 확인하는 등 탈탈 털듯이 재조사를 해 갔다.

처음에 각 병원으로 전자 공문을 보내고 얼마 후 병원들로부터 회신된 자료들을 보니 불완전 정보 그 자체였다고 한다. 담당했던 최주연 경사의 이야기-.

“한 번에 병원에서 공문을 받은 게 아니라 여러 번 했어요. 처음부터 전체 명단이 잘 오질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10명이 그 병원을 들렀다면 그 중 두 명분만 보내주는 식이었습니다. 다시 확인하면 다섯 명분을 보내줘요. 환자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고 안 보내주고…”

하는 수 없이 海警廳(해경청) 형사과에서 강력한 공문을 작성했다. '임의대로 명단을 작성해서 보내줄 시에는 관련 법령에 의해서 법적 처벌이 따른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제서야 정확한 자료들이 형사과 팩스를 통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빨리 처리하는 병원은 당일 완료했지만 보통은 2~3일 뒤에야 팩스로 보내줬다고 한다.

형사과에서 병원을 통한 생존자 명단을 확보해 가는 동안 보건복지부에서 해경 형사과에 명단을 요구했다. 형사들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병원 치료를 받으면 건강관리보험공단의 서버를 통해 정보가 집약되는데 왜 굳이 海警의 정보를 요구하는 것일까. 알고 보니 병원에서 공단까지 진료내역 정보가 전달되는 데 무려 한 달이 걸린다는 것이다. 정보행정의 사각지대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25개 병원들의 자료를 탈탈 털듯이 쓸어 모아 분석한 결과 생존자 명단에 들어있지 않은 생존자 여섯 명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로써 집계된 생존자는 169+6=174명으로 잠정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단원고도 몰랐던 학생수

이 작업을 해 가던 중에 崔 경사는 머리카락이 한 웅큼씩 빠져나갈 정도의 장애물을 셀 수 없이 만났다. 개중에는 그래도 가장 덜 힘들 것으로 보였던 단원고 학생수도 있었다. 이 임무를 담당한 최 경사는 학생수가 325명이라 알고 있었는데 학교측으로부터 324명이란 회신을 받아 든 것이다.

“단원고 교사와 전화 통화를 했는데 그 선생님이 자꾸 324명이라는 겁니다. 船社에서 받은 승선자 명단의 학생수는 325명이거든요. 그래서 선생님께 명단을 요구했지요. 받아 보니까 명단은 325명인 겁니다. 다시 선생님과 통화를 하면서 따졌습니다. 그랬더니 2학년 몇 반의 아무개가 배를 타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324명이라는 거지요. 알고 보니 당일 학교에서도 324명으로 공표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학생수를 324로 확정지었습니다.”

이대로라면 전체 승선자 수가 줄어든다. 그러나 순길태 형사과장은 최 경사의 보고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자가 이유를 묻자 이렇게 말해주었다.

“실체적 진실을 찾아 가는 과정에서는 부하 직원 말만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부하를 내 편이라고 해서 그대로 검증 없이 받아들이면 안 되는 거지요.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최 경사는 전화로 교사와 이야기를 하고 숫자를 바꿨습니다. 이 과정에서 확실한 근거는 뭡니까? 교사의 말뿐이잖습니까? 그 학생과 통화를 했다든지, 명단이 있다면 그 명단으로 정확하게 대조해서 확인하지 않았거든요. 통화를 해도 그 학생의 부모와 통화한다든지 하면 안 됩니다. 반드시 당사자인 그 학생과 통화해야 비로소 확실한 근거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순길태 과장은 직원들을 단원고로 급파했다. 현장에서 진실이 발견된다는 주의였다. 학교측에서는 난색을 표명했다.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으면서 海警 복장을 하거나 海警 차량이 보이면 난리가 날 거란 얘기였다. 형사들은 사복 차림에 별도의 위장을 더한 채 은밀하게 교사와 접촉했다. 그리고 모든 이들의 눈을 피해 작은 방에서 명단 대조작업을 해야만 했다. 그때도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전부 체크해 갔다. 그 결과, 수학여행을 보낸 당사자인 학교 당국조차 학생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이로써 학생수는 다시 325명으로 재수정된다. 그리고 며칠 뒤 325명의 가족들과 생존학생들은 모두 海警의 확인 전화를 받게 된다.
 
업무 마비

4월17일 오전부터 순길태 과장은 모든 자료를 불신하게 됐다. 그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순 과장의 검증 태도에서 비롯됐다. 처음에 청해진 船社로부터 개찰권을 제출받고서 그것을 토대로 명단을 검증하던 한 형사에게 개찰권을 제출한 직원이 누구냐고 물었다. 청해진 선사의 담당 직원이 아닌 것을 안 순 과장은 그 형사에게 담당 직원으로부터 개찰권을 직접 받으라고 지시했다. 그 형사는 불만어린 투로 명령을 따랐다. 몇 시간 뒤에 들어온 개찰권은 처음 받은 개찰권과 총 매수가 달랐다. 총 승선자수가 달라지는 것이다. 기겁을 한 형사가 다시 선사측에 개찰권을 요구했다. 세 번째 개찰권은 이전의 두 버전과 또 달랐다. 청해진 해운에 근무하는 직원들과 아르바이트생들이 작위적으로 개찰권을 써서 집어넣거나 빼거나 해서 마치 개찰권들이 살아 움직이는 생물 같았다. 결론적으로 모든 문서가 믿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순길태 과장은 그때부터 부하들에게 모든 과정의 재확인을 요구했다. 부하들도 짜증을 내며 일에 매달려야 했다.

“이미 자료 다 확보됐는데, 다시 구해보라고 하거나 구태여 가족들이 대답해 줬는데도 당사자와 통화하라고 다그치니까 우리로서는 짜증도 났지요. 그래도 과장님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과장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저희도 마찬가지였지요. 덕분에 저희가 많이 배우게 됐습니다.”

많이 배웠다고 말하는 최 경사의 눈이 빛났다. 순길태 과장은 담담하게 당시 상황을 털어 놓았다.

“일단 윗사람들로부터 제가 이 임무를 인수받은 이상 완벽은 아니지만 정확하게 해줘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확하지 못하면 우리 海警이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지 않을 바에야 차라리 처음부터 임무를 받아오지 말았어야지요. 제가 제 선에서 마지막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인 겁니다. 그랬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좀 강하게 압박한 측면이 있긴 합니다. 어쩌겠습니까. 그게 우리 숙명인데.”

4월17일 정오가 지나면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이하 서해청)이 목포 海警署를 통해 확보한 생존자 명단을 자체적으로 취합해서 서해청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해 버린 것이다. 그로부터 5분도 지나지 않아 생존자 명단은 모든 방송사들의 자막을 장식하게 됐다.

다시 5분 뒤, 海警廳 형사과의 전화기 열두 대가 거의 동시에 울리기 시작했다. 받으면 도처에서 걸려오는 생존자 확인 요청 전화였다. 누가 세월호를 탔는데 살아있는지만 확인해 달라는 간절한 전화들이 줄을 이었다. 그런 전화의 홍수 속에 언론사들의 명단 요구 전화도 쇄도했다. 형사과의 업무는 마비되어 버렸다.

“유가족들로부터 맞아죽을 것 같아서…”

이런 상황에서 그날 오후 5시경 朴槿惠 대통령이 진도군 실내체육관을 방문해 실종자 가족들과 대면을 했다. 현장 중계방송을 본 시청자들도 대강 기억할 장면이 발생하고 있었다. 당시 실내체육관 무대 위에는 진도군청이 작성한 생존자 명단이 걸려 있었다. 그 명단 속에 문지성 양의 이름도 있었다. 문제는, 문지성 양의 부모가 애타게 딸을 찾았으나 연 이틀 동안 소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생존자 명단에는 버젓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었다. 문 양의 아버지는 마이크를 들고 대통령에게 이 문제를 직접 거론했다. “내 딸이 어디 있는지 하수구까지 다 뒤졌지만 볼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어디 생존해 있는 겁니까.” 공개적인 생존자 명단의 불신이었고, 정부에 대한 불신이었다.

그런데 그 실내체육관에 내걸린 생존자 명단을 진도 군청 직원들도 감히 내리거나 수정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손만 대도 실종자 가족들의 거센 항의와 심한 공격까지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어떤 직원은 “맞아 죽을 것 같아서 손도 못 댔다”고 했다. 문 양의 가족들은 대통령에게 자기 딸의 이름만이라도 내려달라고 하자 급기야 대통령이 진도군청 직원에게 내리라고 지시를 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이 문제로 박 대통령은 海警에 대한 불신을 다시 한 번 더 키웠을 것이다.

海警에는 억울한 일들이 연쇄적으로 터지고 있었다. 진도 실내체육관의 생존자 명단은 海警이 작성한 것이 아니라 진도군청 직원들이 팽목항에 나가 직접 채집한 명단이었다. 순길태 과장이 방송을 보다가 전날 저녁에 입수한 생존자 명단과 대조해 보았다. 여러 버전들이 있었다. 진도군청 버전, 서해청 버전, 목포 海警 버전…그런데 문지성이란 이름은 진도군청 버전에만 있었다. 목포 海警 버전과 서해청 오리지널 버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었다. 게다가 서해청이 홈페이지에 올린 명단은 진도군청 명단을 취합해서 만든 것이었다.

순길태 과장은 진도군청에 전화를 걸어 담당자와 통화를 했다. 해양경찰청 형사과장이 직접 전화를 하면서 상황 설명을 하자 담당 직원이 내용을 이해는 하면서도 명단을 수정하는 일이 너무 위험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약 한 시간쯤 뒤에 확인 전화를 해 보니 그 직원은 사람들이 안보는 사이에 다른 직원들로 하여금 유가족들의 시야를 가린 채 문 양 이름만 떼냈다고 전해왔다.

이어서 서해청에도 전화를 걸었다. 웹하드에 올려진 명단을 내려달라는 요구였다. 海警廳 형사과에서 책임질 테니 현재 믿을 수 없는 생존자 명단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아직 확인작업중인 생존자 명단이 그대로 언론에 나갈 경우 더 큰 혼란이 일어날 것 같았다. 예상되는 혼란은 막아야만 했다. 순 과장은 선수를 쳤다. 海警 대변인에게 4월18일 밤 10시,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브리핑을 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그는 브리핑의 주된 내용을, '현재 형사과에서 파악한 바 총원 476명 중 구조 174명 실종 274명'으로 발표하게 했다. 동시에 '海警이 책임지고 승선자와 생존자 등을 정확하게 파악 중에 있으니 당분간 기다려 달라'는 당부를 부탁했다. 최종 명단은 海警이 발표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일단 4월18일 밤 10시의 브리핑으로 일반인들의 문의전화는 물론 언론사들로부터의 채근전화가 거의 사라졌다. 대신, 상부기관들로부터 명단을 요구하는 전화가 빗발쳤다. 교육부, 해수부, 심지어 노동부와 보건복지부도 명단을 요구했다. 형사과에서 “현재 추적중이니 기다려 달라”고 하면 “당신들이 명단을 안 줘서 2차 사고 나면 당신네들이 책임질 거야?”는 식의 협박성 전화도 있었다고 한다. 노동부의 경우는 더 복잡하다. 그들은 처음에 참고만 하겠다며 명단을 요구했다. 그것이 통하지 않자 이번에는 현재 중요한 지원사업이 있는데 명단이 확정돼야 예산 배정부터 모든 일을 할 수 있으니 빨리 명단을 내 놓으라고 엄포를 놓았다. 담당 형사와 실랑이 중에 드러난 것은, 그들도 이미 명단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다만 그것이 정확한지 확신을 못하자 海警 형사과에 명단을 달라고 압력을 가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한 형사는 “전형적인 공무원들의 일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자신들이 하는 일에 오류가 발생하면 오류의 원천이 海警에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명단을 요구한 것이라는 얘기다. 책임 회피용 정보자료인 셈이었다. 보건복지부의 어느 과장은 형사과에 전화를 해서 “트라우마 치료를 해야 하는데 명단을 안 줘서 치료를 못하고 있다가 만약 자살이라도 하면 海警 당신네들이 책임질 거냐”는 식으로 윽박지르기도 했다.  

이런 소란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바다 속의 뻘탕처럼 서서히 가라앉았다. 본격적인 명단 확인 작업을 할 때가 온 것이다.

                                                                                                                       <계속>

[ 2015-01-08, 11:1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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