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는 저작권이 있으므로, 무단 전재 및 유포를 금합니다.
476의 비밀(4)/저승과도 통화하려고 노력한 海警
승선자 명단에 없는 생존자가 튀어나왔다!

이동욱(조갑제닷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본인과 통화가 원칙!”


형사들은 병원에 공문을 보내 진료자들의 명단을 전해 받고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荀吉泰(순길태) 과장은 반드시 본인과 통화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진료를 단 한 번이라도 받은 사람들은 모두 통화를 하게 했다.

그런 가운데 병원에 있어야 할 사람이 병원에 존재하지 않은 경우가 생겼다. 추적해 보니 이 사람은 당시 진도 실내체육관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세월호에 승선했다가 본인만 구조된 경우였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기다린다며 실내 체육관에 와서 머물고 있었다. 사정을 청취하던 형사들도 눈물을 훔치며 이 사실을 기록해 갔다.

이런 식으로 확인을 거듭하며 구조되어 병원 치료를 받은 사람들의 명단을 확정했다. 同名異人(동명이인)이나 겹치는 사람들을 전부 걸러내면서 일일이 전화를 걸어 확인을 거쳤다. 생존자 명단은 어느 정도 마무리돼 가는 듯했다. 이 결과물을 순길태 과장 앞에 제시하자 그는 읽어보지도 않고 “안 맞는다. 다시 해라”며 퇴짜를 놓았다. 보지도 않고 재확인 절차를 밟으란 얘기였다. 평소 자기 업무에 프라이드가 강한 최주연 경사는 그런 과장에게 드러내 놓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자기 부하를 못 믿는 게 저희로서는 쓰릴 때가 많아요. 그 일을 하면서 밤 늦게 집에 들어갔다가 초등학교 다니는 큰 아이와 유치원 다니는 둘째 얼굴만 보고 새벽에 일찍 나왔는데 또다시 불호령이 떨어진 거예요.”

최 경사가 “과장님 왜 그러세요?” 하고 묻자 말도 없이 순 과장은 텔레비전 화면을 가리켰다. 자막으로 생존자 명단이 휙휙 지나가고 있었다. 급히 받아적던 최 경사는 너무 빨리 지나가자 들고 있던 스마트폰으로 녹화를 했다. 방송이 끝나자 순 과장은 성난 음성으로 “너희들은 저 명단하고 이 명단하고 대조해 봤어?”라고 물었다. 당연히 방송에서 나오는 명단은 처음 보는 명단이었다. 순 과장의 고함소리가 새벽 형사과 사무실을 울렸다. 모두 하루 전날까지 대조 작성한 명단과 방송에서 등장한 명단을 다시 대조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알고 보니 그 명단은 최초에 유포된 생존자 명단이었다. 또 한 차례 헛수고를 해야 했다.

승선자 명단에는 없는 생존자

이런 와중에 승선자 명단에는 존재하지 않는데, 실제 생존자 명단에는 존재하는 사람이 발견된 것이다. 이번에는 이름을 잘못 기입해서 발생한 일이 아니라 진짜 살아있는 사람이 튀어 나온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최종 승선자 명단이 바뀌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형사과는 발칵 뒤집혔다. 순 과장은 고래고래 고함치며 형사들을 채근했다. 그는 지독한 현장주의자였다. 형사팀 절반은 생존자가 살고 있는 거주지로 급파됐고 나머지 절반은 명단을 다시 대조해 가며 유사 사례가 더 있는지 살피게 했다. 사건의 전모는 생존자와 對面(대면) 인터뷰를 통해 밝혀졌다.

승선자 명단에도 없는데 등장한 생존자 사건의 실상은 이랬다. 주인공은 여성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화물차 운전기사. 2.5톤 이상 되는 트럭은 운전자가 직접 차를 몰고 배에 승선한다. 세월호 선사측은 트럭 한 대당 적게는 60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을 운송료로 받는다. 이러다 보니 화물차 운전자의 승선비는 대폭 할인을 해서 1500원짜리 승선권을 끊어준다. 이 과정에서 화물차 운전자는 자신의 아내를 운전기사 뒷자리에 태우고 커튼을 친 채 배에 올랐던 것이다. 당연히 청해진 해운의 승선권 발매 흔적도 없고 인적 사항 기록도 없으며 최종 승선 인원수에서도 누락돼 있었다. 이런 사람이 배가 침몰하기 직전에 빠져나와 구조된 것이다.

형사과는 그때부터 화물기사를 대상으로 개인식별 작업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화물기사뿐 아니라 승용차 선적자들까지 개인식별 대상으로 잡았다. 신기하게도 화물기사들은 전원 구조되고 있었다.

이 작업 결과, 차량은 모두 185대가 선적됐으며 이중 탁송을 제외한 개인 차량에 대해서는 차량 선적 검색 자료 및 선적 의뢰서, 차적 조회 등 여러 과정을 통해 車主(차주)와 실제 운전자 탑승 여부 등을 철저하게 확인해 갔다.

사무실에 있던 형사들은 船社측으로부터 제출받은 명단에서 화물차 운전기사들을 추려냈다. 그들의 차 넘버, 차종, 차량 무게, 운전자 이름, 연락처, 주소 등을 파일 작업을 했다. 이 작업이 말은 쉽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명단은 차량 넘버만 써있고 이름은 아예 없었고, 어떤 명단은 성도 없이 물음표를 써 둔 채 이름만 날려 써 둔 것도 있고, 빈 종이에다가 전화번호 뒷번호만 쓴 사람도 있었고…하나 같이 정상적인 명단은 없었습니다.”

이 작업의 마감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영어의 ASAP(As Soon As Possible, 가능한 빨리) 식이었다. 퇴근은커녕 옷 갈아입을 시간도 없었다. 원래 형사팀은 근무복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 입고 있던 사복을 갈아입지 못하자 나중에는 특별한 행사 때나 당직근무 때만 입던 근무복까지 꺼내 걸치고서 일을 했다. 여섯 명의 형사들로 부족한 형편이 되자 인천 해양경찰서 형사과에서 네 명의 형사를 지원받았다. 영문도 모른 채 지원나온 그들은 순길태 과장 옆자리에 ‘사무실’을 차렸다. 그들이 맨 처음 한 일은 海警廳(해경청) 형사과 직원들이 완성했다고 자부하는 명단들을 전부 뒤집어 재검토하는 작업이었다.

보상금 노리는 허위 실종 신고자들

순길태 과장은 부하들이 다 했다고 제시하는 서류를 넘겨보지도 않은 채 옆 자리의 형사들에게 넘겨서 처음부터 다시 전화하고 확인해 가도록 했다. 검토 방식은 먼저 했던 사람의 방식을 따르지 말고 원점부터 다시 방법론을 강구해서 검토하는 식이었다. 원점부터 재검토를 주문한 것이다.

“저는 지금도 만족하지 못합니다만…최 경사가 붙잡고 애 많이 쓰면서 한 것을 제가 넘겨보지도 않고 다른 팀에 맡겼던 건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람이 며칠 동안 계속 한 가지 일을 하다 보면 늘 보는 문제점을 놓치는 수가 있거든요. 못 찾을 수도 있는 겁니다. 그때 새로운 사람이 이렇게 쳐다보면 아, 이런 방법도 있고, 이런 방법도 있구나 하고 방법론을 달리 하게 될 수 있는 거지요. 몰두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주변에서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3자가 한 번 봐야 할 필요가 있어서 그런 겁니다.”

그의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우리가 승진시험이나 채용시험 출제를 가면 내가 만약에 예를 들어서 형법을 냈다고 그러면 내가 한 세 번에서 다섯 번 보고, 그 다음에 형법을 안 낸 사람한테 돌려가면서 열 번을 봐요. 그래서 誤字(오자) 脫字(탈자)를 다 보거든요. 내가 보는 것은 잘못된 문제가 있는가를 보고, 다른 사람들이 크로스로 돌려가면서 열 번 보는 것은 오자 탈자를 찾아내기 위함입니다.

그때 우리 직원들이 힘들었던 게 뭐였냐 하면, 승선자 수를 찾는 이 일이 총괄적인 문제로서 힘든 게 아니라 구체적이고 연속적으로 완전히 초등학교 학생처럼 기본적인 체크를 하나하나 다 해가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힘들어요. 그런데 직원들은 그런 반복적이고 기본적인 일을 계속한다는 게 싫죠. 짜증나죠. 어느 정도 해서 넘기면 되는데 저는 그걸 허용 안한 겁니다. 만약 단 한 명이라도 누락되면 큰 문제가 되는 상황이었거든요.

지금은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과거에 삼풍백화점이나 대구 지하철 사건을 보면, 실제로 죽지 않았는데 실종 신고를 해서 보상금을 타 먹으려고 허위 신고하는 경우도 여럿 있었습니다. 그래서 직원들이 다 해놓은 일도 과거의 경험을 반추해 가면서 다시 원점부터 재조사를 하게 했습니다. 생존자면 생존자, 승선자면 승선자 각각을 아마 수십 번 반복시켰을 겁니다. 직원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곤 했지요. 원래 그런 겁니다. 그래도 해야만 했습니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이’라는 경구는 흔히 종교적 경지에 이르는 수도승들의 수련과정에서 표현되곤 한다. 그런 표현이 海警廳 형사과에 근무하던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었다. 날짜가 며칠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그저 ‘지금, 현재’만이 의미가 있었다.

순길태 과장은 부하들에게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길 원했다. 그는 명단에도 없고 이것저것 형사들이 점검한 모든 경우의 수를 동원해도 나타나지 않았지만 혹시 나타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생각해 냈다. '만약 우리 오빠가 제주도에 간다고 했는데 연락이 안 된다. 혹시 세월호에 타고 간 것은 아니냐'는 식이다.

그는 海警 홈페이지를 통해 이런 내용의 실종 신고 접수 광고를 띄우게 했다. 그리고 별도의 전화선 세 개를 연결하도록 했다. 열 대의 전화통이 연일 시끄러웠다. 몇 달 전 가출한 사람을 찾는 신고부터 별별 신고가 다 들어왔다. 이 실종신고 전화는 5월 초까지 계속 열어두었다. 형사들은 신고 접수된 사람들을 확인에 확인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경찰청으로 명단을 넘겨주었다. 다행히 실종자로 신고 접수된 사람 중에 세월호를 탄 사람은 마지막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죽은 자와 통화하다

4월21일. 선사로부터 재차 제출받은 승선자 명부와 승선 개찰권, 매표원별 발권 현황, 해운조합 항로 검색자료, 카드 명세서, 예약 현황, 개인전화 통화기록, 주민 조회, 병원진료내역, 개찰권 CCTV 승선자 계수 및 청해진 해운 직원 4명의 승선자 현황표 등을 들고 확인 작업을 해 나갔다. 이중 형사들이 가장 많이 반복 조사한 자료는 개찰권이었다고 한다.

순길태 과장은 특히 개찰권을 믿지 않았다. 개찰권이란 승선자들이 자신의 人的사항을 기입한 뒤 개찰구에서 절취해 청해진 해운사가 보관하고 있던 일종의 반쪽짜리 승선권이었다. 이것을 믿으면 모든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만, 하나라도 허튼 요소가 개입되면 전체가 다 뒤흔들릴 판이었다. 그는 개찰권에 기입된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전화로 확인하게 했다. 그리고 다시 반복시켰다. 그러는 사이에 희한한 일이 또다시 발생했다.

개찰권에 등장한 이름이 승선자 명단에도 있었다. 그런데 생존자 명단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형사들은 논리적으로 그런 사람들을 실종자로 분류해 두었다. 그런 사람들이 무려 300명이 넘었다. 그런데 순길태 과장은 이를 문제 삼았다.

“전화해서 확인해 봤어?”

이번에는 형사들이 단체로 항의했다.

“아니, 개찰권에 있고 승선자 명단에도 있는데 생존자 명단에 없으면 그게 사망이나 실종이지 뭡니까. 그걸 또 전화하라고요? 죽은 사람한테 어떻게 전화합니까?”

순 과장은 끄떡도 하지 않고 “전화 해봐”라며 명단을 집어 던졌다.

실상은 그랬다. 생존자들의 숫자를 정확히 파악했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요는 최초의 승선자수였다. 결국, 형사들은 희생자들로 분류된 명단을 들고 한 명씩 전화를 거는 작업을 시도해야만 했다. 혹시 전화를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우에서였지만, 깔끔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이 무지막지하고 말도 안 되는 실종자 가족과의 통화를 시도해야만 했다. 통화 목표의 최종지점은 실종자였다. 물론 전화를 받을 경우에 한해서였지만. ‘죽은 자와의 통화’라고 비웃음을 살 수 있을지라도 확인은 확인이었다. 진실은 거저 얻어지지 않으니까.

형사들은 300명이 넘는, 전화를 하면 절대 받지 못할, 받는다면 저승에서나 받게 될 3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번호 누르기를 반복했다. 그때 다시 순 과장의 호통이 들려왔다.

“안 받는다고 사망이나 실종은 아니잖아. 서로 교차해서 계속 전화 해 봐!”

형사과 직원들은 이 작업을 하는 동안은 종일 침울했다고 한다. 뻔히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전화를 거는 순간엔 일말의 희망을 가지면서 걸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화 통화를 성공한 형사는 아무도 없었다. 의당 그럴 줄 알았지만 신호음이 두절된 전화나 아무도 받지 않아서 끊어야 하는 순간 순간 형사들이 내심 받아야 했던 마음의 상처는 오래 오래 축척돼 가고 있었다.

이런 작업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완벽하지는 못할지라도 완벽에 가깝게는 가야 했으니 당연히 희생자의 유가족과 확인전화 작업이 남아 있었다. 주민등록 조회를 통해 해당 동사무소에 공문을 보냈다. 가족과의 연락을 위한 전화번호를 그렇게 해서 얻어냈다. 문제는, 뻔히 슬픔에 잠긴 가족들의 상처를 형사들이 다시 건드려야만 하는 데 있었다. 이 작업에 참여한 형사들은 모두가 전화번호를 누르고 수화기를 들고 있는 동안은 기도하는 심정이 되어야 했다. (계속)








[ 2015-01-09, 09:0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