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별 운동권 '단일연대체': 민청련~민중총궐기투쟁본부
민청련에서 한국진보연대로 이어지는 '공동전선' 조직 해부

김필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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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單一連帶體(단일연대체)’란 공동전선 전술의 일환으로 혁명의 高揚期(고양기) 내지 滿潮期(만조기)에 수시로 등장하는 左翼단체들의 총단결(공동전선) 조직을 의미한다. 左翼세력은 혁명 과정에서 합법투쟁은 물론 半(반)합법, 非(비)합법투쟁을 모두 동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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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연대체 문제를 다룬 민노총 문건
혁명의 守勢期(수세기)에는 흩어져서 半합법, 非합법투쟁을 하고, 高揚期(고양기)에는 모여서 합법투쟁에 집중한다. 즉 ‘혁명이 守勢期에서 高揚期로 진입했다는 판단 아래 흩어져 있던 조직들을 하나로 모으는 작업’을 단일연대체로 규정할 수 있다. 이러한 左翼세력의 공동전선 전술은 1921년 코민테른 3차 대회에서 ‘反파시즘 노동계급 공동전선’이라는 형태로 처음 등장했다. 아래는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등장해온 단일연대체 조직이다.

1. 민주화청년운동연합(민청련)

전두환 대통령 집권 시기는 左翼세력이 공안당국의 삼엄한 감시를 받으면서 소위 ‘민주화 투쟁’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從北敵 성향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이 시기 대표적인 운동권의 단일연대체 조직으로는 민주화청년운동연합(민청련)이 있었다. 민청련은 광주사태 이후 1970년대 학번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운동권 조직으로 민족민주주의혁명(NDR)에 입각해 ‘反美․反독재’ 투쟁을 전개했다.

민청련은 1983년 9월 서울 성북구 돈암동 상지회관에서 창립됐다. 의장에는 김근태(前 열린우리당 의장)가 선출됐다. 민청련의 뿌리는 1978년 5월 결성된 민주청년인권협의회(민청협)이었다. 維新(유신)에 반대하다 옥고를 치른 조성우(前 민화협 집행위원장), 장만철(본명 장선우, 영화감독), 정문화, 양관주, 문국주 등의 활동가들이 조직한 민청협은 ‘YWCA위장결혼사건’으로 지도부가 대거 구속되어 사실상 조직이 와해됐다.

그러나 1982년 12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된 민청협 의장 조성우가 출소하자 민청협 재건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조성우, 이명준, 이해찬(前 국무총리), 이범영, 박우섭 등이 새로운 단체로 민청련을 만들었다. 민청련은 단체 기관지인 <민주화의 길>과 대중신문인 <민중신문>을 발간하고 레이건 대통령 방한 반대 투쟁, 전두환 대통령 방일 반대투쟁, 광주영령 추모집회 등을 전개했다.

민청련은 1992년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한청협)가 창립되자 조직 내부에서 해체논의가 시작됐다. 이후 1992년 11월 제15차 정기 대의원 총회를 통해 “민청련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민청련의 지부 조직들은 한청협과 서울민주청년단체협의회(서청협) 등에 가입하여 서울지역과 전국 청년단일 조직 건설을 앞당기기 위해 노력한다”고 밝혀 공식 해체를 선언했다.

민청련의 기본노선이었던 민족민주혁명(NDR)은 운동권 내에서 민민투(反帝·반파쇼·민족민주투쟁위원회) 계열의 투쟁 이념으로 주된 대상을 ‘파쇼’와 ‘美제국주의’로 규정하고, 노동계급만을 투쟁의 주체로 삼아 파쇼타도→美帝축출→임시 혁명정부 수립→制憲(제헌)의회 소집→민중민주공화국 건설을 추구했다. NDR은 박헌영의 ‘8월 테제’와 그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코민테른의 ‘12월 테제’에 등장하는 1단계 혁명론인 민족민주혁명, 즉 부르주아민주혁명론과 유사하다.

2.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은 민청련 출범 후 민중민주운동협의회(민민협, 1984년 6월 창립)와 민주통일국민회의(국민회의, 1984년 10월)가 통합되어 1985년 3월 결성한 단체이다.

설립당시 고문으로는 함석헌, 김재준 등이 위촉됐고, 상임의장에는 문익환 목사가 선출됐다. 기관지로는 <민주통일>, 신문으로는 <민중의 소리>를 발간했으며, 1986년 5·3인천사태로 간부 대부분이 수배되고 문익환 의장이 구속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전두환 정부는 5·3인천사태를 계기로 민통련을 ‘불온단체’로 규정했다. 당시 치안본부는 민통련이 궁극적으로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 이른바 무산계급인 ‘민중’이 지배하는 ‘민중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민통련은 이를 위한 전술로 학생운동·노동운동·농민운동의 상호 연대투쟁을 추진했으며, 창립 이래 정권타도, 남북분단을 고착시키는 現 헌법개정, 미군철수 등을 표방했다. 

실제로 민통련은 13개 구조로 된 강령에서 △민중의 힘에 의한 자주적 평화통일 △자주적 민주정부 실현 △대외적 불평등 관계 청산과 자주외교 실현 △反戰·反核운동 전개 등을 내세웠다. 강령은 또 한국의 경제구조가 ‘식민지적 파행성’을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통련은 강령을 해설하면서 전두환 정부에 대해 “對美 예속적 反민중적 군부독재 정권으로서 지극히 폭력적”이라고 규정했다. 남한의 경제구조와 관련해서도 “우리 국민경제는 新식민지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어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PD계열 운동권의 인식과 동일했다.

민통련은 1987년 5월 정치권과 민주화 세력을 총망라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같은 해 대선을 둘러싸고 양김(김영삼, 김대중)씨에 대한 입장을 놓고 내부 분열이 발생, 대선에서 야당이 패배하면서 조직이 사실상 와해됐다.

민통련은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남북 공동올림픽 쟁취투쟁을 벌였으며 북한과 함께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利敵단체)을 결성했다. 단체 상임의장이었던 문익환은 민통련이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에 흡수된 다음인 1989년 3월 비밀리에 북한을 방문했다.

3.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은 1989년 1월 창립된 운동권의 전국적 통합조직으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의 前身(전신) 조직이다.

전민련은 80년대 후반 분열됐던 운동권 세력이 힘을 결집해 만든 조직으로 서울민족민주운동연합회 등 지역운동단체 12개,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전국농민운동연합 등 부문운동단체 8개 등 총 20여개 단체(개별운동단체 200여개 참여)가 주축이 됐다.

자주, 민주, 통일을 내세웠던 전민련은 결성문에서 “애국적 민족민주운동 역량의 총집결체로...(중략) 민중해방과 자유평등 사회를 위해 자주화 운동, 反독재 민주화 운동, 조국 통일운동에 매진할 것'을 선언했다.

이러한 목표에 맞춰 단체는 출범 이후 국보법 철폐, 토지공개념 도입, 민주자유당 해체 등의 ‘反파쇼민주화’ 투쟁과 함께 주한미군철수, 팀스피리트 훈련 중지 등의 ‘反美자주화’ 운동, 8·15범민족대회 등의 ‘조국통일’ 운동을 전개했다.

전민련은 그러나 이부영(前 국회의원) 상임의장을 비롯해 조성우, 이재오, 이창복 등 주요 간부들이 국보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되어 구심력을 잃고 1991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이 결성되면서 해체됐다.

4.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전민련의 후신 조직인 전국연합은 창립 이래 국보법 철폐, 주한미군철수,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등을 주장하며 ‘연방통일조국건설’을 지향했던 운동권의 단일연대체 조직이다. 권영길 주도의 국민승리21의 결성에 참여했던 전국연합은 민노당 창당 당시 공식적으로 불참을 결정했다.

그러나 憲裁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문에 따르면 이상규, 김미희, 정형주, 이용대, 김영욱, 김근래, 박우형(이상 경기동부연합), 김창현, 민병렬, 천병태(이상 부산울산연합), 장원섭, 김선동(이상 광주전남연합) 등 일부 전국연합 산하 지역연합 구성원들이 민노당 창당 시부터 개별적으로 민노당에 입당해 활동한 것으로 摘示(적시)되어 있다.

NL계열의 전국연합은 그 후신격인 한국진보연대가 출범하면서 2008년 2월 공식 해산됐다.

민노당은 2006년 10월 제6차 중앙위원회에서 재석 224명 가운데 137명 찬성으로 소위 진보진영의 상설연대체(단일연대체)건설 준비위원회 참가를 의결했다.

이후 2007년 8월 민노당은 중앙위원회 재석 229명 중 146명의 찬성으로 한국진보연대 가입을 의결했으며 2007년 자주, 민주, 통일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한국진보연대가 만들어졌다.

전국연합의 뒤를 이은 한국진보연대는 2007년 10월3일 광화문에서 개최한 간첩·빨치산 추모제(‘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를 개최했다. 2008년에는 광우병 촛불집회를 주도했는데 당시 ‘광우병대책회의’를 주도했던 단체가 바로 한국진보연대였다.

김필재(조갑제닷컴) spooner1@hanmail.net

[관련기사] '촛불집회' 주도 세력 ' 2017년 우리는 세상을 바꿀 것'                            

  

민노총이 주도하는 ‘민중총궐기투쟁본부’가 참여하고 있는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이 최근 새해 메시지를 발표하면서 “시민혁명”을 언급했다.

1500여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는 퇴진행동은 지난 11일 ‘1987년을 넘어 시민혁명의 새로운 시대를 열자’는 제목의 신년 기자회견문에서 “1987년 시민이 헌법을 바꿨다면, 2017년 우리들은 세상을 바꿀 것”이라며 이 같이 주장했다.

퇴진행동은 “박근혜와 공범자들이 저지를 범죄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라며 “1987년 호헌철폐와 독재타도 함성으로 시민주권 시대를 열었다면 30년 이후 세계사에 남을 시민혁명의 한 장을 다시 쓰고 있다. 온몸으로 쓰고 있다”고 자평했다.

퇴진행동은 이어 “2017년 새로운 다짐을 선포한다”며 ▲박근혜 즉각 퇴진-조기탄핵의 그날까지 촛불을 들 것 ▲공범자 황교안의 국민사찰 공작정치를 그대로 둘 수 없다 ▲재벌체제를 비롯한 특권과 반칙 등의 개혁 ▲박근혜 공범자들의 완전 처벌 및 적폐 청산 등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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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단체는 ‘1월 조기탄핵’을 관철하기 위해 1월21일을 전국 동시다발 집중촛불의 날로 정했다.

인터넷 매체 <통일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날 퇴진행동 기자회견에는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現 퇴진행동 공동대표, 사진)가 나와 “박근혜 정권의 잔당들, 공범자들, 부역자들이 대통령 행세를 하며 갖가지 악행을 계속하고 있다”며 “하루 빨리 조기퇴진과 조기탄핵이 결정되어야 한다. 이것이 정의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또 시간이 늦어질수록 정원스님의 경우와 같은 희생이 속출할 수 있다며 간곡한 마음으로 조기퇴진과 탄핵을 거듭 촉구한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석운 씨가 공동대표로 활동하는 한국진보연대는 이명박 정부시절 ‘광우병국민대책회의’를 주도했던 단체 가운데 하나이다.

당시 촛불집회를 주도한 것은 표면상으론 ‘광우병 위험 미국 쇠고기 전면수입을 반대하는 국민긴급대책회의(광우병대책회의)’라는 단체였다. 2008년 5월 출범한 광우병대책회의는 “16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결집했다”고 주장했으나 실제로 주도한 단체는 진보연대였다.

당시 광우병대책회의의 대표 인사로 활동을 벌였던 강기갑, 천영세, 오종렬, 이석행, 한상렬 등은 모두 한국진보연대 관련자들이었다. 오종렬과 한상렬은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였고, 강기갑과 천영세는 한국진보연대 참가단체인 민노당 소속이었다. 이석행(2012년 3월5일 민주통합당 입당) 역시 한국진보연대 참관단체인 민노총 대표로 활동했다.

<동아닷컴>이 2013년 8월 사정당국의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02년 미군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 이후 지난 11년 동안 발생한 주요 촛불집회는 한국진보연대 등이 주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진보연대와 민노총(한국진보연대 참관단체)은 ▲2005년 평택미군기지 이전 반대 범국민대책위 ▲2006년 韓美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2010년 천안함 사건 진실 규명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공동행동 ▲2013년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국정원 시국회의)까지 모두 참가해 그동안 주요 촛불시위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김필재(조갑제닷컴) spooner1@hanmail.net




[ 2017-02-07, 20:2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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