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간첩·빨치산 추모제' 추모위원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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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아래 기사를 외부 사이트로 옮기지 마십시오.

美國북한인권법제정 반발

미국 하원은 2004721일 만장일치로 북한인권법(North Korean Human Rights Act of 2004)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이후 상원을 거쳐 같은 해 104일 하원을 재통과해 확정됐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북한 주민의 인권신장, 인도적 지원, 탈북자 보호를 골자로 하고 있다. 20089월 이 법의 시한을 2012년까지 4년간 연장하는 재승인 법안이 상원과 하원을 통과했으며, 201282017년까지 5년 연장하는 재승인 법안이 다시금 통과됐다.

미국의 북한인권법은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하여 미국 의회가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한 법률이라는 점에서 세계적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북한인권법이 통과되자 일부 국회의원들이 북한의 내부 사정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라며 200492일 주한 대사관에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당시 항의 서한에 이름을 올린 정치인들의 명단은 아래와 같다.

구논회, 김교흥, 김태년, 김현미, 김형주, 백원우, 복기왕, 선병렬, 오영식, 우원식, 유승희, 이광철, 이기우, 이상민, 이인영, 이철우, 이화영, 임종석(2015년 현재 서울시 정무부시장), 임종인, 정봉주, 정청래, 지병문, 최재성, 홍미영, 한병도(이상 열린우리당), 김효석(새천년 민주당)

이들 가운데 현재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인 정치인은 김태년, 김현미, 오영식, 우원식, 유승희, 이상민, 이인영, 정청래, 최재성(9)이다.

전대협 출신의 오영식, 우상호, 이인영, 정청래 의원과 함께 새정치민주연합의 강창일, 문병호, 이목희, 이상민 의원은 2007년 한국진보연대 등의 단체들이 주도한 간첩·빨치산 추모제(제18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 추모제’) 추모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행사에 소개됐던 소위 ‘열사’ 중 상당수는 建國 이후 간첩·빨치산 활동으로 실형을 선고 받았던 자들이다.

당시 행사에는 1979년 검거된 共産혁명조직인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애국전선) 사건의 주범 이재문·신향식을 비롯, 1968년 검거된 통혁당(통일혁명당) 간부로서 越北해 북한의 조선로동당에 입당했던 김종태·김질락·이문규 및 최영도·정태묵 등의 간첩전력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남파간첩 출신의 김용성·박융서·신창길·진태윤·최남규·최석기, 빨치산 출신의 김광길·박판수·박현채·윤기남·정대철 및 인민군·남로당 활동 중 검거되어 ‘비전향장기수’로 복역한 권양섭·김규호·변형만·양재영·이용운·장광명·최재필·최주백·최한석·한태갑·황필구 등도 추모대상이었다.

이외에도 당시 추모제에는 경기도 파주시 보광사 ‘통일애국열사묘역’에 안장됐던 빨치산 출신의 류낙진·정순덕·손윤규, 간첩 출신의 금재성·최남규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 5인방이 생전에 벌였던 대한민국 해체 활동을 일부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류락진(2005년 4월 사망): 류락진은 6·25전쟁 당시 지리산 일대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1957년 가석방된 후 1963년 ‘혁신정당’사건으로 구속되어 1967년 석방됐다. 1971년 다시금 ‘호남통혁당재건위’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1988년 가석방됐다. 출소 후 운동권을 상대로 빨치산 강연을 벌여 온 류락진은 1994년 ‘救國前衛(구국전위)’ 사건으로 구속되어 8년형을 선고받고 1999년 광복절특사로 석방됐다.

1993년 1월 조직된 구국전위는 창립선언문·강령·규약에서 북한의 主體思想(주체사상)을 조직의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삼고 있다. 규약 중 일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구국전위는 위대한 김일성 동지께서 창시하시고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발전 풍부화시켜 오신 새로운 노동계급의 혁명적 세계관이며 남반부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완수의 가장 정확한 학설인 주체사상을 유일한 지도이념으로 삼는 주체 형의 김일성주의 지하조직이다>

류락진의 反국가활동은 죽는 날까지 계속됐다. 그는 2002년 백운산지구 빨치산위령비 碑文(비문) 작성 사건으로 불구속 입건되어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국보법 위반)받았다. 류락진은 利敵단체 범민련남측본부 고문으로 활동하다 2005년 사망했다. 그의 가족들은 부의금 5천만 원을 통일운동에 써달라며 범민련남측본부에 기탁했다.

▲최남규(1999년 사망): 생전에 “백두산 장군에 대한 충성” 때문에 전향하지 않았다고 밝혔던 최남규는 1912년 함경북도 명천 태생으로 청진교원대학 지리학 교수로 재직하다 1957년 간첩으로 남파됐다. 그는 서울서 간첩활동을 벌이다 1957년 9월12일 동료 공작원의 밀고로 체포되어 15년형을 선고받고 1973년 출소했다. 최남규는 출소 후 3년 간 엿장수 생활을 하다 1975년 7월 사회안전법 위반으로 다시금 구속되어 1989년 풀려났다. 그는 1989년 5월11일 청주보안감호소에서 ‘그날 그때가 올 때까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가고픈 내 고향에 가고파도 내 못가네. 광복된 이 조국에 38선 웬 말인가 이 땅 뉘 땅인데 주인행세 누가하고 아름다운 금수강산 짓밟질 랑 말고서 돌아가라, 사라져라, 어서 꺼져버려라. 고-홈 고-홈 양키 고-홈>

▲정순덕(2004년 사망): 정순덕은 1933년 경남 산청 출신으로 6·25전쟁 발발 후 인민위원회 활동을 하던 남편을 따라 1951년 빨치산이 됐다. 정순덕은 국군의 대대적 토벌작전으로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 쫓겨 가 빨치산 활동을 지속하다 1963년 11월 체포됐다. 이후 정순덕은 대구·공주·대전교도소에서 23년 간 복역하다 1985년 8월 가석방됐다.

김대중 집권 시기인 2000년 미전향 장기수들이 북한으로 갈 때 정순덕은 전향을 했다는 이유로 北送(북송)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정순덕은 2003년 7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왜 북한에 가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우리가 전향서를 썼다고 하지만, 그 때는 강제로 한 거니까 인정할 수 없는 거지”라며 “북한에 가야 해”라고 말했다.

▲금재성(1998년 사망): 1924년 충남 대전 출생의 금재성은 보통학교 졸업 후 원산에서 사회주의 활동을 하다가 1944년 금촌 소년 형무소에 투옥됐다.

금재성은 출소 후 1945년 공산당에 입당해 독찰대(헌병) 원산지구 대장으로 활동하던 중 6·25전쟁 발발과 함께 인민군으로 참전했다. 停戰(정전) 후 제대해 원산 주을전기전문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던 중 1956년 정치공작원으로 남파되어 고향인 대전에서 간첩활동을 벌였다. 이듬해 공안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15년형을 선고받고 1972년 대전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했다.

그의 묘비(2005년 12월 철거)에는 “선생은 일제 강점하 민족 해방 투쟁으로 3년의 소년옥과 해방 후에는 조국 통일을 위해 1957년 투옥되어 30년의 형옥 속에서도 전향을 하지 않고 당신의 지조를 지키며 빛나는 생을 마치다”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 

▲손윤규(1976년 사망): 전북 부안 태생의 손윤규는 해방 후 남로당에 가입해 활동하다 6·25전쟁 당시 지리산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했다. 이후 1955년 경찰특무대에 구속되어 육군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하던 중 1976년 獄死(옥사)했다.

김필재(조갑제닷컴) spooner1@hanmail.net

[기타1] ‘6·15선언 국가기념일제정촉구결의안’ 서명

새정치민주연합의 前身이라 할 수 있는 열린우리당은 2007년 5월31일 배기선 의원의 대표발의로 ‘6·15남북공동선언 기념일’ 지정촉구 결의안을 제출한 바 있다. 문제의 결의안은 6·15선언이 “(남북한) 통일의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소중한 합의”라며 “6월15일을 국가기념일로 정하자”는 것이 골자였다.

당시 결의안에 서명했던 정치인 중 現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강기정, 강창일, 김동철, 김성곤, 김영주, 김우남, 김재윤, 김춘진, 김태년, 김한길, 김현미, 노영민, 노웅래, 문병호, 문희상, 민병두, 박기춘, 박병석, 박영선, 신기남, 신학용, 안민석, 양승조, 오영식, 우상호, 우원식, 우윤근, 원혜영, 유기홍, 유승희, 유인태, 윤호중, 이목희, 이미경, 이상민, 이석현, 이인영, 이종걸, 이해찬, 전병헌, 정세균, 정청래, 주승용, 최재성, 최재천, 한명숙이다(총46명).

他黨(타당)에서는 노회찬, 심상정, 고진화, 원희룡이 당시 서명에 동참했다. 

[기타2] ‘천안함 폭침 對北규탄 결의안’ 반대

북한에 의한 천안함 폭침 사건 발생 이후 국회는 2010년 6월29일 천안함 폭침과 관련해 對北 대응조치를 촉구하는 ‘북한의 천안함에 대한 군사도발 및 대응조치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한나라당(現 새누리당)이 주도했던 이 결의안은 제적의원 291명 가운데 237명이 표결에 참석, 찬성 163표, 반대 70표, 기권 4표로 통과됐다.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전원 표결에 불참했고, 민주당 의원 대부분(반대 70명 중 69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당시 반대표를 던졌던 민주당 정치인들 중 현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으로 활동 중인 인물들은 아래와 같다.

강기정, 강창일, 김동철, 김성곤, 김영록, 김우남, 김재윤, 문희상, 박기춘, 박지원, 백재현, 변재일, 신학용, 안규백, 안민석, 양승조, 오제세, 원혜영, 이낙연(現 전남도지사), 이미경, 이윤석, 이종걸, 이찬열, 전병헌, 조경태, 조정식, 최규성, 최재성, 추미애, 홍영표(총30명)

 

[ 2015-02-11, 18:1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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