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0년 동안의 침묵을 깨고 부활한 투탕카멘 왕의 영광
찬란한 發掘 <3> 네 겹의 투탕카멘 관 중 최대 장관은 길이 183cm, 무게 110kg의 순금으로 만든 제3의 관이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집채 같은 純金棺 발견… 보물 창고 또 찾아내

1923년 2월17일 오후 2시. 제3의 입구 개봉식에 입회한 20명의 학자는 2시간 뒤 그들의 눈앞에 무엇이 전개될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영국태생이지만 이집트에서 더 오래 생활하여 이집트인으로 오인되기도 한 하워드 카터. 그는 당시 50세로 인생과 발굴경력의 피크에 섰다. 57세의 카나본. 여생을 몇 달밖에 남겨두지 않은 그는 꺼져가는 인생의 등불을 이 순간을 위해 간직해 왔다. 돌문의 개봉은 카터가 맡았다. 그는 위에서부터 돌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작업을 중단하고 안을 들여다보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다고 뒤에 고백했다.

충분한 구멍이 생겼을 때 카터는 전등을 매단 장대를 집어넣었다. 나직한 탄성이 새어나왔다. 그의 視野를 압도해온 것은 황금의 벽. 그밖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뒤편에 걸상을 놓고 앉아있던 참관자들은 눈을 의심했다. 카터는 구멍을 넓혀갔다. 황금의 벽도 확대돼 갔다. 입구의 완전 개봉에 2시간이 걸렸다. 그제야 카터는 황금의 벽이 황금관의 남쪽측면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석실은 매장실. 발굴자들은 방을 꽉 메운 空前絶後(공전전후)의 유물을 보았다. 길이 5m, 너비 3.3m 높이 2.7m의 순금棺. 인류가 본 최고 최대의 보물이리라.

카터가 매장실에 들어갔을 때 맨 처음 주의한 것은 바닥에 흩어진 목걸이의 구슬. 도굴꾼이 떨어뜨린 것이었다. 카터는 구슬을 하나하나 주워 담았다. ‘참다운 고고학자는 최소의 유물에도 최대의 신경을 쓴다’는 금언처럼.

매장실의 크기는 6×4×4×3.3m. 황금관과 석실 사이의 폭은 60cm가 채 되지 않았다. 순금관의 표면엔 청색옥을 상감했고 주술적인 부호로 여백이 메워졌다. 발굴자들의 최대 관심은 이 관이 도굴로부터 안전한가였다. 동쪽 측면의 경첩은 뜯겨져 있었다. 카터는 떨리는 손으로 뚜껑을 열었다. 제2의 관이 나타났다. 이곳의 경첩은 원형대로였다. 그들은 왕릉 발굴 시작 이후 처음으로 도굴단보다 앞섰다는 기분이었다. 미라 발견에도 자신이 생겼다.

그들은 제2의 관을 덮은 퇴색한 아마포를 확인했다. 3300년 전에 사망한 투王의 체취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순간이 투왕릉 발굴의 정점이다. 모두가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카터가 매장실 동쪽으로 갔을 때 그는 매장실 바닥보다 낮은 입구를 발견한다. 입구는 열려 있었고 건너방은 내려다 보였다. 그것은 가로 4.7m, 세로 3.75m, 높이 2.3m의 보물창고였다. 창고복판엔 네 수호신을 조각한 황금의 기념비가 서 있어 발굴자들을 맞았다. 발랄하면서도 우아하고 공감과 기원과 자비의 감정으로 빛나는 조각. 카터는 이것을 본다는 것이 ‘신을 모독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카터와 카나본에 이어 참관자들이 차례로 매장실과 寶庫(보고)를 둘러보았다. 한 사람씩 밖으로 나오는 표정을 관찰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모두의 눈은 빛났고 말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경이를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후 5시쯤, 3시간 만에 그들은 지상으로 나왔다.

우수 깃든 황금초상…保存 안 좋아 뼈 삭아

투 왕릉의 유물 수습엔 6년 걸렸다. 가장 중요한 황금관 조사는 1926년과 27년 겨울에 이뤄졌다. 카나본은 그 장관을 그냥 볼 수 없었다. 그는 1923년 4월5일 폐렴으로 숨진다. 파라오의 저주를 받았다는 유언비어의 발단이었다. 투탕카멘의 관은 네 겹으로 이뤄졌다. 석관 속에 금도금한 세 개의 속관이 들어있는데, 최대 장관은 제3의 관이다. 길이 1.83m에 두께 2.5~3.5mm. 무거워서 도르래를 이용해 들어 올려야 했다. 황금관을 분해, 매장실에서 끌어내는 데만 84일이 걸렸고 두 겹의 금관을 해체했을 때 나타난 것은 순금으로 만든 관이었다. 투王이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33세기 동안 침묵을 지켜온 투 왕이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석관 뚜껑엔 이시스 여신과 네이트 여신이 침입자를 막는 듯 날개를 펴고 감싸고 있었다. 감동적인 순간이 다가왔다.” (카터)

기사본문 이미지
순금으로 만든 110kg의 세 번째 관을 조사하고 있는 하워드 카터.


110kg의 황금관 뚜껑을 열었을 때 발굴자들은 어리둥절해 했다. 미라 대신 무엇을 칭칭 감은 亞麻布(아마포)가 드러난 것이다.

“이것을 한 겹 한 겹 뜯어냈다. 투王의 황금초상조각이 나타났다. 소년티가 나는 우수에 젖은 인상이었다.”

투王의 유물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게 이 조각이다. 금관 위에 도드라지게 사실적으로 조각된 투왕. 사진을 보듯 그 인상은 생생하다. 슬픔을 간직한 黑曜石(흑요석)의 눈, 유리로 박은 수려한 눈썹과 입술. 손엔 왕권의 상징인 금지팡이가 잡혀졌다. 비취가 상감된. 그러나 카터를 가장 감동시킨 것은 亞麻布에 싸인 화환이었다. 소녀 왕비가 사랑하는 남편에게 바친 고별의 선물. 호화극치의 황금 유물도 이 시든 화환에 비하면 무색해진다. 그것은 3300년의 무상함을 말해주는 듯 했다.

투王의 미라엔 다시 황금 마스크가 씌워져 있었다. 마스크를 벗기자 미라가 드러났다. 香油(향유)와 獸脂 및 樹脂로 뒤범벅된 관 속에 투王은 잠들어 있었다. 미라의 보존상태는 좋지 않았다. 수지의 산화작용으로 뼈까지 삭아 있었다. 해부학자 데리 박사는 팔다리와 하체를 잘라서 끄집어냈다. 미라는 또 반지 귀걸이 등 143점에 달하는 순금과 보석 장신구들로 칠갑이 돼 있었다. 데리 박사는 미라를 조사하여 몇 가지 흥미 있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투탕카멘왕은 異端王(이단왕)이라 불리는 아케나텐王의 친자식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관절돌기와 다리뼈의 크기에서 투王의 사망연령을 17~18세로 추리해 냈다.

데리 박사는 황금 마스크와 미라의 머리를 비교, 이집트 조각의 리얼리즘을 격찬했다. 황금 마스크는 투王을 친근감이 나는 고귀한 청년으로 표현했다. 요행히 미라를 목격할 수 있었던 학자라면 조각가가 정확무비하게 투王의 특징을 전달하고 있음을 보증할 것이다. 무명의 예술가는 불멸의 금속을 통해 인류에게 투王의 초상을 선물한 것이다.

기사본문 이미지
투탕카멘 왕 미라의 머리와 어깨를 덮고 있던 황금 마스크. 왕의 생전 모습과 비슷하게 제작됐다.


그러면 투王은 어떤 제왕이었던가. 그는 부장품과는 어울리지 않게도 나약한 군주였다. 그의 치세는 혼란했고 그는 이렇다 할 치적도 없이 요절했다. 그의 妃는 옥좌에 새겨진 조각으로 미뤄 절세미인이었던 모양이다. 그의 생존연대조차 확실치 않으나 기원 전 1350년경으로 추정된다. 왕릉에서 발굴된 조각엔 그가 포로를 짓밟고 있는 형상이 묘사돼 있으나 그가 전투에 참가했다는 것도 의심스럽다. “투王의 유일한 치적은 죽어 투탕카멘 王陵을 남긴 것뿐”이라고 카터는 말했다.


(계속)

,,,,,,,,,,,,,,,,,,,,,,,,,,,,,,,,,,,,,,,,,,,,,,,,,,,,,,,,,,,,,,,,,,,,,,,,,,,,

 피라미드 이야기

 카이로 근교 기자의 피라미드群엔 여러 개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모여 있다. 약4580년 전의 작품이다. 최근에 발굴된 木船을 복원하여 보여주는 박물물도 생겼다. 가장 큰 쿠푸 왕의 피라미드 옆에 파묻어둔 이 목선은 레바논에서 가져온 삼나무로 만들었다. 실제로 사용된 흔적이 있다. 길이가 46m나 되고 100명 이상을 태울 수 있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선이다.   
  9세기에 만들어진 바이킹의 배를 오슬로에서 전시하고 있는데 크기는 기원 전 2581년 무렵의 이 목선의 10분의 1 정도이다.   
  기자의 大피라미드(쿠푸왕의 피라미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되고,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4580년 동안 風雨와 도굴에 노출되었음에도 그 권위와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다. 피라미드는 파라오(이집트 왕)의 무덤이자 태양신을 받드는 神殿이다. 파라오는 태양신의 아들을 자처, 半神半人의 위치에 있었다. 피라미드는 땅과 태양, 인간과 신을 이어주는 상징물이다. 大피라미드는 높이가 146m였는데 그 동안 꼭대기 9m가 날아갔다. 원래 표면은 마감을 잘 하여 맨들맨들했는데, 지금은 돌이 그대로 드러났다. 평균 무게가 2톤이 넘는 약230만 개의 돌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건물이 이 정도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기적이다. 피라미드의 여러 가지 수수께끼 중 가장 큰 수수께끼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고대의 7대 불가사의중 유일한 생존물이다. 여행에 동행한 한 건축가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고,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은 게 石造건물을 보존시킨 한 원인이다'고 했다.
  
  이 피라미드를 지을 때 주민들을 채찍으로 부려서 지었다면 원한에 사무친 건물이 되어 정치불안기에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부숴버렸을 것이다. 피라미드를 지을 때 파라오는 동원된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식량으로 지급하였다고 한다. 그때 이집트는 농업대국이었다. 나일강 하류 삼각지에서 산출되는 농산물은 남아돌았을 것이다. 지금 나일강은 인구 9000만의 이집트를 먹여 살리고 있다. 4580년 전 인구는 수백만 정도였을 것이다.
  
  남아도는 식량, 즉 남아도는 財政을 피라미드 건축에 동원한 것은 일종의 취로사업이었다. 인류최초의 취로사업?  
  태양신을 모시는 이집트 사람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열정을 모아 즐겁게 지었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종교적 열정을 모아 지은 로마의 성베드로 사원, 피렌체의 두오모처럼. 종교적 열정이 투입되지 않으면 미학적으로 완벽한 위대한 건물은 만들어지기 어렵다.
  
  이 피라미드는 古代부터 인기가 있었다. 그리스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소문을 듣고 구경하러 왔다. 구약의 요셉, 모세, 그리고 알렉산더 대왕, 클레오파트라, 예수의 제자 마가도 이 피라미드를 구경하였을 것이다. 아기 시절 잠시 이집트로 피난 왔던 예수도 요셉과 마리아와 함께 이 피라미드 앞에 섰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폴레옹! 그는 스핑크스 앞에 서서 “4000년의 역사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카이로 회담에 참석한 처칠, 루즈벨트, 장개석, 그리고 2011년 1월18일 조갑제! 이렇게 오래, 이렇게 여러 나라 사람들에 의하여 敬畏의 대상이 된 건물은 피라미드뿐이다. 인류最高의 건물이다.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 이종희씨는 “피라미드는 돌로 쌓아올린 게 아닙니다. 열정과 시간으로 쌓아 올린 겁니다”라고 했다. 피라미드는 신이 되고자 하였던, 또는 신을 닮고자 하였던 인간의 의지를 상징한다.
  
  거의 모든 종교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초월하려는 의지를 공유한다. 이 종교적 열정과 의지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종교적 열정이 생산적 에너지로 전환되면 피라미드, 성당, 그림, 사랑, 용서로 표현된다. 파괴적 에너지로 전환되면 독일인구의 3분의 1을 죽였다는 17세기 종교전쟁, 그리고 9.11 테러 같은 게 일어난다.
  
  
  ,,,,,,,,,,,,,,,,,,,,,,,,,,,,,,,,,,,,,,,,,,,,,,,,,,,,,,,,,,
  
  피라미드는, 3881년간 세계 最高 最大 건물
  
  
   세계最高 건물이란 타이틀은 서기 1311년에 완성된 영국의 링컨 성당에 넘어갔다.
  趙甲濟
  
   古代 그리스 사람들이 당시의 서양 文明세계를 여행하면서 만든 리스트가 '7대 不可思議(불가사의)'이다. 이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이집트 카이로 근교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이다. 기원 전 2570년에 완성되었고 당시 높이는 146m. 그 뒤 9m가 깎였다. 세월과 風雨에.
  
   기자의 피라미드는 3881년간 세계에서 가장 높고 가장 큰 건물이었다. 이 가운데 세계最高 건물이란 타이틀은 서기 1311년에 완성된 영국의 링컨 성당에 넘어갔다. 이 고딕식 성당의 첨탑 높이가 160m였다. 이 기록을 깬 것은 1884년 미국 워싱턴에서 올라간 워싱턴 기념탑이었다. 169m. 그 5년 뒤 파리에서 에펠탑이 우뚝 섰다. 높이 300m.
  
   기자의 피라미드는 가장 오래 되면서도 가장 큰 건축물이었다. 피라미드는 가장 여러 번 조사된 건축물이란 기록도 갖고 있다. 이건 도저히 인간이 만든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하여 外界人 건축설이 나온다.
  
   7대 불가사의에 들어간 건축물은 파리미드 이외엔 '바빌론의 하늘 정원' '에베소의 알테미스 신전(지금의 터키)', '올림피아의 제우스 像(그리스)', '할리카르나수스 무덤(페르샤)', '로도스 섬의 巨像(그리스)', '알렉산드리아의 등대(이집트)'이다. 이들은 지진, 방화 등으로 부서졌는데 가장 마지막에 무너진 것은 '알렉산드리아의 등대'였다. 이것도 지진으로 서기 1480년에 사라졌다. 당시 높이가 135m였다. 기원 전 3세기, 알렉산더 大王의 부하였던 프톨레미가 이집트를 정복, 프톨레미 王家(마지막 王은 클레오파트라)를 열었는데, 건축은 프톨레미가 시작하였고, 완공은 아들 때였다. 15세기까지 서 있었던 이 등대에 대한 기록이 많아 정확한 복원이 가능하다고 한다.
  
   2007년 약1억 명이 참여한 인터넷과 전화 조사에서 뽑힌 '新 세계 7大 불가사의'엔 아래 名所들이 뽑혔다.
  
   *멕시코의 마야 유적 치첸이차
   *브라질 리오데 자네이로에 있는 예수 石像
   *로마의 콜로세움
   *중국의 만리장성
   *페루의 잉카 유적지 마추피추
   *영화에 많이 나오는 요르단의 페트라
   *인도의 타지마할
  
   캐나다-스위스 국적자인 버나드 웨버가 만든 '新 세계 7大 불가사의' 재단은 '古代의 7大 불가사의' 중 유일한 생존자인 피라미드를 '명예 불가사의'로 추대하였다.







[ 2015-03-20, 17:3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