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度이야기(2)/ 계급으로 움직이는 宇宙
전통적인 직업에서 기능별 직업의 세분화까지 어쩌면 인도의 계급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욱 세분화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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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카들의 침입

‘바라타의 나라’에 살며 겪은 실수담을 꺼내어 본다. 방심하던 사이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라고 자부했던 사무실 안으로 여장 남자의 무리인 차카(chhakka)*들이 침투했다. 트로이의 목마처럼 담 안으로 잠입한 그들은 순식간에 사무실 밖을 서성이고 있었다. 굵고 큰 목소리로 현지 직원들에게 무언가 쏘아붙이고 있는 그들은 우람한 몸에 인도 여성들의 전통 복장인 사리(Sari),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한복을 두르고 있었다. 올 것이 왔다. 돈을 요구하는 것이다.

*차카는 남아시아권에서 히즈라(Hijra)로 불리는데 여장남자 또는 거세남 등 性轉換한 남자들을 일컫는다. 지역 및 언어에 따라 쿠스라(Khusra, 펀잡), 코지아(Kojja, 텔루구), 옴보두(Ombodhu, 타밀, 첸나이) 등으로도 불린다. 흔히 버림받은 아이들의 입양을 통해 一家를 이루며 ‘제3의 성(third gender)’으로 여겨진다.

이 불청객들에 대해서는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과거 기차 여행길에 올랐을 때도 그들은 어김없이 나타나 불쾌한 스킨십을 무기로 푼돈을 뜯어내고는 했다. 사실 한번쯤 겪지 못하면 아쉬울 경험이고, 무릇 여행자라면 그들과 같은 소수들과의 대면을 바라마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일종의 조합 형태로 움직이는 이들은 상당히 위협적이다. 회사의 개업일, 경축일, 홀리(Holi)나 디왈리(Diwali)와 같은 인도의 祝祭기간에는 어김없이 찾아와 자신들의 단체에 기부할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거부하거나 무시할 수는 없다. 韓貨로 약 200만원 수준의 기부금을 요구하기 시작한 그들과 10만원 안팎에서 해결하려는 직원들 사이에 실랑이가 이어졌다. 대개 그러하듯 이러한 경우 결국 20만원 안팎에서 해결을 볼 것이었다. 금액으로 보자면 인도에서는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게다가 온 동네를 돌며 이처럼 갈취해갈 것이다. 그래도 한바탕 아수라장이 벌어진 것에 비하면 용두사미(龍頭蛇尾)이고, 무난한 수준이었다.

문제는 방식에 있었다. 사실 이 싸움은 크게 진 게임이다. 차카들에게 앞마당을 점령당했고, 앞으로도 똑같은 일이 무수히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트로이의 목마를 운운한 것은 단지 그리스와 인도 신화 사이의 묘한 동질감 때문은 아니다. 일단 상대를 동등한 위치 내지 優位에 놓으면 돌이키기가 어렵다. 원래 이런 일은 건물 밖 경비실에서 해결되었어야 했다. 새로운 회사가 생겼다는 것을 인지한 적(敵)들이 수비(守備)를 돌파해 내부를 본 뒤 어느 정도의 조공(朝貢) 능력을 가졌는지 가늠해버린 셈이다. 역시 그들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고, 매 번 때마다 거두어갈 상납금(上納金)을 확답 받은 뒤에야 물러났다.

이러한 의문은 가능하다. 경찰을 부르면 될 일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건물 수위들이 자리를 피한 것은 그들과 신체 접촉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차카들이 몰려오면 주위의 경찰들도 멀찍이 물러난다. 건물 수위, 경찰, 직원들까지 너나할 것 없이 뒷걸음질 치기 바쁘다. 내 곁에는 ‘라오콘’이 없는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라오콘’은 트로이에서 홀로 그리스군의 木馬를 의심했던 신관(神官)이다. 하지만 이 또한 인도인들이 하층 계급, 불가촉인(Untouchable)을 대하는 일면(一面)이다. 충심으로 운명을 어기려 했던 ‘라오콘’은 결국 신의 분노를 사고 말았다. 신심(信心) 깊은 인도인들에게 衷心이냐 운명이냐를 묻는다면 뻔한 결말이 아닌가.

예고된 일이고, 대처법도 분명했다. 그럼에도 인도인 측근들의 대답이 ‘예스(Yes)’였던 데 반해 정작 행동은 ‘노(No)’였던 이유는 그 행동이 초래할 결과에 대해 부담이 컸던 탓이다. 신화(神話)에 익숙한 인도인들은 저주(咀呪)에 민감하다. 접촉은 물론, 차카들의 요구에 불응한 뒤 이어질 그들의 저주스러운 언사를 피하고 싶어 한다. 조금은 납득이 간다. 윗사람의 지시에는 긍정으로 답하지만 그 행동은 부정으로 나타난 것은 순리에 따른 인도인들의 본능과 다름없다. 답답하고 섭섭하며 다소 의리 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계급적 마인드에 충실한 逸話이기도 하다. 계급은 결국 위(上)에는 충성하지만 아래(下)와는 차별성을 둔다. 결국 직원은 다른 직원에게 미루고 그 다른 직원은 또 다른 직원에게, 결국은 경비원에게 미루고 경비원은 청소부에게 미루는 식으로 말이다. 그 사이 차카는 그냥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서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사이 아무도 상대하기를 꺼린 것이다. 접촉하기 싫은 ‘불가촉(Untouchable)’이란 이런 의미구나 싶다.

복채에 응하지 않을 경우 차카들은 욕설과 협박은 물론 입에 담기 어려운 저주를 퍼붓는다. 이후로도 주변에서는 문을 굳게 닫고 응하지 않아 돌을 집어 들고 막대기로 두드리며 야단법석을 떠는 차카들과 몇 걸음 뒤에서 수수방관하는 경찰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기물을 파손하는 경우도 있으니 최소한의 예방조치만 취할 뿐 별다른 도리가 없다. 하긴 상납금이라는 부분에서는 인도의 경찰 등 공무원들도 그다지 하소연할 상대는 못된다. 각종 인허가 과정에서 그보다 몇 배의 공물(供物)을 바쳐야하는 것이 관례다. 그래도 차카들의 조합은 기부 영수증이라도 떼어준다. 세금 공제라도 받으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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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의 길게 이어진 가트(화장터)를 거닐다 마주친 연 날리는 소년



인도 속의 계급, 카스트

차카에 얽힌 좌충우돌의 일화(逸話)를 통해 떠올린 것은 인도의 계급이다. 다소 자극적이지만 이는 계급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나름의 계기가 되었다. 인도인들의 계급에는 일종의 메커니즘이 있고, 거기에는 허용되는 線과 넘지 말아야 할 線이 있다. 그 속에 우리와 같은 외국인은 어디쯤 위치하는 걸까? 그보다 먼저, 인도와 인도인들에게 계급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인도에 근접하는 것이 어려워 보였다.

사실 우리에게 ‘카스트(Caste)’라는 낱말은 너무 익숙하다. 사성계급(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과 불가촉천민으로 구성된 인도의 계급제도. 실로 간단명료한 구분법이다. 처음 인도인을 대할 때 직접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나름 이런저런 기준으로 상대방의 계급을 추측해보고는 했다. 하지만 ‘카스트’에 언급된 각기 계급들의 구분은 실생활에 접목할 만큼 뚜렷하지 않았다. 대략적인 구분 외에는 ‘카스트’의 개념만으로 계급을 이해하는 것은 아리송했다.

예를 들면, 기차에서 같은 등급의 좌석에 마주 앉은 사람들이 계급이 다르다며 누군가를 발길질하며 쫓아내고, 잡역부들이지만 호텔의 짐꾼, 로비의 청소부나 화장실 청소부 간의 신분과 지위도 제각기 달랐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 取食하는 사람에 대한 제한도 있었다. 그렇다면 펀자비 레스토랑은 펀자비 지방 사람 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것일까? 그에 비하면 야므나(Yamuna)* 강변을 걷다가 만난 도비(Dhobi)들은 분명하게 구분되는 계급이었다. 도비는 인도의 최하층민 중의 하나로 세탁업에 종사하는 계급이다. 이들을 목격한 것은 ‘유레카! 이 사람들이 도비 카스트구나’라며 명쾌하게 의문을 푸는 경우였다.

*히말라야 산맥 부근에서 發源하여 인도 북부 갠지스강(또는 강가)까지 1370m에 이르는 갠지스강의 최대 지류로 델리, 아그라 등을 통과하는 중요한 水源이다.

한편 인도인들은 외국인을 어떠한 지위로 받아들이는지도 무척 흥미로웠다. 계급 사회인 인도에서 막상 그들과 마주하자니 그들 간의 位階는 물론 외국인인 자신의 위치도 신경이 쓰이는 법이다. 상대가 나를 존중하면 모르지만 때로는 그들의 언어를 모르는 것을 틈타 은근히 반말을 섞어 쓰며 놀림감으로 만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힌디어를 살펴보면 성·수·격의 변화가 무쌍한데 존칭에 따라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 드러나는 것이다. 그에 따라 대우가 틀려지고, 계급에 예민해지다보니 다소 품위가 없더라도 일일이 상대방의 말을 정정하고, 나 역시 상대를 만나자마자 마치 기싸움 하듯이 말을 골라 쓰게 되는 것이다. 설령 비즈니스의 경우라도 결국 서로의 위치를 알아야 시쳇말로 적절한 STP, 즉 세분화(Segmentation), 타겟선정(Targeting), 그리고 포지셔닝(Positioning)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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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강 상류 연안에 자리잡은 하리드와르의 밤


또한 세월에 따른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십여 년 전 어느 레스토랑에서 내외국인의 좌석을 구분하여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에는 다소 불쾌했지만 돌이켜보면 음식점도 肉食과 菜食으로 구분되고,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에 상하계급 간의 음식 공유조차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납득할 만하다. 이런 면에서는 인도인들이 외국인의 지위를 낮게 본다는 논리도 설명이 가능하다. 실제로 전통적인 인도 계급의 관점에서는 외국인을 이렇다 할 특정 계층에 놓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런 부정적 의미보다는 인도인들이 외국인을 계급 外的인 모호한 지위로 받아들였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시간을 반 토막 내어 약 칠년 전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뭄바이(Mumbai)의 호텔에서 어느 현지 업체 사람과 마주한 적이 있는데 그는 나를 위해 술과 肉類 안주를 주문하더니 정작 자신은 물만 들이키는 것이었다. 자신은 채색주의자인데 식사도 했고,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 얘기를 두고 혹자는 비싼 호텔에서 2인분은 부담되니 손님만 극진히 대접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욕망에 휩쓸리지 않고 술과 여자를 멀리하는 것이 인도인들의 미덕이기는 해도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고, 강제적으로 금지된 것도 아니다. 술을 한 번도 마시진 않았을지언정 한 번만 마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쨌든 합석조차 어려웠던 것과는 판이한 경험이었다. 일단 합방은 했으나 아직 정조(貞操)를 지키겠다던 매우 조마조마한 시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경험은 외부 문화와의 교류에 따라 인도인들이 어떻게 소통하고 변화했는지 보여주는 소소한 예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한가? 이제는 도심의 공원 곳곳에서 인도 젊은이들이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를 읊을 만큼 인도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외국인과 함께 식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음식도 나누어 먹고, 원한다면 함께 술 한 잔 하는 일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때로는 가족의 경조사에 스스럼없이 초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념할 점은 이러한 변화와 무관한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같은 계급 간에만 음식을 공유하고, 특히 내혼(內婚) 및 정혼(定婚)을 통해 계급 사회 속 자신들의 신분과 지위를 유지해온 전통은 보다 내밀한 묵계(默契)에 가깝다. 대도시에 살며 일찍이 해외 문화를 접해온 인도인들의 유연한 변화가 눈에 띄지만 인도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라고 단정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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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빌기 위해 갠지스강 入水 전 이발하는 남자. (하리드와르)


계급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면, 단순히 ‘카스트’의 개념만으로 이해하기란 어쩐지 모호한 부분이 많다. 더욱이 현대 사회에 이르러 확산된 교육, 財力 및 그에 따른 신분 이동 등 다양한 변화 요인들에 영향 받은 인도인들의 계급은 단지 ‘카스트’라는 그릇으로 담기에는 벅차 보인다. 가령, 과거 最上位 계급에 해당되는 司祭 계급, 학자 등 브라만이 사회적으로 여전히 존경을 받는다고 하지만 경제적 성공에 따른 상인 계급 바이샤들 또한 현실적인 의미에서 막강한 파워와 영향력을 가진다. 또한 태생적으로 대물림 받은 낮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교육 등 기회의 확대가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신분 이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실제로 不可觸賤民(불가촉천민) 출신의 여성이 고위 정치인이 된 사례도 있다. 한편 그러한 변화 속에도 각 계급의 유지와 대물림은 계속되는 것이다.

흔히 인도를 보며 한국의 60~70년대를 떠올린다는 말을 하는데 인도도 꽤 바뀌었다고 묻는다면 그 말은 맞다. 하지만 이들도 곧 급격히 변화할 것이라는 말에는 조심스러워진다. 왜일까? 좀 더 깊숙이 인도의 계급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름 속에 새겨진 계급

카스트의 개념부터 다시 살펴본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실 ‘카스트(caste)’와 정확히 일치하는 인도어는 없다. ‘카스트’라는 어휘 자체는 원래 식민지 시대 ‘카스타(casta, 동식물의 種 내지 사람의 부족, 인종, 계급, 종족)’라는 포르투갈어에서 비롯되었고, 기본적으로 인도 사회 제도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시각에서 비롯된 편의적 명칭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인도 사회의 계급은 무엇인가? 인도인들은 전통적인 사회 제도의 기본 단위를 ‘바르나(varna, 산스크리트어로 色을 의미함)’ 와 ‘자띠(jati)’로 이해한다.

먼저 ‘바르나’는 인도 고대 사회의 위계적 구분을 뜻한다. 브라만(Brahman), 크샤트리아(Kshatruya), 바이샤(Vaishya), 수드라(Shudra)의 4개의 범주로 구성되고, ‘바르나’의 테두리 밖에 속한 이들을 불가촉민(Untouchable)으로 부르는데 바로 ‘카스트’를 통해 알려진 단일 위계적 계급 구성과 동일하다. ‘바르나’는 전통적인 직업으로 구분되어 브라만이 사제와 학자, 크샤트리아가 武士, 바이샤는 농업과 상업, 그리고 수드라는 일용 잡역을 하는 것이다.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와 같은 다른 상위 ‘바르나’와 달리 수드라는 종교적으로 완전히 배제되었다. 사실 이 ‘바르나’는 참고적인 계급 구분에 가깝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카스트’와 마찬가지로 ‘바르나’의 듬성듬성한 분류로는 뚜렷한 기능적 집단이나 사회 단위를 대변하기에 무리가 따른다. 실제로 ‘바르사’에서의 계급 구성은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남인도에서는 크샤트리아와 바이샤 계급이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편 ‘자띠’는 원래 어휘적으로 ‘출생’을 의미한다. ‘바르나’와 달리 지역적인 체계를 말하는데 ‘자띠’는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관계를 갖는 실재(實在) 기능 집단이다. 하나의 마을에 20~30 종의 ‘자띠’가 있고 인도 전체적으로는 2000~3000종에 이른다. 이들 각각의 ‘자띠’는 앞서 언급한 ‘바르나’와 ‘불가촉천민’ 어딘가에 소속되지만 보다 세분화된 개념으로 이해된다. ‘바르나’가 전통적 의미의 직업이라면 ‘자띠’는 각각의 이름을 가지며 구체적이고 일정한 직업과 연결되는 것이다. ‘자띠’는 代를 이은 직업 세습, 집단 내혼(內婚)의 단위가 되어 지역 안에서 개별적인 정체성을 유지한다.

흔히 카스트는 ‘바르나’와 ‘자띠’가 혼돈되어 사용되는 것이다. 계급적 의미는 ‘바르나’, 실제 사회적 기능 단위로는 ‘자띠’를 쓰는 게 일반적이다. 고대 사회에서는 아직 ‘바르나’로부터 ‘자띠’로 세분화되기 전이었고, 때문에 당시에는 ‘바르나’만으로 카스트를 이해할 수 있었다면 기능적 주체 즉, 직업이 세분화된 오늘날에는 ‘자띠’가 실질적인 개념의 카스트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원칙적으로 다른 카스트의 成員이 만든 음식은 먹지 않는 것을 비롯해 동일 카스트 내 결혼, 서비스의 교환 등을 통해 결속력을 가지고, 각기 신분적 차별성과 위계적 구분을 두는 것이다.

1947년 카스트 제도가 법적으로 금지되었다고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한들 ‘자띠’를 지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도 그 사람의 이름을 보면 어느 지역 출신이고 집안은 어떤 일을 하는 누군지 드러난다. ‘카스트’는 없어도 ‘자띠’가 있고, 그것은 인도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한 人的 地圖인 셈이다. 인도에서 계급은 여전한 威力을 발휘한다. 公的인 영역에서는 카스트의 位階가 약해졌다고 하나 私的인 영역에서는 그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흔히 인도의 패밀리 비즈니스를 이야기하는데 이 또한 같은 틀 안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비를라(Birla)그룹과 유통업으로 유명한 마르와리 상인, 타타(TATA)그룹으로 유명한 파르시 상인, 그밖에 펀자비 상인, 바니아 상인 등 財界를 주름잡는 기업을 지역과 家門과 연계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정치권도 代를 이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가난한 짐꾼의 후손이 다시 짐꾼의 삶을 살아가기도 하고, 과자 가게의 아들이 전국구의 과자점을 열어도 그는 과자 가게의 집안인 것이다.

이를 통해 변화의 바람 속에서도 뿌리 깊게 자리한 인도의 계급 문화가 어떠한 것인지 엿볼 수 있다. 변화는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고, 예외적인 사례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브라만의 자손이 일개 직원이 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반면 계속하여 계급이라는 태생적 한계 속에 살아가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여기에 ‘업(業)’에 따라 前生의 왕이 개미로 還生했다거나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는 힌두교의 신화를 떠올리면 무척 흥미롭다.

전통적인 직업에서 기능별 직업의 세분화까지 어쩌면 인도의 계급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욱 세분화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근본적으로는 代替 불가능한 사회 시스템일지도 모른다. 과연 내 이름에 새겨진 주홍글씨가 지워질 날이 올 것인가?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아마 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계급 속의 他人

인도는 계급의 기능적 역할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우주(宇宙)다. 계급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까닭이다. 외국인이니까 列外라는 생각은 재고(再考)해 볼 만하다. 평생 마주한 사람의 신분과 지위에 반응하여 온 그들의 문화에서 계급은 본능이다. 우리도 외국인을 대할 때 순간 우리의 기준에서 상대방을 판단하고는 한다. 조금 예외적인 경우일 뿐 내가 위인지, 네가 위인지 혹은 동등한 것인지, 그들은 매우 본능적으로 우리를 가늠할 것이다. 농을 섞어 얘기하면 외국인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그 어떤 계급도 아닌 불가촉천민이다. 물론 실제 현실이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자띠’의 기능적 역할로 보자면 외국인은 그들의 나라를 방문하고, 돈을 쓰며 투자하는 손님이자 고객이다. 대개의 경우 서비스를 받는 자 또는 특정된 용무 내지 관리자의 입장에서 존중받는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인종적으로 우리와 유사한 인도 동북부 사람들을 대하는 본토 인도인들의 시선은 매우 차갑다. 동남아에서 건너와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인도인의 시각에서 크게 존중받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나를 향해 따듯한 미소를 던지는 인도인들이 그들을 향해 섬뜩한 비웃음을 던질 때 오싹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는 그들과 무엇이 다를까? 어쩌면 인도에서 계급이라는 것은 이런 차이가 아닐까 싶다. 좀 더 가치를 인정받는 기능을 발휘한다는 것 말이다.

계급은 곧 기능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도 인도를 마냥 바라만 볼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관계로 다가서기 위해서 우리의 기능을 바라볼 필요도 있겠다. 계급에는 존중받는 자가 있고, 무시당하는 자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인도 사회에서도 의미 있는 기능적인 역할을 담당할 ‘자띠’가 되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떤 ‘자띠’가 되고 싶은가?


-글쓴이: 정인채 inchaijung@mac.com

[ 2015-03-27, 11:0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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