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發掘 <10> 王과 王妃 등 미라 수십 구 보존된 ‘미라 기숙사’
3000~4000년 전 나일강과 태양의 나라를 휘어잡았던 주인공들이 최후의 표정으로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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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과 王妃 등 미라 수십 구 보존된 미라 기숙사

투탕카멘 왕릉 부장품을 갖고 있는 카이로 박물관은 소장품의 質(질)과 量(양)에서 세계최대급이다. 이 박물관 2층의 특별실은 미라 진열실. 약 3600년 전의 이집트 新왕국을 주름잡던 왕과 왕비의 미라가 수십 구 보존돼 있다. 이 진열실에서 관람객은 한 미라에 혼을 뺏기고 만다. 문제의 미라는 온통 흑갈색. 목은 부러졌고 다리는 굽혀졌으며 두 손은 고통에 찬 가슴을 부여안고 있다. 표정은 단말마의 공포, 비명을 지르는 입은 활짝 열렸고 이빨은 으드득 갈고 있다. 주름살까지 펼 수 있는 이집트 미라 제조기술에 비춰 이 미라는 아무래도 이상하다.

1875년 왕가의 계곡에서 발견된 이 미라의 사연을 고고학자들은 이렇게 풀어줬다. 이 왕의 치명상은 턱을 갈긴 도끼의 일격이었다. 적의 청동도끼는 잇따라 오른쪽 눈두덩, 오른쪽 뺨, 이마에 불벼락을 쳤다. 왕의 시체는 戰塲(전장)에서 간단한 처치를 받았다. 삼베로 감쌌지만 허둥댄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신하들은 그들 테베 부근의 초라한 무덤에 묻었다가 뒤에 자연동굴로 옮겼다. 약탈과 도굴을 막기 위해서. 해부학자들은 그의 나이를 40대로 보았다. 한창 때 처참한 최후를 거둔 이 왕은 누구인가. 그는 서기전 1600년경 테베를 수도로 했던 제17왕조의 세켄엔레 타오2세(Seqenenre Tao)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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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塲서 도끼에 맞은 채 죽은 공포의 얼굴로 미라가 된 세켄엔레 타오2세.


당시 이집트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쳐들어온 셈족의 일파 힉소스(Hyksos)의 식민지였다. 세켄엔레 타오 2세는 이 압제에 대항, 독립전쟁을 일으켰으나 박살나고 말았던 것이다. 미라는 이처럼 생생한 역사를 보여준다. 인류역사의 여명기를 뒤흔들었던 파라오들을 미라로 대면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동적인 일인가. 40여 명의 이집트 왕족들을 한 동굴에서 찾아낸 얘기를 하기 전에 미라의 뜻을 알아보자.

12세기 이집트를 여행한 아라비아인 압드 엘-라티프(Abdal-Latif)는 “그들이 藥(약)으로 미라를 염가 판매하고 있다”고 썼다. 19세기까지 미라는 골절상 치료제로 널리 이용됐다. 미라의 도굴이 성행된 이유의 하나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미라(Mummy)의 뜻을 라티프는 ‘瀝靑(역청)’ 또는 ‘유태인의 송진’으로 번역했다. 흔히 미라라고 할 때 그것은 발삼(Balsam 향유를 칠해 인공적으로 보존한 고대인의 육체를 뜻한다. 미라의 훌륭한 보존 상태를 발삼향유 덕택으로 돌리는 학자가 많았고 고대 이집트인의 秘藥(비약)을 밝히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최근 학자들은 이집트의 기후에 공로를 돌리기 시작, 건조한 기후와 달아오른 모래밭이 만드는 無菌(무균)상태야말로 기적의 이유란 학설이다.

1881년 여름 나일강 중류 왕가의 계곡에 솟아있는 절벽 복판에서 자연동굴(Tomb DB320, 최근에는 주로 TT320라고 칭한다)이 발굴됐다. 이집트 고고학자 에밀 브루그쉬는 이 동굴에서 40여 구의 미라를 확인했다. 그들은 모두 왕족이었다. 3000~4000년 전 나일강과 태양의 나라를 휘어잡았던 주인공들이 근엄한 공포에 찬 체념한 원통한 명상에 잠긴-가지각색의 최후 의 표정을 지어가며 되살아난 것이다. 세계를 놀라게 한 ‘미라 기숙사’의 발견은 도굴계의 거장 압드 엘-라슬(Abd el-Rasuls) 덕택이었다.

1875년 카이로박물관 考古學(고고학) 과장 가스통 마스페로(Gaston Maspéro) 교수는 카이로 골동街(가)에 나도는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 황금부장품이 무더기로 골동시장에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이 보물의 출처는 수수께끼의 인물이었다. 아라비아 상인이다, 아니 젊은 흑인이다, 천만에 이집트 추장이다- 이렇게 안개에 싸여있었다. 마스페로는 골동가에서 사들인 보물 중 황금장신구가 아무도 그 소재를 모르고 있던 이집트 21王朝(왕조)의 왕릉부장품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더구나 한 왕의 부장품이 아니라 여러 왕의 부장품이 섞여 있는 게 아닌가. 마스페로는 왕가의 공동묘지가 도굴됐다고 추리했다.
 
동굴 속의 大王

희대의 도굴단을 찾기 위해 카이로박물관 고고학 과장 마스페로는 사설탐정을 골동가게에 잠입시켰다. 이 탐정은 ‘프랑크’라 불리는 문제의 인물을 추적했다. 탐정은 중계인으로 가장, 프랑크로부터 자그마한 조각품을 샀다. 이 조각엔 銘文(명문)이 있었다. 마스페로의 조수이기도 했던 이 탐정은 명문을 판독, 제21王朝(왕조)의 부장품임을 밝혀냈다. 혐의를 굳힌 그는 프랑크를 知事(지사)에게 고발했다.

쿠르나(Qurnah) 지사는 마스페로에게 라슬을 심문하도록 허가했다. 신문 결과 프랑크의 본명은 압드 엘-라슬, 王家(왕가)의 계곡에서 대대로 이름을 떨쳐온 名門(명문)의 추장임이 확인됐다. 이 전통의 집안이 1875년 王家(왕가)의 계곡 데이르 엘-바하리(Deir el-Bahari) 분지에서 미라 기숙사를 찾아낸 것이다. 라술은 이 동굴의 위치를 목숨과 교환하려 했고 카이로박물관은 라술의 교섭에 응하여 그의 목숨을 희대의 보물과 바꾸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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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왕족의 미라 40여 구가 발견된 자연동굴무덤(Tomb DB320 또는 TT320) 통로. 절벽 중앙에 위치해있다.


1881년 7월5일 마스페로 교수의 대리 에밀 브루그쉬는 라술을 앞세우고 王家(왕가)의 계곡을 올라갔다. 이 위대한 발굴을 브루그쉬가 맡게 된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당시 마스페로는 프랑스에 체류 중이었다. 라술는 브루그쉬에게 놀라운 사실을 고백했다. 라술 일족이 6년 동안 이 동굴을 은행 당좌처럼 사용해 왔다는 것이다. 이 합동묘지에 꽉 들어찬 황금 부장품을 그들은 돈이 필요할 때마다 살금살금 꺼내 팔아왔던 것이다.

자연동굴은 절벽 중앙에 있었다. 라술과 브루그쉬는 줄을 타고 내려갔다. 이 동굴은 자연적인 것이었고 입구는 천연적으로 감춰져 있었다. 동굴은 L자. 지하로 약 11m 들어간 곳에서 동굴은 수평으로 꺾여있었다. 이들은 횃불을 들고 기어들었다. 수평동굴의 끝에 광장 같은 墓室(묘실)이 나타났다. 펄럭이는 불길, 영원 같은 침묵-. 브루그쉬는 시야를 압도해오는 장관에 침을 삼켰다. 墓室(묘실)은 엉망진창, 황금빛은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다. 미라를 담은 石棺(석관)들은 난리만난 가구처럼 내팽개쳐져 있었다. 뚜껑이 뜯겨 미라가 쏟아져 나온 참혹한 모습으로. 石棺(석관)을 세어보니 40개였다.

저 벽에 비스듬히 쓰러져있는 것은 아흐모세1세(Ahmose I, 기원전 1539~1514년). 그는 야만족 힉소스를 결정적으로 쫓아내 명성을 떨친 왕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 아멘호테프1세(Amenhotep I)의 미라. 36세기 전 인류역사상 광명을 던졌던 파라오들 속에서 브루그쉬는 넋을 빼앗기고 말았다. 브루그쉬 자신의 이름이 고고학사에 영원히 남게 되리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그는 냉정을 되찾는다.

그를 가장 깊게 감동시킨 것은 람세스2세(Ramesses II)와 투트모세3세(Thutmose III)의 미라. 치세가 각각 66년, 54년에 걸쳤던 두 대왕은 예속민의 땀과 피로 고대제국의 피크를 다졌던 인물이다. 람세스2세의 궁전에서 자란 한 인물을 생각해보라! 유태와 유럽민족의 입법자인 모세는 람세스2세와의 경쟁으로 뼈가 굵어졌었다. 아부심벨 신전은 누구를 위해 건축됐던가. 바로 여기 누워있는 람세스2세의 영혼을 위해서였다. 브루그쉬는 이 미라 기숙사의 수수께끼에 홀리기 시작했다. 어째서 이들은 여기 모였단 말인가. 미라는 살아서 걸어왔을까. 전후 수백 년에 걸친 이 왕족들은 어째서 이 보잘것없는 동굴에서 안식처를 구했을까.


(‘미라 기숙사’편 계속)

[ 2015-03-31, 16:4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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