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發掘 <18> 목 잘린 文明
最盛期의 “아즈텍” 말살, 스페인 傭兵이 인디언 학살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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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의 흡혈귀

정상에 도달한 찬란한 고대문명이 날벼락을 맞고 목이 달아난 이야기. 400년 뒤 그 문명을 발굴, 목을 붙여준 고고학자들의 얘기도 물론 포함된다.

1521년 지금의 멕시코에서 한 帝國(제국)이 학살됐다. 범인은 500명도 안 되는 스페인 깡패들.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가 이끄는 이 무뢰한 집단은 평화의 십자가를 앞세우고 蒙古(몽고)인종의 일파가 건설한 아즈텍 문명을 난도질했다. 서양 역사가들은 코르테스를 위대한 정복자로 부른다. 中世(중세)교회에선 그를 야만인의 구원자로 떠받들었다. 그러나 인종적 편견 없이 그를 평가할 때 “백색의 흡혈귀”란 별명 이상 붙여줄 게 없다. 그 일당 손으로 학살된 인디언 수는 1만, 십만 단위로 계산할 수 없다. 백만 단위로 올라가야 바른 통계가 나올 정도다. 코르테스는 한 민족을 말살했다는 점에서 히틀러의 선배였다.

그는 평화밖에 모르는 아즈테크 민족을 갖은 계략과 술수로 멸종시켰다. 정정당당히 전쟁을 통해 서양인을 살육한 칭기즈칸과는 비교도 안 될 죄악성이 여기에 있다. 더구나 그가 뭉개버린 문명은 정점에 막 도달, 활짝 피려하고 있었다. 이 문명의 풍성함은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에 비해 결코 손색이 없었다. 어떤 문명이 최성기에 올라서자마자 죽음을 당한 예가 세계사에 또 어디 있을까. 20세기의 위대한 文明史家(문명사가) 슈펭글러(Oswald Spengler)는 말한다. 이 문화는 강제로 말살된 유일한 예다. 이 문화는 스스로 시들지 않았다. 억압되거나 발전이 제지돼 사라진 것도 아니다. 찬란하게 꽃피는 도중에 파괴돼 버렸다. 대낮에 행인이 후려쳐 꺾어버린 해바라기였다. 휴머니즘의 시대 16세기에 이뤄진 이 문명파괴의 만행을 추적하면 서양인이 앞세우는 이른바 인도주의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 이해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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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난 코르테스.

1519년 11월8일. 코르테스는 그의 부대를 인공호수의 제방 위에 배치시켰다. 날이 부옇게 밝아왔다. 나팔소리를 울렸다. 산과 수면에 부딪쳐 돌아온 메아리가 안개를 뚫고 사라졌다. 안개가 걷히자 신전과 탑 궁정이 그들 앞에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군데군데 인공호수를 파고 水路(수로)로 연결, 그 위엔 돛배가 그림처럼 움직이는 도시. 당시 벌써 인구 30만 이상을 가진 멕시코市(시)였다. 역사상 처음으로 유럽인이 新大陸(신대륙)의 수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스페인용병들은 그들이 야만인 아닌 위대한 제왕의 권력 아래 들어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들은 제방 위로 난 탄탄대로를 행진, 광장으로 나갔다. 그때 황금빛 찬란한 행렬이 파도처럼 그들을 마중 나오는 게 보였다. 황금지팡이를 짚은 3명의 大臣(대신) 뒤에 황금 가마가 귀족들의 어깨 위에 태워져 나타났다. 가마 지붕엔 보석이 상감돼있었고 둘레엔 금은이 입혀져 있었다. 신하들은 맨발이었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행렬이 멈추자 40세쯤의 남자가 가마에서 내렸다. 얼굴색은 같은 종족보다 희고 머리카락은 부드러웠다. 황금 샌들을 끌고 보석과 진주를 자수한 망토를 펄럭이며 앞으로 걸어왔다. 종자들이 그 앞에 카펫을 폈다. 코르테스도 말에서 내려 마주 걸었다. 두 인간의 눈길이 마주치고 마음에도 없는 우정의 인사를 교환 했을 때 두 세계는 대결의 자세를 가다듬는다.

당시 코르테스의 병력은 스페인군 400명 약간의 인디오병 대포 14문, 말 16필이 전부. 아즈데크 帝國(제국)의 수도인 티노치티토란(지금의 멕시코市)엔 1만 이상의 병력이 있었고 가구 수는 실로 6만5000호에 달하였다. 아즈텍 민족은 금은보석은 알면서도 쇠를 발견하지 못한 종족이었다. 아직도 청동기 시대에 있었던 이들은 또 말[馬]을 몰랐다. 스페인 기병이 나타나자 그들은 人頭馬身(인두마신)의 합성 괴물로 생각하고 혼비백산. 요컨대 놀라운 知的(지적)인 수준을 가진 아즈텍 帝國은 부실하기 짝이 없는 안보태세를 갖고 있었다.

寶庫의 발견

코르테스는 지리상의 발견시대로 불리는 15~16세기가 만들어낸 풍운아였다. 그에게 불같은 정열과 강철의 신념을 준 神(신)이 한 조각의 양심도 부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었다.

1492년 콜럼버스가 新大陸(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유럽인들은 아메리카대륙으로 들개떼처럼 몰려갔다. 그들은 모험과 황금을 찾아 신천지를 습격했다. 야만인을 구원한다는 십자가의 상징을 앞세우고. 이 정복자들은 같은 궤도를 밟아간다. 발견 뒤엔 탐험, 탐험 뒤엔 원주민에 대한 무자비한 약탈과 학살이 잇따랐다. 新世界(신세계)엔 2중의 富(부)가 그들을 기다렸다. 통상의 원천으로서의 부와 약탈 대상으로서의 富(부).

1485년 스페인 매들린에서 난 코르테스는 살라만카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 변호사가 되려했다. 19세 때 그의 일생을 바꿔놓은 사건이 벌어진다. 애인 집에 몰래 들어가려고 담을 넘다가 담이 무너지는 바람에 사지가 부러지는 소동을 빚은 것이다. 병상에 누워 몇 달을 보내면서 그는 신대륙에서 야망을 펴볼 결심을 했다. 24세 때 그는 정복자  디에고 벨라스케스를 따라 쿠바 정복에 참가한다. 코르테스의 목표는 이때 이미 굳어져있었다. “나는 황금을 구해서왔다. 백성처럼 땅을 갈려고 온 것은 아니다”―그는 토지를 할당해주는 총독을 향해 소리쳤다.

쿠바에서 그는 금광을 경영, 致富(치부)했다. 이 엄청난 부를 바탕으로 1519년 2월19일 그는 탐험대를 조직, 전설의 나라를 향해 출발한다. 군함 11척, 선원 100명, 용병 508명, 말 16필, 대포 17문. 가장 큰 배라야 100t급. 그는 십자가를 쥐어흔들며 부하들에게 열변을 토한다. “우리의 사업은 정의의 사업이다. 십자가 밑에서 패배는 있을 수 없다. 神은 불신자와 싸우는 우리를 지켜주지 않고는 못 배길 거다.” 멕시코에 상륙하자 코르테스는 계산이 틀린 것을 알았다. 그는 야만인 부족과의 싸움을 기대했는데 한 제국을 정복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개인과의 전쟁을 상상한 코르테스는 고도의 문명을 가진 민족과 상대하고 있었다. 코르테스는 그러나 기적적인 승리를 되풀이하며 멕시코로 육박해갔다.

5만의 인디언 병력을 상대로 한 500명 남짓한 코르테스 일당은 살육과 술수의 양면작전으로 이 평화의 제국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부족끼리 반목시키고 학살로 공포분위기를 퍼뜨리며…. 코르테스는 기병을 항상 앞세웠다. 말을 처음 보는 아즈텍 민족은 인간과 말의 합성괴물로 생각하고 줄행랑 놓기에 바빴다. 아즈텍 지휘관이 말의 머리를 잘게 썰어서 전국에 보내 먹게 해도 이 미신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침내 몬테수마 2세는 스페인 불한당을 수도로 맞아들였다. 손님으로―. 1519년 11월10일, 입성 뒤 3일째 코르테스는 그들에게 할당된 궁전에 교회를 짓겠다고 왕에게 간청했다. 왕은 이 염치없는 요구를 승인.

그 사이 부하들은 궁전을 쏘다니며 관광기분을 내고 있었다. 한 입구엔 옻칠이 돼 있었다. 동서양을 통해 옻칠은 요사스러운 침입자를 물리친다는 주술적 뜻을 갖는다. 스페인 용병들은 코르테스 입회아래 이 문을 부쉈다. 그들은 뒤로 나자빠졌다. 온통 황금색 황금과 보석으로 메워진 寶庫(보고)였다. 비단과 가구 및 각종 장신구가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뒷날 스페인 용병들은 이 보물의 값을 계산했다. 당시 가격으로 16만2000金(금)펜(650만 달러). 현재까지 450년간의 인플레(수만 배에 이른다)를 계산하면 이 보물의 시가는 최저 수십억 달러일 것이다. 코르테스는 이 거대한 비밀창고를 닫도록 명령했다.

 그는 스페인 용병들의 입장을 오산하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 폭발할지 모를 화산 변두리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이 보물은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게 코르테스의 걱정이었다.


(계속)

[ 2015-04-16, 14:3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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