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發掘 <22> 우연한 발견
《유카탄 事物記》 발견… 유일한 社會相 기록資料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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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의 재발견, 이 업적의 또 다른 공로자는 눈먼 학자였다. 盲人(맹인)이 암호 속에 숨겨진 신비의 문명에 광명을 던졌던 것이다. 윌리엄 프레스코트(William H. Prescott). 1796년 5월4일 美國(미국) 뉴잉글랜드의 청교도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법률학을 전공, 변호사가 되려 했다. 1813년 대학생활 중 사고로 그는 오른쪽 눈을 잃었다. 그래도 그는 면학에 몰두. 하나 남은 눈도 감염으로 약해진 상태에서 무리하게 사용해 완전히 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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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문명에 史觀을 부여한 학자, 윌리엄 프레스코트


그는 이것을 계기로 전공을 바꿨다. 현실적인 학문인 법률학에서 그는 철학과 이성과 드라마의 학문인 역사학으로 방향을 돌렸다. 순전히 직관과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그는 盲人用(맹인용) 문자로 《멕시코의 정복사(History of the Conquest of Mexico)》를 썼다. 그는 이 책에서 마야 문명과 아즈텍 문명의 기본 성격을 분명히 했다. 두 문명의 관련성, 神殿(신전)건축의 정신史적 배경, 마야 문명의 기원과 번득임으로 통찰했다. 그는 마야 문명의 뼈대를 맞춰준 학자였다. 말하자면 史觀(사관)을 부여한 사람이었다.

스티븐슨이 마야의 유적을 기록하고 프레스코트는 이것을 정리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죽은 역사에 생명을 불어넣어 산 역사로 만드는 것이었다. 1863년 정말 우연하게 이 생명의 자료가 발견됐다. 발견된 곳은 마드리드 왕립도서관 공문서 사료보관실. 한 열람자가 누렇게 색이 변한 책을 빼보고 있었다. 스케치가 많이 수록된 古書(고서)였다. 한 번도 열람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제목은 《유카탄 事物記(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 이 열람자는 10년 동안 멕시코 주재 프랑스 공사관에 근무했던 목사였다. 그는 마야 인디언촌에서 선교활동에 종사했었다. 이 목사―샤를르 드 부르부르(Charles Étienne Brasseur de Bourbourg, 1814~1874)가 《유카탄 事物記》를 관심 있게 조사하고 있던 이 순간 마야 문명은 부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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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르 드 부르부르는 마야 역사에 생명을 불어넣는 자료를 발견해 냈다. 


이 고서의 저자는 디에고 데 란다(Diego de Landa). 1549년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부임한 천주교 司祭(사제)였다. 코르테스는 멕시코를 정복하고 토착 종교를 말살시키려 했다. 마야 종교의 神官(신관), 신도들은 개종을 강요받았다. 거부한 자는 불태워 죽였다. 신도들은 광산 노동자로 혹사되거나 학살됐다. 온두라스, 쿠바, 자메이카의 원주민은 16세기 중 멸종된다. 노동자가 부족하자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이 끌려왔다. 란다는 이런 시대를 상징하는 광신적인 사제였다.

당시 유카탄에 들어온 성직자들은 “敵(적)을 알아야 한다”라는 孫子(손자)병법대로 마야 종교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야 神官(신관)이 가진 그림책에 주목했다. 그들의 우주관, 역법, 전설, 천문학을 집대성한 聖典(성전)이었다. 란다는 현지에 부임하자마자 선배들이 수집한 이 귀중한 자료꾸러미를 몽땅 불태워 버렸다. 그는 유카탄 반도에서 종교재판에 열중했다. 그러면서 차츰 마야 문명의 성격을 알아둘 필요가 있음을 절감케 된다. 그는 마야 神官(신관)의 아들을 조수로 채용하고 종교, 언어, 전설, 풍습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처음의 실수를 후회하면서. 1566년 그는 이 자료를 모아 《유카탄 事物記(사물기)》를 쓰는 데 착수했다. 마야 문명의 파괴자가 남긴 책이 300년 뒤 이 문명의 신비를 푸는 열쇠가 되는 사연이 여기서 발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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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문명의 파괴자' 디에고 데 란다(左)가 기록한 《유카탄 事物記》(右)


16세기 유럽인의 무자비한 탄압을 받고 마야 인종은 거의 멸종됐지만 그들은 기묘한 형태로 복수했음을 덧붙여 둔다. 그들의 복수는 매독이었다. 이 병은 아메리카 대륙의 풍토병. 스페인 정복자들이 인디안 여자를 겁탈하여 얻은 매독은 그들을 따라 유럽으로 퍼졌다. 당시 이태리엔 조직적인 매춘 제도가 움트고 있었다. 매독은 이태리 전쟁 때 이곳에 들른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태리군들에게 들불처럼 번졌다. 매독은 다시 유럽 상인들을 따라 16세기 중반기에 벌써 日本(일본)에 나타났다. 세계에 퍼져 수십만의 생명을 앗아간 이 질병의 책임은 당연히 콜럼버스, 코르테스, 파자로 등의 이른바 지리상의 발견자들에게 돌아간다.  


(‘마야의 秘密’편 계속)

[ 2015-05-04, 17:0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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