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좋은 인도인들이 공부도 열심히 한다!
印度 이야기 (13) / 日常은 느슨하지만, 대학 교육만큼은 치열하다

鄭仁采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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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남자’

까마득한 밤이 되었고, 귀퉁이가 일그러진 달이 그 속에 걸려 있었다. 드럼통을 화덕삼아 갓 구워낸 따끈한 짜파티(Chapati)와 난(Naan·얇은 인도 전통의 빵) 그리고 커리로 저녁을 마친 나는 기숙사 건물 밖으로 나서 주변을 거닐었다.

내가 머물던 기숙사 방은 5인 1실로 거실에는 4개의 싱글 침대가 간격을 두고 나란히 놓여 있었고, 따로 방 하나가 더 붙어 있었다. 천장에 걸린 선풍기는 실내의 공기를 휘저으며 날개를 파닥거렸다. 방의 공간은 넉넉했지만 창문을 열어 환기하기가 어려웠다. 밤이되면 인도 특유의 웃풍이 벽으로 스며들어 쌀쌀했고, 모기 때문이라도 침낭 속에 기어들어가 잠을 청해야 했다. 실내의 공기는 고여있었고 때때로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델리 대학교에서의 연수를 위해 이곳에 머무를 기간은 보름 남짓이었지만, 인도는 가만히 있기 보다는 자꾸만 움직이는 편이 더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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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대학교 全景



델리에 도착해 곧바로 북쪽 모델 타운(Model Town) 근교에 위치한 기숙사(Teacher’s Transit Hostel)에 입주했다. 기숙사는 담으로 둘러쌓여 5층 높이의 건물들이 여러 채 군집(群集)하고 있었는데, 꼭 한국의 저층(底層) 아파트 단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인도에 있다보면 밤에는 좀처럼 바깥으로 나서길 꺼리게 되지만 담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아늑한 느낌이 들어 산책할 기분이 났다.

단지를 나서면 도로 맞은편에 現地 주민들이 자주 오가는 작은 바자르(시장)가 들어서 있었다. 전화를 하거나 군것질거리가 필요할 때는 가끔 그곳을 찾았다. 인도는 전화 방식이 틀려 해외 통화를 하려면 따로 전화방을 찾아야 했다. 입이 심심해지면 연수생들끼리 게임이나 내기를 해서 바자르에 갈 당번을 정했고, 바자르에서 사온 과자와 맥주캔을 앞에 두고 함께 모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럴 때면 주말에는 어디를 가볼지 얘기하거나, 연수가 끝나면 이어질 각자의 여행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연수생들은 총 서른 명에 가까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부분 동기, 선후배 사이라 마치 MT를 온 것 같았지만 대성리도 아니고 인도에서 모인다는 것은 무척 특별한 일이었다.

매우 신나는 일이기는 했지만 조금 다른 생각도 들었다. 애써 먼 곳까지 왔는데 주변은 아직 한국이나 다름없으니 슬슬 조바심이 느껴졌다. 나는 익숙함으로부터 한걸음 멀어지고 싶었다. 이미 두 번째 여행이기에 어느정도 자신감도 있었다. 어서 길을 나서 몸으로 부딪혀 보고 싶은 곳이 인도였고, 그것이 새로운 경험으로 인도해 줄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당시 기숙사에서는 함께 어디로 향할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었다. 그런데 일행(一行)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이런 내 마음은 누군가에게 섭섭한 일일 수도 있었다. ‘함께’라는 것은 좋지만 나의 길을 나서는 것은 의미있다. 마치 등반을 앞두고 베이스 캠프에 모인 탐험가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맞는다면 함께 가고, 아니면 따로 가는 것이다. 함께 떠나 갈림길에서 헤어지고, 헤어진 사람과 다시 再會(재회)하기도 한다. 선택지가 많은 인도에서 모두 한 방향으로 여행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묵묵히 갈 곳을 가야겠다는 결심에 이르렀다.

기숙사 건물 사이를 배회하는데 무언가 펄럭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기숙사 뒷마당의 작은 정원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건물 3층 발코니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연수 과정을 담당하던 교수였다. 그의 모습이 빨래감이 널린 틈새를 타고 나타났다. 이곳에 그가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처음으로 알았다. 그간 꽤나 소란스러웠을텐데 말이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반갑게 말을 걸었다. ‘헤이 아드미, 거기서 뭐해?’ 고요함이 자리잡은 밤 속에 그의 목소리는 유난히 또렷하게 들려왔다. ‘아드미(Aadmi)’는 나의 인도式 이름이었는데 힌디어로 ‘남자(man, male)’를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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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대학교 기숙사 인근 풍경



연수를 시작하며 우리는 각자 힌디어 이름을 지어야 했다. 대개 ‘람’, ‘꾸마르’, ‘순다리’ 등등 그럴싸한 이름을 정했는데 독창성의 함정에 빠진 나는 ‘아드미’란 별난 이름으로 정하고 말았다. 처음 출석을 부르는 인도인 교수들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다. 어릴적부터 이름에 대한 오기(誤記)나 오독(誤讀)이 많아 ‘인체(人體)의 신비’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는데 생각을 더듬던 차에 ‘남자 사람’을 뜻하는 ‘아드미’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이름 속에 드러나는 신분적 특성을 잘 이해했더라면 좀 더 고상한 이름을 지을 걸 그랬다. 아무튼 잘 기억될만한 이름이었다.

*사람이나 인간(Human being)이란 의미를 표현하고 싶었다면 마누샤(Manusya)로 정했어야 했다.

‘아드미, 자네 거기서 뭐하나?’
그때까지만 해도 힌디어 표현이 궁했던 나는 교수의 질문에 짧게 대답했다.
‘산책을 하고 있습니다’
‘밤에 혼자 왜?’
교수는 매우 온화한 미소와 함께 하늘을 가르켰다. 갈수록 대답이 궁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나는 기억 속에서 그날 배운 단어와 문법을 급히 소환했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수가 물었다.
‘오. 그런가? 무슨 생각?’
상대는 길거리에 오가다 마주치는 인도인이 아니었다. 적절한 존칭을 사용해야 했고, 격식을 갖춘 대화에서 성(性), 수(數), 격(格)에 따라 현란하게 변하는 단어의 어미(語尾)들이 어긋나지 않기 위해서는 침착해져야 했다. 남자 교수에게 여성형 語尾를 붙일 순 없지 않은가? 나는 조금 뜸을 들이며 답했다.
‘아쁘네 압 께 바레 메……(나 자신에 대해서…)’
그는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떠나 그럴싸한 대답이 아닐 수 없었다. 가만보면 인도는 사고(思考)의 정원(庭園)이다.


느슨한 일상과 느슨하지 않은 교육

델리에 도착하자마자 이틀 째부터 연수가 시작되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까지는 강의실과 기숙사를 오가며 시간을 보냈는데 오전 아홉시 기숙사 1층의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면, 곧바로 버스를 타고 학교로 이동해 오전 강의가 진행되었다
 
점심 시간이 되면 학교에서 마련한 *사모사와 같은 간단한 간식을 먹었고, 지루할만큼 긴 짜이 타임이 지나면 오후 수업이 再開되어 해질녘에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는 것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갔다. 하루의 일과가 단조로웠고, 이런 날들이 반복되다보니 권태롭고 나른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인도에서의 일상은 스펙타클한 여행과는 거리가 멀었고, 느슨하게 느껴졌다.

*밀가루 반죽에 으깬 감자 등 야채와 각종 소스를 넣어 삼각 김밥 모양으로 튀겨낸 간식거리

나중의 일이지만 인도에서는 직원들이 수시로 지각하거나 결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덮어놓고 게으름을 탓하기 전에 그들의 문화와 환경적인 문제를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먼저 살인적인 날씨다. 걸핏하면 40도를 넘고 때로는 50도를 육박하는데 한낮의 거리를 보면 마치 2배속 슬로(slow) 비디오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겁없이 대낮의 거리를 활보했던 나는 순간 아찔하니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경험했다. 되도록 실내에 머무르며 움직임을 자제하려는 것이 당연하다.

교통의 문제도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은 아직 부족하고 중간중간 릭샤와 같은 운송수단으로 환승하는데 출퇴근 인파도 많을 뿐더러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한다. 자가용이 있어도 도로는 좁고 정체가 심하다. 출퇴근 시간만 도합 네 시간 이상이 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고보면 델리의 경우 화물차의 통행 시간도 통제되는데 통행량이 적은 밤 시간만으로 제한되고, 때문에 물류 이동이 정체(停滯)되는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내친김에 인도 직장인들의 일상을 더 살펴보면 오전 5시에는 일어나야 9시 출근이 가능하고 6시에 퇴근해도 8~9시는 되어야 귀가한다. 밤 10시가 되어야 온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게 되는데 음식이 菜食(채식)이라지만 대부분 기름에 튀긴 것이다. 인도 사람들의 체형이 나이가 들수록 비대해지는 것이 이해가 갔다.

느슨한 일상과 달리 연수 과정은 빠듯했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온몸을 활용해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인도인 교수들의 교수법은 매우 인상적이었고,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관심을 끈 것은 그들의 빼어난 강의만은 아니었다. 더욱 흥미를 자극했던 것은 젊은 女강사가 담당했던 수업이었다.

사실 그녀는 경력이 일천한 듯 번갈아 대화만 나눌 뿐 딱히 강의라고 할만한 내용이 없었다. 하지만 외모도 권력이라고 꾸민 것 없이 수수하면서도 또렷한 이목구비가 대번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말로만 듣던 인도 美人이었던 것이다. 일행 중 누군가는 거침없이 호감을 표하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장난스러운 호감일 뿐이었다. 문화적으로 외국인이 인도 여성을 동경하는 일은 부질없다. 同族(동족) 간의 교제도 종교와 신분 등 ‘조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집안의 반대에 부딪히는 곳이 인도다. 엉뚱한데 정신이 팔릴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강의에 집중할 일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일상이 느슨한 인도였지만 강의 시간에서 느슨함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인도 대학의 과장과 實在

인도의 대학은 어떨까? 문맹률이 높은 인도라고 하지만 지식의 빈부 격차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인도 출신의 세계적인 석학들과 글로벌 기업에 포진한 다수의 인도인들을 보면 단지 인구가 많으니 인재도 많다는 논리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가령 인도의 MIT인 IITs(Indian Institutes of Technology)는 한 곳이 아니라 델리, 뭄바이, 첸나이 등 전국적으로 16개 곳에 이르는데 그 수준이 매우 높다. 그밖에도 유수의 대학들이 상당한 수준과 역량을 갖추고 있음은 물론이다. 학생들이 수준은 높고 서로간의 경쟁도 치열한데 암기력이 뛰어난 학생들은 책 한권을 통째로 암송할 정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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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자마마스지드의 풍경



물론 실제 평범한 인도인 직원들을 겪어보면, 암기력이나 암산에 대한 능력이 다소 과장된 면도 있었다. 그만큼 비범한 人才(인재)들이 있다는 의미 정도로 풀이된다. 그런 비범한 人才들은 상당수 글로벌 기업으로 스카웃된다. 인도의 값싸고 뛰어난 人力을 이야기하는데, 솔직히 뛰어난 인력은 몸값이 비싸고 구인(求人)도 쉽지는 않다.

수업 환경은 다소 열악했다. 선풍기만으로 인도의 더위를 견뎌야 하는데 땀이 비오듯 흐르고 시큼한 공기가 강의실 안을 가득 채웠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풍운의 꿈을 꾸고 인도로 유학을 떠났던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유학생들의 경우 현지의 人才들과 겨루는 학업 자체도 고되지만 무엇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장기간 페이스를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한다. 건강 등 부득이한 사유로 중도 포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석사를 거쳐 박사 학위까지 빨라야 8년이 걸리고, 이는 실력과 태도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과정을 견뎌낸 사람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의지를 가지고 인도에 모든 것을 던진 사람들이다. (계속)

[ 2015-05-22, 16:5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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