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發掘 <24> 마야 폐허의 石碑들
王의 一代記 적은 역사책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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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碑의 해독

1960년 한 美國(미국)여자가 마야 古帝國(고제국)의 石碑(석비) 앞에서 생각에 잠겨있었다. 눈은 石碑(석비)에 새겨진 괴상한 부호와 인물像(상)을 쏘아보고 있었지만 생각은 실마리를 쫓아 방황하는 중이었다. 그때 靈感(영감)이 그녀를 덮쳤다.
‘石碑(석비)는 왕의 일대기를 적은 역사책이다.’
이 영감을 살려 카네기연구소의 고고학자 타티아나 프로스코리아코프(Tatiana Proskouriakoff) 여사는 마야 연구의 전환점을 마련한다.

과테말라 우스마신타강 상류 네그라스엔 마야 古帝國 시대의 石碑群(석비군)이 있다. 35개의 기둥 꼴 돌비석은 한결 같이 부호와 괴물 같은 人物像(인물상)으로 뒤덮였다. 많은 학자들은 부호를 종교적 심벌로 보고 石碑는 그들의 우주관을 표현한 것이라고만 막연하게 짐작해왔었다. 石碑(석비)엔 건립연대가 박혀 있었다. 타티아나는 35개의 石碑(석비)를 연대순으로 7개 그룹으로 갈랐다. 각 그룹의 石碑들은 5년 간격으로 건립된 것임이 밝혀졌고 石碑(석비)마다 주제가 달라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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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어진 개구리(上)와 치통(下) 글자. 각각 왕의 탄생과 즉위를 의미한다.


타티아나는 각 그룹에서 첫째 또는 둘째로 빨리 세워진 石碑(석비)엔 같은 심벌이 새겨진데 주의했다. 이 심벌은 그 인상에서 ‘齒痛(치통) 문자’로 불린다. 타티아나는 ‘개구리 글자’란 별명을 얻은 부호도 찾아냈다. 개구리 글자에 붙은 연대는 그 그룹에서 치통 문자에 붙은 연대보다 모두 오랜 것이었다. 그러나 개구리 문자는 그 石碑(석비)를 세울 때 새긴 게 아니었다. 치통 문자가 그 그룹에서 새겨진 뒤에 비로소 개구리 문자는 이미 세워진 石碑(석비)에 附記(부기)됐다는 공통현상이 확인됐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첫째 두 문자는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둘째 개구리가 상징하는 사건은 치통 문자가 상징하는 사건이 일어난 뒤라야 중요한 뜻(石碑에 기록할 만한)을 갖는다. 타티아나는 고차 방정식을 풀 때처럼 또 다른 실마리를 찾아보았다. 7개 石碑그룹을 연대순으로 배열하고 관찰한 결과 한 그룹의 개구리 문자의 연대와 다음 그룹의 치통문자 연대 사이엔 60, 64, 56년의 연대 폭이 있음이 밝혀졌다.

50~60년의 간격을 둔 두 문자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타티아나는 개구리 문자는 왕의 탄생 또는 탄생 기념일, 치통 문자는 즉위를 상징하는 神聖(신성)문자라고 결론지었다. 치통 문자가 나타난 뒤에야 개구리가 새겨진 것은 왕이 즉위해야 그의 탄생이 기념할 만한 중요성을 갖게 됨을 뜻한다. 50~60년의 연대 폭은 한 왕의 탄생과 다음 왕의 즉위(즉 先王의 죽음) 사이의 세월을 가리키는 것으로 한 인간의 일생과 비슷한 길이. 이렇게 해석한 타티아나는 각각의 石碑그룹은 각각의 왕을 기록한 연대기라고 확신했다.

그녀는 이 가설을 적용해보았다. 제2그룹의 제1石碑(석비)엔 치통 문자가 새겨져있고 중앙에 관을 쓴 남자가 앉아있으며 그 아래 사다리가 걸려있다. 마야 전설에 ‘왕은 즉위할 때 사다리를 타고 높은 곳에 마련한 집에 들어가는 의식을 치른다’고 했다. 제1석비는 이 왕의 즉위를 표현했다. 제2석비엔 탄생을 상징하는 개구리가 박혀있었다. 이 문자에 붙은 탄생연대로 미뤄 이 왕은 13세 때 즉위했음이 밝혀졌다.

제2비석엔 망토를 늘어뜨린 인물이 왕의 옆에 서 있다. 이 인물엔 빗을 상징하는 부호(여성)가 딸려 있었다. 타티아나는 이 인물을 왕의 어머니 즉 섭정大妃(대비)로 단정했다. 당시 이 왕은 어머니에게 정사를 맡기고 있었던 모양. 제3석비엔 21세로 자란 왕이 조각됐다. 방패를 들었는데 옆엔 여자조각. 이 여자는 그의 妃(비)다. 제4석비엔 포로를 밟고 선 36세의 왕이 새겨졌다. 왕자의 품격이 역력. 제5석비는 이 그룹의 마지막. 왕의 즉위로부터 42년 뒤 건립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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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연구에 전환점을 마련한 타티아나 프로스코리아코프.


5년 뒤 다음 그룹에서 치통문자(즉위)가 나타나니 이 왕은 치세 47년, 壽(수) 60세를 다하고 죽은 셈이 된다. 두 부호의 해독으로 타티아나는 마야 폐허에 흩어진 수천 개의 石碑(석비)들을 王朝(왕조)실록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마야의 秘密’ 편 마침)

[ 2015-06-01, 16:5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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