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旅程(여정) 속에서 내 意志를 시험해보다!
印度이야기 (16) / 바가지, 최악의 숙소, 잘못 탄 열차… 순탄치 않은 여행 중에 찾은 '自我'

鄭仁采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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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여행’의 어머니

다시 여행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 푸쉬카르에 당도한 일행(一行)은 화이트 하우스(White House)라는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백악관만큼 화려한 숙소는 절대(?) 아니었다. 자유롭게 배낭을 짊어지고 떠나는 여행이지만, 단체로 움직이다보니 되려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누가 나서 따로 행동하자고 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 서로 눈치를 보았다.

푸쉬카르에 도착하니 의외로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듯 했다. 생각보다 빨리 숙소를 찾았고, 숙소에서 문의하니 낙타 사파리 예약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사파리를 떠나기까지 아직 시간이 있었으므로 그 사이 간단히 요기를 하고 푸쉬카르 호의 가트(Ghat)로 향했다.

가트의 사제(司祭)들이 이끄는 대로 무작정 푸자(Puja) 꽃접시를 받아들고, 소원을 이뤄줄 실[絲]팔찌를 손목에 찬 뒤 푸자를 행하기 위해 가트의 계단을 내려갔다. 푸자란, 힌두교 숭배의식으로 불교로 말하자면, 일종의 공양(供養)을 의미한다. 아침에 神에게 예배를 드리는 것부터 시작해 밤까지 이어지는 꽤나 긴 의식이다. 푸자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해보는 게 더 의미있는 여행일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꼭 마음을 놓으면 일이 생긴다. 푸자가 끝나자 예상한대로 수도승들은 돈을 요구했다. 문제는 한꺼번에 세 명씩이나 달라붙은 것인데, 먼저 돈을 요구하지 않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푸자의 全 과정을 체험하게 한 뒤 마지막에 폭리(暴利)를 취하려 드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술(商術)은 인도에서 이제껏 겪어보지 못했던 한 차원 높은 수법이라 적지않게 당황했다.

‘돈으로 사서 종교를 체험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나는 이미 가트에 서서 앞날의 여정(旅程)이 무사히 끝나길 기원했던 터였다. 대강 무마했지만 푸자라는 것이 언제나 마음 편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이보다 큰 문제는 낙타 사파리를 떠나기 위해 호텔로 돌아온 뒤에 벌어졌다. 시간에 맞춰 낙타를 끌고 오기로 한 숙소의 주인이 말을 바꿔버린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기다리라고 할 뿐 낙타는 나타나지 않았다. 뒤늦게 모든 일행들이 사파리를 떠나기에는 낙타가 부족하다는 핑계를 댔다. 경우에 따라서는 내일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은 자신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루 더 기다리며 숙박비를 추가로 지불하란 의미였다.

우리는 낙타 사파리를 체험하기 위해 이곳에 들렀고, 푸쉬카르에서는 기껏해야 하루 정도 머무를 예정이었다. 문제는 심각해졌다. 게스트 하우스 주인에게 말이 왜 바뀌느냐고 따지는 사이 일행들은 지쳐갔고, 서로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나는 엄포를 놓기 위해 일부러 더 크게 언성을 높여 주인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는 戰士의 후예(?)다웠다. 내가 뭐라고 해도 거드름을 피울 뿐 미안해할 줄도 몰랐다. 분위기는 이내 험악해졌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온 여행자들이 쉽사리 자리를 박차고 떠날 리가 만무하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대로 당할 수는 없고 최후의 수단은 하나였다. 미련없이 이곳을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다른 곳을 알아보거나 푸쉬카르를 떠나는 것 말고 그 이상의 방법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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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쉬카르




타고난 ‘싸움의 구경꾼’들

푸쉬카르까지 동행한 동지들의 이별은 조금 일찍 찾아왔다. 사막의 모래바람이 불어왔고, 우리는 사막의 모래알처럼 급속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그대로 숙소에 남고 싶어했고, 누군가는 대안(代案)을 찾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일찌감치 푸쉬카르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제 인원이 줄었으니 한결 자유로울 것 같았지만 끝맛이 영 개운치 않았다. 라자스탄이, 여행자들의 감각을 자극하는 곳이기는 했지만 내게는 이미 다른 목표가 있었다.

푸쉬카르는 북서부에서 南으로 방향 전환을 하기 위한 경유지였다. 특별히 미련을 가질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짧게나마 사막과 낙타는 경험해보아야 했다. 나는 화이트 하우스에서 짐을 챙겨 나와 숙박은 포기한 채 다른 낙타를 찾았다.

낙타의 등에 올라타 사막으로 향하는 사이, 낙타를 끌던 인부가 왜 백악관의 주인장과 언성을 높였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인도인들이 싸움꾼은 아니지만 타고난 싸움의 구경꾼이다. 소란스러운 일에 불필요할 정도로 오지랖이 넓은 것이다. 좁은 동네에서 시비가 붙었으니 그 사이 온 동네에 소문이 났던 모양이었다. 이미 다 지난 이야기를 또 다시 꺼내니 그 오지랖도 참으로 집요했다. 알고보니 그는 게스트 하우스 주인과 친척 관계라고 했다. 분명 게스트 하우스 주인은, 끌어올 낙타가 없다고 했었다. 그럼 이 낙타들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어쩌면 손바닥만한 사막의 도시에 일어난 담합(談合)이었을지도 모른다. 많은 여행자들이 한꺼번에 들어 크게 한 건 잡았다고 생각했겠지만 대뜸 상당수의 사람들이 떠나버리니 백악관의 주인도 황망스러웠을 것이다. 문득 라지푸트 족의 무기(武器)인 *자마다르를 생각하면 조금 찜찜하기는 했는데 몇 마디 이야기를 더 나누었을 뿐 낙타몰이는 자신의 친척과 싸웠던 적(敵)에게 친절하게 행동했다. 짧지만 유쾌한 시간이었고, 내게 푸쉬카르는 여기까지였다. 사실 푸쉬카르는 거대한 사막의 초입(初入)일 뿐이었다. 사막의 밤을 경험해 보지 않고서 어찌 만족할 수 있겠는가? 못내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경험이라면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바로 사상 최악의 지독한 여정이 내 앞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푸쉬카르에서는 떠난 나는 엉뚱한 곳에서 길고긴 밤을 지새워야 했다.

*단검(短劍)의 일종으로 알렉산더의 인도 원정 시 전파되었다고 한다.

南行 열차에 오르기 위해 버스를 타고 아지메르로 나왔지만 기차 시간이 애매했다. 결국 그날 하루를 아지메르역 주변의 허름한 숙소에서 보내게 되었다. 마치 옛날 서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곳이었는데 1층에는 왁자지껄한 현지인들의 식당이 있고 계단을 올라가 2층에 방이 있었다. 어느새 어둠이 깊어와 머물 만한 곳을 찾고 고를 여유가 없었다. 많은 곳을 가보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껏 겪어본 곳 중 최악의 숙소였다. 욕실에서 넘쳐난 물이 침실 바닥까지 차올랐고, 침낭을 깔고 누웠음에도 침대는 눅눅했다.

그래도 예정보다 빨리 남쪽으로 향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고, 지친 하루였던 탓에 곧 잠에 들 수 있었다. 다음 날부터 아메다바드, 뭄바이를 거쳐 곧장 고아라는 곳으로 내려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지도 밖으로 행군(行軍)하며 꼬이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잘못 끼워진 단추

이른 아침부터 아지메르역으로 나왔지만 바라던 침대칸은 구할 수가 없었다. 결국 두 시간 뒤 출발하는 2등석의 보통 좌석표를 구해 아메다바드까지 11시간이 걸리는 열차에 올라탔다. 불편한 여행이었지만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아메다바드에서 다시 뭄바이 센트럴역까지 가는 열차를 탔는데 그만 엉뚱한 기차에 오르고 말았다.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헷갈렸다. 역에 도착하는 기차들이 하나같이 연착을 거듭하는 사이, 시간표는 이미 뒤죽박죽이 되어 감이 잡히지 않았고, 깊은 밤중에 물어볼 사람도 마땅치 않았다. 탐독(耽讀)해두었던 타임 테이블(Time Table)도 무용지물이었다.

연이어 역을 지나치는 완행열차 중에 어떤 것을 타야할지 난감하던 차에 마침 정차(停車)했던 기차가 출발을 알리자 급히 기차에 올라탔던 것이다. 게다가 좌석표가 여의치 않아 3등석 티켓을 구했는데 급히 올라탄 칸은 1등석이었다. 인도의 기차는 다른 등급의 차량 간에는 이동이 어렵다. 좌석은 텅 비었지만 앉을 엄두는 내지 못하고 좌불안석이었다.

나 말고도 독일인 부부 한 쌍이 열차에 올라 있었다. 우리는 피차 같은 처지였는데 그들도 뭄바이로 향하고 있었다. 피부색과 얼굴 생김새가 다른 서양인과 동지애를 느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우리는 표정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곧 검표원이 들어왔다. 그는 단호했다. 거금(巨金)을 들여 현장 티켓을 구입하거나, 다음 정차역에서 내려 바로 옮겨타라는 것이었다.

더욱 큰 문제가 있었다. 검표원에게 행선지를 확인해보니 이 열차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입에서는 절로 신음소리가 새어져 나왔다. 덩치가 산만 한 독일인들도 얼굴이 찌푸리며 좌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돌이켜보니 우리는 아베다바드역에서 서로의 행선지를 물었는데 내가 이 열차에 오르니 그들도 따라 탔던 것 같다. 사실 나 역시 그들이 타니 안심을 했었다.

흔히 여행할 때는 사람들이 가는 곳을 따라가면 된다지만 인도의 경우는 예외다. 우린 결국 어딘지 모를 역에서 무조건 내려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어디서 정차할지 모르니 출구 앞에 쪼그리고 앉아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기다렸다. ‘커플이냐’고 독일인 부부에게 물으니 결혼했고 신혼여행이라고 했다. 아이고 맙소사!


새로운 모험은 실패를 담보한다
 
우리는 정체 모를 역에서 내렸고, 또 다시 무한정 언제올 지 모를 다음 기차를 기다렸다. 이름도 기억하기 어려운 아주 조그만 역이었다. 까마득한 밤이라 주변이 너무 어두웠고, 안내판도 없어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아메다바드와 뭄바이 사이 어딘가라는 것만이 우리가 아는 전부였다.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잠을 쫓아야 했다. 이 마당에 잠이 쏟아진다니 우스웠다. 언제 기차가 올지도 모르지만 오더라도 먼저 뭄바이行인지 확인해야 했다. 독일인 신혼부부는 포기한 듯 어딘가로 나섰지만 이내 별 다른 수가 없는 듯 플랫폼으로 되돌아왔다. 아마 숙소를 찾아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주변은 황량했고, 너무 깊은 밤이었다. 그들의 하얀 얼굴은 더욱 하얗게 질려 있었다. 특히 신부의 표정은 족히 결혼 10년 차는 되어 보였다. 자고로 신혼여행은 절대 배낭 여행을 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마침내 어디서 온지 모를, 하지만 뭄바이가 행선지인 것만은 분명한 열차가 역으로 들어왔다. 나는 이미 시간 관념이 없었다. 3등칸에는 이미 빈자리가 없었고, 승객들은 눈을 감고 잠들어 있었다. 우린 뭄바이까지 거의 서 있다시피 했다.

뭄바이에 다다르니 새벽 5시였다. 푸쉬카르에서 뭄바이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지난 하루 간의 일들이 마치 오랜 시간의 기억처럼 아득해 보였다. 뭄바이 센트럴 역에 내리며 나는 독일인 부부와 눈이 마주쳤다. 다행히도 그들의 사랑은 여전히 굳건했다. 미소를 되찾은 우리는 모진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끼리만 나눌 수 있는 눈 인사를 서로에게 건네고 헤어졌다.

라자스탄, 구자라트에 이어 마하라슈트라州를 관통하며 겪었던 모험은 이제껏 가장 고달픈 시간이었고, 또 다른 차원의 인도 여행이었다. 결국 목적지에 다다르기는 했지만 그 과정은  매 순간이 실패의 연속이었다. 왜 그때는 그런 것을 주의하지 못했을까란 생각도 든다. 좀 더 여유를 가지고 현명하게 판단했다면, 그런 고생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순탄한 여행길에서 이탈해 이제껏 가보지 못한 곳을 헤매며 새로운 모험을 했다는 것은 그 어떤 피로감도 날려버릴만큼 짜릿했다. 그 무모함 덕분에 남은 여행에서 충분한 여유와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 최종 목적지인 깐냐꾸마리가 가시권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는 지난 여행에서 일정 상 발길을 돌려야 했던 아쉬움을 통쾌하게 되갚은 순간이었다. 여행이 계획대로 된다면 좋지만 혹시 도중에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길은 어차피 어디로든 이어지기 마련이고, 새로운 모험은 실패를 담보로 한다.   
 

기사본문 이미지
푸쉬카르 사막에서 바라본 풍경



내 의지를 시험했던 旅程

라지푸트는 내게 호의적이지 않았고, 그들을 떠나 남부로 내려오는 일은 더욱 순탄치 않았다. 인도 여행을 이야기할 때 가장 극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旅程이 가장 인상깊은 기억으로 남은 것이다. 하지만 고통을 겪는 순간에는 힘들 뿐이다. 무거워진 발걸음을 멈추지 않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다. 아메다바드와 뭄바이 사이, 어딘지 모를 곳에 발이 묶인 사이 힘든 마음을 추스르며 이런 생각을 했다. 과거 누군가도 이렇게 발이 묶여 인도 한복판을 헤맸을 것이고, 그들은 이보다 훨씬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했을 것이라고.

인도를 찾은 역사적 인물들은 모두 뚜렷한 목적의식과 강렬한 의지를 지녔던 것만은 사실이다. 모두가 환영받을만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또 한 사람의 여행자로서 인도를 향한 그들의 갈망만큼은 마음에 와닿았다. 그러자 두려움과 의구심이 잦아들고 다시금 힘을 낼 수 있었다. 대단한 업적을 남길 여행은 아니지만 최소한 내 의지를 시험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결국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는 길이었다. 뭄바이에서 하루동안 휴식을 취하고, 고아를 향해 다시 깐냐꾸마리 특급에 몸을 실었다. (계속)

 

[ 2015-06-08, 12:0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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