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낙원, ‘고아’에서 가진 여유!
印度이야기 (18) / 휴양지 고아는 유흥의 중심지로, 그 곳에선 지값이 얇아질 각오를 해야할지 모른다.

鄭仁采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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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낙원, 고아

오랜 시간 포르투갈에 속했던 고아는 인도의 모습이 많이 지워져 있었다. 다시 모국의 품에 안긴 고아는 인도에서 가장 이국적인 휴양지가 되었다. 혹자는 이곳을 일컫어 ‘인도 안의 또 다른 인도’라고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인도답지는 않다.

고아에 느낌을 말하자면  이렇다. 순진하고 착한 아들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모르는 게 없는 아들인 것이다. 그만큼 고아는 휘황찬란하고, (돈이 있더라도) 고되고 가난할 수 밖에 없었던 인도에서의 여정(旅程)을 잊게 해주는 유흥 공간이자 휴식처였다.

이제껏 모험에 가까웠던 여행은 고아에 이르며 갑자기 휴양으로 바뀌었다. 인도인들에게는 아픔이 있겠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반가울 수 밖에 없다. 北인도의 나이니탈 만큼 해변의 휴양지도 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탈출구가 되어 준다. 고아에서 지내는 동안 먼지처럼 몸에 달라붙은 피로가 바닷바람에 씻겨 사라졌다. 만족스러운 것은 바다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 시원하고 아름다운 해변 만이 아니었다. 다양한 해산물과 더불어 내륙에서는 억눌러야 했던 육식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도 있었다. 맘껏 먹고 마시며 쉴 수 있었다.

고아에서 보낸 하루 일과는 이랬다. 느지막히 아침에 일어나면 산책하듯 슬슬 해변으로 걸어나가 모래사장 위에 줄줄이 들어선 오두막 식당 중 한 곳에 들어갔다. 잉글리쉬 블랙퍼스트(English Breakfast)를 주문하면 베이컨, 소시지, 달걀, 베이크드 빈 등이 접시에 담겨나오고 홍차 한 잔이 따라나온다. 솔직히 처음 고아에서 아침 식사를 하며 감격의 눈물이 나올뻔 했다. 그렇다. 잊고 있었지만 나도 이런 음식도 먹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인도는 당연한 것을 다시금 되새겨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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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의 해안



해변을 느긋하게 바라보며 식사를 마치고 나면 다시 해변의 끝에서 끝까지 산책하거나 비치 파라솔 아래 앉아 책을 읽는 것이다. 점심이 되면 근처의 식당을 찾아가 느긋하게 해산물을 맛보고, 오후가 되면 보트를 타고 물놀이를 하며 다른 해변으로 가보거나 시장 구경을 나갔다. 기분이 나면 엽서를 몇 장 써서 우체국을 찾아갔다. 물론 고아에서 보낸 엽서들은 내가 한국에 돌아간 뒤 한참 후에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자신이 보낸 엽서를 자신이 받으면 재미있다.

저녁이 되면 근처의 음식점을 찾아 불이 활활 타오르는 접시에 담겨온 스테이크를 맛보고, 인근의 바에 들러 다양한 국적의 여행객들 틈에 섞여 *킹피셔를 한 잔 했다. 해변을 따라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는 가끔 천장 위를 기어다니는 도마뱀을 보았는데 고아에 있다보면 도마뱀마저 한 식구처럼 편해진다. 사실 제 아무리 고아라도 흠이 있다면 시도때도 없이 달려드는 모기떼들인데 도마뱀과의 동거(同居)는 차라리 반가운 일이다.

*인도의 맥주 브랜드

만약 여행에서의 고난이 없었더라면 고아에서의 시간도 여느 휴양지에서의 일상이나 다름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인도에 오래 머물다보면 이런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절절한지 깨닫게 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엉뚱한 기차에서 생고생을 되풀이 하던 나였다. 부지런히 인도를 돌아다닌 여행자들 중에는 마지막에 고아를 방문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동안의 일들을 잊고 억눌렸던 욕망을 해갈한 뒤 떠나는 것이었다. 고아에 있다보면 그 고생을 해놓고 인도를 떠나기 못내 아쉬워지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고아에서는 표정이 절로 밝아졌다. 확실히 인도에 대한 기억을 아름답게 하는 미화(美化) 기능도 있는 것이다.


식민지배의 야욕이 서렸던 곳

고아에 온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 여행에서 고아는 길고 험난했던 여행을 갈무리하는 장소였다. 지친 나머지 더 남쪽으로 내려가기를 포기하고 고아로 향했을 만큼 휴식이 절실했던 때였다. 반면 이번 여행에서 고아는 南인도를 공략하기 위한 교두보였다. 지난번에는 동해안을 따라 내려가 마드라스(現 첸나이)에서 그 꿈을 접어야 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반대로 서해안을 따라 내려오니 고아와 일찍 마주치게 되었던 것이다. 마침 라자스탄에서 출발해 꽤 험난한 여정을 거쳐왔기 때문에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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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유럽의 야욕이 서린 땅에서 그들이 남긴 흔적을 누리고 만끽한다니 기분이 묘했다. 이는 비단 외국인 여행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었다. 부유한 인도인들도 고아에서의 휴양을 즐긴다. 어느 지인(知人)의 경우 최근 고아로 휴가를 다녀왔는데, 그의 아들도 신혼 여행지로 고아를 선택했었다. 평소 해산물은 먹을 수 없던 내륙인이었는데 고아에서 해산물을 먹다가 배탈이 났다는 무용담도 들려주었다. 동해안에서 방문했던 푸리(Puri)와는 또 다른 느낌인데 고아는 의식주 등의 문화에서 무척 개방적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만약 포르투갈이 이곳을 점령하지 않았더라면 고아가 지금과 같은 휴양지가 되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휴양지가 되었어도 지금처럼 모든 것이 풍족한 낙원은 아닐 것이고, 아마 더 작고 조용한 해변 도시가 되었을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는 어쩐지 지금의 모습이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식민 지배를 성토하고 뒤돌아서 은근히 지금의 고아를 찬양하게 되다니 무척 흥미롭다.


고아 즐기기

고아에는 해안선을 따라 다채로운 풍경의 해변들이 줄줄이 들어서 있다. 처음에는 고아의 해변 중에 가장 비용이 저렴하고, 세계 곳곳의 젊은이들이 모여든다는 안주나 비치(Anjuna Beach)에서 머물 생각이었다. 캠프파이어도 하고 젊음의 열기를 느끼고 싶었다. 그런데 히피들이 가득 들어찬 탓인지 분위기가 이상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건전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늦은 밤에 도착했는데 거리에는 술에 취해 서성이거나 무언가 함께 고함을 지르는 젊은이들이 보였고, 누군가는 대형 오토바이를 몰고 요란한 소음을 내며 지나쳐 갔다. 특히, 힌디어로 ‘꼬시시(해볼래)?’라며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은밀하게 마약을 권하는 인도인들이 있었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좋지 않다. 대마초는 물론 엑스타시, 코카인 등에 빠져 파티를 탐닉하는 것은 어느 세계의 젊음일지 몰라도 인도 여행의 의미를 퇴색시킬 뿐이었다. 여행은 마무리가 좋아야 하는 법이었다.

마약이 없어도 그간 인도에서 환상적인 시간을 보내왔다. 게다가 정신적 성숙은 인도 여행의 또 다른 가치이기도 했다. 낯선 경험에 목말라도 그런 경험은 사절이었다. 안주나 비치에서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자유롭게 어울리는 분위기는 좋지만 지나친 방종(放縱)은 불편했다. 스스로 고지식한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결국 일찍 안주나를 떠나게 되었다.

장소를 옮겨 이동한 곳은 칼랑구트 비치(Calangute Beach)였다. 대개 유럽에서 온 중산층 가족이 많이 찾는 이곳은 지내기에 더없이 평온한 곳이었다. 나는 칼랑구트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가족 단위의 휴양객들이 많아 혼란스럽지만 그만큼 경계심을 풀어지고 마음이 안정되었다. 느긋한 해변의 일상은 대부분 칼랑구트와 함께 남은 추억이다.

다음으로 고아에서의 마지막을 불태우기 위해 찾은 곳은 안주나와 칼랑구트 사이에 위치한 바가 비치(Baga Beach)였다. 바가강(Baga River)이 바다로 합류하는 지점으로 사방이 바위와 언덕으로 둘러싸인 절경(絶景)이 돋보인다. 물론 체류 비용은 칼랑구트와 비교해 곱절 이상 비쌌다. 그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어 절약된 경비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해변마저 재력(財力)에 따른 계급이 나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의 他 지역은 몰라도, 고아까지 왔다면 갑작스레 지갑이 얇아질 수도 있다. 고아의 바자르(시장)나 식당을 오가다보면, 마치 전당포처럼 중고 사진기와 비디오 카메라를 맡겨 놓은 경우를 흔치않게 목격할 수 있다. 돈이 궁한 여행객들이 여행 내내 제 몸 다루듯 지니고 다녔던 물품까지 내놓으며 고아에 머무르는 것이었다. 과연 그럴 만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아에서의 마지막 밤, 아라비아海를 향한 숙소 2층의 난간에 기대어 지그시 바다를 바라보는 기분은 더없이 황홀하고 아쉬웠으며 낭만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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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한 스쿠터 체험, 그리고 膾 시식

고아에서는 스쿠터를 타 봐야 한다. 가까운 대여점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여권을 맡기면 스쿠터를 빌릴 수 있다. 칼랑구트에 머물며 해변의 생활이 지겨워지면 스쿠터를 타고 해안가 뒤편으로 난 도로를 달렸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스쿠터를 타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분위기에 도취되었던 것이다.

스쿠터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거나 안주나 바자르와 같은 시장통을 구경했다. 몇 번이나 스쿠터가 넘어졌고, 갑자기 거대한 할리 데이비슨의 투어링 오토바이가 끼어드는 바람에 접촉 사고가 나기도 했다. 헐크 호건 같은 거구의 몸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죽옷을 두른 채 선글라스를 쓰고 수염까지 길게 기른 폭주족들이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한껏 멋을 냈다. 사고를 당하고도 미소짓고 마는 이유가 그들의 덩치 탓이었는지, 고아에서의 여유로운 생활 덕분에 마음이 ‘하해(河海)’와 같이 넓어졌던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지만 시간을 내서 찾아가 볼 만한 곳도 있었다. 특히 北고아에 위치한 고아의 주도(州都) 파나지(또는 판짐)가 그렇다. 칼랑구트에서 내려가 만도비 강(Mandovi River) 건너 맞은편에 있는 곳이다. 이곳의 랜드마크로 그 중심에는 파나지 교회(Church of Our Lady of the immacurate Conception)가 있다. 다시 만도비江을 따라 파나지의 동쪽으로 9킬로미터를 이동하면 과거 포르투갈 점령 시대의 수도 올드 고아(Old Goa)가 모습을 드러낸다.

고아 관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곳에는 산타 카타리나 교회(Se Cathedral), 성 프란시스 교회(Convent & Church of St Francis of Assisi), 봄 지저스 교회(Basilica of Bom Jesus) 등 16~17세기 세워져 포르투갈이 남기고 간 로만-카톨릭 교회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인도産 유적지가 아니기에 흥미를 가지지 않기도 한다. 인도답지는 않지만 이 또한 인도의 한 모습이다. 여기서 또 한 가지, 박해를 받았음에도 자신의 종교와 달라도 그 유산을 보존하고 포용하는 모습은 가장 인도다운 모습이기도 하다. 

고아에서는 그동안 꿈 속에서만 그리던 온갖 먹거리로 호강을 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엉터리 횟집이었다. 우연히 ‘사시미(Sashimi)’라는 푯말을 발견하고 가던 길을 멈췄다. 포장마차처럼 생긴 음식점이었는데 설마하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천막을 열고 들어갔다. 정말 회(膾)를 파냐고 물어봤더니 정말 그렇다는 것이었다. 인도에서 회라니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밑져야 본전, 시도해보기로 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사이 부엌에서는 탕탕거리며 도마를 못살게 구는 칼소리가 났다. 조금 불길해졌다. 뼈를 발라내는데 지나치게 요란스러웠다. 요리가 준비되고 결국 눈 앞에 놓인 접시에는 한가득 토막난 생선이 담겨 있었다. 그것도 뼈 채로 말이다. 살을 발라먹는 것은 셀프 서비스였던 모양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물고기의 뼈를 삼키지 않으려 애썼다. 그래도 그 싱싱한 회의 식감만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기분 탓일까? 이후 그 어디에서 맛본 회보다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꿀맛이었다.


인도인들에게 다가가려면

인도의 입장에서 포르투갈은 결코 달갑게 여길 수 없다. 하지만 그 흔적이 남아 인도 속에 조화되고, 또 다른 유산으로 남았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에도 미친다. 인도의 한국에 대한 인상은 어떨까? 오늘날 全세계의 사람들이 ‘전(錢)의 전쟁’을 위해 속속 인도 땅으로 모여들고 있다. 과거 유럽이 인도의 후추를 탐낸 것처럼 말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지금의 경제 관계를 식민지 시대와 비교할 수는 없다. 적어도 우리가 인도를 필요로 한다면 인도에 어떤 댓가를 지불할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지금 세계 여러 나라는 인도와 건설적인 미래 관계를 구축하자며 각국에 투자를 권하고 있다. 그럴 때에는 반드시 현지인들의 감정을 헤아려야 한다. 인도인들 모두가 외국인에게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거점 확보’나 ‘인도 시장(市場) 정복’이라는 표현은 삼가야 겠다는 생각도 든다. 인도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신뢰를 주는 진정성과 상생(相生)에 대한 비전이 필요하다.

이제 고아는 전세계의 여행자들에게 잘 알려졌고, 더 이상 인도의 숨은 진주가 아닐지 모른다. 그럼에도 여행이 힘들고 괴로웠다면 모두들 이곳에서 인도에서 쌓인 좋지 못한 감정을 잊을 수 있을 것이었다. 지난 여정의 일들을 정리하기에도 좋았다. 이제 더 남쪽으로 내려가 깨랄라(Karala)주의 해변 도시 코발람(Kovalam)으로 갈 예정이다. 카르나타카(Karnataka) 주를 통과해 교통의 요지인 트리반드룸(Trivandrum)을 거쳐 코발람으로 들어간 다음, 깐냐꾸마리로 내려갈 것이다. (계속)

[ 2015-06-11, 10:4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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