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만 ‘yes’, 행동은 ‘no’인 이유
印度이야기 (19) / 인도의 교육은 종교적 관점을 탈피해, 現生을 중시하는 구조로 바뀌어야

鄭仁采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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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발람에서

두 번째 인도를 방문한 지 한달, *트리반드룸(Trivandrum)을 거쳐 코발람(Kovalam)에 이르렀다. 깨랄라州의 주도(州都) 트리반드룸에서 16킬로미터 떨어진 코발람은 하와 비치(Hawah Beach)와 *라이트하우스 비치(Lighthouse Beach), 두 개의 작은 만(灣)으로 이어진 곳으로 南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의 도시다. 해변으로 나서자 보사노바 名曲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The Girl from Ipanema)>가 귓전에 들리는 듯 했다.

*깨랄라(Kerala) 주의 주도로 정식 명칭으로 티루바난타푸람(Thiruvananthapuram)이라고 하고, 트리반드룸으로도 불린다.
*하와(Hawah)는 힌디어로 바람, 라이트하우스(Lighthouse)는 등대를 의미한다.
*브라질의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이 1962년 작곡한 보사노바 곡(포르투갈어로 Garota de Ipanema)이다. 주앙 지우베르투와 스탄 겟츠가 함께 한 앨범 에 수록되었으며 아스투르드 질베르토가 불렀다.

인도에서 왜 보사노바를 떠올리냐고 하겠지만, 이 곡에 포르투갈語 가사가 있다는 점을 떠올리면 무리도 아니다. 코발람에서 온 소녀, 금방이라도 구릿빛 미녀가 해변으로 뛰쳐나올 듯 설레이는 풍경이었다. 인도에 대한 낭만적인 시각은 때로 독(毒)이 될 수 있다고 했지만, 고아(Goa)에 이어 코발람 만큼은 예외로 두고 싶다. 흐드러진 야자수를 뒤로 하고, 초승달 모양으로 주위를 감싸듯 이어진 해안선을 따라 고즈넉한 백사장을 거닐다보니 이보다 넓고 풍요로운 고아라 할지라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적어도 그 두 곳을 두고 우열(優劣)을 가리기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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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깨랄라州

코발람이 위치한 깨랄라州는 풍요로운 곳이다. 포르투갈과 후추 무역에 대해 이야기하며 언급된 도시들 – 캘리컷(現 코지코드), 코친 등 – 이 모두 깨랄라의 해안선을 따라 위치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무역에 관한 역사라면 유럽의 식민지 시대보다 훨씬 이전에 페니키아인, 로마인, 아랍인, 중국인에게 알려진 곳이었다. 이곳을 통한 중계(中繼)무역도 발달했는데, 깨랄라의 해변은 무역로를 잇는 중요 허브였던 것이다. 무역이 융성한 이 지역은 중세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기간동안 南인도 *3大 고대 왕국의 하나인 체라 왕국(Chera Dynasty, 기원전 3세기~기원후 12세기)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이 지역을 두고 일찍이 체라와 경쟁국 간의 분쟁이 끊임없는 이어져 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상감 시대(Sangam Period, 기원전 300 ~ 기원후 200년)의 남인도 3대 타밀(Tamil) 왕국으로 촐라(Chola Dynasty, 기원전 3세기~기원후 11세기), 체라(Chera Dynasty, 기원전 3세기~기원후 12세기), 판드야(Pandya Dynasty, 기원전 6세기~기원후 14세기)를 의미한다.

지금의 깨랄라는 휴양지로 유명하다. 특히 알레피(Alleppy)와 퀼론(Quilon)을 잇는 백 워터 크루즈(Back water Cruise)로 각광받는데 이젠 全세계의 무역상들이 아닌 휴양과 뱃놀이를 즐기는 全세계의 여행자들이 이곳을 차지한 셈이다. 그렇게 본다면 고아하고 별반 다른 점이 없다. 휴양지를 찾는다면 고아나 깨랄라의 코발람 둘 중 한 곳을 택할 것이지 두 군데를 모두 볼 가치는 없다. 역사는 또 어떠한가? 후추 무역과 유럽의 식민지항(港)에 얽힌 암울한 이야기 또한 이미 거듭 되풀이하여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깨랄라는 상당히 흥미로운 면이 있다.


종교가 現生을 결박하는 구조

먼저 캐랄라는 인도의 어느 州와 비교해도 높은 식자율(識字率)을 자랑한다. 인도 평균 식자율은 세계 평균(84%)보다 훨씬 낮은 74%인데 깨랄라는 94% 수준으로 인도에서 가장 높은 *식자율을 자랑한다. 여기서 잠시 인도의 교육 제도에 대해 살펴보면, 식민지 시대 이전 인도의 교육 방식은 소위 *구르쿨라(Gurukula)이라고 하여 상위 카스트를 대상으로 한 제한된 교육이었다. 이를테면, 가르침을 받고 싶은 구루(Guru)를 찾아가 그 가까이 살거나 함께 동거하며 배움을 얻는 것인데, 당시 교육과 학문의 主는 *베다(Veda)였다.

*2011년 기준
*또는 구르쿨(Gurukul)이라고도 한다.
*고대 인도의 문헌으로 신화, 종교, 철학을 아우른 힌두교의 오랜 성전(聖典)이다.

교육에 대한 금전적인 댓가는 없었고 문하생(門下生)들은 함께 숙식을 하며 스승의 살림을 거들었다. 구르쿨라의 구르(Guru)가 스승을 뜻하고, 쿨라(Kula)가 대가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때 대강 어떠한 방식의 교육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이러한 교육 방식은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쇠퇴하고 점차 서구화된 시스템이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당시 12%에 불과했던 식자율이 현재 74%까지 상승했다. 여전히 세계 평균에는 밑돌지만 ‘인도’라는 여건에서 60여 년 만에 이룩한 성과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이 가운데 깨랄라가 가장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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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겠다. 인도의 높은 문맹률의 원인은 부족한 교육 기반 시설, 그리고 계급적 한계에 따른 교육 기회 박탈 또는 낙오에 있다. 기반 시설의 문제야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속적으로 나아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계급의 문제는 다르다. 예컨대 평생 손빨래를 하며 생계를 이어 온 도비 왈라의 자식은 학업(學業)보다 일찌감치 가족의 생계를 도우며 생활 전선(前線)에 뛰어들기 마련이고, 대개 계급의 꼬리표 같은 가업(家業)을 이어나가거나 비슷한 처지에 머문다. 계급의 사슬을 끊고 나오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니 교육 기회를 잃거나 자포자기하기에 이른다.

피라미드형(型) 계급 사회에서 하층(下層) 계급, 빈민층으로 내려갈수록 대상 인구가 많아지는 반면, 이런 현상은 극심해진다. 한번 도비 왈라는 평생 도비 왈라인 것이다. 현생(現生)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 만큼 내생(來生)을 기약하게 되고, 이런 점에서 종교는 그들에게 위안이 되어준다. 하지만 종교는 동시에 스스로를 계급의 피라미드 안에 결박하는 논리이자 근거가 된다. 자기 본분을 다하라는 힌두교의 가르침이란 결코 그러한 의미가 아니지만, 결국 현재(혹은 과거)의 무게에 압도되어 주저앉고 마는 것이다.


대답만 ‘yes’, 행동은 ‘no’인 이유

다시 말해, 현실 극복의 의지가 부족해진다. 인도인들과 같이 일하다보면 안되는 것을 되게 한다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왜 인도인들은 대답만 ‘예스(yes)’ 행동은 ‘노(no)’일까, 그리고 추진하던 일이 왜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될까. 우리도 (물론 되면 좋지만) 정말 안되는 것을 되게 한다는 의미로 말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저돌적으로 덤벼 차선의 결과라도 얻는 것이 한국인의 힘이지만 인도인들에게 같은 것을 요구하기란 어렵다. 대신 그들은 더 나은 다음 生을 위해 神께 공양(供養)하고 기도드린다. 마치 그들에게 지금이란 시간은 극복이 아닌 인내의 대상인 것 같다.

인도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하루 빨리 계급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법적으로는 철폐되었지만 심정적으로 지워지지 않은 마음의 때다. 자신이 모르는 과거까지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낙인(烙印). 오랜 세월 묵혀온 만큼 인내를 가지고 서서히 씻겨 나가길 기다릴 수 밖에 없다. 기다림만큼 회의감이 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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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의문이 든다. 인도의 빈곤층은 왜 아이를 많이 낳을까? 길거리에서는 무수히 많은 아이들이 행인들에게 손을 벌리고 동냥하는 모습을 마주치게 된다. 안주자니 불쌍해지고 주자니 더 많은 아이들이 달려들고… 무서운 인도의 뒷골목 세상, 진실성도 의심된다. 부모나 포주는 멀찍이 물러나 있다. 아이는 친동생인지 아닌지 또 다른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차창을 두드린다. 흔한 풍경에 갈수록 무덤덤해지는 내가 부끄럽지만 차라리 낳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덧없는 혼잣말을 내뱉게 된다. 책임지지 못할 아이들, 아예 학교 구경은 해보지도 못할 것이다.


교육을 통한 의식개혁

인도 인구가 11억이라지만 실제로는 중국에 필적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차라리 적게 낳아 최선의 교육을 시키는 편이 낫다. 실제로 최근 인도의 중산층을 보면 산아(産兒) 조절을 잘하는 것 같다. 주변에서 아이 한 명 나아 애지중지 키우는 경우도 여럿 보았다. 하지만 단순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빈곤층의 생각은 좀 다를 것이다. 産兒 조절에 대한 개념도 부족하지만 농경 사회처럼 자손의 번식이 곧 노동력에 직결된다고 본다. 의식의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대한 해답은 다시 교육으로 돌아온다. 다소 상투적일 수 있다. 하지만 교육을 통한 의식 개혁이야말로 낡은 관습과 사회의 불합리를 치유할 수 있는 정직한 처방이다.

최근 하층민 출신으로 출세한 입지전적인 인물들을 여럿 보는데 그들은 드문 기회를 손에 거머쥔 것이다. 물론 보편적인 사례는 아니다. 그러나 미세한 변화는 감지된다. 실제 인도에서 공장을 운영하다보면 생산 노무자들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하게 되는데 가령 같은 인력 사무소에서 부른 같은 임금 수준의 노동자라도 각기 조금씩 출신 집안과 계급이 다르다. 이럴 경우, 화물이 들어와 짐을 나르더라도 누군가는 기꺼이 짐을 들고, 누군가는 자신은 짐은 들지 않는다며 거부한다.

때로는 보이콧을 하는 직원을 중심으로 집단적인 거부 의사를 *표현하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계급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노무자라도 어떤 직원의 경우 기술 자격증 시험을 거듭 치르고, 자신의 가치를 향상시켜 다음 직장에서는 하나씩 단계를 밟고 올라서는 경우도 있다. 그는 교육을 통해 현생(現生)에서의 기회를 움켜쥐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외국인 관리자가 직접 이들과 접촉하기 보다는 현지인 중간 관리를 활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고용시 미리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희망자에 한해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현재 인도의 교육 제도는 클래스(Class) 1에서 12까지 크게 세 단계인 초등학교(6세~11세), 중등학교(11세~15세), 고등학교(16세~17세)으로 나뉘는데 6세부터 14세까지가 의무 교육으로 정해져 있다. 영국과 유사한 측면이 있는데 사회 계층 간의 차이도 닮아있다. 델리의 외곽 도시에 체류하면서 꽤 많은 국제학교를 목격했는데 (좋은 곳은 줄을 서서 입학허가를 받아야 할 정도다) 극소수만이 들어가는 명문 사학(私學)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어차피 모두에게 동등할 수 없다.

그보다는 기본적인 교육의 기회가 박탈되지 않도록 하여 계층 간 이동의 기회를 넓혀야 한다. 이런 면에서 깨랄라州는 인도 대륙의 작은 *‘시험장’이라고 할 수 있다. 州 정부 차원의 교육 개혁을 통해 여성과 빈곤층 아동에 대한 교육 지원을 확대한 결과 이뤄낸 성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단순하게만 볼 수 있을까? (계속)

*인적자원 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에서 인도 최고 수준이다.

[ 2015-06-17, 14:1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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