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일 李承晩은 유서를 썼다
"나는 자유와 민주 제단에 생명을 바치려니와 나의 존경하는 민주 국민들은 끝까지 싸워서 남북통일을 이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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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카 日記에서 발췌: KBS는 이런 李承晩 대통령이 일본에 망명을 타진하였다고 왜곡, 폄하하였다.  

<7
1일 오전 3> 

아직 어둠은 걷히지 않았다. 황규면 비서가 대통령을 깨웠다. 공산군 탱크가 이미 수원을 지나서 빠른 속도로 남진하고 있다는 보고였다. 보고를 받고 난 지 20분쯤 뒤美 대사관 1등서기관 헤럴드 노블이 관저로 달려 와서 대전 이남으로 옮겨야 한다고 대통령을 설득했다. 신 국방장관과 정일권(丁一權) 장군도 이내 도착했다. 하나 같이 침통한 표정이었다 

대통령은 차라리 대전에서 죽는 게 낫지 더 이상 남쪽으로 내려가 경멸을 당하지 않겠다면서 대전 사수를 고집했다. 침실로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근 대통령은 책상 위에 두 손을 올려놓고 기도하는 자세였다. 그의 얼굴은 불행한 국민들에 대한 연민(憐憫)의 정과 잇단 패전에 대한 분노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당장 상황을 뒤바꿀 어떠한 대책이 있을 수도 없었다 

대통령은 노트를 꺼내서 내게 건네주면서 메모를 부탁했다. 나는 조용히 그가 부르는 대로 받아 적었다. “죽음이 결코 두려운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떻게 죽느냐가 문제다. 나는 자유와 민주 제단에 생명을 바치려니와 나의 존경하는 민주 국민들은 끝까지 싸워서 남북통일을 이룩해야 할 것이다. 다만 후사(後嗣) 없이 죽게 되어 불효자(不孝子)일 뿐이다.” 나는 이 글이 최후에 대비한 유서(遺書)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후사 없는 불효자라는 대목은 곧바로 비수(匕首)가 되어서 내 가슴을 갈기갈기 찢었다 

[ 2015-07-03, 13:1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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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슨 김     2015-07-03 오후 4:05
감사합니다.
혼자 짐을 다 지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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