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27일 이승만은 결사항전을 다짐하였다!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낸 親書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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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대통령의 회고록 2권 '시련과 희망'(1946~1952)은 1950년 6월26일(한국 시간 6월27일)에 있었던 일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월요일이 되자 한국으로부터 들어오는 보고들은 어둡고 실망스러웠다. 이승만은 美 국무부의 電文 보고 형식으로 쓴 편지를 통하여 지원을 요청하였다. '6월25일 이른 아침부터 북한공산군은 남한에 대한 무장 침공을 개시하였습니다. 각하와 미국 의회도 잘 알다시피 우리 국민들은 이런 사태를 예상, 동양에서 민주주의의 보루를 구축,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 위하여 강력한 국군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귀하께서 우리를 해방하고 공화국을 건설하는 데 필수적인 도움을 주신 데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국가적 위기에 직면하였지만 용감하게 저항하고 있으니 세계 평화를 파괴하려는 책동을 저지하기 위하여 더 강력한 지지와 효율적이고 시의적절한 지원을 호소합니다.' 李 대통령의 호소문을 가져온 한국 대사는 낙담하여 울먹였다. 나는 전투가 겨우 48시간 지났을 뿐이고, 다른 나라들은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싸워서 종국적 승리를 거두어 자유를 지켜냈다고 말하여 그를 격려하였다. 나는 그에게 버티어내라면서 지원이 진행중이라고 했다.>  

KBS 도쿄 특파원은 바로 이날(6월27일) 이승만 정부가 일본에 망명 요청을 하였다는 보도를 하였는데, 일본의 한 지방 자료를 인용하면서 날짜를 조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6월27일 이승만 대통령은 트루먼 대통령에게 결사항전을 다짐하고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고 있었는데 일본으로 도망치려 하였다니! 어제 KBS 이사회는 '이승만 일본 망명 조작 보도 사건'에 대하여 논의를 하려고 하였더니 야당 추천 이사들이 방해하여 제대로 된 토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국영방송이 역사를 조작해놓고 그것을 시정하려는 노력을 방해한다면 이런 언론기관은 '펜을 든 조폭'보다도 못하다.  

기사본문 이미지
트루먼 대통령의 회고록 2권 '시련과 희망(Trial and Hope)'(1946~1952) 中


*남정옥 국방부 전사편찬연구소 책임 연구원의 논문 발췌

<이승만은 6월 27일 01:00시경에 주미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이때는 경무대에서 국무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한표욱 참사관이 전화를 받았다. 한표욱 참사관은 “이때 대통령의 목소리는 지난번과는 달리 확연히 떨리는 기색이었고, 흥분을 감추려고 노력하는 듯 했다.”고 회고했다.

이 대통령은 한 참사관에게, “필립, 일이 맹랑하게 되어가고 있다. 우리 국군이 용감하게 싸우긴 하나 모자라는 게 너무 많다. 즉각 장(張) 대사를 모시고 트루먼 대통령을 만나 군사원조의 시급함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대통령은 장 대사와 통화를 했다. 장 대사에게도, “우리 국민들은 잘 싸우고 있지만 무기가 없어서 큰 걱정이다. 제일 필요한 것이 탱크다. 그러니 빨리 탱크를 보내도록 주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한표욱 참사관은 국무부의 한국담당 나일스 본드(Niles Bond)에게 전화를 걸어 트루먼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다. 그렇게 해서 그날 27일 04:00시(워싱턴 시각 26일 15:00시)에 백악관에서 장면 대사는 트루먼과 회동했다.

장 대사는 먼저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내용을 전달했다. 이때 트루먼은 자신만만한 태도로, “한국정부, 국민, 국군이 용감하게 싸우고 있으며, 국민들이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미국 독립전쟁 때 독립군이 무기, 식량난에 어려움이 겪고 낙담하고 있을 때, 프랑스의 라파예트 장군이 우리를 도와준 적이 있다. 또 1917년 유럽 제국이 독일의 침공을 받아 존망의 어려움을 겪었을 때, 미국은 그 지원에 나선 적이 있다.”고 했다.

이어 트루먼은 장 대사에게, “대한민국에 상당한 무기와 탄약을 수송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이 장비는 곧 [한국의] 군사상황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알려줬다. 이는 미국의 한국에 대한 지원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을 의미했다.

주미대사관을 전화를 걸고 난 후 이승만은 다시 맥아더 장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민복기 비서는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전화를 받은 맥아더 보좌관이 원수는 지금 자고 있다고 대답하자, “우리는 지금 잘 싸우고 있으나 무기가 없다. 그러니 탱크를 빨리 보내라. 만일에 당신들이 아니 도와줄 것 같으면 여기 미국사람들도 완전치 못할 것이라고 흥분된 어조로 말씀하시자, 프란체스카 여사가 대통령의 입을 막으시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그런 후 이승만 대통령은 03:00시에 경무대를 떠났다고 했다.>    




[ 2015-07-09, 17:0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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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dt     2015-07-09 오후 10:23
우리 나라 야당은 종북의 본거지 라고 보여진다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고
거짖 선동만 일삼는다 더이상 존재할 필요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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