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고발>, 100여 년 한글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
"진실은 힘이 세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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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식 경희대 철학과 교수가 <조갑제닷컴> 이 최근 발간한 소설 《고발》에 대해 “진실은 힘이 세다”며 극찬했다.

최 교수는 최근 <교수신문>에 기고(9월25일)한 <진실은 힘이 세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북한에 살면서 탈북하는 친척의 도움으로 자기 대신에 자신의 단편집을 밖으로 탈출시킨 작가 ‘반디’의 단편집 《고발》이 <조갑제닷컴>에서 나왔다”며 이 같이 평가했다.

최 교수는 《고발》을 《태백산맥》과 비교하며 “우리가 군사정권에 억눌렸을 때 《태백산맥》은 무조건 다르다는 이유로 어떤 다른 길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보여준 길은 군사정권보다 훨씬 더 지옥의 길임을 고발은 보여준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어 “고발이 특이한 점은 참으로 아름다운 구성과 문체로 이뤄졌다는 것”이라며 아래와 같이 덧붙였다.

<작가의 글이란 아무래도 그가 사는 곳과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기 마련이라 이렇게 삭막한 곳에서 삭막한 사람들과 어울려 살다 보면 어딘지 모르게 삭막한 미의식과 문체를 띠지 않을까 하는 애초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어서 또 한 번 감탄케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것이 바깥에서 쓴 위작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거기서 살다 나온 사람이 탈북한 후에 쓴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읽다보면 의심은 자연히 풀리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꼭 들어야 할 것은 듣지 않는 묘한 귀먹음이랄까 어리석음이랄까가 있는 것 같다. 천재는 위대한 작품을 내놓았는데도 사람들이 알아주질 않으니 제 가치를 발휘하지 못 하는 것이다. 이것은 커다란 잘못이다. 마치 고흐의 그림을 보고도 그림 이상하게 그렸네 하고 지나치는 것과 비슷하다. 필자가 알기로 우리나라는 박홍규라는 위대한 형이상학자를 배출하고도 그를 전혀 알아보지 못 한다. 이것은 아마 일반대중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사이에 있는 전문가들이 게을러서 일어난 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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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식 경희대 교수

최 교수는 “반디라는 위대한 작가가 나타났다. 그런데도 문학평론가라는 작자들은 아무 말 않고 침묵하고 있다”며 “그래서 할 수 없이 철학자인 필자가 나선 것이다. 이런 작품을 그냥 놓아둬서는 안 된다. 방방곡곡 누구나 읽어서 북한의 실상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 문학사를 정리하려고 해도 이런 대작을 무시하고 할 수는 없다”며 “이 정도로 강한 진실을 드러내는 작품이 있었던가? 이것은 정녕 100여년 한글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정리/김필재(조갑제닷컴) spooner1@hanmail.net

<주> 최정식 교수 칼럼 전문 바로가기 URL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3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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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건 文學, '北에서 온 소설' <고발>(반디)을 노벨문학상후보로!
-통일 인권 북 콘서트: 7월20일(월) 오후2시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

'피눈물에 뼈로 적은 글'입니다.

'反인도범죄집단의 수괴'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북한체제의 深淵(심연)을 폭로한 在北작가 반디에게 노벨상이 가야 합니다. 읽은 이들이 감동하여 일어섰습니다.
최근 미국 교민들 사이에서 <고발>의 著者(저자) 반디를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하는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오웰, 파스테르나크, 솔제니친의 맥을 잇는 공산전체주의 고발 문학의 위대한 통찰력!

'마지막 남은 양심의 소름끼치는 폭로. 마르크스와 김일성을 '붉은 유령', 공산당을 '빨간 버섯', 북한을 '웃음꽃이 피는 지옥'에 비유. '1984'(조지 오웰)의 음산함과 '닥터 지바고'(파스테르나크)의 애잔함, '수용소 군도'(솔제니친)의 사실성이 합쳐진 걸작이자 생동하는 조선말의 구수한 향연이다.'



독서 감상문 현상 공모:



반디의 인사

북녘 땅 50년을
말하는 기계로,
멍에 쓴 인간으로 살며

재능이 아니라
의분(義憤)으로,
잉크에 펜으로가 아니라
피눈물에 뼈로 적은
나의 이 글

사막처럼 메마르고
초원(草原)처럼 거칠어도
병인(病人)처럼 초라하고
석기(石器)처럼 미숙해도
독자여!
삼가 읽어 다오



행복한 통일로/미주지역노벨문학상후보추진위원회/조갑제닷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는 大兄이 다스리는 나라의 사상 경찰관 오브라이언이 양심을 지키려는 윈스턴 스미스를 審問하는 장면이 나온다. 오브라이언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大兄을 사랑해야 한다. 그에게 복종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그를 사랑해야 한다.'

在北작가 반디가 목숨을 걸고 내어보낸 단편집 '고발'은 '1984'에서 상상한 그런 상황에 북한사람들이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김일성 독재가 스탈린, 히틀러, 모택동 독재와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북한사람들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게 복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를 무서워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그를 사랑해야 한다. 학살자를 사랑해야 한다. 고통을 받아도 웃어야 한다. 그래서 북한은 '웃음꽃이 피는 지옥'이다. 인간의 感性을 통제하는 데 성공한 북한정권은 인류역사상 최악의 독재체제이다.

公的 생활만 통제하는 독재, 私的 생활까지 통제하는 전체주의를 넘어 인간의 감정까지 조종하는 김일성 식, 1984 식 감성 독재가 북한정권의 본질이다. '반디'라는 筆名의 북한 작가가 밀반출시켜 조갑제닷컴에서 출판한 소설 '고발'이 처음으로 북한의 深淵으로 들어가 감성 독재의 본질을 드러냈다. 어떤 학자나 기자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인간 탐구를 주제로 하는 문학만이 할 수 있는 偉業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노벨문학상 감이 충분하다. 목숨을 건 문학적 고발이기에. 북한에서 아직도 이런 비판정신의 불씨가 남아 있다는 게 경이롭기만 하다. 그 어떤 악마적 독재자도 말살할 수 없는 인간의 知性과 양심의 자기 존재 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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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自感

‘무대’는 제목대로 북한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하여 연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연극의 본질을 보여준다. ‘무대자감’이란 생소한 단어가 등장한다. 북한에서 나온 ‘조선말 대사전’을 찾아보았다.
<자감(自感): 배우가 인물의 사상감정과 주어진 정황을 그대로 믿고 느낌으로써 役인물의 생활 속에 스스로 깊이 잠기는 것, 또는 그러한 창조적 상태.>
북한인들의 ‘무대자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살자인 김일성을 자애로운 ‘어버이 수령’ 役으로 설정한 연극 무대에서는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實演’해야 한다는 점이다. 연극만으로는 부족하다. 役과 일체를 이뤄야 한다. 연극의 생활화를 넘어서 내면화 단계로까지 가야 한다. 이런 自感이 되려면 김일성을 정말로 사랑해야 한다.
‘무대’의 주인공은 연합기업소에 주재하는 보위부원 홍영표이다. 그는 반항기가 있는 아들(경훈) 때문에 속이 상해 있다. 아들이 하필이면 반동 집안의 딸인 숙이를 사랑한다. 숙이의 아버지는 정치범 수용소에 가 있다. 때는 1994년 7월 김일성이 죽은 직후이다. 북한 주민들은 곳곳에 설치된 弔意場(조의장)에 매일 몰려가서 통곡한다. 홍영표는 기업소의 조의장에 몰린 조문객들 사이로 들어가 누가 진심으로 조의를 표하는지를 조사한다.
<막상 단위에 꽃송이를 놓고 “어버이 수령님!”하며 묵도를 시작하는 큰 숙이 어머니와 마주 하는 순간 홍영표는 불시에 등이 으쓸해졌다. 정말 그녀의 두 볼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녕 그것이야말로 홍영표가 지금껏 생각해본 일도 없었고, 설사 생각해 보았댔자 믿을 수도 없었을 몸서리나는 광경이었다.>
홍영표는 남편이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 갔으니 숙이 어머니는 형식적으로 조의를 표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숙이 어머니는 ‘무대자감’에 충실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령 큰 숙이 어미 같은 사람도 ‘어버이 수령님!’하는 슬픈 소리나 꺼이꺼이 대는 울음소리는 지어낼 수가 있다고 하자. 그러나 눈물까지야 어떻게 나올 수가 있는가 말이다.>
이어지는 아들과의 想像(상상) 대화가 이 단편집의 名장면이고 북한체제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게 바로 무대자감이라는 거란 말입니다.”
“그래. 그 자감이라는 거면 큰 숙이 에미가 눈물까지도 흘릴 수가 있지. 허나 그건 배우들에게만 있는 거야.”
“그럼 그가 배우라는 걸 아직도 모른단 말이요? 그 여자도 자감 연습극 <아프다 하하하>, <간지럽다 엉엉>의 45년생이라는 걸 아직두 모르는가 말이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매서운 눈들과 귀들과 주먹들로 그에게 45년간이나 직접 훈련을 시켜오고도 모른다니 말이 됩니까?”
홍영표는 이 끔직한 ‘수령극’에서 감시자 역할을 해온 자신이 그 구미호 같은 숙이 어머니를 만들어낸 장본인이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자감 연극은 성공했지만 홍영표는 인간으로서 살아갈 의욕을 잃는다. 아니 의미를 잃는다.
<한방의 권총 소리가 7월의 밤대(밤대기, 밤공기)를 찢었다. 자감극의 사나운 감독이자 그 역시 그 극의 일개 명배우였던 홍영표는 동업자들보다 한 발짝 앞서 자기 연극무대의 막을 내렸던 것이다.>
체제유지의 첨병이었던 보위원의 자살은 체제의 자살을 상징한다.

'아프다 하하하'

일곱 편의 단편에 연극이 소재로 자주 나오는 것은 북한 체제의 중요한 작동 원리가 연극이기 때문이다. 어버이 수령님과 인민은 지상 최대의 연극을 연기하듯이 살아간다. 평양은 그 중심 무대이다. 종국엔 연기와 삶이 일체화된다. ‘무대자감’인 것이다.
연극 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연극은 <아프다 하하하>, <간지럽다 엉엉>이다. 아파도 웃어야 하고, 간지러워도 울어야 한다. 보통 독재자는 公的 생활을 통제한다. 전체주의 독재자는 인간의 私생활까지 통제한다. 김일성 같은 ‘自感 독재자’는 인간의 감정까지 통제한다. 전체주의 독재보다 더 심한 것이 이런 감성독재이다. 반디는 김일성이야말로 스탈린과 히틀러를 능가한 최악의 감성 독재자였음을 고발한다.
‘복마전’은 길을 가다가 우연히 김일성을 만난 할머니가 수령님의 자애로움을 선전하는 자료로 이용되는 과정을 소재로 삼았다. 할머니가 김일성이 내어준 자동차를 타고 歸家하는 사이에 영감(남편)과 손녀는 기차역에서 기다리다가 몰린 승객들 사이에서 압사당할 뻔한다. 두 사람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실려와 집에 누워 있는데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선 연일 수령의 미담 선전 방송이 계속된다. 할머니는 자신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선전방송에 시달린다. 영감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화도 난다.
<양쪽 손톱을 동시에 뽑히는 듯한 고통을 당한 오 씨를 선창자로 하는 ‘행복의 웃음’ 소리!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을까? 그 어떤 잔학한 마술의 힘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뭇사람들의 고통의 울부짖음을 ‘행복의 웃음’으로 둔갑시킬 수가 있단 말인가.>
반디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오늘까지 바로 그 마귀의 마술 속에서 진실과는 판이한, 완전히 전도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적었다. 아파도 “하하하”라고 웃을 수밖에 없는 북한은 늘 '웃음꽃이 피는 지옥'이다. 아파도 웃어야 하는 拷問(고문)이야말로 가장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복마전’은 맞아도 “아프다”고 할 자유가 말살된 체제의 정곡을 찌른 寓話(우화) 같은 작품이다.




[ 2015-10-05, 10:1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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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덕이     2015-10-05 오후 11:53
그렇게 추천해주시니 한번 구입해서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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