派獨(파독) 광부 모집에 지원하다!
[월남의 밀림과 독일 광산을 누비다(2)] 학력도 짧고 가진 것 없고 집안배경도 없는 나였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軍 생활과 월남 전투에서 단련된 육체적, 정신적 자산인 젊은 몸뚱이 하나는 가지고 있었다.

李範永(체험수기 우수상 수상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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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닷컴은 ‘광복 70주년 現代史 체험수기 현상모집’ 수상자들의 작품을 차례로 연재합니다. 여덟 번째 작품은 李範永 씨의 手記, ‘越南 전쟁에서 派獨 광부까지’입니다.

蔡命新 장군을 만나다

이렇게 전선 생활을 하는 사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강건해지고 대담해져 갔다. 이런 전투경험이 이어지는 상황이 간간이 계속되며 2월이 지나고 3월이 되자 대규모 공격 작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1966년 3월23일 드디어 우리 재구대대 전체가 파월사상 최대 규모인 사단급 작전인 ‘맹호5호’ 작전에 주력으로 출전하게 된 것이다. 작전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재구대대’가 野地(야지)에서 집결해 만반의 출전태세를 갖추고 작전투입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주월한국군 총사령관이신 蔡命新(채명신) 장군이 적지 한가운데로 헬기를 타고 와 장병들을 격려했다. 우리와 악수하고 어깨를 두드려 주시면서 간단한 격려의 말씀을 하셨는데 대강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장병 여러분은 모두 애국자다. 지금 여러 장병이 흘리는 땀과 희생은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누굴 원망하거나 섭섭해 하지 마라. 언젠가는 지금 여러 장병이 흘리는 땀과 희생을 누군가는 반드시 알아줄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장병 여러분이 보상받지 못하겠지만, 훗날이라도 우리 후손들이 지금의 노고를 보상받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또 장병 여러분이 받는 전투 수당을 헛되게 쓰지 말고 본국으로 송금해라. 그 돈이 우리나라의 빚을 갚고 나라 살림에 보탬이 되고 살이 찌니 1달러라도 아껴서 본국으로 보내라. 끝으로 국가와 국군의 명예를 지키는 용맹스런 맹호용사가 되자!”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나는 가슴에 무언가 확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젊은 혈기와 기백으로 멋모르고 월남 전선에 지원해 왔지만 내가 미처 생각 못 했던 임무와 그 결과로 조국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가슴이 벅차 왔다. 사령관과 악수하고 격려의 말씀을 듣고 나자 대원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는 듯 높았다. 나는 이런 사령관 휘하에서 ‘맹호5호’ 작전 같은 큰 전투에 참전하는 것이 자랑스럽고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내 목숨값과 같은 전투수당을 하루 1달러를 꼬박꼬박 모아 아버지께 보내 드린 것이 집에만 도움이 된 것이 아니라 나라에도 도움되고 유용하게 쓰인다니 자부심도 생기고 기뻤다.


‘맹호5호’ 작전에 투입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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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호5호’ 작전에 투입된 필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긴장된 밤을 지샌 3월 23일, ‘맹호5호’ 작전 D-day가 드디어 밝아왔다. 새벽 2시에 적진 침투가 은밀하게 시작되고 5시 넘어서 공격대기선인 L.D에 도착했다. 우리 중대는 아군의 엄호 포격 속에 숨을 죽이며 공격 명령을 기다렸다. 날이 밝아오고 공격목표 지점이 눈에 들어 왔다.

그리고 6시, 중대장으로부터 “각 소대, 목표지점을 공격 점령하라!”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제1소대에 배속되어 소대 진출 방향으로 57mm 무반동직사화기로 사격을 시작했다. 소대별로 공격이 시작되고, 적과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우리 중대는 맹렬한 아군 포격을 지원받으며 목표 지점을 향해서 한발 한발 전진해 들어갔다.

때로는 美軍의 폭격과 무장 헬기들의 엄호를 받기도 했다. 우리 분대 방향으로 적의 기관총탄이 수없이 날아와 내 주위 여기저기에 물방울을 튀기며 떨어졌다. 우리 57mm 분대는 논둑 밑에 납작 엎드렸지만, 오금이 저려왔다.

아군의 포격과 피아간 총격 소리로 땅이 뒤집히는 듯했다. 검붉은 화염과 매캐한 화약 냄새가 사방에서 뒤덮여 왔다. 공포와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목표지점에 명중탄을 쐈을 때는 통쾌감도 느껴졌다. 12사단 교육대와 홍천 훈련장에서 훈련받은 대로 우리 분대가 엄호사격을 하면 소대가 전진하고, 소대가 전진해 엄호사격을 해주면 우리 분대가 전진해 가면서 최초 목표지점을 점령했다. 그러나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다음 목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숨 막히는 접전이 벌어지기도 하고 희생도 뒤따랐다.

지금 내가 치르는 이 전투가 국가를 위함도 아니요, 나라 살림에 보탬이 된다는 그런 생각은 할 틈도 없었다. 오직 공포와 두려움 속에 초긴장된 상태에서 살기 위해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군인일 뿐이었다. 밤이 되면 공포감이 더 커지고, 나도 전사(戰死)하거나 다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마음이 무겁고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이튿날 해가 뜨면 그 두려움과 공포심은 가벼워지지만 대신 뜨거운 태양과 갈증이 우리를 괴롭혔다. 하루에 한 번 헬기로 공수되는 탄약과 식량, 食水(식수)가 오지만 식수는 턱없이 부족했다.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틈틈이 개울물과 야자수 물로 목을 축이며 버텨냈다.


무학여고 학생과 펜팔을 주고받다

이런 생사의 격전지에 보급 헬기편으로 위문편지도 함께 왔다. 나에게 위문편지가 배달된 날에는 언제 전투의 공포감과 두려움이 있었느냐는 듯 긴장감들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전투 접전지로 배달돼 오는 편지 한 통이 그런 엄청난 힘과 역할을 해내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파월참전 2년 반 동안 무학여고 김동연이라는 학생에게 70여 통의 위문편지를 받았다.

김동연 양이 1학년 때부터 보내주었는데 나는 받은 것보다 더 많은 답장을 보낸 것 같다. 그녀의 위문편지의 예쁜 글씨와 수려한 문장은 나를 즐겁게 해주었고 내가 살아서 돌아올 수 있게 해준 힘이 되었다. 때로는 그림과 시, 유머도 보내주었고, 엽서도 보내주었다. 나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가 보내준 편지를 모두 보관하고 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쓴 진중일기와 그녀의 위문편지를 한데 묶어서 책이라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평생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을 만큼 그녀의 위문편지는 내가 진중생활을 해 나가는데 절대적인 힘이 돼 주었다.

아마 지금쯤 동연 학생도 할머니가 되었겠지만 내가 월남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는 힘이 되어준 세 분의 은인 중 한 분으로 생각하며 늘 마음 속에 담고서 살아왔다. 이 자리를 빌려 정말 고마웠다고 꼭 전하고 싶다.

그 세 분의 은인을 말한다면, 첫 번째 분이 탁월한 지휘관 밑에서 근무한 것이고, 두 번째 분이 부모님과 가족들의 염려와 성원 덕분이고, 세 번째 분이 바로 무학여고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의 위문편지를 보내준 김동연 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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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에서 귀국 전 망중한을 즐기는 필자.



歸國 후, 다시 국가의 부름을 받다

나는 치열했던 월남 전선에서 크고 작은 전투 임무를 기적과 같이 무사히 마치고 1967년 4월에 귀국에서 동년 9월에 만기 전역했다.  막상 제대해 보니 집안 형편은 좀 나아진 듯했지만, 농촌에서 여유 있게 살기를 기대하긴 어려운 처지였다. 그러던 1968년 봄에 어느 기관에서 편지가 와 읽어보니 월남 참전 전투 경험자를 모집하니 빨리 응모하라는 내용이었다. 어디든 취직을 하려던 참이라 곧바로 가서 응모원서를 적어 냈더니 맹호부대 재구대대 출신이라고 그 자리에서 합격이 결정되었다. 원서를 낸 지 얼마 안 돼 소집 장소에 갔더니 철도청이었다. 그곳에서 철도청 소속 무장청원경찰이라는 직책을 받고 즉시 한강철교를 경비하는 임무를 부여받고 주야로 근무했다.

그 당시 국내 상황은 1·21 청와대 습격사건이 일어난 뒤라 전국에 무장공비들이 남파되어 국가의 주요시설을 노리던 때였다. 국가에서는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파월 전투 경험자가 적격이라고 판단해서 예비역 참전 경험자를 모집하였고 나도 그중의 한 명이 됐다. 그렇게 선발돼 한강 철교를 경비하던 중 갑자기 경춘선 강촌 구간 철교와 터널을 지키라는 전출 통보를 받게 되었다. 예상 밖의 전출에 알아보니 ‘빽’ 있는 사람들이 한강철교가 서울 소재지라고 근무하기 편한 A급 지역이라며 밀고 올라오는 바람에 나는 강원도 산골인 강촌 구간 철도 경비로 밀려나게 된 것이었다. 섭섭하고 분했지만 어찌하랴….

가진 것 없는 집안에 학벌도 없는 나로서는 당장 거기라도 가야 월급 6000원 받는 신세니 두말없이 가방 하나 달랑 들고 강촌으로 가야 했다. 막상 가보니 산골인 강촌 철교와 터널 구간은 눈뜨면 산과 계곡이 병풍처럼 펼쳐있어서 하늘만 보이는 곳이었다. 그래도 주말이면 경치가 수려해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와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나는 전투경험이 많다고 대원 5명을 거느린 초소장을 맡았다. 지급받은 M2 카빈총 6정과 실탄 360발로 무장하고 주요지점에 호도 구축해 놓고 월남 전투를 경험 삼아 공비침투 예상 지점에 야간이면 잠복과 경계를 철저히 하며 경비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가까운 군부대와 파출소에 연락망도 구축했다.

어느 날 철도청장님의 초도순시가 불시에 닥쳤다. 그분은 파월 군수 참모장 출신이라 나는 군대식으로 준비해둔 5만분의 1 지도와 상황판을 들고 강촌 철교와 터널 경비 상황과 무장공비들의 예상침투로, 유사시 인근 군부대와 파출소에 지원 요청 방법, 무기 관리와 직원들의 군 출신과 참전 경력 등을 소상히 큰 목소리로 보고 했다.

보고가 끝나자 청장님은 깜짝 놀라시며 “야! 대단하다. 이렇게 준비하고 근무하다니 안심이 된다. 최고다! 지금껏 중앙선과 경춘선 순시하며 본부에서도 이런 상황판을 못 봤는데 이런 작은 초소에서 완벽하게 준비하고 경비하다니 놀랍다”며 침이 마르게 칭찬을 했다. 떠나실 때는 “이런 뛰어난 사람을 여기에 두지 말고 특채로 정식 직원으로 발령 내려라”고 동행한 방호과장에게 즉석에서 지시했다. 그 한마디에 나는 뜻하지 않게 정식직원 특채 1호로 행정절차가 진행되는 행운을 안게 되었다.


派獨 광부 모집에 지원

행정절차가 진행되는 도중 어느 날 우연히 파독 광부 모집을 한다는 해외개발공사 명의로 된 신문광고를 보게 되었다. 관심을 가지고 서울에 가서 알아보니 당시 듣기로는 3년 계약 끝내고 오면 서울에서 새로 짓는 양옥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큰돈을 번다는 것이다. 나는 고민 끝에 “이것이다.” 싶어 특채를 포기하고 이왕이면 해외로 나가서 큰물을 먹어보자고 결심을 했다. 그때만 해도 일반 국민이 해외로 나간다는 것은 달나라 가는 것과 같이 꿈같은 일이었다. 젊어서 고생은 돈 주고 사서도 한다는 데, 고생하며 일하는 광부면 어떠하랴. 돈 벌 수 있다는데, 돈 많이 벌어서 집안 살림에도 보태고 동생들 학비라도 대줄 수 있다면야 더 힘들고 험한 데라도 간들 어떠하랴.

나 또한 앞으로 결혼도 해야 할 텐데 지금의 월급 7000원으로는 살림은커녕 방 한 칸 얻기도 턱없는 노릇인데 정말 돈만 많이 벌 수 있다면 광부건 뭐건 어디든 가야 할 판이었다. 당시는 많은 젊은이도 비슷했겠지만 내 현실은 더욱 절박했다. 천신만고 노력 끝에 해외개발공사에서 실시한 파독광부모집에 응모해서 어렵게 합격했지만, 합격의 기쁨도 잠시였다. 이번엔 그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가 은행 적금도 해약하고 그것도 모자라 여기저기 아는 집을 찾아다니며 구걸하다시피 돈을 꾸어야만 했다.

학력도 짧고 가진 것 없고 집안배경도 없는 나였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군 생활과 월남 전투에서 단련된 육체적, 정신적 자산인 젊은 몸뚱이 하나는 가지고 있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가장 큰 자산이 내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이고 힘이 아닌가.

1970년 7월, 36대 1의 경쟁을 뚫고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일행 중 학력은 내가 꼴찌로 대부분이 대졸이고 고졸이 약간 명이었는데, 경력도 다양해서 공무원 출신에 군장교 출신들도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가는 도중 비행기에서 통역을 한 사람이 ‘재구대대’에서 보급관으로 근무한 분이셨다. 얼마나 반가운지 독일 가서도 한 광산에서 근무하다가 나중에 그분은 대한민국 땅덩어리를 넓힌다며 南美(남미)로 이민을 떠났다.

뒤셀도로프 공항에 도착해보니 우리나라와는 너무 큰 차이를 보인 독일에 충격을 받았다. 천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가 바로 천국이 아닐까 싶었다. 말로만 듣던 선진국이란 바로 이런 나라구나. 그래도 그렇지 우리나라와 이렇게 차이가 나다니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기심 아닌 질투가 났다. (계속)

[ 2015-12-27, 20:2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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