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지옥을 만든 공범자는 시인과 작가들이다."
반디의 소설 '고발'을 읽은 북한주민이 보내온 독후감: 이 소설은 김일성을 우상화한 시인과 작가들을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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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의 소설은 북한의 수령전체주의 실상을 폭로하였다는 데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김일성의 인자함의 본질을 세상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는 데 그 가치가 있다고 본다

암흑의 땅 북녘에서 보냅니다.

 

나의 감상문에서는 남한, 북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그리고 고발 책을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는 여기에서 밝힐 수는 없다. 다만 책으로 만들어진 모습이 아니라 한 장 한 장 사진처럼 찍힌 것이라고만 이야기하겠다. 

반디의 고발을 세 번째로 읽어본다.  읽어볼수록 그 의미가 깊은 소설이라는 게 안겨온다.

얼핏 보고 나면 고발은 7편으로 된 내가 살고 있는 땅에서 일어나는 여러 계층들의 단면적인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로  북한 실상에 대한 고발로 느껴진다.

수령만을 위한 독재체제에 분노로 사람보다 먼저 소설을 탈북시킨 탈북 작품으로 보인다.

그러나 읽고 또 읽어 보노라면 소설에는 북한 실상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철학이 담겨져 있다.  반디의 소설을 북과 남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읽어보게 된다면 독자들의 생각은 각기 다를 것이라고 본다.

 

북한의 독자들인 경우 우리가 당하는 실상 그대로 담은 작품 . 목숨을 내건 탈북으로 출판된 항거의 소설로 인식될 것이다. 

 

남한의 독자들인 경우 사람 사는 세상에 이런데도 있는가?  소설로 북한 실상을 세부적으로 알게 되는 계기가 되였다.  자유의 땅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걸 다시 한번 감사히 생각한다.”

반디의 소설은 남한 독자들에게는 수령독재에 신음하는 북한주민들에 대한 동정과 함께 안타까움을 느끼게 할 것이다. “왜 들고 일어나 싸우지 못하느냐?  3달째 배급을 못 타고 굶주리면서도, 남편을 수용소에 보낸 안해도 어버이 수령님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연기를 해야 하는 그런 독재체제를 반대하여 왜 들고 일어나지 못하느냐?  왜 자유를 위해 투쟁하지 못하느냐?  북한에는 무지렁이들만 모여있단 말인가?”  

이것이 남한 독자들의 안타까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북한에 살고 있는 나도 늘 하는 것이다
 

 반디의 소설을 곱씹어 읽어보면서 철학이 있다고 느끼는 것은 거대한 집단 최면술에 걸린 것과 같은 북한 2천만 주민을 꼼짝 못하게 묶어놓은 정신적 근원이 어디 있는가를 사실 그대로의 이야기를 통해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수령만을 위한 사회 그 속에서 신음하면서도 자기의 감성마저 죽은 수령을 위하여 억제당하는 독재체제는 처형과 수용소라는 공포통치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수령독재체제도 인민들의 정상적인 사고를 마비시키는 통치철학을 가지고 있고,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2천만 인민이 여기에 마취되었기 때문이다.

 

반디는 복마전에서 이렇게 말한다.

<합치면 구천에도 차고 넘칠 그 고통의 아우성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밖에선 지금 저처럼 행복의 웃음 소리만이 누리에 울려가고 있는 것이냐?! 그것도 결국은 량쪽 손톱을 동시에 뽑히는 듯한 고통을 당한 오씨를 선창자로 하는 행복의 웃음 소리가!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을까? ! 그 어떤 잔악한 마술의 힘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뭇 사람들의 고통의 울부짖음을 행복의 웃음으로 둔갑시킬 수가 있단 말인가? !> 

김일성 정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는 철학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김일성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지척만리의 주인공과 함께 분노로 주먹을 틀어쥐었던 려행증 제도도  김일성이 고안하여 만든 것이다.  홀어머니 계시는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어머니의 림종마저 지켜드리지 못하게 만든 (방침제대 ) 무리배치도 김일성이 고안한 것이다. 무자비한 처형과 지옥의 수용소도 김일성이 착상하여 실천한 것이고, 1948 9월 리씨 왕조와 같은 세습군주제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노라 인민들에게 약속하고, 권력의 자리에 올라 그 약속을 저버리고 권력세습의 기틀을 마련해 놓고 죽은 것도 김일성이다.

 

김일성이 없었다면 김정일도 없었을 것이고, 300만의 大餓死(대아사)도 없었을 것이다.

김일성이 없었다면 오늘의 3대 세습도 없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내가 사는 이 땅의 암흑은 장본인이 김일성이다.  하지만 지금도 북한주민의 90%는 이런 생각을 못 가지고 있다 <김일성은 항일의 전설적 영웅이다,  락후했던 식민지 반봉건 국가였던 우리나라를 경제강국으로 올려 세워 놓았던 위대한 수령이고, 자애로운 인민의 어버이였다.  우리나라의 경제가 이 꼴이 된 것은 김정일이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정치를 기대해볼 게 없지만 김일성이 만들어 놓은 이 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김일성처럼 정치를 잘 하면 이제라도 바로 잡힐 수 있다.>

 

이런 인식이 있어 그렇듯 참혹한 인권유린 속에 신음하면서도 순한 송아지 마냥 눈물만 흘릴 뿐 (뿔질) 한번 없는 것이다.  이 인식을 바꾸어 놓지 않는다면 이 땅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기대하기 어렵다.  김일성과 같은 (인민의 수령)이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릴 뿐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불길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반디는 소박하고 꾸밈새 없는 단편 이야기로 여기에 대한 철학적 해명을 하였다. 반디는 유령의 도시에서 이렇게 썼다.

<저 마르크스가 내놓은 모든 리론 중에서 가장 위대한 리론이 뭔지 아오?  그건 자본론도 과학적 공산주의 건설 리론도 아닌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 리론이요, 프롤레타리아 독재 리론!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에 이 도시 사람들은 누구나 다 토영삼굴을 따르며 살고 있는 거요.>

 

한 마디의 말이지만 한 생에 걸쳐 깨달은 반디의 인식관이 집약되어 있다. 공산주의 리론은 모든 사람들이 착취와 압박이 없는 사회에서 살게 해주겠다는 약속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후려잡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그것은 계급투쟁을 말한다.  계급투쟁에는 원쑤의 구분을 국가나 민족단위로 정하지 않는다.  재산과 지식의 유무(有無)나 사상이나 리념의 차이가 원쑤를 구분하는 기준점이다. 공산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은 같은 민족이라도 같은 마을 사람이라도 다 죽이겠다는 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끝나는 시점이 공산주의라고 정의한다.  

결국 공산주의는 투쟁을 위하여 세상에 태어났다.  투쟁대상이 없어질 때까지 자기들끼리 싸워야 한다. 평양의 김일성 광장에는 마르크스와 김일성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있었다.

마르크스가 내놓은 리론을 김일성이 실현시켜 준다는 의미이다. 결국 김일성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그 누구든 프롤레타리아 독재 대상이 되는 것이다. 반디는 유령의 도시라는 짧은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의 정신을 휘여 잡는 악마의 통치철학에 대하여 까밝히고 있다.

 

반디는 단편집의 구성 마지막 부분 <빨간 버섯>에서  저 빨간 버섯을 뽑아 버리라고 절규한다.  반디의 고발은 北주민 대다수가 잘못 생각하는 것, 아니 北주민 대다수가 생각하려 하지 않는 불행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소박한 이야기로 잘 깨우쳐 주었다.

우리가 김일성을 받들어 모신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  2천만의 北주민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암흑의 땅에 민주화 투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김일성을 받들어 모시지만 않았어도 김정은의 채찍 밑에서 노예의 삶을 강요당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분단된 내 나라가 벌써 통일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반디의 소설이 우리에게 이것을 깨우쳐 주었다고 생각한다.  2천만 北주민들에게 김일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심어주는 교과서로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작가나 시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리유가 있다.  김일성이 이 나라와 인민 앞에 무슨 공을 세웠길래 손자 대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 백성들이 떠받들어 주어야 하나?  언제부터 민족의 영웅이 되였나?  누가 먼저 민족의 령수로 떠받들자고 선동했느냐?  따지고 보면 이 나라의 작가들이고 시인들이다. 

 

반디의 소설은 북한의 수령전체주의 실상을 폭로하였다는 데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김일성의 인자함의 본질을 세상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는 데 그 가치가 있다고 본다

수령독재가 3대째 이어올 수 있은 것은 물론 무자비한 처형으로 인한 공포정치에도 있다. 그러나 기본은 김일성의 위대함과 인자함을 인민들의 머리 속에 심어놓은 그 정신에 있다. 北 주민들은 자기들이 겪고 있는 불행과 고통을 절대로 김일성과 결부시켜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이라는 나라의 정치제도는 모든 것이 김일성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정신적 기초가 지금까지도 인민들의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다. 어릴 때의 기억이 한가지 나는 것이 있는데 국어시간에 배웠던 조기천의 장편서사시 [백두산] 이다.

북쪽 땅에서 태여난 사람치고 이 시를 배우고 항일의 전설적 영웅 김일성에 대해 흠모하고 존경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었던가?  나 역시 김일성의 위대함에 완전히 넋을 빼앗겼댔다.

그 시를 지금도 기억한다

 

…………………………………………………..

삼천만이여!  오늘은 나도 말하련다

백호의 소리 없는 웃음에도 격파 솟아 구름을 삼킨다는

천지의 푸른 물줄기로 이 땅에 파몰아치던 살풍에

마르고 탄 가슴을 추기고 천년 이끼 오른 바위를 벼루돌 삼아

곰팽이 어렸던 이 붓끝을 육박의 창끝인 듯 고르며

이 땅의 이름없는 시인도 해방의 오늘 말하련다

 

첩첩 층암이 창공을 치뚫으고 절벽에 눈뿌리 아득 해지는 이곳

선녀들이 무지개 타고 내린다는 천지 안개도 오르기 저어하는 이 절경

세월의 류수에 추억의 배 거슬러 올리라

 

어느 해 어느 때 이 나라 빨찌산들 이곳에 올라

천심을 떠받들며 의분에 불질러

해방전의 마지막 봉화 일으켰느냐?

이제 항일의 의로운 전사들이 사선에 올랐던 이 나라에

재생의 백광 가져왔으니 해방사의 혁혁한 대로

두만강 물결을 넘어왔고  백두의 주름 주름 바로 꿔여

 민주조선에 줄곧 뻗치노니  또 장백의 곡곡에 얼룩진

 지난날의 싸움의 자취 력력하노니

 내 오늘 맘 놓고 여기에 올라  삼천리를 손금같이 굽어보노라

 

오 오 조상의 땅이여

오천 년 흐르던 그대의 혈통이 일제의 칼에 맞아 끊어졌을 때

떨어져 나간 그 토막 토막 얼마나 원한의 선혈로 딩굴었더냐?

조선의 운명이 칠성판에 올랐을 때 몇만의 지사 밤길 더듬어

백두의 밀림 찾아왔더냐?

 

가랑잎에 쪽잠도 그리웠고 사지를 문턱인 듯 넘나든 이 그 뉘냐?

산아 조종의 산아 말하라 뉘가 인민을 위해 싸우느냐?

뉘가 민전의 첫 머리에 섰느냐?

 

쉬위  바위 우에 호랑이 나섰다 백두산 호랑이 나섰다

앞발을 거세게 내여뻗치고 남쪽 하늘 바라보다

<<따응>> 산골을 깨친다

 그 무엇 쳐부시련 듯 톱을 들어 <<따응>>

그리곤 휘파람 속에 감추인다

 바위 호올로 솟아 이끼에 바람만 스치여도

 호랑이는  그 바위에 서 있는 듯  내 정신 가다듬어 듣노라

 다시금 휘파람 소리 들릴지  산천을 뒤집어 떨치는

 그 노호소리 다시금 들릴지!

바위! 바위!  내 알리 없어라  정녕코 그 바위일 수도 있다

 빨찌산 초병이 원쑤를 노렸고  애국렬사 맹세의 칼 높이 들었던 그 바위

 빨찌산 용사 이 땅에 해방의 기호 치던  장백에 솟은 이름 모를 그 바위

 또 내 가슴속에 뿌리박고 솟았거니  지난날의 싸움의 자취 더듬으며

 가난한 시상을 모으고 엮어 백두의 주인공 삼가 그리며

 삼천만이여 그대에게 높아도 낮아도 제 목소리로

 가슴 헤쳐 마음대로 말 하련다 .

 ....... ....

이 詩의 감화력은 자못 크다.  조기천은 시에서 김일성을 우리 민족을 구원한 빨찌산 대장, 민족의 영웅으로 칭송하였다.  우리 민족을 이끌 위인으로 노래하였다. 거짓과 위선으로 이루어진 이 詩가 2천만의 넋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이 시에 넋을 빼앗긴 사람은 석달째 배급을 못 받고도  수령님 하고 눈물을 쏟게 된다.
이 시에 넋이 빼앗긴 사람은 이밥에 고기국에 비단옷이라는 거짓말에 한 생을 속아 살면서도 거짓말을 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

이 시에 넋이 빼앗긴 사람은 이 제도에 절대 반항하지 않는다.

이 시에 넋이 빼앗긴 사람은 독재에 신음하는 인민들을 처형하면서도 절대 죄의식을 느낄 줄 모르게 된다.

이 시에 넋이 빼앗긴 사람은 3대 세습을 응당한 것으로 여긴다.

이 시에 넋이 빼앗긴 사람은 온갖 허위 날조된 력사도 그대로 믿는다.

이 시에 넋이 빼앗긴 사람은 독재자를 위하여 동족상쟁에 뛰어들 각오에 넘쳐있게 된다.

 

조기천은 이 시를 1946년에 썼다. 그 전까지는 우리 인민들이 김일성이 누구인지 잘 몰랐다. 김일성은 항일전의 공로가 아니라 이 시로 인하여 민족의 영웅으로 되었다.

독재자 가문이 3대에 걸쳐 내려오면서 시인 조기천을 고마워하는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시인 작가들을 혐오하는 리유가 여기에 있다. 아직도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삶의 권리와 자유를 빼앗은 장본인이 김일성이라는 데 대해 생각하는 것을 죄스럽게 여기고 있다. 이 나라의 시인 작가들은 독재자의 매문 문필가로써 민족 앞에 얼마나 큰 죄악을 저질렀는가를 반디선생의 분노의 작품 앞에서 돌이켜 보아야 한다.

자기들이 이 나라 인민들의 정신을 마취시켰기에 손쉽게 3대 세습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 독재의 칼날 밑에서 고통 받는 인민들의 신음소리가 그대들의 귓전에는 들리지 않으며, 매문 문필가로써 자기들의 삶 또한 자유롭고 편안했던가? 

 

반디의 비판정신, 항거정신을 따라 배워야 한다

반디의 작품은 이 땅의 매문 문필가들의 심장을 찌를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투쟁 방향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세습독재 하에서 신음하는 2천만 인민들에게, 독재정권의 창시자이며 봉건 조선을 재건한 김일성의 실체를 바로 알려주는 투쟁의 시작을 말이다.

                                               

암흑의 땅 북녘에서 刀盡(도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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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
저   자:반디
펴낸곳:조갑제닷컴
판   형:신국판
페이지수:332  쪽
출판일:2014년 5월10일
판매가격: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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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담보로 몸보다 먼저 탈북시킨 작품

북한체제를 통렬하게 비판·풍자한 북한 현역작가의 단편 소설 모음집 《고발》(332쪽, 1만2천원, 반디著, 조갑제닷컴)이 출간됐다.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 와서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작품을 출판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북한에 살고 있는 작가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폭압적이고 반민주적인 체제를 고발하는 작품을 출판하는 것은 분단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북한의 공인公認 작가 단체인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인 저자 ‘반디’는 1980년대 말에서 1990년을 지나 ‘고난의 행군’을 겪으며 배고픔과 체제 모순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목격하고 체제 고발을 위한 펜을 들기 시작했다. 북한 주민들이 실제 겪고 있는 고통이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아픈 사연들을 수집하여 작품에 녹였다.


원고 입수 과정: 《김일성 선집》에 싸여 넘어오다

언젠가 때가 올 것이라는 믿음 속에 작품을 하나둘씩 쌓아나갈 즈음, 평소 반디와 교분을 나누고 있던 친척 중 한 명이 탈북 결심을 털어놓는다. 처자식이 있는 반디는 자신이 움직이기에는 제약이 많다고 생각해 친척의 탈북에 자신의 작품을 맡기기로 한다. 원고를 받아든 친척은 지금은 자기도 빠져나간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으니 탈출할 길을 마련하고 다시 오겠다는 기약을 남긴 채 떠났다.

수개월이 지난 후 낯선 청년 한 명이 반디의 집으로 찾아와 말없이 편지를 건네주었다. 탈북에 성공한 친척이 쓴 편지로, 청년에게 원고를 건네주라는 내용이었다. 반디는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으로 원고 뭉치를 꺼내 주었고, 그의 작품은 《김일성 선집》 등에 싸여 중국을 거쳐 자유와 희망의 땅 대한민국에 들어왔다.


최고의 문학적 선동

반디는 일곱 편의 단편을 <탈북기>에서 시작, <빨간 버섯>으로 끝나도록 배열했다. 탈북이라는 소극적 저항에서 독재타도의 외침으로 발전하도록, 의도적으로 순서를 매긴 것으로 보인다.

대물림되는 ‘출신 성분제’에 절망하며 탈북을 결심하는 <탈북기>, 마르크스와 김일성 초상화를 보고 경기를 일으키는 아이 때문에 덧커튼을 달았다가 평양에서 추방당하는 <유령의 도시>, 해방 후 첫 공산당원으로 사회주의 건설에 매진하던 ‘마차 영웅’이 공산주의의 미래가 신기루였음에 좌절, 아끼던 느티나무를 도끼로 찍어버리고 죽는 <준마의 일생>, 죽어가는 어머니를 지척에 두고도 ‘여행 제한’으로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아들의 사연을 다룬 <지척만리>, 길을 가다 우연히 김일성을 만난 할머니가 ‘어버이 수령님’의 자애로움을 선전하는 자료로 이용되는 과정을 그린 <복마전>. <무대>는 보위부원 눈에 비친 북한 체제의 연극성이 주제다. 마지막 단편인 <빨간 버섯>에서 반디는 본색을 드러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산실産室인 당사黨舍를 타도하자고 외친다. 적어도 반디의 상상 속에선, 프롤레타리아 독재 타도의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피눈물에 뼈로 적은’ 소설

《고발》의 가장 큰 의미는 지옥 같은 삶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비판정신의 소유자가 목숨을 건 글쓰기를 했다는 점이다. 반디가 《고발》 때문에 체포된다면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될 가능성이 높다. 독자들은 반디가 그런 위험을 각오하고 글을 쓴 동기가 분노였음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잉크에 펜으로가 아니라 피눈물에 뼈로 적은’ 이 소설은 북한 사람들이 읽을 때 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북녘 상황에 분노하는 문학인이 적었다는 점, 소설과 시의 소재로 여기지 않을 정도로 무관심했다는 점은 한국 지성사知性史의 가장 큰 오점일 것이다. 서구 지식인의 가장 큰 타락이 스탈린의 대학살을 비호한 것이었듯, 한국 지식인의 가장 큰 타락은 김일성을 비호하고 주체사상을 비판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반디의 《고발》은 잔인한 압박을 이겨낸 인간승리이자 문학의 존재증명이며, 북한체제뿐 아니라 남한 지식인에 대한 고발장이다.


| 책속으로 |

149호!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말이었다. 도장도 그저 도장이 아니라 목장에서 가축들의 잔등에 지워지지 않게 불에 달구어 찍어대는 쇠도장이었다. 옛날엔 노예들에게도 찍었다던 그런 무서운 철인鐵印이 지금 민혁 아버지와 그의 삼촌은 물론, 민혁의 여린 잔등에까지 깊숙이 찍혀져 있는 것이었다.
-44페이지 <탈북기>

나도 모르게 내 아랫배를 더듬었다. 결혼 후 뒤늦게이긴 하지만 새 생명이 움터 자라고 있었다. 부끄러워 아직 남편에게 알리지 않고 있던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땅에 생명을 낳을 때 어미는 그 생명이 복되기만을 바랄 것이다. 한평생 가시밭을 헤쳐야 할 생명임을 안다면, 그런 생명을 낳을 어머니가 이 세상 어디에 있으랴! 만약 그런 어머니가 있다면 그것은 어머니이기 전에 죄인 중에서도 가장 잔악한 죄인이 될 것이다. 오늘 내일 중으로 꼭 산부인과에 가야겠다.
-45페이지 <탈북기>

“저기 저 마르크스가 내놓은 모든 이론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이론이 뭔지 아오? … 그건 자본론도, 과학적 공산주의 건설이론도 아닌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론이오. 프롤레타리아 독재! 그게 어떤 것인지를 알기에 이 도시 사람들은 누구나가 ‘토영삼굴兎營三窟을 따르며 살고 있는 거요.”
-69~70페이지 <유령의 도시>

이밥이며 기와집이며 주렁지게 달린다는 열매들을 바라고 한뉘를 허위단심 달려온 자기에게, 그 열매들 대신 차디찬 쇠붙이만을 이마빡에 달아준 병신 같은 저놈의 느티나무를 선로공들에 앞서 자기가 요절내고 싶었노라고….
-111페이지 <준마의 일생>

송아지 눈처럼 순박해 보이는 그의 눈자위에 눈물이 한가득 고여 글썽거렸다. 솔뫼라는 고향이 그 어디 도쿄나 이스탄불이라도 된단 말인가! 제 나라 제 땅 안에 있는 고향이 이처럼 아득하고 막막한 곳이 되었다니…. 허락한다면 천리든 만리든 걸어서라도 떠나보련만 그마저 허용하지 않는 ‘여행 질서’였다.
-125~126페이지 <지척만리>

갑자기 치미는 자격지심에 심장의 피가 왈칵 끓어올랐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도둑질을 했나, 살인을 했나? 내 나라 내 땅에서 어머니 병문안 가는 게 이리도 죄란 말인가, 이리도!’
-134페이지 <지척만리>

합치면 구천에도 차고 넘칠 그 고통의 아우성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밖에선 지금 저처럼 ‘행복의 웃음’ 소리만이 누리를 울려대고 있는 것이냐! 그것도 결국은 양쪽 손톱을 동시에 뽑히는 듯 한 고통을 당한 오 씨를 선창자로 하는 ‘행복의 웃음’ 소리가!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을까? 그 어떤 잔학한 마술의 힘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뭇사람들의 고통의 울부짖음을 ‘행복의 웃음’으로 둔갑시킬 수가 있단 말인가.
-180페이지 <복마전>

“지금 저 조의장弔儀場에선 벌써 석 달이나 배급을 못타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애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어요. 꽃을 꺾으려고 헤매다 독사에게 물려 죽은 어린아이의 어머니가 애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단 말입니다. 그래 그들의 눈물이 진실이란 말입니까, 예? 백성들을 이렇게 지어낸 눈물까지 흘릴 줄 아는 명배우로 만들어 버린 이 현실이 무섭지도 않은가 말입니다.”
-214페이지 <무대>

홍영표는 바로 남편이 현재 정치범 수용소에 가 있는 큰 숙이 어머니나, 제일 굶는다 죽는다 하는 해주댁 같은 사람들의 조의弔意 모습을 특히 눈여겨보고자 조문객들 속에 스며들었던 것이 아닌가! 그러나 막상 단위에 꽃송이를 놓고 “어버이 수령님!”하며 묵도를 시작하는 큰 숙이 어머니와 마주 하는 순간 홍영표는 불시에 등이 으쓸해졌다. 정말 그녀의 두 볼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녕 그것이야말로 홍영표가 지금껏 생각해본 일도 없었고, 설사 생각해 보았댔자 믿을 수도 없었을 몸서리나는 광경이었다.
-218페이지 <무대>

허윤모의 질척한 시선은 조금 전 고인식이 군중의 머리 너머로 바라보았을 것이 틀림없는 시당 청사-빨간 버섯-를 직시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귀중한 생명들이 저 독소毒素에 희생되고 있는 것인가! 과연 그 사자머리의 마도로스 파이프가 지껄였다던 구라파의 붉은 유령이 이 땅에 뿌린 것이, 인간의 모든 불행과 고통의 화근禍根인 저 빨간 버섯의 씨앗 따위였단 말인가! 으스러지게 주먹을 들어 쥐고 ‘벽돌집’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허윤모의 가습 속에는 고인식이 미처 외치지 못한 절규가 처절하게 울려오고 있었다. “저 빨간 버섯, 저 독버섯을 뽑아버려라. 이 땅에서 아니, 지구 위에서 영영!”
-277페이지 <빨간 버섯>

<북녘 땅 50년을 말하는 기계로, 멍에 쓴 인간으로 살며 / 재능이 아니라 의분(義憤)으로, 잉크에 펜으로가 아니라 피눈물에 뼈로 적은 나의 이 글 / 사막처럼 메마르고 초원(草原)처럼 거칠어도 병인(病人)처럼 초라하고 석기(石器)처럼 미숙해도 독자여! 삼가 읽어 다오(반디 ‘서시序詩’)>
-307~308페이지




추천사 | 어둠의 땅, 북한을 밝히려는 반딧불이 되어_도희윤都希侖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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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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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버섯
부록
비화│북한현역작가의 북한체제 비판 소설은 이렇게 넘어왔다_김성동金成東 월간조선 기자
해설│피눈물에 뼈로 적은 고발장_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독후기1│읽기가 불편한 소설_이지영李知映 조갑제닷컴 기자
독후기2│불쌍한 사람들_김청솔
독후기3│솔제니친 vs 북한의 반디_김광진金光進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토속어·북한말 소사전



| 저자·반디 |
1950년 生. 북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







[ 2016-01-04, 21:5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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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뿔난애비     2016-01-06 오전 9:04
“자기(양승오)의 그릇된 판단을 적용을 해가지고, 어떻게, 감히, 학자가 말입니다.
백만 배로 부풀리고, 이건 조작에 해당합니다. 자료를 백만 배로 부풀리고. . .”
재판장에 출두한 여섯 의사가 당신의 말은 골때리는 말이다, 라고 증언하였으니
이젠, 왜 그렇게 양승오 박사를 공격 했어야 했는지, 당신이 꼭 대답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번, 양승오 관련 재판에 등장한 6명의 의사 중 단 한 명도,‘세 장의 엑스레이가 동일인의 것이다,’ 라고 말하지 않았음

   유신     2016-01-06 오전 2:39
하나 더 있죠?
신문 방송
남조선 북조선 가리지 않고
언론은 세상을 망치는 흉기
   뿔난애비     2016-01-05 오전 9:20
그다지 관심도 없는 거 올리지 말고, 박주신 신검조작사건이나 좀 다루쇼
변호사쪽 의사들은 동일인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반면 검찰이 데려온 의사놈들은 똑부러지게 "동일인이다"라고 말을 못한다.
뭐 이렇게 비겁한 놈들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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